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작성‧체온 체크 없어
숙박 불법인데도 침구류 버젓이 제공
블루투스 스피커‧노래방 기기…정부 단속은 모텔만
코인노래연습장협회 “억울하다”
20대를 중심으로 장소를 대관해 지인과 시간을 보내는 파티룸이 인기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GettyImage]
대학생 김모(21) 씨의 말이다. 9월 9일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 인근 파티룸에서 친구 9명과 생일파티를 열었다. 김씨는 이날 저녁 7시에 입실해 이튿날 오전 11시까지 친구들과 파티룸에 머물렀다. 당시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하던 때다. 밤 9시 이후 음식점이나 술집 이용이 제한됐다. 생일파티를 할 공간이 여의치 않아 파티룸을 빌렸다.
파티룸 업주는 예약 당시 파티룸에 입장하는 비밀번호만 알려줬다. 방역수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씨는 “코로나19가 걱정됐지만 지인과 술을 마시고 논 터라 실내에서 마스크는 굳이 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20대가 즐겨 이용하는 파티룸이 코로나19 방역의 사각지대로 지목받고 있다. 파티룸은 다수가 사용하는 실내공간이어서 방역에 취약하지만 정부의 규제나 단속으로부터 자유롭다.
생일파티, 동아리모임 파티룸에서
인스타그램에 파티룸을 검색하면 37만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주로 20대가 생일파티나 결혼축하파티 등을 위해 파티룸을 찾는다. 최근 대학생들은 파티룸을 MT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파티룸은 서울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기·강원의 펜션보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기 쉽고 교통도 편리하다.대학생 이찬주(22) 씨는 10월 31일 친구 4명과 함께 파티룸에서 할로윈 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박씨는 “친구들과 편하게 분장을 하고 술도 마시기 위해 파티룸을 예약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술집에 가는 것보다 우리만 놀 수 있는 장소를 빌리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9월 12일~21일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커뮤니티 동아리 게시판에는 “기존에는 주점에서 모임을 열었으나 이번 학기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파티룸을 대관해 정모(정기모임)를 진행할 계획”이라는 공지가 여러 차례 올라왔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는 파티룸을 빌려 온라인 콘서트를 함께 감상하자는 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잠은 자는데 숙박업은 아닌 파티룸
일부 파티룸 업체는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모텔‧호텔 등에서 숙박공간을 파티룸으로 제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파티룸은 서비스업(공간대여업)에 해당한다.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하면 된다. 지방자치단체 신고도 불필요하다. 각 지자체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독작업을 진행하고 방역지침을 안내하고 있다. 숙박업으로 등록되지 않은 파티룸은 관리대상에서 빠진다.서울시 관광체육국 관계자는 “숙박업이나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등록된 업체의 경우 방역 지침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지만 여기에 등록되지 않은 업체는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공간대여업은 자유업에 해당해 구청 신고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코로나19 장소별 실천수칙’에 따르면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업소는 방역관리자를 지정해 보건소 담당자와 방역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시설 내 음식점이나 카페가 있는 경우 출입하는 사람에 대해 코로나19 증상 유무를 확인하고 명부도 관리해야 한다. 24시간 운영되는 파티룸은 침구류를 제공하는 등 사실상 숙박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많지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장원 세무사는 “공간대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숙박에 이용된다면 숙박업으로 등록해야 한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숙박업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공중위생관리법 2조 1항은 숙박업에 대해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이라고 정의한다.
파티룸 업체는 자체적으로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공간대여 플랫폼 스페이스 클라우드에 ‘파티룸’을 검색하면 파티룸 이름과 함께 ‘매일 소독’ ‘방역 철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파티룸 관리인은 “파티룸 내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손님이 다녀간 뒤에는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래연습장 “우리만 억울하다”
9월 23일 코인노래연습장협회 업주들이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집합금지시설로 지정된 코인노래연습장 영업을 재개해줄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을 때 음식점‧주점 운영이 제한됐다. 숙박업소에서 주류를 판매하거나 게임을 위한 PC를 제공하는 등의 불법 영업이 문제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은 지자체와 함께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이뤄지는 불법 PC방 영업을 단속했다. 공간대여업으로 분류된 파티룸은 이 때도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집합금지 명령으로 영업이 중단된 노래연습장 업주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9월 28일~10월 11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핵심조치를 유지하는 내용의 추석 특별방역대책을 내놨다. 수도권 내 노래연습장, 대형 학원, 클럽‧룸살롱 등 유흥주점을 비롯한 11종 시설에 대한 집합금지가 유지된다.
경기석 코인노래연습장협회장은 “정부가 정한 고위험시설 분류가 너무 자의적이다. 파티룸뿐 아니라 오락실 내 코인노래방기기도 여전히 이용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노래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목적이라면 이들도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 당국이 일부 업종을 규제하면 사람들이 규제에서 빗겨난 곳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몇몇 업태에 대해서만 집합금지 명령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방명록 작성이나 체온 체크 등 기본적 방역 수칙이 지켜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깜깜이 감염 최소화가 중장기적 코로나19 대비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