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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슈틸리케 감독의 ‘희망 리더십’

  • 장원재 │축구 칼럼니스트 drjang12@gmail.com

국민은 대표팀에서 ‘공정사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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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개조의 핵심

이 원칙은 한국 대표팀 선발에도 적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군(軍)데렐라’ 이정협이다.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축구가 선택할 수 있는 공격 옵션 1호는 박주영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무명 이정협을 낙점했다. 이정협은 각급 대표팀에 뽑힌 적이 없고 소속팀 상무에서도 주전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반대했다. ‘저 선수를 뽑았다가 실패하면 수습 불가능할 만큼 욕을 먹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국제 수준에서 직선 침투가 가능한 유일한 선수다” “K리그 경기를 거듭 본 뒤 냉정하게 판단했다”며 기술위원들을 설득했다. 이정협은 호주와의 예선전,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에서 득점포를 터뜨리며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멋지게 증명했다.

사람은 자리에 연연할 때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청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선발 과정에 대한 시시비비가 없다. 결과가 나쁘면 대중의 평가는 둘로 나뉜다. 선발 과정이 불공정했다고 여기면 대중은 분노한다. 선발 과정이 공정했다고 여기면 실망한다.

분노든 실망이든 부정적인 여론이 대세가 되면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감독은 외롭다. 슈틸리케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의 전문지식, 객관적 잣대로 선발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팀 내부와의 소통에도 능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선수들을 대했다. 그에게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쿠웨이트전이 끝나고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우승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회가 끝난 뒤 곽태휘는 “감독님께서 기자회견 후 선수들을 모았다. ‘내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알아줬으면 한다. 다른 팀들이 방심하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되돌아보자는 목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호주 현지에서 “왜 이렇게 수비가 자주 바뀌느냐, 수비가 자주 뚫리는 건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해서냐 아니면 감독의 전술이 모호해서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우리 수비진에 부상 선수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하는 질문이냐. 거의 모든 선수가 극한 상황에서 경기를 한다. 다친 선수를 기용하라는 뜻이냐?”고 답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면 부상 상황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 축구계의 불문율이다. 상대방의 전략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국 축구대표팀은 김신욱의 부상을 끝까지 숨겼다. 북한과의 결승전 후반에도 그가 나오지 않았고 연장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기자들은 ‘김신욱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구나’라고 짐작했을 따름이다. 김신욱의 출전 여부에 따라 상대 팀의 수비 전략이 달라지기에 연막작전을 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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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를 하는 슈틸리케 감독. 그는 언론과의 소통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일본 축구에 없는 무엇”

그런데 슈틸리케는 반대 전략을 택했다. 팀의 비상상황을 내외에 공표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에겐 선수들을 다독이는 게 우선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선수들을 비난하지 말라”였다. 선수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죽어라 몸을 던지는 것으로 감독과 국민에게 화답했다. 이를 본 일본의 네티즌들은 ‘한국 축구에는 일본 축구에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결승전 1-2 석패 후 슈틸리케는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라고 미리 준비한 한국어 소감을 말했다. 패배한 선수들을 끌어안은 명대사다. 세계적인 감독 중엔 선수들과 일부러 ‘심정적 거리’를 만드는 감독이 더러 있다. 슈틸리케는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도 선수들을 조금 다르게 대한다. 뭐랄까, 애틋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그는 결승전 당일, 라커룸에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이청용과 구자철의 유니폼을 걸어뒀다. 호주 교민들의 성원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틀어줬다. 이런 감성적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그런 배경엔 불행한 가족사가 자리잡고 있는지 모른다. 2008년 1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감독이던 슈틸리케는 드로그바, 야야투레 같은 호화 멤버를 이끌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에 도전했다. 그러나 대회 개막 일주일 전 사임했다. 23세의 아들 미하엘이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하엘은 곧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아들을 잃은 뒤 어떤 압박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팀 선수들을 아들처럼 애틋하게 여기는 모습이 종종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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