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제재 결의 2375·2397호 위반
미국 독자 대북제재 위반에도 해당
코로나 방호복 수요 폭증… 주문 쇄도
“코로나19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방호복.
필자는 6월 출간한 저서 ‘세계의 옷 공장, 북한’을 통해 중국에서 확인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사실을 공개했다. 사진과 문건, 관계자 증언 등 다양한 증거를 통해 한국과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 기업이 중국산으로 둔갑한 북한산 의류를 수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책 에필로그에서 필자는 ‘2020년 5월 현재 기준으로 북한과 접하고 있는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지역의 북한 노동자 공장 90%가 코로나 방호복을 만들고 있다’고 썼다. 출간이 임박한 시점에 북한 노동자가 만든 ‘코로나 방호복’이 쏟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집중 취재했고, 화급하게 에필로그에 추가했다. 이후 시간 여유를 갖고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북한 노동자가 만든 ‘코로나 방호복’ 완제품을 입수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올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단둥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의 상황이 어땠는지부터 살펴본다.
1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질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중국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는 ‘중국산(産) 거부’로 이어졌다. 해외 기업의 중국산 제품 주문이 급감했다. 중국산으로 표기되는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단둥의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 북한 내부 봉제 공장도 타격을 받았다. 북한 노동자에게는 코로나19보다 돈벌이 중단이 더 무서운 현실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차츰 진정 기미를 보였다. 대신 상대적으로 안전하던 북미와 유럽 등 서구 사회가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이 때문에 방호복과 마스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 방호복 수요 폭증…주문 쇄도
어마어마한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중국뿐이었다. 중국은 방호복과 마스크에 들어가는 원단, 이들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대거 보유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세계 최대의 방호복과 마스크 생산국이었다. 한때 중국을 손가락질하던 북미와 유럽은 돌변했다. 자국민이 속속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숨지는 일이 이어지자 앞다퉈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중국에서 생산한 방대한 물량의 방호복과 마스크는 비행기에 실려 북미와 유럽 각국으로 운송됐다.이러한 거래는 상하이(上海)와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 등 중국 남방 지역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이 지역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거래 달인’이 밀집한 중국 경제 1번지다. 중국 남방의 기업은 오랜 기간 네트워크를 구축한 북미와 유럽 기업의 주문을 받아 중국 여러 공장에 생산 물량을 나눠줬다. ‘상거래 달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이다. 이들은 가장 저렴하면서도 기계처럼 부릴 수 있는 노동력, 북한 노동자를 최우선으로 찾는다. 그래서 중국으로 쇄도하는 방호복과 마스크 주문은 단둥의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으로도 전달됐다. 단둥으로의 주문 물량은 수억 장이나 됐다. 한동안 문을 닫다시피 했던 북한 내부와 단둥의 봉제 공장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마스크보다 방호복 제조 선호
북한과 단둥의 공장에서는 마스크보다는 주로 방호복을 만들고 있다. 방호복 제조가 마스크보다 이윤이 월등히 높아서다. 게다가 마스크 제조는 사람 손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기계는 원단을 장비에 걸기만 하면 포장까지 모든 공정을 장비가 알아서 처리한다. 성능이 우수한 장비 가격은 1억5000만 원가량이다. 장비만 돌리면 이른 시간 안에 방대한 물량을 찍어낼 수 있다. 그러니 노동력 의존도가 높은 북한 공장에서 마스크 생산은 효용 가치가 적다. 북한에도 마스크 생산 자동 장비가 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많지 않아 이들 장비는 평양시민 등 주로 북한 내수용 마스크를 생산한다.북한의 소규모 작업장에서는 자동 장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마스크 생산이 이뤄진다. 재봉 기계 하나에 4인 1조로 모여 만든다. 공정도 간단하다. 마스크 모양을 재단한 뒤 앞뒤로 재봉틀로 박고 귀걸이를 단다. 가짜 KN95(중국 보건용 마스크 규격 기준) 마스크를 만들기도 한다. 부직포가 들어간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부직포 비슷한 물질을 마스크 안에 집어넣고 임의로 KN95 마크를 갖다 붙인다. 만일 노동자가 바이러스나 균에 감염된 상태라면 작업 과정에서 마스크에 옮겨 붙을 수도 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일부 열악한 작업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마스크를 만든다고 중국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마스크와 달리 방호복은 라인 작업을 한다. 1개 라인에 노동자 20여 명이 배치된다. 방호복은 바이러스나 균이 일절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고주파 장비를 사용한다. 방호복에 고주파를 쏜 후 밀봉한다. 그런데 방호복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단둥이나 북한에는 이러한 고주파 장비가 없었다. 1대당 4억∼5억 원 정도 하는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주파 장비 대신 ‘심실링(seam sealing)’ 방식을 활용했다. 이 방식은 ‘솔기(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지을 때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 밀봉’으로도 일컬어진다. 의류나 텐트 등의 방수 처리에 주로 사용된다. 단둥에는 심실링 장비를 갖춘 공장이 제법 있어 이들 공장은 인력을 총동원해 방호복 제조에 착수했다. 심실링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물량은 1개 라인에서 하루 최대 600장이다. 5개 라인을 갖춘 공장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3000장을 생산할 수 있다.
심실링 장비 사용하다 고주파 장비 투입
단둥으로 밀려들어온 방호복 주문 물량이 수억 장이나 되다 보니 심실링 방식으론 물량을 맞추기 어려웠다. ‘빨리 만들수록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는데…’ 주문을 넣은 남방 기업은 답답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냈다. 남방 기업은 고주파 장비를 사서 단둥의 공장에 제공하고 장비 비용을 작업비에서 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고주파 장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단둥에서의 생산량은 급증했다. 이 장비는 북한으로도 들어가 ‘중국산’으로 원산지를 속인 수출용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주파 장비 1대로는 하루에 방호복 5만 장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 기껏해야 하루 수천 장 생산이 가능한 심실링 장비와 비할 수 없다. 고주파 장비 1대를 갖춘 단둥 공장 1곳에서 월 150만 장가량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단둥 공장 수십 곳 모두가 이 장비를 갖췄다 해도 수억 장을 생산하려면 한참 걸린다.
필자는 최근 단둥의 한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에서 생산한 방호복을 입수했다. 밀봉 포장된 완제품 상태로 받았다. 독일 함부르크로 수출되는 제품이다. 이 제품을 건네준 이는 단둥의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 관계자다. 수출 대기 중인 완제품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고 했다. 그는 “북미와 유럽 오더를 담당하는 저장성의 한 기업이 단둥 공장에 방호복 오더를 1억 장 풀었다. 우리 공장은 매일 새벽까지 가동한다. 단둥의 여러 공장이 이 오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입수한 방호복 포장지 제일 위에는 ‘Sterile surgical gown’, 즉 ‘살균한 수술용 가운’이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STERILE/EO라고 표기돼 있다, 진공상태에서 EO(에칠렌옥사이드) 가스를 주입해 멸균 처리했음을 의미한다. 하단에는 의료 장비를 의미하는 MD(Medical Device) 표기가 있다. 수출업체는 중국 저장성에 있는 의료용품 회사로 적혀 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에서 북미 지역과 유럽으로 다양한 의료용품을 수출한다고 소개한다.
北노동자가 만든 ‘독일 수출 방호복’
중국 단둥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에서 제작한 방호복 포장지 앞면(왼쪽)과 제품 합격증.
포장지에는 CE마크가 부착돼 있다. 제품이 모든 EU(유럽연합) 회원국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표시다. 즉 방호복 포장지에 적힌 기록은 제품을 만든 자와 제품 모두 유럽연합의 요구 조건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마크가 부착된 제품은 유럽연합 역내에서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다. 밀봉 포장 안에는 푸른색 방호복 상의와 제품합격증이 들어 있다. 제품합격증에는 제품에 대한 기본 설명이 돼 있다. 올해 8월 10일 생산했고, 유효기간이 3년으로 표기됐다.
중국의 한 대북 사업가는 8월 단둥의 봉제 공장 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전했다. 이 공장에서는 북한 노동자 300여 명이 일한다. 고주파 장비를 1대 들여와 방호복을 하루 평균 5만 장 생산해 모두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공장 사장은 “노동자가 하루 평균 너덧 시간만 자면서 미친 듯이 방호복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더가 끊기는 바람에 석 달간 쉬다시피 했던 터라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노동자 모두 아무 군말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서는 노동자 300여 명이 한 달에 이틀만 쉬고 일해 매월 140만 장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면 공장에서는 임가공비로 1장당 1.9위안(330원)을 받는다. 한 달 266만 위안(4억6000만 원)을 번다. 이 가운데 북한 노동자 월급으로 숙식비 등을 포함해 80만 위안(1억4000만 원)이 나간다. 각종 운영비용을 제하면 공장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익은 160만 위안(2억7000만 원)가량이다. 공장 사장은 “현재 단둥의 공장 전체가 만사 제쳐놓고 방호복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 500여 명을 고용한 또 다른 공장 측은 올해 10월까지 방호복 제조 일정이 꽉 잡혀 있다고 했다. 거대한 물량의 주문이 계속 들어오면서 단둥의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에서는 “코로나19가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공장들은 최소한 내년 여름까지는 방호복 제작에 전념하며 돈벌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北노동자가 제조한 의류 판매 대북제재 위반
올해 5월 촬영한 중국 단둥의 한 봉제공장.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12월,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이 결의에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를 2년 이내 송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결의 채택일이 12월 22일이었으니 2년 뒤인 2019년 12월 22일 이후로는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는 모두 북한으로 귀환해야 한다. 그런데 2020년 9월 현재까지도 단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코로나 방호복을 만들고 있으니 결의 2397호 역시 위반한 셈이다.
단둥 외에도 지린(吉林)성 투먼(圖們) 등 북한과 인접한 중국 접경 지역 곳곳에서 북한 노동자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중국에서 대북 사업을 하는 여러 사업가를 통해 확인했다. 필자는 올해 5월 촬영한 단둥의 북한 노동자 고용 공장 사진을 입수했다. 북한 노동자 1000여 명이 일하는 대형 공장으로 일본으로 수출하는 의류를 전담 생산하고 있다. 공장 사진 좌측에 ‘작업반 생산 실적표’라고 적힌 대형 화이트보드가 보인다. 작업 중인 북한 노동자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북한 노동자가 만든 방호복을 중국산으로 수출입하는 것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뿐 아니라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 위반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9월 20일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규정한 행정명령 13810에 서명했다. 이는 지금까지 나온 대북제재 가운데 최강으로 평가받는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가 가능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의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명령 13810은 구체적 사례를 들며 금융거래 금지와 미국 내 재산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독자 대북제재 위반에도 해당
2018년 7월 23일 미국은 국무부·재무부·국토안보부 등 3개 부처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했다. 자신도 모르게 북한의 불법적인 무역과 노동자 송출에 관여했더라도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위반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를 피하려고 사용하는 여러 수법을 소개했다. 우선 중국 공장이 북한 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어 자수(刺繡) 작업을 의뢰한 사례를 들었다. 이처럼 제3국의 공급업체가 고객이나 기타 관계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제조나 하도급 작업 계약을 북한 공장에 맡기는 것을 주의하라고 미국 정부는 경고했다. 또 북한에서 만든 의류 상품에 ‘중국산’ 표시가 부착되는 사례 등을 제시하며 북한 수출업자가 북한에서 생산된 상품의 원산지를 감추려고 원산지를 제3국으로 표시한다고 밝혔다.경고 이후 실제로 미국은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월 14일 북한의 해외 노동자 수출을 총괄해 온 혐의로 북한 남강무역회사와 중국 베이징 숙박소를 특별지정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OFAC는 이 두 곳에 대한 자산 동결과 거래 차단은 물론 제3국 금융기관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까지 막았다. OFAC 조사 결과 남강무역은 북한 해외 노동자의 비자와 여권 관리, 해외 취업 알선 등을 맡았고, 베이징 숙박소는 남강무역의 해외 인력 송출과 관련해 금융과 물자 등 다양한 지원을 했다. 베이징 숙박소는 주중 북한대사관 인근에 있다.
美, 11월 대선 의식해 모른 척?
북한 노동자가 만든 코로나 방호복이 중국산으로 수출되는 현재 상황은 미국이 특별히 주의하라고 경고한 바로 그 사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침묵하고 있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중국 기업이 단둥의 북한 노동자가 만든 코로나 방호복을 수출한 것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제재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만일 미국이 방호복 등 북한 노동자가 만든 중국산 의류 제품의 수출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을 의식해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미국 정부가 코로나 방호복을 비롯한 북한산 섬유제품에 대해 대북제재의 칼을 휘두른다면 어떻게 될까. 필자는 저서 ‘세계의 옷 공장, 북한’에서 지난해 북한 노동자가 봉제 분야에서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가 2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봉제 분야에서 대북제재가 정교하게 이뤄진다면 북한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코너에 몰린 북한은 위기 탈출을 위해 미국을 겨냥한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핵실험 등 무력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명백하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 노동자는 방대한 물량의 코로나 방호복을 생산함으로써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 있다. 유엔과 미국, 유럽이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경고한 대북제재 위반 행위지만, 북한 노동자 손으로 만든 방호복이 유럽과 북미 지역 방역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