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과 정면대결은 어처구니없는 오해”(통일교 측)
- “통일교 내부 개혁 필요” (세계일보 관계자)
- 세계일보 인사 내홍…50일간 회장 2번 교체
지난해 12월 1일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가 목회자 500여 명을 불러 모아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이처럼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신동아 2월호 ‘정윤회 문건 통일교·세계일보 막전막후’ 제하 기사 참조) 통일교와 세계일보가 진통을 겪고 있다. 세계일보는 통일교의 계열사다.
교권에서 배제된 통일교 내 여러 세력이 확인되지 않은 각종 문제점을 제기하며 제각기 신도들을 대상으로 지도부를 질타하는 여론전을 벌이는 듯한 양상도 관찰된다. 고위 목회자의 신도 성추행 의혹까지 불거져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이 사건을 송치했다.
50일 동안 세계일보 회장 2명이 경질됐으며 조한규 사장 교체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후임 사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 최종 단계에서 낙마한 것으로 알려진 조민호 세계일보 심의인권위원은 분쟁 야기 등의 이유로 파면됐다. 통일교 측은 “인사 문제는 내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 통일교인은 “세계일보 회장은 문선명 총재께서 생전에 맡은 공직일 만큼 상징적인 자리인 데다 손대오 전 세계일보 회장은 통일교의 큰 어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청와대의 보복인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1월 22일 통일교 관련 회사인 ㈜청심, ㈜진흥레저파인리즈 등 청심그룹 관련사에 특별세무조사를 통보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청심그룹과 관련한 배임 혐의 고발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때문에 통일교에 대한 보복에 나선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통일교는 2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학자 총재의 발언과 관련해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말한 게 아니라, 종교적 차원에서 정도(正道)를 가고,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유경석 통일교 한국회장)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것이다.
1월 27일 보수단체 회원 200여 명이 서울 용산구 통일교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밖에는 배워줄 사람이 없다. 한방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는 한 총재의 말과 “미공개 핵폭탄급 특급 정보 7~8개가 있다” “세계일보가 특급 정보 공개하면 대통령 하야도…” 등의 내용이 담긴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명의의 특별보고서 내용에 대해 항의했다. 또 ‘통일교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통해 국론 분열, 국기 문란에 대해 한 총재가 직접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통일교 측은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는 가정연합의 공식기구가 아닌 친목단체이며 문건을 작성한 이모 씨가 사적 견해를 담은 문건의 파장이 커지자 통일교 본부에 공식 사과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통일교의 어른 서너 분에게 문서 형태로 전달한 것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됐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해킹한 것 같다”면서 “나는 이제 힘도 없고 세력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교 측은 “이 문건은 지도부에 보고된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심각한 뭔가가 닥쳐온다”
12월 17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에는 손대오 전 회장을 비난하는 내용이 A4용지 1장 가까운 분량으로 담겼다. 이씨는 세계일보 간부와의 통화에서 손 회장을 격한 표현으로 비난하면서 “손대오 회장이 그만둬야 한다. 손 회장을 공격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손 회장은 1월 19일 해임됐다. 복수의 세계일보 관계자는 “이 문건 작성에 세계일보 고위 인사가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시사인’은 2월 7일자 ‘전방위로 조여오는 단독의 대가’ 제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손대오 회장은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기류를 탐지해 대응책을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의존한 인물이 조민호 심의인권위원이었다. 경북 청송 출신인 조 위원은 이렇게 해서 손 회장에 의해 후임 사장 물망에 올랐다. 정치부 기자 등을 하면서 현 정권의 영남 출신 실세들과 친분이 있기 때문에 정권과의 긴장관계를 풀고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하는 데 적임자라고 본 듯하다”
1월 23일 파면된 조민호 전 위원은 신동아와 만나 “유력한 채널을 가동해 통일교 관련 정보를 획득해 이를 있는 그대로 손 전 회장에게 전했고, 손 전 회장이 사안을 해결할 적임자로 나를 지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간 통일교 내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정권이 직접적인 보복이 아닌 구원파 유병언의 사례처럼 형법을 이용해 문제삼을 소지가 커 보인다. 청심을 찌른 것이 그런 예다. 통일교의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교 측은 조 전 위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세계일보에서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조 전 위원은 1월 20일 ‘선·후배 동료들께’라는 제목이 붙은 200자 원고지 59매 분량의 서신을 세계일보 기자들에게 보냈다. 이 서신에는 사장으로 내정돼 임명 통보를 받았다가 철회되는 과정이 담겼다.
통일교는 종산복합체의 특수조직입니다. 이 조직에서 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의 명은 곧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계일보에 입사한 지 27년이나 됐는데 내 눈을 의심할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2월 29일 ‘정식 통보’를 받고 1월 2일 간단한 취임인사, 5일 정식 취임을 앞두고 며칠 사이에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 통일교는 내부에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학자 총재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손 회장을 급파한 배경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이 바보가 아닌 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언론 탄압이나 종교 탄압을 할 리 만무합니다. 다름 아닌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현재 통일교 내부에선 한학자 총재가 느끼는 위기의식에 대해 “별것 아니지 않으냐”는 기류와 “종전보다 더 심각한 뭔가가 닥쳐오고 있다”는 견해가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최상의 길은 폐허 위의 승리가 아니라 예방입니다. 통일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이에 대해 통일교 측은 “조 전 위원의 주장은 일방적인 얘기”라고 일축했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1월 22일 “총재와 재단, 세계일보 조직 어디에서도 조 위원을 사장으로 임명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세계일보를 소유한 통일교가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한겨레’는 1월 24일자 보도에서 ‘주화파’ ‘주전파’ 갈등 구조로 갈래를 쳐 보도하면서 이렇게 서술했다.
“통일교 안에서 그 자체로 법으로 통하는 한학자 총재의 태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애초에는 정부와 관계 개선을 위해 손 회장을 세계일보에 보내고 조한규 사장까지 교체하려 하다가 내부 반발이 일자 흐름을 일거에 뒤집어엎고 전투태세를 갖춘 것이다. 실제로 한 총재는 지난해 12월 1일 열린 훈독회에서 ‘주화파’인 손 회장을 지명하면서도 현 정부와의 정면대결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인다.”
통일교 측은 이 같은 구조는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언론을 소유한 종교와 정치권력의 충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통일교인 및 세계일보 관계자가 ‘통일교의 유력자 대부분이 호남 출신이고, 정권과 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은 이들의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과 관련해서도 “통일교단 40여 개 주요 보직에 영호남, 충청, 서울 출신이 섞여 있다.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2012년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김만호 총재 비서실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가 정계 진출을 준비한다는 일부의 증언 등과 관련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오보다. 통일교는 전혀 정계 진출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자협회보’는 2월 11일 세계일보 인사 관련 내홍(內訌)과 관련해 이렇게 보도했다.
“회장이 50여 일 만에 바뀐 세계일보가 이번에는 사장 교체설로 술렁이고 있다. 당장 오는 2월 12일 사장 거취에 관한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다. 정윤회 문건 보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세계일보가 회장에 이어 사장까지 교체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세계일보 안팎에서는 세계일보 모체인 통일그룹 재단본부가 조한규 사장을 조만간 경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후임으로 사모 전 세계일보 사장이 거론됐으나 지금은 차모 전 세계일보 상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11일 ‘미디어오늘’의 보도는 이렇다.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흔들리고 있는 세계일보의 사장 교체가 기정사실화돼 논란이 예상된다. 세계일보는 2월 12일 사장 교체 문제 등을 놓고 주주총회 소집을 위한 이사회를 소집했다. 조한규 사장 교체에 중론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월 12일 이사회는 열렸으나 사장 거취 문제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 안팎에서는 사장 교체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