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 등으로 군 관련 부정적 보도가 언론매체를 장식하던 중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군 엘리트 장교들에 의한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군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여기에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군 수뇌부의 공감할 수 없는 발언이 부각되면서, 군 엘리트 장교 집단의 상황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12년 3월 대표적인 군 실세로 꼽히던 특전사령관 모 중장이 사단장 시절 공관에서 여군 하사와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맺어온 일이 드러나 해임되고 전역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연이어 그다음 달인 4월 강원도 육군 모 부대의 한 준장이 부하들과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새로 전입한 여군 하사를 강제로 껴안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여군 하사의 고소로 군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성추행 혐의를 받은 준장은 다른 부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전방사단에 근무하던 여군 오모 대위가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의 집요한 성관계 요구 및 성추행과 모욕,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떠들썩했다. 당시에도 군은 대책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한 대책은 모두 공염불이 돼버린 것일까.

강원도 철원군 청성부대 일반전방소초(GOP) 장병들이 눈 덮인 철책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한다.
지난해 10월, 육사 동기생 중 선두 그룹의 일원이던 17사단장 모 소장이 집무실에서 여군 하사를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해당 사단장은 이미 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군 하사를 위로하기 위해 집무실로 부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여군 하사를 다섯 차례나 불러 위로했다는 사단장의 변명은 여군 하사가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녹취록에는 사단장이 여군 하사를 이성으로 대한 정황이 담겼다.
피해자인 여군 하사는 이미 모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자로서 보호받는 차원에서 사단장 직속 부서로 자리를 옮겨 병영 상담관의 집중 관리를 받는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사단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이라 하니 뭐라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그리고 해당 사단장은 재판 과정에서 또 다른 여군 하사에 대한 추행 사실이 추가돼 실형 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올해 1월에는 전방 1군단 예하 기갑부대에서 또다시 여군 하사를 상대로 한 고위 장교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다. 여단 지휘관인 대령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이다. 과거 국방부 장관 부관을 지낸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한 엘리트 장교였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른 여군의 성추행 사건이었다. 군 수사기관이 같은 부대에서 발생한 모 여군 하사의 성추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해자의 제보로 여단장의 성폭행 혐의를 포착했다. 여단장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부하에게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성관계를 가질 것을 압박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확인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상하관계에서 계급과 직급에 굴복한 것이 그에게는 ‘상호 합의’로 여겨진 것일까.
더 큰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군 수뇌부의 시각과 자세가 국민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군에 대한 국민의 염려가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다. 가해 장교들이 아예 그런 행위가 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누구나 자기 범죄를 부인할 권한이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고 접어두자.
그러나 여군 하사와 합의해 성관계를 가졌으니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지하게 항변할 때면 듣는 사람이 낯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불륜일지언정 황혼의 로맨스였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20대 초반의 여군 하사가 아버지 뻘인 40~50대 유부남 지휘관과 무엇 때문에 합의해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일까.
그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아마 성관계 당시 여군 하사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놓고 저항할 수 없는 을의 처지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평가하는 데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