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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못 놀아서 생긴 병이 더 안 논다고 치료될까

결핍의 사회에서 성숙의 사회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못 놀아서 생긴 병이 더 안 논다고 치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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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돈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국민의 주머니로 그만큼의 돈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교육비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소비 수준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권이다.

예를 들어 1인당 석유소비량이 세계 5위권(2008년 기준)이고, 연간 25조 원어치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지고, 국내 수입 명품 시장은 연간 5조 원 규모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소비해서 나온 수치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원천적으로 수입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너무 써서, 특히 쓸데없는 데 써서일까 고민해볼 문제다.

한때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상징이던 박노해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 씨는 최근 사진작가로 전 세계를 둘러보고 “이제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은 없다.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만 있다”고 얘기했다.

물론 말 그대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전혀 없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들을 보살필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인 소득, 특히 소비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권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위기라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서 지금 누리는 사치(세계적으로 보면)를 조금이라도 못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더 벌어야 한다고 외친다. 물론 모든 조건이 똑같다면 풍요로운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갖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소비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더구나 이미 90만큼 가지고 있는 것을 91이나 95만큼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하다. 마치 10시간의 수면시간을 9시간으로 줄이려 할 때와 3시간의 수면시간을 2시간으로 줄이려 할 때 그 한 시간은 똑같은 한 시간이 아닌 것과 같다.



진정 부족한 것 

그렇다면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뭘까. 돈, 자동차, TV, 교육, 일…과연 이런 것들일까.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의외로 쉽다. 자신이 하루에 쓰는 자원, 대표적으로 시간이나 돈을 가장 많이 쓰는 활동과 가장 적게 쓰는 활동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

앞에서 얘기했듯이, 일상에서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당연히 부족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객관적으로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미 우리 삶에 충분하다. 우리 삶에서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 그래서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여가, 즐거움, 삶의 의미’와 같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1인당 근로시간이 긴 것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다. 연간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이고 OECD 평균의 1.3배를 일한다. 우리와 생활수준이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 삶에 무엇이 많아서 문제이고 무엇이 부족해서 문제인지 명확해진다. 성인만 그러한가. 청소년의 학습시간도 OECD 국가 평균은 33시간인데, 한국의 청소년들은 49시간이다. 앞에서 얘기한 사교육비나 교육비와 연계해 생각하면 우리 학생들이 뭔가를 덜 배워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OECD 국가들 중에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많이 공부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학습동기는 최하위권, 이제 더 이상 청년에 한정되지 않는 높은 실업률, 행복지수 최하위, OECD 국가들 중에 자살률 1위 등 다양한 부정적 부문에서 세계 수위를 다툰다.

필자와 같이 해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경제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는 대부분의 선진국 삶에 비해 우리의 삶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원시림이나 대자연에 간다면 몰라도, 웬만한 세계적인 도시에 가도 우리는 그리 감동을 받지 않는다. 고층빌딩, 음식, 각종 편의시설 등 우리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은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삶의 자세, 습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다. 선진국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무조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는다. 단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일하지 않는 시간에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돈이나 출세, 물질적인 획득을 포기할 만한 중요한 가치, 가족, 여가, 여유, 봉사 등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학교들이 주말이나 특히 연휴 직전에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왜? 숙제 때문에 학생들이 놀지 못할까봐 그런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오히려 주말이나 연휴 직전에는 더 많은 숙제를 내주고, 심지어 꼭 연휴 직후에 시험을 본다. 왜? 주말과 연휴 동안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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