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대표팀은 최근 아시안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불과 수개월 전 브라질 월드컵 때의 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울리 슈틸리케(61) 대표팀 감독의 선수 선발, 전략, 언술은 그라운드 밖 한국 사회 전체에 잔잔한 울림을 줬다. 그의 리더십을 조명해봤다.
하지만 대중은 환호했다. 한국 축구와 감독에게 별칭을 선사했다. 상대를 허우적거리게 만들다 끝내 무릎 꿇린다고 ‘늪 축구’, 실용적으로 딱 필요한 만큼만 득점한다고 ‘실학축구’라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에 비유한 합성사진도 인터넷을 수놓았다.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확실한 이유가 있는가.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던 무엇인가를 아주 확실하게, 그것도 예상보다 빼어난 결과를 가지고 눈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정사회(公正社會)’다.
최근 회고록을 출간해 주목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 초 내건 슬로건이 ‘공정사회’다. 구호 자체로는, 많은 이가 공감했다. 한국 사회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사회에선 학연·지연에 의한 인사, 측근 위주 인사, 회전문 인사, 코드 인사 같은 인사 참극이 횡행한다. 특권을 지키는 데에만 솔선수범한다. 불통과 독주, 사분오열이 일상화한다. 거기에다 무능하고 추진력도 없어 어느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축구적, 축구외적 리더십
많은 시민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안컵을 마치고 귀국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열광적으로 환대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독일에서 온 벽안의 축구감독에게서 공정사회의 실천적 사례를 확인한 것이다. 슈틸리케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아, 이렇게 하면 공정사회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얻었다. 이것이 슈틸리케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지지로 이어진 기폭제다. 대중은 슈틸리케의 축구적인 리더십,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축구 외적인 리더십을 모두 즐기려 하는 것 같다.
감독 한 사람이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뀌는가. 물론이다. 2012/13 영국 프리미어리그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8승 5무 5패, 86득점 34실점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맨유의 성적은 19승 7무 12패 43득점 21실점으로 급전직하했다. 최종순위는 리그 7위였다. 선수도, 코치진도, 구단도, 관중도, 리그에 참여한 다른 19개 팀의 전력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바뀐게 있다면, 오직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 감독에서 물러난 사실 단 하나였다. 감독 한 사람에 따라 팀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퍼거슨이 있고, 없고
한국인의 가슴에 불을 지른 남자, 슈틸리케는 누구인가. 그는 1954년생으로 1973년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에서 데뷔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리그 3연패에 공헌했다. 1977/78 시즌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 1984/85 시즌까지 6번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스페인 시절 그는 네 차례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했을 만큼 인정받는 선수였다. ‘위대한 공격수는 팬을 불러 모으고 위대한 수비수는 우승컵을 가져온다’는 축구 격언의 모델이었던 셈이다.
서독 국가대표 경력은 1975년부터 1984년까지 42경기 출전에 3골 득점. 월드컵 출전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이 유일하다. 이 대회에서 슈틸리케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한다. 서독은 홈팀 스페인을 2-1로 잡고 4강에 올랐다. 준결승 서독-프랑스전은 축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전·후반 90분이 지난 시점의 스코어는 1-1. 연장전에서 프랑스는 두 골을 먼저 넣고 3-1로 달아났다. 서독은 저력을 발휘해 기어이 3-3 동점을 만들었다. 마침내 승부차기. 서독은 먼저 실축했지만 결국 승부차기 스코어 5-4로 승리했다. 이때 실축해 흐느낀 서독 선수가 슈틸리케였다. 독일 축구 역사상,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선수는 슈틸리케가 유일하다.
슈틸리케가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꽃 피운 곳은 유소년 축구팀이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대표팀 코치를 지낸 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독일 U-20팀 감독으로 적(籍)을 옮겼다. 그는 유소년을 강화해 세계를 제패하자는 ‘독일 축구 개조계획’의 핵심 인력이었다. 그런 슈틸리케가 독일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선수 보는 눈이 독특해 윗사람과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선택은 거의 대부분 탁월한 것이었음이 증명됐다고 한다. 그의 선수 선발 기준은 잠재력, 창의력, 인성을 동반한 의지다.
독일 축구 개조의 핵심
이 원칙은 한국 대표팀 선발에도 적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군(軍)데렐라’ 이정협이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축구가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옵션 1호는 박주영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무명 이정협을 낙점했다. 이정협은 각급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고 소속팀 상무에서도 주전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반대했다. ‘저 선수를 뽑았다가 실패하면 수습 불가능할 만큼 욕을 먹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국제 수준에서 직선 침투가 가능한 유일한 선수다” “K리그 경기를 거듭 본 뒤 냉정하게 판단했다”며 기술위원들을 설득했다. 이정협은 호주와의 예선전,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에서 득점포를 터뜨리며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멋지게 증명했다.
사람은 자리에 연연할 때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청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선발 과정에 대한 시시비비가 없다. 결과가 나쁘면 대중의 평가는 둘로 나뉜다. 선발 과정이 불공정했다고 여기면 대중은 분노한다. 선발 과정이 공정했다고 여기면 실망한다.
분노든 실망이든 부정적인 여론이 대세가 되면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감독은 외롭다. 슈틸리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의 전문지식, 객관적 잣대로 선발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팀 내부와의 소통에도 능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선수들을 대했다. 그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쿠웨이트전이 끝나고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회가 끝난 뒤 곽태휘는 “감독님께서 기자회견 후 선수들을 모았다. ‘내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 다른 팀들이 방심하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되돌아보자는 목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호주 현지에서 “왜 이렇게 수비가 자주 바뀌느냐, 수비가 자주 뚫리는 건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해서냐 아니면 감독의 전술이 모호해서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우리 수비진에 부상 선수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하는 질문이냐. 거의 모든 선수가 극한 상황에서 경기를 한다. 다친 선수를 기용하라는 뜻이냐?”고 답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면 부상 상황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 축구계의 불문율이다. 상대방의 전략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국 축구대표팀은 김신욱의 부상을 끝까지 숨겼다. 북한과의 결승전 후반에도 그가 나오지 않았고 연장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기자들은 ‘김신욱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구나’라고 짐작했을 따름이다. 김신욱의 출전 여부에 따라 상대 팀의 수비 전략이 달라지기에 연막작전을 펼친 것이다.
기자간담회를 하는 슈틸리케 감독. 그는 언론과의 소통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데 슈틸리케는 반대 전략을 택했다. 팀의 비상상황을 내외에 공표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에겐 선수들을 다독이는 게 우선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선수들을 비난하지 말라”였다. 선수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죽어라 몸을 던지는 것으로 감독과 국민에게 화답했다. 이를 본 일본의 네티즌들은 ‘한국 축구에는 일본 축구에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결승전 1-2 석패 후 슈틸리케는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라고 미리 준비한 한국어 소감을 말했다. 패배한 선수들을 끌어안은 명대사다. 세계적인 감독 중엔 선수들과 일부러 ‘심정적 거리’를 만드는 감독이 더러 있다. 슈틸리케는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도 선수들을 조금 다르게 대한다. 뭐랄까, 애틋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그는 결승전 당일, 라커룸에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이청용과 구자철의 유니폼을 걸어뒀다. 호주 교민들의 성원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틀어줬다. 이런 감성적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그런 배경엔 불행한 가족사가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2008년 1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감독이던 슈틸리케는 드로그바, 야야투레 같은 호화 멤버를 이끌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대회 개막 일주일 전 사임했다. 23세의 아들 미하엘이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하엘은 곧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아들을 잃은 뒤 어떤 압박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팀 선수들을 아들처럼 애틋하게 여기는 모습이 종종 비쳐졌다.
열정과 통찰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슈틸리케의 용병술 중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노장 중용’이다. 준결승전에서 손흥민의 골을 도운 차두리의 70m 질주는 아시아의 많은 축구팬을 놀라게 했다. “저런 선수가 월드컵 때 왜 해설을…”이라는 중계 아나운서의 말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팬들은 곽태휘의 분전에도 환호했다. 노장은 선수단과 감독-코치진 사이의 가교다. 개성 강하고 각기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한 달 이상 합숙하며 지내다보면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베테랑은 선수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데 기여한다.
슈틸리케는 노장들을 존중했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전술에도 그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경기에서도 힘을 실어줬다. 선수들에겐 주장 기성용이라는 소통 창구, 차두리-곽태휘라는 의사전달 창구가 각각 마련돼 있던 셈이다. 다양한 길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노장들이 짐을 분담했기에 에이스 기성용은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슈틸리케는 조직 내부의 소통을 원활하게 이끌었다.
축구감독은 주로 언론을 통해 팀의 외부, 즉 국민과 소통한다. 많은 경우 언론을 납득시켜야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 슈틸리케는 언론과의 소통에 능수능란했다. 기자들에게 충분한 양의 정보를 제공했다. 어떤 질문이든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겸손함과 단호함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그는 좋은 언술을 가지고 있다. 자연히 좋은 기사가 쏟아졌고 국민 사이에서 ‘소통을 잘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미래를 꿈꾸게 하다
전략 면에서 슈틸리케는 골키퍼 정성룡을 뺀 모든 선수를 적절히 기용했다. 결승전으로 올라갈수록 주전의 체력이 고갈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게임마다 상대 팀의 형편에 맞게 다른 선발진과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왔다. 대체로 ‘최적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성과 추진력을 충분히 발휘한 셈이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감독의 전술 미스가 패인”이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었나. 많은 축구 팬은 슈틸리케의 전술에서 어떤 ‘통찰력’ ‘명쾌함’을 느꼈다. 이는 예전에 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귀국 후 슈틸리케는 승부사적 냉정함을 보였다. ‘결승전 첫 실점 46초 전’의 상황을 복기하며 두 번의 사소한 실수가 실점으로 연결됐다고 분석했다. 개인돌파, 논-터치 패스, 스루패스가 2~3회 이어져야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는데 한국 선수들의 능력이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감성과 논리가 적절히 배합된 그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2018년 월드컵이 기대되는 이유다.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리고 모름지기 좋은 리더십은 그런 꿈을 주는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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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인사, 권위를 버린 낮은 자세, 정서적 따뜻함, 팀 내부의 소통, 팀 외부와의 소통, 하나의 팀으로의 단결, 문제점에 대한 냉정한 진단,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추진력. 슈틸리케의 리더십이 짧은 순간 보여준 것들이다. 우리 국민은 실로 그의 언행에서 공정사회의 한 단면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