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신평의 ‘풀피리’⑧

가짜 사법개혁을 멈추시오!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0-09-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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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CD 37개국 중 국민의 사법신뢰도 꼴찌

    • 아래로부터의 소리 외면한 盧정부 사법개혁

    • 검찰보다 죄악 더 큰 경찰 권한 키우려 해

    • 장기집권 위해 필요한 게 ‘살아있는 권력 수사’ 막기

    • 동서고금 막론하고 경찰은 ‘권력의 충견’ 노릇

    • 비대화한 경찰, 토호세력과 결탁해 국민 위에 군림할 것

    • 실질적 배심제, 기소대배심제 등 개혁 방책 논의도 안 해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조속히 출범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조속히 출범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을 ‘불신사회’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유독 심하다. 얼마나 심하냐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사법신뢰도가 번번이 최하위를 헤맸다. 올해는 드디어 꼴찌인 37위로 떨어졌다. 한국은 사법개혁의 필요성이 대단히 큰 나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법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개인 간 분쟁 혹은 공동체 질서를 위배한 이들에 대한 검사의 소추에 대해 객관적으로 공정한 판정을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세워진 원칙이 있다. 사법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양대 축으로 해 그 위에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법원의 독립성 혹은 검찰의 중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부의 견해는 원칙의 일면만을 강조하는 셈으로 잘못이다.

    盧정부 사법개혁과 두 개의 안전판

    2018년 6월 21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2018년 6월 21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문 서명식’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일제의 영향이 잔존하고 낙후됐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부터 사법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노무현 정부가 로스쿨 제도, 국민참여재판 제도 법제화에 성공한 2007년까지 쉼 없이 추진됐다. 가히 ‘사법개혁의 15년 대장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 사이에서 여전히 사법신뢰도가 이렇게 낮은 까닭은 결국 과거의 사법개혁이 실패한 탓이다. 실패의 원인으로 ①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사법의 부패현상에 대한 외면 등) ②사회적 역학관계의 경시 ③문제들의 상호연관성 간과(사법의 독립에 치중하면 사법의 부패를 조장할 수 있다는 등) ④표피에 흐른 외국 사법제도와의 비교 검토 ⑤광범한 참여확보 실패 등을 꼽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가장 큰 의욕을 갖고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과연 ‘진정으로 국민 전체를 위한’ 사법개혁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의 의도를 분명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방향성을 잡을 수 없던 탓에 그의 의도가 조금 흐릿해졌다고 할 수 있다. 

    결과는 어땠나. 국민 전체를 위한 사법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 개혁 작업에 참여한 진보귀족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맞춰 경제적 중·하위계층의 법조 진입을 현저히 제한한 로스쿨을 만들었다. 형사사법절차를 대폭 개선하려 했으나, 법 제도 변경 후에도 재판 진행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독선과 아집, 기고만장에 가득 찬 검찰의 속성을 바꾸지도 못했다.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 작업은 밑에서 올라오는 국민의 소리가 제도에 반영되는 것을 차단한 점에서 결정적 결함이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이 필요로 했던 제도 개선이 주된 개혁 작업의 대상이었다. 반면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소리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것은 두 개의 안전판을 놓음으로써 가능했다. 사법개혁위원회는 주로 대법원장이 부의한 안건을 다뤘다. 이 안건들은 법제화를 위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로 그대로 승계됐다. 이것이 첫 번째 안전판이었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기획추진단이 법원과 검찰로부터 받은 안건만을 다루도록 한 게 다음의 안전판이었다. 두 개의 안전판 밑에서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 희망은 질식됐다. 

    또 잘못된 사법제도 탓에 피해를 받았다고 절규하는 수많은 ‘사법피해자’들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개혁 작업의 주체들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검찰과 ‘짐승의 짓’

    2003년 3월 9일 진행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평검사 간 토론회 모습. 노 당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동아DB]

    2003년 3월 9일 진행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평검사 간 토론회 모습. 노 당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동아DB]

    개혁에 참여한 이들은 판사, 검사가 부패나 나태 혹은 독직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의 상식과 다르다. 그러니 그 개혁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공정한 재판이나 수사를 담보할 제도개혁은 빠졌다. 오늘날 보는 극도의 사법 불신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즉 국민이 갖는 사법 불신은 ‘불신사회’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사법개혁의 실패가 바로 사법 불신의 직접적 원인이다. 

    길거리로 나가 물어보라. 국민이 원하는 사법개혁이 무엇인가를. 백이면 백의 국민은 ‘사법개혁은 공정한 재판과 공정한 수사를 이루는 것 아니겠느냐’고, ‘당연히 이를 원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법개혁 15년 대장정’ 과정에서 이와 같은 ‘진짜의 사법개혁’이 추진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법원, 검찰에서 사건처리를 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고치는 개혁이 주였다. 로스쿨과 같이 기득권자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제도를 만드는 데 대체로 그쳤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정부에서도 국민 전체의 의사에 입각한 진짜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구도와 철학을 어디에서건 찾을 수 없었다. 과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펴낸 백서에서는 새 정부의 사법개혁 과제를 공수처 설립, 수사권 조정,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으로 제시하며 범위를 매우 좁혔다. 공정한 재판, 공정한 수사의 실현을 위한 과감한 제도개혁의 설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취임을 둘러싸고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조국 부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갑자기 ‘검찰개혁’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의 참석인원이 100만 명이라는 뻥튀기 보도도 나왔다. 권력과 일부 언론, 그리고 일부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검찰을 성토했다. 

    검찰의 과거 죄상을 언급하자면 한이 없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가혹하게 취급하고, 심지어 선량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기까지 했다. 생명을 빼앗기까지도 했다. 이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자식들은 주홍글씨의 멍에를 메고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그것은 사람의 탈을 쓰고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바로 ‘짐승의 짓’이었다.

    내 무릎 차서 강제로 꿇리는 치욕 안겨

    검찰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당시 검찰의 행태는 경찰이나 안기부에서 행한 흉악한 범죄조작, 잔인한 고문보다는 그래도 나았다. 나는 당시 판사를 하며 항상 수사의 과정을 두루 살필 수 있었기에 이 점에 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권력층에서 검찰개혁을 한답시고 과거 검찰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검찰보다 더욱 ‘짐승의 짓’을 저질러온 경찰에게는 극히 호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권한을 더 키우려고 한다. 이는 권력이 어떤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전국 법관 중에서 나만큼 민주인사, 노동인사들에게 선처를 거듭한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안다. 엄혹하다면 엄혹한 시기였다. 나는 형사단독판사를 하며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연루된 피고인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석방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법정의 단골손님으로 오는 이도 있었다. 석방해주면 또 잡혀오고, 그러면 또 석방했다. 나는 홀로 ‘짐승의 짓’들에 감연히 맞섰다. 

    무사할 리 없었다. 특히 검찰에서 이에 앙심을 품고 온갖 비난과 매도, 인신공격을 나에게 퍼부었다. 많은 검사들은 내가 먼저 인사를 청해도 냉랭하게 거부했다. 한 개인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지치지 않고 그렇게 했다. 돌아보면 아득한 길이었으나, 무엇이 나를 그 길로 몰아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1993년 법관 사회의 정풍을 주장한 일이 직접적 원인이 돼 현행 헌법에서 법관재임명을 규정한 이래 처음으로 법관직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내 무릎을 차서 강제로 꿇리는 치욕을 안겼다. 

    그 후 용케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다. 교수로 있으면서 사법개혁을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아 오랜 기간 열심히 연구했다. 사법개혁은 나에게는 처절한 ‘소명’(召命)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나이기 위해,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공중을 떠다니는 한갓 티끌로 끝나지 않기 위해 사법개혁을 반드시 연구해야 했다. 

    그러니 내가 현 정부의 사법개혁에 비판을 가한다고 해서 마치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모는 견해는, 피를 흘리며 가시밭길을 걸어온 내 과거에 비추어 터무니없는 주장이자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다. 한평생 올곧게 대의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에게 대접은 해주지 않아도 좋다. 그런 것 바라며 살아온 내가 아니다. 그래도 나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베풀어 줄 수 없는가!

    검찰 권한 빼앗아 경찰에 주면서 개혁으로 거짓포장

    이 정부가 추진한 검찰개혁의 골자는 주로 검찰이 가진 권한을 빼앗아 경찰에 주는 식이다. 더불어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없애는 등 부패범죄 수사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면서 ‘짐승의 짓’을 훨씬 많이 한 경찰을 일방적으로 옹호한다. 국민의 의견은 극명히 갈린다. 한 쪽은 역사적인 검찰개혁 작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검찰개악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나는 사법개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이자 열렬한 사법개혁논자로서, 현 정부의 검찰개혁 작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검찰개혁 작업은 조국 부부에 대한 수사와 대통령까지 연루될 수 있는 울산시장 선거 수사가 있고나서부터 돌연 거칠게 본격화했다. 현 정부의 순수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 무렵부터 여권에서 ‘적어도 2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기집권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더는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 정부에서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공정한 재판, 공정한 수사를 위한 사법개혁에 대해 말 한 마디 나오지 않았다. 그럴 의사도 능력도 철학도 없었다. 엉뚱하게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못하게 하는, 즉 ‘검찰의 무력화, 검찰에서 경찰로의 권한 이양’만 이루어졌다. 이를 대단한 검찰개혁이라고 거짓 포장하는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찰은 ‘권력의 충견’ 역할을 기꺼이 한다. 경찰은 권력의 기호에 맞게 최대한 순종의 자세를 보이며 엎드린다. 그들은 권력자 앞으로 돌아서면 태도를 돌변한다. 더욱이 경찰은 한국 특유의 강성한 토호세력과 결합해 앞으로 국민 위에 군림할 것이다. 정보와 수사를 통합하며 극히 비대화한 경찰은 장래 권력과 자신들을 위해 못할 일이 없다. 

    사법개혁, 검찰개혁의 이름으로 이렇게 개악된 사법개혁은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바라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국민에게 불리한 영향을 초래하며, 국민의 눈을 가린다. 그런 의미에서 ‘가짜 사법개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물론 현 정부의 검찰개혁으로 지금까지 공공연히 행해져온 검찰의 패악질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검찰이 내보이는 어두운 야만의 모습은 검찰권 행사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개혁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검찰이 잘못한다고 해서 그간 더 큰 잘못을 저질렀고 또 앞으로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경찰에 검찰의 권한을 주어버리는 게 어찌 올바른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향후 검찰과 경찰을 합해 총량적으로 나타나는 수사기관의 ‘패악질 지수’는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집권세력이 개혁이랍시고 내세우는 것이 국민의 눈을 가리고 국민을 배반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숱한 개혁 방책, 논의 기회조차 못 얻어

    진정한 사법개혁 실현을 위해 많은 방책을 검토할 수 있다. 실질적인 배심제의 도입, 검찰의 기소권을 억제하는 방향으로의 기소대배심제도, 판사나 검사와 같은 법집행자들이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처벌하는 법 왜곡죄 도입, 형사사법과정에서의 조서작성을 폐지함과 아울러 그 대안의 마련, 판·검사 징계의 실효성 확보 등 숱한 방책이 있다. 

    이 정부가 출범한 뒤 이와 같은 방책들은 논의의 기회조차 얻은 일이 없다. 극단적으로 나빠진 사법신뢰도를 고양하려는 어떤 조그만 시도도 없었다. 아니 문제의 제기조차 없었다. 어쩌면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법개혁의 대의를 악용한 퇴행의 시기로 기억될지 모른다. 

    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나, 나는 2022년 3월 대선에서 현 집권세력에서 내는 후보가 무난히 당선되리라 예측한다. 국민들이 야권에 대한 분노를 그 시점에서는 거두지 않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내 편견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나라의 장래에 유익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2027년 대선은 모를 일이다. 만약 현 집권세력이 2027년 대선 이후에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지금 검찰의 권한을 대폭 박탈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봉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지 않은 행위임은 불문가지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반칙이고 권력의 오만이다. 

    권력을 가지면 이에 도취돼 오만해지기 쉬우나 그 끝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광복 후 헌정사가 오롯이 보여주는 바다. 가짜 사법개혁의 결과로 눈앞에 생생히 나타나는 폐해에서 국민의 불만이 싹틀지 모른다. 권력이 집권 연장을 위해 저지른 가짜 사법개혁의 실상을 똑똑히 보며 권력의 허위와 탐욕의 실체를 깨닫고 분노의 함성을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이 배를 뒤집어 정권 교체가 실현되지 않을까 한다.

    정략의 술수에 물든 정부여서야

    이와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빈다. 나는 2016년 촛불정국에서 나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 시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현 정부가 순조로이 성립할 수 있도록 애썼다. 나는 이 정부가 정략의 술수에 물든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당하고 떳떳한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고 헌법을 존중하는 정부가 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가짜 사법개혁’ 추진을 이제 멈추어주기를 요청한다. 이미 시간은 늦었지만 2022년 성립할 차기 정부에 바통을 넘긴다는 의미에서 ‘진짜 사법개혁’ 논의의 물꼬라도 틔워주기를 또 요청한다.

    *남영역(서울 용산구) 옆에 있는 ㈔공정세상연구소로 걸어가며 시상(詩想)이 하나 떠올랐다. 

    출근길

    꽃이 간다, 꽃들이 간다
    남영역 앞 횡단보도 가득 메우며 간다
    누군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꽃들인데
    겉으로는 활짝 핀 꽃들인데
    저 마다의 가슴에 맺힌 상처들
    보듬어 안고 모른 척 걸어간다
    상처가 나으면
    꽃들은 더 붉어지리니
    그게 사람 살아가는 것이려니
    나도 모른 척 하며
    환한 비눗방울을
    구월 하늘에 날린다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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