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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관진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나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세인가 허세인가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왜 김관진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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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김병관씨가 많은 이로부터 질시를 받아 낙마하고 김관진씨가 계속 장관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지장(智將)보다는 역시 운장(運將)·복장(福將)”이라는 평을 했다.

그때 박흥렬씨가 대통령경호실장에 취임한 것에 주목한 이는 적었다. 김관진, 박흥렬 두 동기는 김관진이 국가안보실장이 되면서 청와대에서 다시 만났는데, 여기에서 또 한 번 역전이 일어났다.

경호실에 밀리는 국가안보실

경호실은 대통령직을 만들 때 같이 생긴 유서 깊은 조직이지만, 국가안보실은 박근혜 정부에서 신설된 조직이다. 경호실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에 청와대 안에 별도 건물을 갖고 있다. 자체 예산을 편성해 집행할 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직원을 선발하니 강한 응집력을 갖는다. 부속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대통령을 모신다는 ‘결정적인 파워’도 가졌다.

국가안보실은 정반대다. 신생 부서인 만큼 다른 부서 건물에 들어가 있다. 여러 부서에서 파견된 직원들로 구성돼 있어 단결력이 약하다. 파견된 이들은 친정 부서에 충성하는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힘을 끌어와야 하는데 아웃소싱할 기관도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안보실의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대통령이 임무를 주며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그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국가안보실은 체제가 짜여져 있지 않아 부족한 것이 많다. 김 실장이 청와대로 발령 났을 때 박 실장은 ‘동기생이 왔다’고 반가워하며 사무실 부품 등 아쉬운 것들을 지원해주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실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허방이었던 것이다. 육군 참모총장 인사 때처럼 두 사람 관계가 다시 역전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박 실장이 호스트가 돼 김 실장도 참석한 가운데 동기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일이 있다’며 박 실장은 인사만 하고 가고, 김 실장이 그 자리를 주재했다. 우리도 공직에 있어봤기에 그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는 금방 알아차린다. 경호실장은 대통령이 자주 찾는 실세이고 안보실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니겠는가. 셋만 놓고 봤을 때 진짜 운장·복장은 박흥렬이다.”

국가안보실장의 실체는 ‘얕은 뿌리’(역사)와 ‘빈약한 가지’(조직)를 가진 ‘연약한 나무’에 불과하다. 새로 심어서 그렇다면, 주인(대통령)은 물을 자주 주고 볕이 잘 들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일도 없어 ‘시들시들’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안보부총리’는 경제부총리보다는 국무총리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친다.

이러한 한계는 김장수 전임 안보실장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실장일 때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있었다. 남재준은 육사 25기, 김장수는 27기, 김관진(국방부 장관)은 28기이니, 남재준은 ‘선배의 끗발’로 안보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가 전화를 걸어 “김 장군,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소”라고 하면, 두 김 장군은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안보는 일관성을 갖고 통제됐다.

남재준의 소신

국방과 정보, 외교, 통일, 치안을 종합 컨트롤하는 국가안보실을 만들어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남 원장의 발상이었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자신이 안보실장을 맡고, 자신이 생각해둔 인물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 군을 통일에 대비한 조직으로 개혁하려 했다. 그런데 그와 그가 이끈 조직의 ‘강성(强性)’이 부담스러웠는지, 박 당선인은 ‘부드러운’ 김장수 씨를 안보실장에 임명했다.

그 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해 안보가 위태롭다는 판단이 들자, 박 당선인은 ‘제쳐둔 인물’인 남재준을 뒤늦게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남재준은 대통령이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에, 오히려 소신대로 나갔다.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NLL 논쟁을 마무리 짓고, 이석기 의원을 체포해 통합진보당과 RO(지하혁명조직)를 와해시켰다. 그렇게 남 원장이 밀어붙일 때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는 오히려 치솟았다.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남재준과 국정원은 많은 적에게 둘러싸였다. 반대세력은 남재준과 무관한 국정원 댓글사건과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것이 엉킨 가운데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박 대통령은 ‘공공의 적’이 된 남재준을 퇴출시켰다. 남재준은 1년 1개월 만에 물러났지만, 보수파의 숙원(宿願)은 해결해주고 떠난 인상을 남겼다.

남재준 퇴출 후 이병기 국정원장-김관진 국가안보실장-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들어서면서 ‘안보 통제’는 사라졌다는 평가다. 남 원장이 안보 문제를 리드할 때 외교·통일 쪽에서는 “국가안보를 왜 군인 출신들이 독점하느냐”고 반발했지만, 남 원장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기에 끌려갔다. 결국 외교·통일 라인은 국가안보실장에 다시 군인 출신이 임명되는 것은 수용했지만, 국인 출신이 안보 문제를 독점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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