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해군기지 갈등’ 제주의 본보기 안보를 상품화하라!

군사기지가 있는 관광지 오키나와

  • 오키나와=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5-02-24 13: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해군기지 갈등’ 제주의 본보기 안보를 상품화하라!

    ‘아메리칸’이 보이지 않는 아메리칸 빌리지. 거듭된 경제 성장으로 일본의 물가가 미국과 비슷해지자, 오키나와의 미군들은 더 이상 나하 시내로 나오지 않는다. 제주도도 물가가 높아 제주기지 군인들은 영외 생활을 즐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1월 31일 국방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세력이 군 관사 건설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농성천막 등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제주씨올네트워크 등은 ‘제주도민을 능멸하고 제주의 자존과 도민 주권을 짓밟는 사태’라고 주장해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군 기지와 관광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관광지로 유명한 섬 중에는 군사 요충지가 적지 않다. 태평양에서 그러한 곳을 찾아보라면 제일 먼저 하와이를 꼽을 수 있다. 하와이는 좋은 날씨 덕분에 천혜의 관광지가 됐다. 그리고 태평양의 한가운데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의 태평양사령부가 들어섰다. 하와이 주도(州都)인 호놀룰루에서 멀지 않은 진주만은 태평양사령부 산하 해군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 됐다.

    중국 잡는 그물의 ‘벼리’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에 정박한 미 해군 함정들은 일본 연합함대의 기습을 받아 상당수가 침몰하고 1102명이 전사했다. 미군은 그 악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때 격침된 함정 가운데 한 척인 애리조나함을 인양하지 않고 수중기념관으로 활용한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그곳을 찾는다. 태평양함대의 영내와 ‘전쟁의 상처’가 와이키키 해변과 같은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규슈에서 타이완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류큐(琉救)열도는 바다로 나오려는 중국을 막는 치밀한 그물 형세다. 그 그물 한가운데 그물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벼리[綱]’ 같은 존재로 오키나와가 있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면적이 비슷하지만, 그 모양은 매우 길쭉하다. 제주도는 동서(東西)로 오동통해 일주나 횡단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나, 오키나와는 동북-서남으로 길쭉해 일주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렇다면 횡단 시간은 매우 짧아야 하는데 횡단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가장 넓은 곳의 폭이 26km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그 섬 남부지역에 거대한 미군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섬 면적의 18.4%를 차지하는데, 죄다 살 만한 곳에 있어, 오키나와인들은 폭이 좁은 섬에 살고 있음에도 횡단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격전을 치르고 이 섬을 점령한 미군은 방대한 토지를 징발해 거기에 각종 군사시설을 설치했다. 그 때문에 그 시절의 오키나와 공용어는 영어, 공용 화폐는 달러가 됐다.

    본토에 사는 일본인들은 미군이 인정하는 ‘도해증(渡海證)’을 받아야만 오키나와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 도해증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그것이 일본 국민을 자극해 반미시위가 일어났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은 미국 앞에 ‘홀랑 벗는’ 조치를 취했다. 일본은 무기를 개발해도 반미국가에는 절대로 수출하지 않는다는 ‘무기 금수(禁輸) 3원칙’과 어떠한 경우에도 핵무장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연달아 발표했다(1967년).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보인 다음인 1972년에야 오키나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오키나와인들이 불편을 호소해도 일본은 미군만큼은 건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본 정부의 처신이, 중국이 오키나와 현에 속하는 센카쿠(尖閣) 제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금 상당한 빛을 발한다. 미국은 ‘도련(島鍊)’ 정책을 내세우며 먼바다로 나오려는 중국을 억제해야 하니, 센카쿠 문제로 중국의 도전에 직면한 일본을 강한 파트너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 틈을 이용해 지난해 무기 금수 3원칙을 폐지한 일본은 자국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바꾸려는 ‘개헌(改憲)의 장’을 만들고 있다.

    오키나와도 하와이 못지않게 천혜의 관광지가 될 조건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미군이 구축한 전쟁기지와 관광은 어떻게 융합되는가. 그것을 알아보려 비행기에 올랐다. 이왕이면 일본의 속살을 보자는 생각에 일본 ANA가 설립한 저비용항공사 피치항공을 이용했다. 피치항공은 인천에서는 오사카로만 비행하기에, 오사카에 들러 1박 하고 새벽같이 오키나와로 날아갔다. 일본 서민처럼 ‘침투’해본 것이다. 오사카의 날씨는 매우 찼으나 오키나와 나하(那覇)공항의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했다. 한낮에는 반팔 상의를 입어도 될 정도로.

    미군 없는 아메리칸 빌리지

    그날 오후 시외버스를 타고 해변에 있는 미군 시설을 돌려받아 만들었다는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았다. 그곳으로 이어진 해변도로를 따라 1시간 20여 분 북상(北上)하는 동안 오른편으로 미군 기지임을 알리는 기나긴 철책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린 버스 정류장의 이름이 일어로는 ‘軍病院前(군 병원 앞)’ 영어로는 ‘U.S. Naval Hospital’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미군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메리칸 빌리지로 들어섰는데, 귀에 들리는 것은 대부분 일어였다.

    상점과 음식점이 ‘드문드문’ 들어선 그곳은 해 질 무렵이 되자 활기를 띠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일몰을 보려 동중국해를 향한 해변에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아메리칸’은 보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GI(미군 병사의 속칭)들이 나오지 못한 것일까. 해가 꼴깍 넘어간 다음 빌리지는 비로소 ‘색’을 쓰기 시작했다. 온갖 전구를 밝혀 동화 같은 세계를 만들었다.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선술집에 들어가봤지만 GI는커녕 서양인도 보이지 않았다.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 ‘스시’ 집에 들어갔더니 그곳이 가장 붐볐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완전 일본판이었다. 그리고 미군 없는 ‘군병원앞’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나하의 중심부인 ‘고쿠사이 도오리(國際通おり)’, 우리말로는 ‘국제거리’로 해석되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주말인지라 그곳은 아메리칸 빌리지보다 더 반짝였다.

    그런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일본의 여느 주택가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술을 즐기는 동행인 덕분에 여러 주점을 돌아다녀봤지만, 미군은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이 오키나와의 젊은이였고 간간이 한국어와 중국어가 들려올 뿐이었다. 미국식 술집은 찾을 수 없었기에 ‘아와모리(泡盛)’라고 하는 오키나와식 ‘사케(酒·일본식 청주)’를 파는 ‘이자카야(居酒屋)’에 들어가 갈증을 풀었다.

    다음 날 데이 투어(day tour) 버스를 타고 더 먼 곳까지 북상했지만, 관광객은 동양인 일색이었다. 미군기지임을 알리는 철책은 섬의 중간 지점에 있는 추라우미(美ら海)수족관에 이르렀을 때 더는 보이지 않았다. ‘미군기지가 없다’함은 사람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의미이니, 어촌과 관광지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마을도 없었다. 시골 풍경의 연속이고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쇼핑 유도 관광지가 가끔씩 나타날 뿐이었다.

    안보와 관광

    오키나와가 안보의 땅이라는 사실은 나하항(港)에서도 상기할 수 있었다. PLH-09라는 함번을 붙인 해상보안청 순시선 ‘류큐함’을 발견한 것. 이 배는 2013년까지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자랑하는 호위함대 소속 전투함이었다. 그해 일본은 ‘하쓰유키’급 전투함 4척을 퇴역시켜 해상보안청 순시선으로 개조했는데, 그중 한 척이 바로 류큐함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센카쿠가 포함된 오키나와를 관할하는 제11관구에 가장 강력한 순시선을 배치한다. 미군과 이런 배들 덕분에 오키나와는 센카쿠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이 자유롭게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오키나와 여행을 마치는 날, 비로소 3만여 명에 달하는 미군을 주말에도 볼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엇비슷하다. 미군 장병의 봉급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일본이 못살았던 과거에는 미군들이 주말마다 오키나와 시내로 쏟아져 나와 돈을 쓰며 자유를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오키나와의 물가도 만만치 않기에 이들은 돈을 맘껏 쓰지 못한다. 반면 기지 안에서는 필요한 물품과 술을 면세로 싸게 살 수 있으니 기지 생활을 더 즐긴다는 것이었다.

    ‘해군기지 갈등’ 제주의 본보기 안보를 상품화하라!

    해가 지자 야간조명으로 갖가지 ‘색’을 입은 아메리칸 빌리지. 오키나와는 안보를 바탕으로 미군이 보이지 않는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있다.



    이어도 사태가 벌어지면?

    ‘해군기지 갈등’ 제주의 본보기 안보를 상품화하라!
    유사한 현상이 하와이에서도 벌어진다. 호놀룰루 시내에서는 그렇게 많다고 하는 미군을 볼 수가 없다. 같은 이유로 한국도 소득이 증가하자, 이태원과 동두천 시내에서 미군을 보기 어려워졌다. 미군은 영내 생활을 하며 ‘방위’라고 하는 고유 임무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오키나와는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하는 제주도의 미래상이 될 수 있다.

    제주도의 물가는 오키나와보다 높은 편이니 해군기지 안의 군인들이 제주 시내로 쏟아져 나오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주기지의 면적은 오키니와 미군기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으니 많은 군인이 거주할 수도 없다.

    제주도가 걱정해야 할 일은 턱없이 높은 관광 물가를 낮출 방안과 이어도 상공을 모두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한 한중일 3국이 충돌하는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다. 이어도의 안보가 불안해지면 제주도의 관광도 쇠퇴한다. 그러한 사태를 막으려면 군사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제주기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안보가 관광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임을 알아야 한다.

    돌아오는 날 나하 공항에서도 피치항공 여객기 안에서도 서양인을 볼 수 없었다. 미군과 군속은 미군 전용기를 타고 공짜로 이동할 수 있으니, 민간 공항과 여객기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키나와는 미군 덕택에 안보를 보장받으면서 자국민과 한국인 및 중국인을 유치해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있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