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3강’ 농심·오뚜기·삼양식품, 화려한 한 해
도시락 전성시대, GS25·CU·본도시락 매출↑
HMR 강세 CJ제일제당, 역대 최고 영업이익
외식 브랜드 갖춘 CJ푸드빌·이랜드이츠 위태
사모펀드 소유 피자·레스토랑, 매각 가능할는지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증가한 1조1300억 원을 기록했다. 8월 20일 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 코너 모습. [뉴스1]
지난 8월 수도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자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했다. 밤 9시 이후 식당이나 술집에서 취식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내식(內食) 수요가 재차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간편식)은 물론 라면, 도시락 등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가공식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매출이 껑충 뛰어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기간 외식업계의 자영업자들은 사실상 ‘휴업’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도 경영난을 비켜가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식 브랜드가 매물로 나오는 일이 잦아지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에도 국내 식품 산업의 구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시장의 경쟁 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크고, 소비자의 식습관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제품은 라면이다. 라면업계는 올해 내내 호황을 누렸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증가한 1조1300억 원을 기록했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다.
한 해 내내 호황 라면업계
라면은 해외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에서 라면을 ‘비상식량’으로 사두는 경우가 늘어난 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라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6.7% 증가한 4억500만 달러(약 4800억 원)를 기록했다. 전체 농식품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5%가량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라면의 매출 성장세가 가팔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라면업계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라면업체들은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전반적인 경기 침체 분위기에 더해 인구 감소로 시장이 축소했고, HMR 등 대체 식품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라면업체들은 해외시장에 더욱 공을 들였다. 다행히 케이팝이나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였다. 이에 중국과 동남아, 미국 등에서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왔다. 올해 라면이 해외에서 급성장한 데는 이런 저간의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
수익성도 확연히 좋아졌다. 올해 상반기 농심의 영업이익은 105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4% 늘었다. 오뚜기의 경우 영업이익은 1101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21.3% 증가했다. 삼양식품의 영업이익은 562억 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7% 늘었다.
수익성이 좋아진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통상 전염병 확산으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질 경우 소비자는 ‘스테디셀러’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기보다는 안정적인 맛의 제품을 쌓아두는 셈이다. 라면업체 처지에서는 굳이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새로 공장 라인을 구축할 필요가 없으니 비용이 적게 들 수밖에 없다. 수익성은 저절로 좋아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라면의 호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장지혜 카카오페이증권 연구원은 “국내 라면업체들의 실적 성장은 글로벌 경쟁사와 대비해서도 높게 나타나고 있어 긍정적”이라면서 “한국 라면을 섭취하던 기존 고객뿐만 아니라 신규 고객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지속적인 해외 실적 성장이 기대된다”라고 분석했다.
시니어가 찾는 HMR, 호재 만난 도시락
라면이 코로나19 덕분에 부활에 성공했다면, HMR 시장은 성장 흐름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HMR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커지는 분위기였다. 1인 가구가 늘고 ‘혼밥’ 문화가 확산하면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HMR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조2700억 원이던 HMR 시장 규모는 2018년에는 3조2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오는 2022년에는 규모가 5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국내 식품업체들이 HMR제품에 공을 들이면서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밥이나 죽, 국·탕·찌개류가 중심이던 HMR 라인업이 육류와 수산물류, 반찬류, 안주류 등으로 다각화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탓에 집밥 수요가 늘어난 점도 호재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HMR이 집밥을 대체했다면 최근에는 레스토랑 메뉴를 제품화하는 등 제품의 질이 높아지면서 외식 수요까지 끌어들이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HMR 시장의 미래가 밝다는 전망이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HMR의 신규 소비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면서 “최근 시니어층이 HMR 소비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하는 데다가 HMR을 처음 경험한 소비자들이 재구매를 하고 있어 수요 증가는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식당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도시락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된 다음 날인 지난 8월 31일 주요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은 일제히 증가했다. GS25와 CU의 도시락 매출은 전주보다 각각 31%, 10%가량 늘었다. 같은 날 도시락 전문 업체인 본도시락 매출 역시 전주보다 12%가량 증가하며 일일 매출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코로나19로 모든 식품 업체가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 라면이나 HMR, 도시락 매출이 증가한 것은 사람들이 외식을 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외식업계는 그만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114가 8월 7일 내놓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의 상가는 37만 개가량으로 1분기(약 39만 개)보다 2만 개 정도 줄었다. 음식업의 경우 1분기 13만 개가량에서 2분기 12만 개 정도로 줄었다. 서울에서 문 닫은 상가 중 절반가량(47.4%)이 음식점이었다. 그만큼 외식 업계의 타격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J그룹 안에서의 희비
9월 2일 서울 한 음식점에 포장 할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코로나19 탓에 단기간 부침을 겪은 업체로는 이랜드이츠가 꼽힌다. 애슐리와 자연별곡 등 유명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랜드이츠는 지난해 8월 1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올 초부터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투자자가 1년 만에 투자금 전액을 회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랜드이츠는 지난 7월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장려하는 등 비상 경영에 돌입했지만 상황을 뒤집기는 어려웠다.
삼양그룹의 경우 지난 4월 패밀리 레스토랑 ‘세븐스프링스’의 문을 닫고 외식사업에서 손을 뗐다. 최근 패밀리 레스토랑 자체가 부진을 겪긴 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치명타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간 외식 시장이 지속 침체하면서 많은 외식 브랜드가 매물로 나오는 추세였다. 하지만 이마저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스터피자와 맘스터치, 놀부, 아웃백 등은 사모펀드가 주인인 대표적 브랜드다. 사모펀드 특성상 이들 브랜드는 언제든 다시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해당 브랜드를 단기간에 팔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대표 식품 기업인 CJ그룹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계열사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 지붕 아래 있지만 시장 분위기에 따라 엇갈린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주력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HMR 매출 증가 등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연결기준으로 상반기 매출액은 11조7518억 원, 영업이익은 6608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6%, 86.5% 증가한 수치다.
CJ그룹의 외식 계열사인 CJ푸드빌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CJ푸드빌은 지난 2015년 이후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하는 등 고강도 자구책을 시행하고 있다.
CJ푸드빌의 ‘뚜레쥬르’는 최근 매물로 나왔다. 뚜레쥬르는 국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SPC가 운영하는 ‘파리바게뜨’에 이은 2위 브랜드다. 그간 뚜레쥬르 매각설은 수차례 흘러나왔지만 CJ그룹 측은 매번 부인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공시를 통해 “뚜레쥬르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매각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3개월 만인 지난 8월 14일 “경쟁력 강화와 사업 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공시를 냈다. 최근 매각 주관사인 딜로이트안진은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뚜레쥬르 매각을 넘어 CJ푸드빌의 통매각설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CJ푸드빌과 CJ제일제당이 공동으로 소유하던 ‘비비고’ 브랜드 상표권을 CJ제일제당의 독점 소유로 변경한 점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외식 사업 키워보려는 기업 드물어
지난 수년간 매물로 나온 외식 브랜드는 경쟁업체가 아닌 사모펀드가 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외식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외식사업을 키워보려는 기업이 드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사모펀드는 업체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키우기보다는 당장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려 되파는 게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외식 브랜드의 매력은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고, 브랜드 가치가 낮아져 되팔기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한 외식 브랜드 관계자는 “국내 외식 산업은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로 시장 재편의 속도가 빨라지는 분위기”라면서 “요즘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밝은 전망을 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