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기본적 삶 보장이 기본소득 원칙
보편은 200조 원, 선별은 20조 원
통신비 2만원 나눠주는 일 아무 도움 안 돼
서울 도시재생 전면 재검토해야 집값 잡는다
文정부 강남 집값 잡으려다 서울 전체 집값 상승
박원순 9년 규제 암흑기…경제전문가가 서울시장 맡아야
[홍중식 기자]
윤 의원은 국회 입성 전부터 정책통으로 유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재정·복지 분야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윤 의원은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경제학자가 국회의원 당선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차기 대선 주자 등용문이라는 서울시장 자리까지 넘보게 된 것. 9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윤 의원은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질문에 “서울시는 9년간 부동산 정책에 관해서는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윤 의원과의 일문일답.
“도시재생 목매다 잃어버린 서울의 9년”
- 서울시의 지난 9년간의 행보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도시재생에 집착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도시재생에 천착하다가 서울시가 당면한 문제는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 도시재생 대신 주택 공급이나 교육기관 개발 등 집값 안정과 시민 생활환경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했다.”
-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서울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사업을 박원순 전 시장이 중단했다.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도시의 옛 멋을 살리고 난개발을 막겠다는 의도는 좋다. 그렇지만 이 정책에는 약점이 있다. 도시의 원형을 지켜야 하니 각종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가 늘어나는 만큼 도시 개발이나 주택 공급이 어려워진다. 주택 공급이 거의 멈춰 있으니 부동산 수요가 늘면 주택 가격이 폭등할 위험이 있다. 서울시는 주택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 정책을 도시재생과 함께 펴야 했다. 9년간 도시재생이라는 틀에 갇혀 집값 안정에는 손도 못 댔다.”
서울시 뉴타운 정책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2002년 처음 추진한 정책이다. 뉴타운 사업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은평, 길음, 왕십리 등 34곳이다. 2011년 박 전 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뉴타운 정책의 종언을 선언했다. 2012년 1월 ‘뉴타운 정비사업 신(新)정책구상’ 기자회견에서 “임기 내에 새로운 뉴타운 지정은 없다”며 뉴타운 정책 폐지를 발표했다.
“계속 시장 후보 언급되면 진지하게 고민할 것”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9월 1일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 “초선 의원도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DB]
-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내년 4월 7일이다. 서울시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어떤 인물이 시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집값 안정 외에도 서울시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생경제 정책에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서울 집값 안정을 예로 들어보자. 집값 안정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시민이 적당한 가격에 필요한 집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시장은 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정부 노선과 반대 방향의 정책이라도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탄없이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장을 각 정책을 설계하는 유능한 전문가가 돕는다면 금상첨화다.”
-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준비하는 사안이 있나?
“없다. 아직은 내가 아니라 다른 분들이 나서길 기다리고 있다. 나는 사회정책 전문가이며 각 정책의 핵심 목표를 잘 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만큼 단점도 확실하다. 국회에 입성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정치 경력이 짧은 만큼 정치적 자산과 인맥이 부족하다. 지금은 적합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선거가 다가오면 두각을 보이는 후보가 나타날 것이다.”
- 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하고 지원해 준다면 후보자로서의 약점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시장이 되는 것보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정책을 실현하려면 정무 감각과 정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내 인맥의 대부분이 정치권과 무관한 학자, 전문가다. 행정부에서 일해 본 경력이 거의 없어 정무 감각도 부족하다. 내가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서울시장 후보로 언급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만 지금은 다른 좋은 후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 서울시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와 유능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인은 둘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두 측면을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지도부와 서울시장 후보에 관해 논의한 바가 있나?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
- 다시 부동산 정책으로 돌아가 보자.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 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8·4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비정상적으로 오른 주택 가격을 낮추려면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려야 한다. 수요를 줄이기는 어렵다. 일자리나 좋은 교육 환경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수요가 도통 줄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공급을 늘리는 데 소홀했다.”
“강남 손 떼야 집값 안정 가능성 보인다”
[홍중식 기자]
“8·4 부동산 대책은 실질적 주택 공급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 크게 주택 공급이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8·4 부동산 대책은 민간 주도형 재개발 방식인데 대부분의 개발이익을 정부가 가져간다. 선뜻 재개발에 나서겠다는 재개발건축조합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장소도 문제다. 정부는 강남 일대에 주택을 더 공급하겠다는데 강남에 집을 늘려도 집값은 잡히지 않는다.”
- 그렇다면 서울 어떤 지역에 주택을 추가로 공급해야 하나?
“지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계층별로 어떤 주택이 필요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 주택을 원하는 계층은 크게 사회 초년생, 30대 초중반의 신혼부부나 1인 가구, 40대 중후반의 3~4인 가족, 부유층 4개 분위로 나눌 수 있다. 사회초년생은 가진 돈이 부족하므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 30대 초중반의 신혼부부나 1인가구는 출퇴근이 용이한 지역을 선호한다. 자녀가 있는 3~4인 가구는 교육 문제로 학군이 좋은 지역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부유층은 강남의 고가 주택을 찾는다. 주택 정책이 가장 불필요한 계층이 강남 고가 주택을 찾는 부유층이다.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는 게 목표라면 정부는 강남에서 손을 떼는 편이 낫다. 강남에 신경 쓸 시간에 임대주택을 늘리거나 수도권 교통 중심지 주택 추가 공급에 나서야 한다.”
“강남 집값 잡으려면 공교육 정상화해야”
- 강남에는 주택 정책을 펴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앞에서 언급했듯 누구나 필요한 집을 적당한 가격에 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다. 정부는 이와는 무관하게 강남 지역 중심의 주택 투기세력을 잡겠다며 대출 규제를 시작했다. 강남이 아니더라도 집을 사려면 보통은 은행 대출을 받는다. 대출액이 점차 줄어들자 중산층도 섣불리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주택 공급은 늘어나지 않고 집을 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매번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집을 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리해서라도 서울 주택 구매에 나선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다 서울 전 지역 집값이 오르게 됐다.”
-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나
“정부가 교육, 일자리 등 다른 정책에 힘쓰는 편이 서울이나 수도권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 특히 교육은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공교육의 질이 사교육과 비등해진다면 이사까지 해가며 강남 8학군에 입성하려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지금의 정부 교육정책은 사교육의 메카인 강남으로 학생을 떠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한창 오르던 2019년 11월 정부는 자립형사립고와 특목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강북, 경기권 명문고가 없어지면 다시 강남 8학군으로 학생이 몰리게 된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강남 지역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정책을 편 셈이다.”
윤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민의힘 경제혁신위원회는 9월 10일 ‘국민의 힘으로! 미래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빈곤 없는 나라, 소득지원체계 전면 개편’이라는 기본소득 정책안으로 시작한다. 정책안은 ‘빈곤선’이라 하는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기준선 미만인 사람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중위소득은 대한민국 국민의 소득을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중간의 소득을 말한다. 2020년 기준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월 474만9174원. 빈곤선은 237만4587원이다. 매달 소득이 이에 못 미치는 가구는 정부 지원으로 빈곤선까지는 수입을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선별복지 10분의 1 재원으로 보편복지보다 나은 효과”
- 기본소득이지만 선별복지 방식을 택했다.“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이 원칙만 따른다면 선별복지 방식이라도 기본소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이 전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달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려면 대규모 증세가 불가피하다.”
- 선별복지 방식의 기본소득이 보편복지 방식보다 낫다고 보나?
“전 국민에게 매달 30만 원을 지급한다고 가정해 보자. 매해 202조 원의 예산이 든다. 선별지급 방식의 기본소득은 매해 20조 원이 소요된다. 비용만 10배 차이가 난다. 전 국민에 돈을 지급하는 방식은 정책 효과도 떨어진다. 매달 100만 원을 버는 4인 가구에 30만 원을 지원해도 이들의 소득은 여전히 빈곤선 아래다. 빈곤층만 선별 지급한다면 약 600만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 20조라 해도 재정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난립한 현금성 빈곤 지원책을 하나로 통합할 예정이다. 지금은 빈곤한 노인이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모두 받는다. 중복되는 정책이 많아 지원책을 통합하는 것만으로도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선별지급 기본소득은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에서 착안했다. 빈곤선을 기준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세금을 더 낸다. 빈곤한 사람은 이 세액으로 지원을 받는다.”
-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9월 3일 언론 인터뷰에서 “빈곤 지원책을 통합하는 일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현금성 지원책은 통합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지원책은 통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복지는 크게 현금성 복지와 서비스 복지로 나뉜다. 현금성 복지는 말 그대로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서비스 복지는 수혜자가 서비스를 받으면 그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보조하는 방식이다. 서비스 복지에 드는 비용을 현금성 복지 재원으로 통합해 사용할 수는 없다. 서비스 복지를 현금성 복지로 바꾼다면 관련 업계에 큰 타격을 입힐 위험이 있다. 보육 정책으로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정부와 부모가 어린이집 비용을 분담한다. 이를 현금성 복지로 바꾸면 부모에게 보육 수당이 지급된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수당은 받을 수 있으니 어린이집의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는 부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보육업계의 수입은 줄어든다. 이에 반해 현금성 복지는 공무원 외에는 관련 업계 종사자가 없으니 비교적 쉽게 통합할 수 있다.”
“선심성 재난지원금에 자영업자는 쓰러진다”
-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재난지원금도 선별 방식으로 지원하는 편이 낫다고 보나?“그렇다. 정부는 9월 10일 재난지원금의 일환으로 만 13세 이상 국민의 휴대전화 요금(통신비)을 2만 원씩 지원해 준다고 밝혔다. 여기에만 9000억 원이 든다. 휴대전화 요금 2만 원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난관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 절실한 곳은 따로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수입이 사라진 노래방, 헬스장 등 공동이용시설 자영업자다. 수입 없이 임차료만 내는 이들은 파산 위기에 있다. 이 가게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일자리도 위험하다. 생색 내기식 보편지원 대신에 코로나19로 손해를 크게 본 곳부터 지원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재난지원금으로 통신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론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9월 14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정부의 통신비 2만 원 지원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과반(58.2%)이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원에 대해 ‘잘못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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