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쇠고기 수입기준 ‘다른 국가와 균형’ 쏙 뺐다
- “대통령님, ‘뼈 포함 30개월 미만이 최선’…美에 공 넘기죠”
- 노무현 大怒 “농민에게 욕먹고 FTA 체결도 안 되는데…”
- 이명박 정부, 前 정부 아닌 美로부터 협상내용 인계
- 사드(THAAD)는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서울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엔 시위대의 청와대 접근을 막기 위한 거대한 ‘컨테이너 차단막’이 등장했다. 이른바 ‘명박산성’이다. 시위대와 경찰은 늦은 밤까지 이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차단막의 효과는 컸다. 하지만 민심의 거센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촛불집회의 발단은 이명박 정부가 그해 4월 18일 미국과 합의한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안’이었다. 30개월 이상(특정위험물질 제외) 쇠고기에 대한 수입 연령제한 해제, 수입위생조건 대폭 완화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사실상 전면 개방하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판정 없이는 수입을 중단할 수 없도록 한 조항까지 포함됐다.
공교롭게도 협상 타결 시점은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바로 하루 전. 그 때문에 당시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런 무리한 협상안을, 그것도 한미정상회담 하루 직전에 급히 처리해야만 했을까.
이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그 책임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 측과의 쇠고기 협상과정에서 연령제한을 없애기로 ‘이면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회고록의 관련 내용 중 일부다.
미국 협상팀은 쇠고기를 FTA와 연계시키고 있었다. 나는 김 본부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미국은 보커스 의원을 설득할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우리 측의 쇠고기 수입조건 규제완화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아내겠다는 것입니까? 보커스의 요구는 뭡니까?”
김 본부장이 대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이면합의를 했습니다. 그걸로 담화 발표까지 했습니다. 2007년 9월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 번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그 내용과 문서가 유출됐답니다.”
“대필 자서전, 때론 말 지어내”
거센 논란이 일었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 한미 FTA와 쇠고기 수입협상 주무장관의 한 사람이었던 송민순(67)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끈했다. 그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며 “아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의 기록이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미국이 주장하는 것만 들으면서 나온 실수가 아닌가 싶다”고 반박했다.
발언 당사자로 거론된 ‘김 본부장’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이다. 김 의원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해 국민이 모르는 이면합의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송민순 전 장관을 만났다. 마침 송 전 장관이 1월 16일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에 선임된 터라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인터뷰를 하려던 참이었다. 송 전 장관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강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아무래도 자서전을 쓰다보면 대필을 많이 한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면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미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론 말을 지어내고. 무게나 사실관계, 미래에 대한 교훈적 측면에서도 나는 그리 좋게 평가하기 어렵더라고요.”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이름만 밝히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송 전 장관에 대한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도 있다.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며칠 뒤인 (2007년) 12월 24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할 경우에 한해 한미 쇠고기 협상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부시와의 약속을 사실상 지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또한 국제적인 신뢰를 위해 부시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한 장관의 말에, 노 대통령은 한미 FTA로 친구마저 다 잃었다며,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더 많은 친구를 잃어야 하느냐,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느냐는 내용의 질타를 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여기에서 이 전 대통령이 언급한 ‘한 장관’이 바로 송 전 장관이다. 그는 이 대목에 대해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미국 측에 공을 넘기는 차원에서 쇠고기 협상을 하자고 한 건데, 마치 미국한테 약속한 게 있으니까 하자고 한 것처럼 (이 전 대통령은) 사실과 다르게 말을 지어냈다”고 반박했다.
송 전 장관의 기억은 이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부시가 이면합의를 했다”고 주장한 문제의 전화통화가 있었던 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처럼 다 연 나라 없다”
“정말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요. 2007년 3월 29일의 일입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중동 카타르의 수도인 도하를 방문하고 있었어요. 포시즌스 호텔이 대통령 숙소인데 아침에 서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곧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될 텐데, 미국 쪽에서 부시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마무리 수순이죠. 제 기억에 그날 오후 2시쯤 통화를 했습니다. 그때 부시 대통령이 ‘FTA 협상 타결과 맞춰 쇠고기 문제를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미국산 수입 쇠고기 검사과정에서 광우병 우려가 있는 뼈 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된 후 수입이 전면 중단된 상태였거든요.
마침 우리 정부에선 준비된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OIE에서 미국을 광우병 통제국으로 판정하지 않았을 때예요(미국은 2007년 5월 OIE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얻는다). 그래서 첫째, OIE의 기준을 존중하고, 둘째,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균형을 맞춰 합리적인 수준에서 셋째, 가급적 금년 내에 해결하자…이렇게 3가지를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나중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균형을 맞춘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OIE 기준에 따라 다 열기로 했는데 안 열었고, 연말까지 한다고 했는데 안 지켰다고 주장한 거죠. 아시아에서 우리처럼 다 연 나라가 없어요. 일본이 뼈 포함해서 20개월 미만, 대만은 뼈 빼고 30개월 미만으로 돼 있어요.”
▼ 그럼 12월 24일 청와대 긴급 관계장관 회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광우병 소의 99.99%가 30개월(령) 이상이었거든요. FTA가 당시 최대 이슈였으니까, 우리는 30개월 미만에 뼈까지 포함시켜서 아시아에서 최대한 수용하는 거라고 하면서 연말쯤 풀어가려고 했죠. 그래서 대선 끝나고 국무총리(한덕수)와 저, 농수산부 장관, 경제부처 장관, 통상교섭본부장(김종훈)이 이렇게 보고를 드리는데 제가 총대를 멨어요. ‘대통령님, FTA 미 의회 비준이 쇠고기 문제 때문에 계속 걸리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30개월 미만에 특정위험부위(SRM) 빼고 뼈만 포함해 이게 최선이라고 부시한테 공을 넘기죠’ 이렇게 말한 겁니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이거 던지면 미국은 더 이상 쇠고기 문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FTA 비준 절차 바로 들어갑니까?’ 이렇게 거꾸로 묻는 겁니다. 그때 총리와 저, 통상교섭본부장은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FTA 비준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우리가 카드를 받는 것도 없이,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리고 나면 다음 정부 때 무슨 카드를 가지고 이걸 하나’ 하셨어요. 이렇게 된 겁니다.
또한 대통령은 ‘미국한테 받는 것 없이 쇠고기를 준다면 우리 농민들에게 좋은 소리 못 듣고, FTA 타결되는 것도 아니고, 양쪽 다 잃는 건데 그걸 나한테 다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굉장히 화를 냈어요. 노 전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주장처럼 제한없이 열겠다고 미국하고 약속한 게 아니거든요.”
▼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갈 때 한미 FTA나 쇠고기 협상 진행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건가요.
“그렇죠. 이명박 정부는 전 정부로부터 협상 진행 과정을 인계받은 게 아니고 오히려 미국 쪽으로부터 받았던 거예요. FTA도 그렇고 방위비 분담 같은 것도 그렇고.”
▼ 그럴 만한 이유가….
“대통령선거 이전부터 이명박 캠프에서 미국 쪽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우리가 정권 잡으면 다 해줄 테니까, 쇠고기 협상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고 해요. 실제로 제가 장관 때 ‘정권 바뀌면 다 해준다는데 굳이 이 정부와 협상할 것 있느냐’는 말이 미국 쪽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미국 측에선 30개월 이상, 월령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푸는 걸로 계속 밀어붙였죠.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이 사람들은 다음에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 개방될 테니까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면서 그렇게 한 겁니다.”
▼ 직접 들은 얘긴가요.
“(해당장관인) 저한테 직접 얘기하진 않죠. 대신 실무 쪽에서 흘러나오잖아요. ‘정권 바뀌면 다 들어준다는데 협상 심하게 할 거 있나, 형식적으로 하는 것처럼 하고 좀 기다리자’…. 이렇게 나오는 게 미국의 방침이었다고요. 참 문제였죠.”
▼ 김종훈 당시 통상교섭본부장도 노 전 대통령과 부시의 통화 내용을 다 알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렇죠. (김 본부장이) ‘아시아 다른 나라와 형평을 맞추자’ 이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죠.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는데, 전 정부가 제시한 대로 ‘30개월 미만을 기준으로 하자’고 하면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겠어요? 그리고 김 본부장도 이 대통령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겠어요?”
송 전 장관은 “더 할 말은 많지만 이 전 대통령 회고록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정리하자”고 했다.
한미 FTA 협상이 진행 중이던 2007년 5월 당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과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북한이 甲’ 발상 바꿔야”
송 전 장관은 외무부 시절 북미과장, 북미국 심의관, 북미국장 등 오랜 기간 북미지역을 담당한 북미통이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국제안보비서관, 김대중 정부 때는 외교통상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선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장관급)에 이어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았다. 2005년에는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해 9·19공동성명을 주도했다. 남북문제뿐 아니라 난마처럼 얽힌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도 안목이 깊다.
‘통일대박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굵직굵직한 대외 청사진을 제시한 박근혜 정부 2년. 그에 대한 송 전 장관의 평가는 어떨까.
“구체적 방법을 전혀 제시하지 않아 형체를 잘 모르겠어요. 대외정책, 특히 대북정책을 펼 때 북한이 싫든 좋든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대해 선이 좀 분명해야 돼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일단 ‘정치적 실체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협상을 벌였거든요. 과거 노태우 정부나 박정희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죠. 1972년 7·4공동성명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거잖아요. 이명박 정부 때는 사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죠. 물론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나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포격도발 등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인정한다는 건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지, 왔다 갔다 합니다. 한편으로는 남북한 대화하자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정원장 같은 사람이 ‘2015년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해다’ 이런 식으로 나왔단 말이에요. 상대방을 흡수통일 대상으로 삼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오락가락하니까 체계와 모양이 안 잡히는 거죠.”
▼ 사실 남북관계라는 게 우리 정부보다는 북한의 태도에 의해 많이 좌우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갑이고 우리가 을’이라는 그런 의식을 가진 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대북정책에서 핵심은 핵문제 아닙니까. 북한이 핵실험하면 닫고, 안 하고 대화하면 풀어주고. 그러면 북한이 칼자루 쥐는 거죠. 북한이 갑입니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려면 강자라는 의식을 갖고 투자를 해야 돼요.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부족한 군사력, 두 번째는 전력, 세 번째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맞대응할 수 있는 정치적 위상.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핵심이죠. 먼저 정치적 위상을 세워주기 위해 북·미 간 관계를 개선시켜 정상화의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전력은 우리가 지원하면 되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핵을 포함해 남북 간 군비통제로 가는 겁니다. 이 세 가지 경로를 같이 밀고 나가는 힘을 우리가 가져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는 북한한테도, 미국한테도 항상 을입니다.”
“금강산 피격사건부터 풀자”
▼ 5·24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착상태에서 해법은 두 가지입니다.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는 방법이 있고, 도저히 풀 수 없을 때는 실마리를 자르는 거죠. 아직은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강산 관광객 피격은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북한 현지 사령관이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서 생긴 일’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불가피했다’ 그건 ‘사과’의 전조입니다. ‘뭐가 불가피한지 설명해봐라’ 해서 들어보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면 좋았죠. 그건 지금도 가능해요. 그다음에는 개성공단을 확대하고. 북한 동해안, 북서쪽, 서북쪽에 개성공단 같은 걸 만들면 그게 통일의 시작이지. 그렇지 않아요? 5·24 제재조치는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풀어나가는 거예요. 국가관계나 대외관계는 늘 곡선적 접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외교의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에는 맛있는 게 없어요. 입맛에 안 맞거나, 먹고 배탈 나는 음식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금강산부터 우회적으로 풀어나가는 건 입맛엔 안 맞죠. 그래도 배탈은 안 나요. 그런데 ‘천안함 폭침 시인하고 사과하라’ 요구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 배탈 나는 거죠. 일본 아베 총리가 남북관계를 활용해도 손놓고 봐야 하고, 미국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중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야 하고. 그게 배탈이지.”
▼ 요즘 북·중 간 기류가 묘하지 않습니까, 한·중은 가까워지고. 북한을 아주 강하게 고립시키는 전략은 어떨까요.
“북한이 중국한테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는 없어요. 북한이 붕괴됐을 때 생기는 후과(後果)를 중국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점령한다든지 자기 영토로 편입하는 건 절대 할 수 없어요. 영토 확장주의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예요. 북한이 무너져 한미동맹이 압록강, 두만강을 지키는 건 더욱 못 참을 일이고. 그래서 중국은 북한을 살리면서 길들이자, 이겁니다. 북한도 그걸 알죠.”
▼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무척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요.
“자기들이 대외적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을 확장하는 정도죠. 북한은 러시아 카드가 중국 카드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러시아는 중국을 대체할 만한 무기를 갖고 있지 못해요.”
“사드는 중국 겨냥한 것”
▼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를 놓고 미·중 사이에서 고민스러운 상황입니다.
“북한의 미사일이 휴전선을 넘어오는 데 5~6분밖에 안 걸립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그리고 앞으로 상당한 미래까지도 그 시간 안에 탐지해서 중간에 요격할 수 있는 기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겁니다. 우리 안보에 득보다는 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든, 주한미군용이든 사드가 들어오는 건 안 됩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는 겁니다. 한번 들어오면 못 빼내요. 사드를 빼는 순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전략이 축소되고 한미동맹이 일그러졌다고 봅니다. 그러니 계속 있어야 되잖아요. 결국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최전선’에 서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미국에 ‘사드가 5~6분 내에 북한 미사일이나 장사정포, 이런 걸 막을 수 있는지 먼저 기술적으로 입증해라’, 그러면서 버텨야죠. 그게 최선의 대책입니다.”
“개념은 좋은데 정책이 없다”
▼ 최근 베이징에서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1월 말엔 일본에서 한·미·일 수석대표 회동과 미·중 수석대표 회담이 잇달아 열렸는데요. 연내에 6자회담이 재개될까요.
“여섯 나라가 한반도 문제, 특히 핵 문제에 관한 최대공약수를 뽑아내 2005년 9·19공동선언을 만들었거든요. 지금도 정상들이 만나면 그 선언을 이행하자고 해요. 방법이 문제죠. 미국은 ‘북한은 핵 포기의 진정성을 보여라’, 북한은 ‘미국이 하는 거 봐서 하겠다’는 거고. 간극이 크죠. 그런데 지금 북·미 간의 분위기로 봐서 별로 접근하지 못한 것 같아요.”
▼ 박근혜 정부 임기가 3년 남았습니다. 한마디 조언을 하신다면.
“현 정부 초기,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신뢰 프로세스’예요. 신뢰라는 건 과정에서 축적되고, 그 결과로 구축되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은 정권체제 유지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집단입니다. 그런 사람들한테서 먼저 신뢰 있는 행동을 보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겁니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잘못됐다고 해서 정권이나 체제가 붕괴되진 않습니다. 우리는 좀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안 해요. 개념은 좋았지만, 정책이 없어요.
‘통일대박론’도 통일이 가져올 엄청난 효과에 대해서는 동의해요. 그런데 ‘통일대박’이란 말은 흡수통일과 이어지는데, 문제는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핵 문제도 통일이 되면 해결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핵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를 논의해야 되는데 거꾸로 통일이 되면 핵이 해결된다니, 이런 무대책이 어디 있습니까.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북 정책 방향을 분명히 설정하면 좋겠어요. 북한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자체로 인정한다,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 중에서 선택해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주고받기 협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고받기는 힘 있는 자가 이니셔티브를 쥐는 겁니다. 그게 북한을 변화시키는 바른 길입니다. 미국도 설득해야죠. 한국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북한에 확신시켜줄 때 한국이 주도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