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독점 당국에 대한 감시 통제 더 강화돼야
개인 자유 제한하는 경계 애매하긴 하다
이번 기회에 사법적 판단으로 선 그을 필요
일방적 결정은 권위주의 체제로 가는 위험한 길
방역 과정 인권침해 우려에 경각심 가져야
이재명 경기지사가 8월 20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코로나19 수도권 대유행에 따른 대도민 긴급 호소 기자회견을 했다. [경기사진공동취재단]
“개인 자유 제한하는 경계 애매”
이 지사가 8월 18일 모든 경기도민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뒤 “사이다 행정”이라며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친 조치” “인권침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 지사가 8월 27일 SNS를 통해 코로나19의 경우 전염성 때문에 “개인 아닌 모두의 문제”라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공적 통제와 강제는 불가피함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기도는 도민 10명 중 9명이 마스크 의무착용 행정명령에 대해 ‘잘했다’고 평가한다는 여론조사(1000명 대상) 결과를 9월 6일 공개하기도 했다.하지만 감염병 환자의 권리 및 사생활 보호와, 위험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헌법 37조 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지사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통제는 적절한 선에서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유보하면서 만들어진 공간에 국가가 통제권을 행사하는데, 그 목표는 우리 모두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공공선”이라면서도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계선이 어디냐는 주제는 언제나 애매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 실제 주인공의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개인적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측은 권한을 행사하고 통제하는 측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고, 사법적 판단을 통해서 분명하게 선을 한 번씩 긋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권한을 가진 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국 권위주의 체제로 가는 위험한 길이다. 입을 틀어막으면 편할지는 모르지만, 사회가 경직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또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 결론에 이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스크 착용 헌법소원, “휴대전화 끄고 모이자”
방역 당국의 개인정보 활용과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가 잇따르면서 이에 맞서는 양상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대한 비난과 헌법소원만 있는 게 아니다. 8·15집회 참가자들의 휴대전화 이용 정보를 바탕으로 한 코로나19 역학조사가 있은 이후 우파 성향 시민 사이에선 개천절(10월 3일) 집회에 “휴대전화를 끄고 모이자”는 주장까지 SNS에서 확산했다.통신비밀보호법과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방역 당국이 경찰을 통해 이동통신사에 특정 시간대의 기지국 접속 기록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7월 3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이태원 클럽발(發) 코로나19 확산 때 이태원을 방문한 1만여 명의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 정보를 활용한 것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 행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민변은 이 헌법소원 청구인이 4월 말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 인근의 한 식당을 방문했을 뿐인데 서울시로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이로 인해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신혜경 서울대 미학과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코로나19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보고서에서 “사회적 방어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인권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이뤄진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감염자 동선 정보 역시 도처에 존재하는 CC(폐쇄회로)TV, 스마트폰 GPS 정보, 신용카드 거래 내용을 샅샅이 추적함으로써 만들어지고 그 귀중한 정보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널리 보급된 한국 시민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방방곡곡으로 전달된다. 그러나 그러한 동선 추적과 정보 공개는 감염자의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존중한 것인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훔쳐보기와 호기심으로 개인의 사적인 생활이 가십성으로 소비될 가능성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내 상호 견제 시스템 구축해야”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확진환자의 이동 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돼 사생활 침해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도 발생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자신이 감염되는 것보다 확진환자가 돼 주변으로부터 비난받는 상황을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런 분위기에서는 감염자가 감염 사실을 숨기게 돼 방역에도 방해가 된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9월 11일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처리되는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점검해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 수기(手記)명부를 작성할 때 이름을 빼고 휴대전화번호와 거주지(시·군·구)만 적도록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테이크아웃을 하면 수기명부 작성을 면제할 방침이다. 확진자 이동경로 공개와 관련해서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권고한 지침과 달리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성별·연령·거주지(읍·면·동 이하) 등을 포함한 사례 349건과 삭제 시기(마지막 접촉자와 접촉 후 14일 경과)를 준수하지 않은 사례 86건이 확인됐다. 따라서 중대본의 권고 지침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재명 지사도 방역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인권침해 우려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그동안 역학조사 과정을 보니까 방역 당국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정말로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냈다. 확진자 본인이 부인해도 그것을 찾아내고 접촉자들까지 특정하는 과정을 보니 조지 오웰이 말하는 ‘빅 브라더(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관리하는 권력)’ 시대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며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는 우리가 공동체 안전과 안보에 관한 문제니까 이걸 용인하고 있지만, 정보를 독점하는 당국에 대한 국민의 감시 통제가 좀 더 강화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개인정보가 악용될 경우의 상황을 우려하며 “공직자의 도덕성만 믿고 맡기기보다는 정부 내 상호 견제 시스템 구축 등으로 개인정보에 대해 좀 더 강력하고 민주적인 통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