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케아 태풍’에도 주가 반등
- 전방위적 유통망…이케아엔 ‘온라인 채널’로 대응
- “‘Furnished House’를 자동차 팔 듯이…”
- “창업주 일가는 주주일 뿐…전문경영인 체제로 간다”
전세계 27개국에서 연간 35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가구공룡’ 이케아(IKEA)가 한국 첫 매장인 광명점을 오픈한 지난해 12월 18일, 한샘(대표 최양하)의 주가는 11만 원으로 급락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14만 원대에 거래되던 주식이었다. 사실 이케아의 한국 진출 소식이 알려진 2012년부터 시장에선 “아무리 한샘이라도 이케아의 공세를 견뎌내긴 힘들 것”이란 비관 섞인 예측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샘의 2014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된 2월 5일, 한샘 주가는 16만3000원으로 최근 3개월 이래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14만 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케아 공포’는 금세 증발했다. 도대체 시장은 한샘에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 걸까.
2013년 한샘은 매출 1조69억 원을 달성, 국내 가구업계 최초로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2014년은 매출 1조 3249억 원, 영업이익 1104억 원으로 최근 집계됐다. 2년 연속 30% 안팎의 기록적인 매출 신장을 이룬 것. 특정 부문의 독주가 아니라 인테리어(일반 가구), 부엌가구, B2B(건설사 납품) 등 전 사업 부문에서 매출이 고루 성장했다는 점이 한샘의 위력을 보여준다.
“가격? 자신 있다!”
최양하(66) 한샘 대표이사 회장은 창업주 조창걸(76) 명예회장과 함께 한샘의 오늘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1994년 전무로 대표이사가 됐을 때 매출이 1000억 원 규모였으니, 20년간 CEO를 맡아 10배 이상 키운 셈. 하지만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샘 본사에 있는 그의 집무실은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책상도, 회의용 탁자도 낡아 보였고, 벽에는 세계지도 한 장이 달랑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로비에는 예술품이 아니라 고객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보내온 작은 선물들이 진열돼 있었다.
“본사를 방문한 외국 투자자들은 ‘정말 좋은 회사’라며 칭찬해요. 그런데 한국 분들은 디자인 회사가 뭐 이러냐며 의아해하죠. ‘아름다운 한샘’을 보고 싶으면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한샘디자인연구소에 가보세요. 건축물도 아름답지만, 창덕궁 후원도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 이케아 광명점에 가보셨나요.
“20여 년 전부터 해외에 나가면 이케아 매장엔 꼭 들러요. 광명점도 오픈하자마자 가봤어요. 가격 싸고, 제품 다양하고, 진열 잘 해놓고…. 다른 나라 매장들과 비슷하더군요. 지금은 처음이라 어수선하지,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잘 잡을 겁니다. 매출은 1500억 원에서 많으면 2000억 원까지 나올 것 같고요.”
▼ 직접 사가고, 또 직접 조립해야 하는 이케아식 DIY 문화가 한국에서 통할까요.
“해외 생활을 해본 사람이 늘고 있으니 아예 통하지 않으리라 보진 않아요. 그렇다고 성공하기도 쉽진 않을 것이라 봅니다. 이케아는 아시아에 진출하면서 택배와 시공 서비스를 고객 부담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건데, 결국 택배·시공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그렇지 않은 고객보다 많아지리라 예상해요. 이럴 경우 이케아만의 장점인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거고요.”
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열자 소비자들은 이케아와 한샘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광명까지 가서 인파를 헤치고 이케아 제품을 사갖고 와 직접 조립하느냐, 아니면 인터넷으로 한샘 제품을 주문해 배송과 시공 서비스를 무료로 받느냐 하는 고민이다. 일례로 한샘 샘베딩 3단 서랍장(너비 80cm×높이 73.1cm)은 10만9000원이고, 배송·시공은 무료다. 이와 유사한 이케아 브림네스 3단 서랍장(너비 78cm×높이 95cm)은 9만9900원으로 1만 원가량 저렴하지만, 택배비와 조립비를 별도 부담해야 한다. 픽업·배송비는 2만9000원, 조립비는 4만 원부터 시작한다.
플래그숍, 대리점, 온라인…
▼ 가격 면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나요.
“우린 3년 전부터 대대적인 원가절감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제 웬만한 제품에선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사실 이케아는 그렇게 싼 편이 아닙니다. 그들은 BTI(Breath Taken Item)라고 해서, 숨이 콱 막힐 정도로 싼 미끼상품 전략을 정말 잘 구사해요. 이케아에도 비싼 제품이 있어요. 거기서 이익이 많이 나고요. 한샘도 이케아만큼은 아니지만 전략적으로 BTI를 활용합니다. 주로 전단에 나오는 제품이 거기에 해당하죠.”
한샘 생활용품관(위)과 부엌 가구를 시공 중인 시공사원.
최 회장은 “아무래도 이케아가 우리한테 효자인 것 같다”며 씩 웃었다. 이케아가 화제가 되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증가했고, 브랜드 제품에 대한 선호도 역시 올라갔기 때문이다. 즉, 이케아가 시장 자체를 키웠다는 얘기다.
“한샘이 국내 가구 1위라고 하지만 전체 가구시장 점유율은 10~15%에 불과합니다. 일명 ‘사제(私製)’ 가구의 시장점유율이 70%나 되기 때문이죠. 2~3년 전부터 한샘이 온라인이나 홈쇼핑 등에 적극 진출하면서 사제에서 ‘메이커’로 시장 흐름이 바뀌고 있는데, 이케아 진출로 이런 흐름이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케아를 비롯해 월마트, 홈데코 등 글로벌 유통 거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비교적 간단하다. 대형 매장에 물건을 전시하고 서비스 사원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샘의 비즈니스 모델은 복잡하다. 총 6개 직영 플래그숍, 200여 개 부엌가구 대리점, 80여 개 인테리어 대리점 등 오프라인 유통망과 온라인, 홈쇼핑, 그리고 B2B 납품 등 전방위적인 유통망을 갖췄다. 한샘IK(ik.hanssem.com)를 통해 인테리어 리모델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유통망이 전방위적이다보니까 골치가 아팠던 게 사실이에요. 이케아가 들어오기 전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게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케아 대응은 온라인에서 하자’라고 정리했어요.”
▼ 하지만 이케아에선 저렴하고 예쁜 생활소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생활소품 부문에서 이케아의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아전인수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소품 사러 거기까지 가나?’라고 생각해요. 생활소품에 대한 소비자 니즈는 ‘동네 상권’에서 흡수할 겁니다. 저희는 생활소품까지 취급하는 300평 이상 인테리어 대리점을 늘려가고 있고, 현재 6개인 직영 플래그숍을 20개까지 확대할 예정이고요. 이왕 이케아가 들어왔으니 플래그숍 오픈 속도를 높일 거예요. 올해는 서울 상봉동과 대구에서 플래그숍을 엽니다. 굳이 교외에 있는 이케아에까지 갈 이유를 없애는 게 한샘의 전략입니다.”
한샘 제품을 구매하면 배송받을 날짜와 시간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다. 약속에 맞춰 시공기사가 집으로 와 가구를 조립해준다. 이 서비스를 담당하는 조직은 3000여 명의 시공사원으로 구성된 자회사 (주)한샘서비스원이다. 시공사원은 경력에 따라 ‘조수’와 ‘사수’로 나뉘는데, 올해부터는 사수 등급을 세분화해 자긍심과 동기를 높일 계획이다. 부엌 시공사원을 예로 들자면 일반 사수(1·2·3급)와 최고급 부엌가구 키친바흐를 시공하는 KB사수(1·2급)로 나눠 각 등급별로 60만~100만 원의 급여 차이를 둔다.
“처음 시공 일을 시작하는 조수의 급여는 낮지만, 등급이 올라갈수록 급여가 크게 오르기 때문에 빨리 기술을 익힐 동기가 부여됩니다. 시공사원들은 한샘 제품을 가장 잘 알고, 고객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영업사원으로 전향하거나 직접 한샘 대리점을 차리기도 해요. 이렇게 시공사원 육성 로드맵을 갖춰 서비스 품질을 관리, 개선하고 있습니다.”
1000명 넘게 신규 채용
▼ 3년 연속으로 고용노동부 선정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뽑혔지요.
“직원들끼리 그래요, ‘우리는 아주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업’이라고. 매출이 1000억 원 늘면 영업·구매·출고·시공·AS 등 직원이 350~400명 증가합니다. 지난해 매출이 3000억 원 성장하면서 1000명 이상이 새로 들어왔어요. 이게 회사로서는 고역이에요(웃음). 이제는 효율을 고민해야죠. 영업사원 1인당 판매액을 1억 원에서 2억~3억 원으로 늘릴 수 없나, 시공사원은 둘이 아니라 혼자서 가구 한 세트를 시공할 순 없나….”
한샘의 장기 목표는 ‘향후 10년 내 10조 원 매출 달성’이다. 최근 2년과 같이 매년 30%씩 매출을 성장시킨다면 ‘복리(複利)의 힘’으로 10년 후에는 자연스럽게 10조 원을 돌파한다.
▼ 장기 목표를 향한 액션 플랜은 뭔가요.
“두 가지예요. 앞서 말했듯 아직까지 한샘의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아요. 시장 점유율이 30~40%로 오르면 매출이 지금의 3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신규 사업입니다. 건자재와 중국 시장 진출을 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건자재 시장은 워낙 커서 매출에 바로 기여할 수 있고, 중국 시장은 리테일과 온라인에 진출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샘은 싱크대, 침대, 책상, 장롱, 그리고 옷걸이에서 수저까지 생활소품을 판다. 세면대, 창호, 마루, 문짝, 냉장고나 식기세척기 등 전자제품도 판다. 최 회장은 “그뿐 아니다. 몰딩과 조명도 한다”며 “아직 못 팔고 있는 유일한 게 도배지”라며 웃었다.
한샘은 한샘IK를 통해 건자재 시장에 진출했다. 고객이 한샘IK에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의뢰하면 부엌은 물론 화장실, 마루, 창호 등에 필요한 건자재를 공급하고 시공까지 해주는 것이다. 최 회장은 “올해 건자재 부문에서 1500억~2000억 원의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는 지난해의 두 배 수준으로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라고 말했다.
▼ 건자재라고 하면 보통 LG나 KCC 같은 대기업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건자재 시장에서 품질과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공입니다. 한샘은 직접 시공해주니까 소비자 처지에서 믿을 수 있어요. 건자재 품질과 가격을 보장하고, 물류와 시공을 경쟁력 있게 해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봐요. 건자재는 직접 생산은 아니고, 품질 좋은 중소기업에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올해 안에 ‘Furnished House’를 선보이겠다”라고 호언했다. 즉, 가구와 패브릭, 소품까지 모두 갖춰진 집을 팔겠다는 것이다.
▼ 과연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인가요.
“앞으로 소비자가 바뀔 것으로 봅니다. 의·식·주 중에 개인의 개성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은 의(衣)입니다. 그럼에도 모두들 옷을 맞춰 입는 게 아니라 기성복을 사 입잖아요. 마찬가지로 집도 자기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겁니다. 내 마음에 드는 거실, 침실, 부엌, 화장실을 고르는 거죠. 한샘은 인테리어를 자동차처럼 팔려고 해요. 인테리어도 차종과 옵션 고르듯 하면 돼요. ‘30평형대 어번 모던(urban modern) 스타일로 해주세요. 단, 창호 컬러를 좀더 밝은 브라운으로 바꿔주세요’ 하면 되는 거죠.”
집도 기성복 고르듯
1970년 주방가구 제조로 사업을 시작한 한샘은 한샘IK를 통해 부엌 시공에서 시작해 욕실, 침실, 거실, 자녀방 등의 공간을 팔았다. 이제 그 경험을 살려 여러 공간을 한데 묶어 팔려는 것이다. 현재는 30평형대 기준으로 5가지 스타일을 제공하는데, 3월 20평형대 론칭을 시작으로 향후 20·30·40평형대 5가지 스타일, 3가지 가격대(보급·보통·고급)로 총 45개 스타일을 선보일 예정이다.
▼ 중국 비즈니스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는 중국 건설사에 주방가구와 수납가구만 납품하고 있지만, 향후 건자재까지 팔려고 합니다. 리테일 사업은 구상 중인데 다소 시간이 걸릴 거예요. 온라인으로 집객하고 오프라인에서 판매한다는 전략으로 우선 온라인 포털사이트 제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무리 부자라도 내구성 소비재는 그냥 집어가지 않거든요. 영업사원과의 상담이 필요해요. 플래그숍, 대리점 등 국내 영업모델을 중국으로 이전할 생각입니다. 1년에 우리나라는 30만 호를 새로 짓는데, 중국은 1000만 호를 짓습니다. 30배 큰 시장이에요. 중국은 잠재력이 매우 큰 만큼 10년, 20년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할 겁니다.”
한샘은 지난해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지낸 권영걸 전 서울대 교수를 사장으로 영입해 한샘만의 디자인 정체성(identity) 개발을 맡겼다. 한샘의 중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디자인 경영을 꾀하기 위함이다.
▼ 이케아 스타일은 ‘simple’ ‘colorful’ 등으로 요약됩니다. 한샘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연구 중입니다만, ‘실용적인’ ‘사용하기 편리한’ ‘모양이 보기 좋은’ 등으로 정리가 될 걸로 봅니다. 지난해엔 아카데미를 운영했고, 올해는 디자인 포털을 오픈하고 디자인 공모전도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한샘만의 디자인 정체성이 구체화하리라 생각합니다.”
▼ 친환경적인 가구 자재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습니다.
“현행 데시케이터법에 따르면 유해물질 정도에 따라 가구 자재 등급을 E2, E1, E0, SE0으로 나누고, E1급 이상을 실내 가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요. 한샘, 이케아를 포함해 대부분 가구 회사는 E1과 E0를 섞어 씁니다. 한샘은 현재 고가 제품이나 유아용 제품에는 E0만 사용하는데, 올해 안에 모든 자재를 E0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한샘이 가구 자재 면에서 이케아를 앞서가는 거죠.”
서울대 공대를 나온 최 회장은 대우중공업에 다니다가 1979년 한샘으로 옮겨왔다. 당시 한샘은 작은 싱크대 공장에 불과했는데, 그는 ‘대기업 부속품이 되느니 신흥재벌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매출 15억짜리 회사 슬로건이 남들이 비웃든 말든 ‘세계적인 부엌가구 한샘’이었어요. 조창걸 당시 사장은 늘 세계 넘버원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하다보니까 국내 1위가 됐고, 부엌가구만 놓고 보면 세계 5위 정도가 됐습니다.”
‘신의 한 수’
최 회장은 “하지만 계획보다는 10년 이상 늦게 정상에 섰다”며 “방향을 잘못 잡기도 했고 신규사업 진출이 늦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영진을 포함해 우리 직원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한샘이 항상 잘나갔던 건 아니다. 다른 가구회사들과 마찬가지로 건설경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그러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B2B에서 B2C로 방향을 튼 것이 ‘신의 한 수’로 통했다. 한샘은 리스크는 높은데 수익성은 떨어지는 건설회사 납품 규모를 절반으로까지 줄여가며 직접 고객에게 다가가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2009년 서울 잠실에 4번째 직영 플래그숍을 오픈한 것을 계기로 매출액 5000억 원을 돌파했다.
▼ 20년 이상 CEO 자리를 지키는 비결이 뭘까요.
“하하. 제가 가장 답변 못하겠는 게 이 질문이에요.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조 회장이 대단한 분이시죠. 믿고 맡겨주시니까. 그분에 대해 ‘은둔의 경영자’라고도 하는데, 언론에 나서지 않을 뿐이지, 매일 새벽에 회사에 나오세요.”
한샘의 최대주주는 조 회장으로 지분율이 22.71%이다. 창업주 자녀를 포함해 친인척 지분은 모두 합치면 5%가 조금 넘는다.
▼ 한샘의 승계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한샘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갑니다. 현재 사장이 3명 있고, 부사장도 2명이에요. 이분들 중 뛰어난 분이 제 뒤를 이어 훨씬 잘하실 겁니다. 창업주 자녀분들이 한샘에 들어올 일은 없을 거예요. 주주로만 남기로 정리가 됐어요.”
▼ 한국 재벌 문화에선 흔치 않은 일인데요.
“아마 그래서 앞으로도 한샘이 더욱 경쟁력 있을 겁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