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호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예비역 여군장교 작심토로

  • 조성식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15-02-25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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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대 밖 개고기 식당에서 첫 성추행
    • 벌거벗고 아파트 침입한 남군 후배 장교
    • ‘부인의 구명운동 → 피해 여군 매도’ 패턴 반복
    • 불륜 일삼은 남녀 고위 장교들 秘스토리
    • 남성들과의 멤버십, 연대감 강화가 해법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육군3사관학교 여생도들의 각개전투 훈련.(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여군 성폭력 피해 실태를 취재하면서 여러 명의 전·현직 여군 장교를 접촉했다. 예상한 바지만 현역들은 인터뷰를 고사했다. “할 말은 많지만 나설 수 없는 처지임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예비역 장교들 중 Q씨의 얘기가 돋보였다. 여군단 특수병과 시절부터 남녀군 통폐합 이후 여군의 발전상을 지켜봐온 그는 자신이 직·간접으로 겪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여군 세계는 좁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여군 장교는 사단에 한두 명 있을 정도로 희귀했다. 워낙 소수인 만큼 사회에 나와서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간다. 현역 후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예비역 선배가 발 벗고 나선다. Q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구네 집 수저가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서로를 잘 안다. 이런 여건에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걸 감수하고 언론에 증언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군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상당수 남성 군인은 볼멘소리를 한다. 남성은 무조건 치한이고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라는 시각에 대한 불만이다. 여군이 귀하던 시절에 군생활을 했던 예비역들은 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여자한테 문제가 있으니 사고가 나는 것 아니냐’는.

    Q씨는 ‘여군=피해자’라는 단선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군내 성폭력 문제를 진단했다. 이 인터뷰 기사는 Q씨의 동의를 얻어 작성됐다. 그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에 정확한 계급과 직책을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언급한 ‘성추행·불륜 장교’ 중엔 이름이 꽤 알려진 전·현직 장성이 여럿 있다. 군과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도 포함됐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그들의 실명도 가린다.

    가슴에 꽂힌 10만 원 수표



    Q씨는 20여 년간 군복무를 했다. 그가 여군병과 장교로 임관한 것은 1980년대. 대학 졸업 후 여군 장교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여군 ROTC 및 학사장교의 전신에 해당하는 여군병과는 1989년 폐지됐다. 이후 여군도 전투병과에 배치됐다.

    1980년대 Q씨가 소속된 여군단은 육군본부(육본) 직할부대였다. 간호장교를 빼면 전군 통틀어 여군 장교가 70명이 채 안 됐다. 여군 부사관은 1000명가량 됐다. 대부분이 육군본부, 군사령부, 특전사령부 내 여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여성성을 필요로 하는 비서 업무와 타자 업무 종사자가 많았다. 이들을 관리하는 게 여군 장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여군 장교는 군의 꽃이었다. 주로 남성이 수행하기 힘든 섬세하고 상징적인 보직을 맡았다. 장관이나 참모총장, 군사령관 등 군 고위직 비서실에 많이 배치됐다. 또 각군 본부와 특전사령부, 정보사령부 등에서 정책과 행사 업무를 봤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큰 육군본부를 지원하는 여군대대엔 장교, 부사관 합해 300명가량이 근무했다. 장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하사는 대체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미혼여성이었다. 영관급 장교는 출산을 금지한 당시 규정 때문에 대부분 노처녀였다. 이들은 모두 한 생활관에서 거주했다. 가운데 통로 하나를 두고 양쪽으로 깔아놓은 침대에서 잤다.

    Q씨가 처음 성추행을 겪은 것은 임관 직후였다. 어느 날 여군 선배(대위)가 호출했다. 행사가 있으니 따라오라는 지시였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하고 따라나섰다. 일과 후였기에 가능한 복장이었다. 야외 개고기 식당이었다. 육군본부 실력자 A장군이 주관하는 회식이었다. 여기저기서 ‘별’이 반짝거렸다. 고개를 똑바로 들 수 없었다.

    그야말로 홍일점이 아니라 홍이점이었다. 두 여군 장교는 A장군 좌우에 배치됐다. A장군은 강단 있고 군내 신망이 두터운 유능한 군인이었다.

    “선배 대위 얼굴이 예뻤다. A장군은 선배를 한 팔로 껴안고 술을 마셨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내 가슴에 뭔가를 찔러 넣었다. 10만 원짜리 수표였다. ‘팁’을 준 것이다. 그 무렵 소위 월급이 20만 원이 안 됐다. 다들 장군의 행동을 못 본 척했다. 그게 일상이었다. 별들이 죽 앉아 있는데 소위가 감히 뭐라 하겠나. 노래 안 한 게 다행이지.”

    군내 성추행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여군에겐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었던 건지 모른다. 이어진 Q씨의 얘기가 반전이다.

    “웃기는 건, 그 자리에 선발돼 가는 나를 부러워하는 여군들이 있었다는 거다. 당시 여군들의 진급 경쟁이 치열했다. 일단 예쁘고 사교적이면 유리했다. 진급하려면 힘 있는 남성 장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더플백 사랑’

    학벌이 좋은 여군 장교는 직속상관의 ‘자랑거리’였다. 그의 선배들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종종 그를 데리고 다녔다.

    “출세한 여군 장교들을 보면 대체로 생존 욕구가 엄청나게 강했다. 윗사람에게 철저하게 충성하고 아랫사람에게 독하게 대했다. 여군 하사들은 어리고 예뻤다. 이들은 군생활을 잘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장기복무 선발과 진급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남성 상관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잘생기고, 친절하고, 때로는 아버지 같은 권력 있는 남성 장교를 집 떠나 외로운 여군 하사가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여군들 사이에 ‘더플백 사랑’이란 말도 있었다. 연애 대상은 주로 또래 병사지만, 간간이 유부남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젊은 여성들이 폐쇄적인 집단생활을 하며 고된 교육훈련을 받다보니 몸도 마음도 늘 팽팽하게 긴장돼 있었다. 나만 해도 훈련 6개월 받는 동안 생리가 끊겼다. 내무생활을 하는데도 임신했다가 몰래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여군도 있었다. 여군단 야사(野史)에는 남자에게 상처받고 부대 뒷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귀신 출몰 이야기도 있다.”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좋아해 끙끙 앓는 경우도 허다했다. 처녀, 총각이 좋아하면 결혼으로 이어지고, 유부남과 처녀 또는 유부녀가 좋아하면 불륜이 됐다.

    “생각해보라.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사건이 안 날 수 있겠는지. 나만 해도 동료 유부남 장교와 늘 함께 당직근무를 하고 훈련장을 같이 다니다보니 우정이 깊어져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 적이 있다. 다행히 서로 자제해 깊은 관계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전투부대에 부임해 가면 여군을 처음 본 부대 남군들이 전부 쳐다본다. 술자리를 하면 잔 한번 부딪치겠다고 줄 서서 기다린다. 그들 중 한 명이 남편이 됐다. 내가 결혼한 걸 알면서 들이댄 후배 장교도 있다. 자기도 결혼했으면서. 그런데 여군 중 나만 이런 일을 당했을 것 같나?”

    1990년대에 그는 한적한 지방 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황량한 시골 거리에 여군 한 명이 나타나면 군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다 쳐다봤다.” 부대에서는 그가 혼자 생활함에도 군인가족아파트 한 채를 따로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부임 직후 그를 환영하는 부대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일이 터졌다.

    “속된 말로 술이 떡이 됐다. 돌아가면서 전입 축하주를 받다보니 그렇게 됐다. 딱 깨보니 아파트더라. 발가벗은 상태였다. 그런데 옆에 후배 남자장교가 자고 있었다. 역시 발가벗은 채로. 필름이 끊겨 어찌 된 일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거실에 나와 보니 담배꽁초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실수한 걸까. 아니면 쟤가 침범한 걸까.”

    “선배님이 좋아서…”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MBC TV ‘진짜사나이-여군 특집’편.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이 들이닥친 것이다. 사연인즉 이랬다. Q씨 부부는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남편의 부대는 다른 지역에 있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에서 ‘으음…’ 하는 소리가 나면서 통화가 끊겼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심하게 아픈 줄 알고 밤에 차를 몰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황당해하는 남편에게 내가 한 말이, ‘여보, 저 남자 빨리 내보내’였다. 그런데 잠시 후 또 초인종 소리가 났다. 회식을 같이한 후배 장교 서너 명이었다. 2차 술자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 아파트 거실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창문이 열려 있기에 걱정돼 들렀다고 했다. 이들은 남편과 임관 경로가 같은 후배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남자들은 선후배라고 인사를 나누더라.

    그런데 그 후배 장교의 옷이 없었다. 그는 어디 뒀는지 모른다고 했다. 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아내는 내 남편과 한 부대에서 근무 중이었다. 다행히 내 몸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부대는 물론 시골 바닥에 소문이 쫙 퍼졌다. 나는 하루아침에 뻔뻔하고 행실 안 좋은 여자가 돼버렸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제대해야겠다 싶었다.”

    전역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상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현역부적합’이라는 강제전역 사유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직속상관이 찾아와 한사코 말렸다. 그런 식으로 제대하면 자기들이 징계를 받는다면서. 몇 명 안 되는 여군 장교가 이런 문제로 전역하면 자신들 인사고과에 나쁜 영향을 끼쳐 해당연도 진급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부대 지휘관인 B장군이 찾았다. 뒷날 군 수뇌부에 오르고 안보 관련 고위직을 지낸 그는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소문 나 있었다. B장군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Q씨를 만류했다. 결국 그는 B장군의 간곡한 설득에 전역 의사를 접었다.

    그날 밤 사건의 진실은 한 달쯤 후 밝혀졌다.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하늘엔 달이 휘영청 밝았다. 잠이 안 와 거실에서 뒤척이는데, 누군가 베란다 문을 열었다. 남자 실루엣이 보였는데, 문제의 그 후배 장교인 것 같았다. Q씨가 소리를 쳤는데도 그는 달아날 생각을 안 했다. 헌병대에 연락하자 그제야 달아났다. Q씨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헌병 수사관은 ‘증거가 없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한 달 전 사건으로 나를 보는 시선이 삐딱했다. 거의 창녀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Q씨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 직속상관 앞에서 두 사람의 대질이 이뤄졌다. 한사코 부인하던 그는 Q씨가 “지문을 채취했다”고 말하자 고개를 떨궜다. 왜 들어왔냐고 묻자 “선배님이 좋아서”라고 답했다.

    “한 달 전 내 방에 들어와 발가벗은 채 있었던 이유도 밝혀졌다. 그날 회식장소에서 술에 취한 그가 난동을 부리다 옷을 다 벗었다고 한다. 그 상태로 내 아파트에 침입했다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힐난 받는 건 나였다. 여군단 후배들까지. 내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탓이라면서.”

    쪽지 건네는 병사들

    관사 침입 사건은 이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진급에도 영향을 끼쳤다. 뒷날 다른 부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부서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장교 부인들의 눈길이 야릇했다. 자기네끼리 뭔가 쑥덕거렸다. 나중에 상관인 남성 장교가 귀띔해줘 알았다. 그때 사건을 두고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본다는 것을. 진상도 모르면서 말이다. 당시 내 능력을 높게 평가해 진급시키려 애쓰던 C장군이 내게 그 사건에 대한 해명서를 쓰라고 했다. C장군은 그걸 읽고 나서 무척 가슴 아파했다.”

    ‘성추행과의 전쟁’은 그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전방 부대에 부임해서도 계속됐다. 남자 1만 명이 있는 사단에 여군이라곤 딱 두 명이었다. 전투병과인 Q씨는 각종 훈련에 동참해야 했다.

    “야외훈련 나가면 텐트를 치고 잔다. 남성 장교들이 내 텐트를 침범하려는 기미가 있어 아예 남성 병사들 텐트로 옮겨버렸다. 병사들 한가운데 내 침대를 깔고 잤다. 거기가 가장 안전했다. 병사들이 날 보호해줬다. 혼자 있으면 남성 장교들이 업무와 관련해 수시로 방문하는데, 과거 일도 있고 해서 늘 불안했다. 장교들 중에는 훈련 중 틈만 나면 다가와 수작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손 좀 만져보면 안 돼?’ 하면서. 엉덩이를 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나도 소위·중위 때와는 달리 유연하게 대처했다. ‘아유, OO님 고정하세요. 성희롱하면 전역당하세요’ 하면서.”

    “성추행은 일상…장군 회식에 왜 여군 하사를…”

    M-60D 기관총 사격훈련을 받는 여군 하사.(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병사들이라고 다 얌전한 동생처럼 군 건 아니었다. 그는 ‘좋아한다’는 쪽지를 건네는 병사들을 적당히 어르고 달래야 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책으로 가장 좋은 게 남성 동료들과 멤버십을 공유하는 것이다. 동료나 후배는 나를 보호해준다. 문제는 늘 윗사람이다. 전방 부대에서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어딜 가든 남성들, 특히 후배들과 잘 지냈다. ‘누나’라고 부르게 되면 좋아하긴 해도 성희롱은 안 한다. 야간순찰을 돌 때면 꼭 믿을 만한 남군 후배와 동행했다. 애정을 고백하는 후배가 왜 없었겠나. ‘누나 좋아한다’고. 자기도 결혼했으면서. 그럼 내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너 좋아해. 그런데 어쩌라고!’ 군대나 사회나 관계망이 중요하다. 애정을 우정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한번 우정을 맺게 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예전엔 일선 부대에 여군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여군 장교도 남군 화장실 한 칸을 사용해야 했다.

    “더 열 받는 건 화장실 청소를 나보고 하라는 것이었다. 여자 화장실 못 치우겠다고 병사들이 항의했다. 한마디로 우습게 안 거다. 그런데 나중엔 같이 사용하는 게 편안해졌다. 떨어져 있으면 표적이 되니. 화장실 사용에서도 생존기법을 터득한 셈이다.”

    그는 2013년 발생한 여군 오모 대위 자살 사건을 거론하며 “남성 천지인 군에서 여성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대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상관도 애초엔 오 대위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 대위가 응하지 않자 해코지(성추행, 가혹행위)를 한 것이다. 남성 군인조차 폐쇄감과 고립감에 힘들어하는데 여성은 오죽하겠나. 계급 낮은 여군이 많이 당하는 것도 권력관계 때문이다.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니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계급이 낮은 여군 하사로선 그 권력을 이길 도리가 없다. 성희롱 얘기만 나오면 우리 여군 출신은 지긋지긋해한다. 피해자는 전역한 후에도 트라우마로 평생 힘들어한다. 여군 출신임을 밝히지 않는 동료도 종종 있다. 성추행으로 인한 자괴감과 격무 스트레스, 그리고 고독감에 자살하는 경우도 과거에 비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여자를 죽여야 남자가 산다’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군내 성폭력 사건 중엔 유난히 여군 하사 성추행 사건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예전엔 더했다”며 “요즘 여군들이 씩씩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월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육군 여단장(대령)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Q씨는 “처음에 당하고 나서 이후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진 게 사실이라도 여성이 어느 순간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면 그때부터는 성범죄가 된다. 어찌 됐든 성폭행한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가해자가 처벌돼도 피해자의 피해는 그치지 않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Q씨는 “언론은 성폭력 사건에만 주목하지 피해 여군의 남은 군생활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성폭력 사건보다 이후가 더 문제다. 신고한 여성은 대부분 군생활이 말도 못하게 고달프다. 상관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인격이 짓밟힌다. 사생활이 까발려지고 행실이 문란한 여자로 매도당한다. 부대에서 왕따당하거나 ‘문제 여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른 부대로 전출된다. 결국 전역 지원을 하는데, 이마저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발생한 모 사단장 성추행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D소장은 여군 E중위를 관사에서 10차례 정도 성추행한 사실이 인정돼 보직해임됐다.

    “사단장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관사 밀실로 여군을 부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백하게 성적 의도를 가진 행위다. 사건이 난 후 E중위는 다른 부대로 전출됐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공포감에 떨었다. 가해자 측에서 끊임없이 합의를 종용하면서 협박하는 데다 국방부에서 전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여군 현역 선배들이 당시 비밀리에 E중위를 도왔다. 만나보니 자살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사단 주변에선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E중위를 비난했다. 사생활을 낱낱이 까발리고 과장하면서. 젊은 처녀가 남자 만나고 성생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과 상관의 성폭력이 무슨 상관인가.

    남자가 궁지에 몰릴 때 마지막 수단은 아내를 동원하는 것이다. 아내는 살기 위해 남편을 믿는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내가 구명운동을 한다. 그때도 그랬다. 패턴이 똑같다. 여자를 죽여야 남자와 가정이 사니까. 아내에 자식까지 나선다. 그러니 (피해 여군이) 분노를 넘어 억울함, 비참함, 절박함에 자살까지 하게 되는 거다.”

    “장군님, 고정하시옵소서”

    여느 형사사건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사건에서도 물증이 중요하다. 예컨대 지난해 발생한 육군 17사단장 성추행 사건에선 피해 여군이 제출한 녹취록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일반 사건의 경우 물증이 없으면 고소·고발을 해도 유죄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은 다르다. 대체로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약자’인 여성이 거짓말을 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Q씨는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가해 남성도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군에서 성희롱 사건이 나면 가해자가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주변에서 사건을 반기는 사람이 있다. 유력한 경쟁자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니. 법원 잣대도 고무줄이다. 그간 언론이나 청와대, 국회, 수뇌부 등의 관심도에 따라 정치적 판결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군사법원 판결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여군의 처신도 문제 삼았다.

    “군인은 나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 일부 여군 장교는 힘 있는 남성 상관과의 특별한 인연 속에 자신의 출세를 도모했다. 학연, 지연, 근무지 인연으로 뭉친 일부 남군 집단은 그런 여군의 뒤를 끝까지 봐줬다.”

    사정이 다르지만, 그도 ‘덕’을 보긴 했다. 군 정책부서에 근무할 때 자신을 성추행했던 장성이 나중엔 잘 대해줬다고 한다. 부서에서 그는 대외 행사 및 의전을 담당했다. 그 시절 대외 행사의 패턴은 행사가 끝나고 난 후 1차 고깃집, 2차 룸살롱이었다. 홍일점인 그는 룸살롱 자리까지 동석해 접대를 주도했다. 계산도 그의 몫이었다. 무제한 쓸 수 있는 법인카드였다.

    사건이 터진 그날도 룸살롱 회식을 했다. 회식이 끝나갈 무렵 군 실력자인 F장군이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날 행사가 매우 잘됐다. F장군이 옆방으로 부르기에 갔다. 느닷없이 껴안고는 얼굴을 확 당겨 입을 맞췄다. 얼결에 당한 거지. 당황했지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터라 유연하게 대응했다. ‘OO님, 왜 그러세요. 고정하시옵소서’ 하면서 빠져나왔다. 그 후 F장군과 함께하는 자리가 있으면 늘 선배 장교가 내 옆을 지켰다.”

    F장군은 나중에 Q씨의 진급을 위해 애써줬다. Q씨는 전역 후 여군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여성을 돕는 일을 했다. 그때도 F장군이 힘이 돼줬다.

    Q씨는 “남녀가 동료로 살아가는 일이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우리 여군들끼리, 사석에서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남녀군이 함께한 역사는 성추행과 불륜의 역사라고. 늘 손해 보는 건 처녀다. 유부남은 가정을 안 버리기 때문이다. 함께 근무한 여군 선배 하나도 유부남 장교 때문에 자살 직전까지 갔다. 물론 예외가 없진 않다. 여군 선배들 중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부남 장교를 이혼시키고 결혼하는 데 성공한 사람도 있고, 오랜 세월 유부남과 좋은 관계를 맺어오다 그의 아내가 죽고 나서 몇 년 후 결혼한 예도 있다. 또 어떤 선배는 뒷날 국방 관련 고위직에 오른 유명 인사와 젊은 시절 ‘섬씽’이 있었다. 두 사람이 술집에서 껴안고 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있다. 인물 좋고 몸매 좋은 모 선배는 유부남 대령과 연애하다, 맞바람을 피우던 대령의 아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밝혀내기도 했다.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조직에서 우정과 애정을 넘나드는 데 따른 긴장관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다만 상호 호혜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해결해나가려는 자세와 여성을 이성이 아닌 동료로 대하는 성숙한 군 문화가 아쉬울 뿐이다.”

    차별과 구별, 더불어 살기

    그는 일부 여군의 잘못된 행태를 꼬집으며 “자발적 성(性)상납”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썼다.

    “여군을 성희롱 대상으로 삼는 일부 남군 권력자가 가장 큰 문제지만, 이에 호응하는 일부 여군도 비난받을 만하다. 지난 시절 일이지만, 장군들 회식에 꼭 후배를 데리고 가는 여군 장교가 있었다. 장군 만나는 데 여군 하사를 왜 데리고 가나. 노래방에까지. 우리 여군 역사에 밝은 면이 많지만 이처럼 어두운 면도 있다. 일부 선배들의 그릇된 처신에 후배들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군들의 험난한 역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뜻있는 예비역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은 1월 육군 여단장 성추행 사건이 터진 후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 목적은 향후 군내 성폭력 사건에 적극 대응하고 후배 여군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

    Q씨는 군내 성폭력 대책으로 ‘문화적 해법’을 강조한다. 남녀군 분리나 전(全) 남군의 잠재적 범죄자화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명확한 성 인식과 동료 의식 및 공존 의식 함양과 같은 정서적 접근으로 본질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남녀가 같이 있는 데서 성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중요한 건 차별과 구별이다. 여군은 차별받지 말아야 할 권리와 구별돼야 할 권리를 동시에 가졌다. 이번에 개선안이라고 내놓은 걸 보니 웃음이 나오더라. 악수 외에는 어떠한 신체 접촉도 하지 말라고? 문제의 본질이 뭔지 여전히 모르는 거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해선 안 된다.

    성 인식과 성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남성과 여성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남성 군인들과 멤버십을 공유하고 연대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남녀군이 더불어 살아온 역사는 의외로 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행착오의 지혜도 많다. 경험 많은 예비역 여군이나 현역 여군들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녀 상생 부대생활 사례나 바람직한 역할모델을 전파해 성숙한 성 문화가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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