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코로나19, 남성 고환 공격한다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㉓] 코로나 완치 후 생식력 체크해야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0-10-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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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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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인류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배짱이 필요하다. 인류는 수천 년간 천연두 등 최악의 적수들을 물리쳐왔고, 끊임없이 발발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자손을 낳았다. 오히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더 사랑하면서 더 강인하게 변화해 살아남았다. 인간의 생식력은 이토록 위대하다. 필자는 인간 최초의 상태인 정자와 난자, 수정란을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난임의로서 그 어디에서도 인간의 생식세포(정자, 난자)만큼 위대한 변신을 보지 못했다. 

    세포 생물학 첫 페이지는 ‘모든 생물은 세포로 구성돼 있다’는 글로 시작된다. 사람 역시 세포라는 기본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해부학이나 발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포 중에서 형태학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세포로 단연코 정자의 생성을 꼽는다. 

    정자의 변신은 가히 위대하다. 핵과 세포질로 이루어진 평범한 세포에서 움직이는 동력기관을 가진 정자가 되는 데 약 70일이 걸린다. 고환의 세정관에서 만들어지는 정자는 생산되자마자 바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15일간 운동성을 획득한 뒤 부고환, 정관, 요도를 거쳐 사출된다. 실제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5단 변신로봇’을 연상케 한다. DNA 덩어리인 핵은 머리를, 세포질에 있던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저장고인 몸체를, 9개의 긴 섬유줄기는 꼬리를 만들어 헤엄치듯 움직이는 동력기관으로 변신한다. 난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기에 정자다운 정자라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정자에게 꼬리는 전사(戰士)의 말과 같다. 60㎛에 불과한 정자가 질과 자궁을 통과해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까지 가는 거리가 약 18㎝. 사람으로 치면 신장 170㎝의 남성이 10㎞ 정도 거리를 수영으로 건너가는 셈이다. 오로지 꼬리 힘만으로 움직여야 하는 정자로서는 터널 지나 산 넘고 바다 건너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정자는 운동성 점수가 중요하다. 운동량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는 정자는 병목 모양의 좁은 통로인 ‘자궁목’(자궁경부)을 통과하지 못한다. 정자가 생식력을 위해 활동성에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이유다. 반면 난자는 정자보다 사이즈가 1000배 더 크다. 생식에서는 명백한 갑(甲)이다.

    ‘5단 변신로봇’ 정자, ‘생식의 甲’ 난자

    시험관아기 시술(IVF)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반드시 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정자의 배출이야 수음으로 가능하지만, 난자는 주삿바늘을 이용해서 뽑아내야 한다. 초음파 기구에 바늘을 장착해서 질을 통해 난소에 찌르고, 포도 알만한 난포에서 난포액과 난자 및 난자 주위 세포를 흡입해 내는 것이다. 뽑아낸 난포를 배양접시에 올려놓고 확대 현미경으로 난자를 찾아야 하는데, 마치 작은 솜털조각처럼 난자 주위에 있는 영양세포(난구세포, ‘과립막세포’라고 부름) 덩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난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같은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수정란(배아)이 돼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배아가 자궁 내에 착상되면 자궁이라는 주머니 안에 아주 작은 주머니가 생기고 점점 사이즈가 커진다. 처음에는 작은 물집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난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황 옆에서 반짝거리는 게 심장세포 덩어리가 된다. 난임부부들은 초음파로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임신을 확인하게 되는데, 바로 심장세포 덩어리의 수축과 이완 같은 움직임이 초음파상에서 소리로 전환돼 심장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생식세포에서 시작해 귀한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남성이 코로나19에 더 취약한 이유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수억 마리가 죽음을 불사하고 사투를 벌이며 달려가는 만큼, 난자도 수십만 개 중에서 매달 최종 오디션을 통과한 단 한 개의 난자가 배란이 된다. 이 난자는 정자를 하루도 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난자는 도도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실상은 정자와 수정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한다. 

    난자는 화학적 신호를 보내 정자를 끊임없이 유인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난자를 싸고 있는 난포액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유사 알부민 액체인 난포액에 정자 유인 인자(신호물질)가 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난자는 건강한 정자를 선호하도록 진화돼 운동량이 적은 정자를 애초 근처에 못 오도록 차단한다. IVF에서는 자연 수정이 힘들 경우 주삿바늘을 이용해서 정자를 집어 난자의 세포질 내에 직접 주입하는 미세조작 정자주입술(ICSI)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정에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남성이 코로나19에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평균수명도 여성보다 더 짧은데, 코로나19에 더 취약하다. 이유는 바로 호르몬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신체 내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선 세포 표면 단백질 중 하나를 활용해야 한다. ‘ACE2’(앤지오텐신 전환 효소) 단백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백질은 폐·심장·동맥·소장 상피세포에 주로 분포하는데,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은 심장에 있는 ACE2 수치를 낮춰줌으로써 코로나19의 심장 침투를 막아준다. 난자가 자라면서 분비하는 에스트로겐은 단순히 생식호르몬 역할을 넘어 뼈뿐 아니라 심장까지 보호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해 주는 고마운 호르몬이다. 

    문제는 남성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남성의 고환 세포 표면의 효소와 결합해 고환 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실제 코로나19 남성 감염자들 중 일부는 사타구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고 호소한다. 정세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정자가 만들어지는 고환의 정세관에 상당한 손상을 보인다고 한다. 고환에도 ACE2 단백질이 있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결합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도 인간의 생식력을 공격한다. 결핵균이 대표적이다. 치료제와 예방주사(BCG 백신)로 발병자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70명이 걸린다. 결핵은 폐로 들어가 주로 산소가 많은 곳에서 살아가는 균이다. 그래서 핏줄을 타고 피가 풍부한 곳인 골수, 콩팥, 자궁, 난소, 고환 등에 자리 잡는다. 고환에 결핵균이 침범하면 부고환이나 세정관에 여러 개의 결절을 만들어 폐쇄성무정자증이 되거나 고환에서 정자 만드는 모든 세포가 죽는 황폐화가 일어난다. 여성 역시 결핵균에 난관이나 자궁이 감염되면 난관폐쇄, 복강 내 유착, 자궁내막손상 등으로 이어져서 난임이 될 수 있다. 

    생식기관은 임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난소에서는 난자가, 고환에서는 정자가 정상적으로 생산돼야 생식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그래야 건강한 몸을 지켜낼 수 있다.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야 면역 기능이 제 구실을 할 수 있고 세포 재생력도 좋아진다. 설사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면 완치 후에라도 생식력에 문제가 없는지 꼭 살펴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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