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수능연계 70%’ EBS 문제집에 사설학원 문제 그대로 나와

현직 교사 문제 중복 제공 인정… EBS 교재 집필진 관리부실 비판 확산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10-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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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S 수능특강 생명과학Ⅰ문제, 이미 출간된 사설학원 교재 문제와 동일

    • 해당 문제 집필진 현직교사 A씨, 과거에도 ‘중복 제공’ 논란 일으켜

    • EBS “A씨 이미 집필진서 영구 퇴출, 추가 처분은 검토 안 해”

    • 교육부 “현직 교사가 EBS 사업 신뢰 저하시켜, 서울교육청이 ‘적의처분’ 해야”

    • 서울교육청 “EBS 추가 처분 따라 징계 검토하겠다”

    • EBS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검토…약정서 자기표절 조항 강화하겠다”

    올해 1월 출간된 EBS ‘수능특강-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Ⅰ’.

    올해 1월 출간된 EBS ‘수능특강-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Ⅰ’.

    올 1월 출간된 EBS 수능연계 교재 ‘수능특강-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Ⅰ’에 실린 문제 하나가 지난해 7월 한 사설학원이 발매한 문제집에 실린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문제는 표현이 다소 다를 뿐 제시문부터 보기까지 사실상 똑같다(사진 참조). 전후 사정을 모르고 보면 약 6개월 간격을 두고 EBS 교재가 사설학원 교재를 표절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수능특강’은 EBS가 사교육비 절감 목적으로 제작하는 교재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계율이 70%에 달한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감수해 수험생에게는 꼭 봐야 하는 ‘제2의 교과서’로 통한다. 교육계에선 이 교재에 사교육기관 교재에 나온 문제가 고스란히 실린 것은 EBS 교재 집필진 관리 부실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신동아’ 취재 결과,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서울 시내 한 고교에서 생명과학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A씨다. 2018년 12월 EBS ‘수능특강’ 집필진으로 선정된 A씨는 2019년 2월 자신이 만든 문제를 유명 입시학원인 B학원 관계자에게 건넸다. B학원은 해당 문제를 이 학원 과학탐구 강사로 활동하는 C씨에게 전달했다. C씨는 이 문제를 자기 이름을 걸고 제작한 교재에 실어 2019년 7월 발매했다. A씨는 학원 측에 제공한 해당 문제를 ‘EBS 수능특강-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Ⅰ’ 교재에도 실었다. EBS 교재는 올 1월 출간됐다. EBS는 평가원에 수능시험과 해당 문제의 연계를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현직 고교 교사, EBS와 사설학원에 동일한 문제 제공

    사설학원 교재와 중복 제공된 EBS 수능특강 ‘생명과학Ⅰ’ 128쪽 8번 문제. [EBSi 홈페이지 캡처]

    사설학원 교재와 중복 제공된 EBS 수능특강 ‘생명과학Ⅰ’ 128쪽 8번 문제. [EBSi 홈페이지 캡처]

    서로 다른 교재에 동일한 문제가 실린 사실은 올 7월, 수험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내막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자 강사 C씨는 7월 29일 유튜브에 ‘EBS에 고함’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 “해당 문제를 B학원에서 제공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C씨는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B학원과 계약 당시 교재를 제작할 때 학원 측에서 일부 문제를 제공한다는 조건이 들어 있었다”면서 “해당 문제를 제공한 사람이 EBS 수능특강 교재 집필자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이 사안과 관련해 B학원의 설명을 듣기 위해 B학원 본사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EBS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현직 교사 A씨는 중복 제공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의도적으로 사설학원에 제공한 문제를 EBS에도 제공한 것인지 또는 단순 착오로 사설학원에 제공한 문제를 EBS에도 제공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EBS 홍보실 관계자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BS는 원래 ‘수능특강’ 교재의 공신력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집필자가 해당 교재에 제공한 문제를 다른 곳에 중복 제공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수능특강’ 집필자가 EBS와 체결하는 계약서에는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은 EBS에 제공한 문제를 다른 곳에 중복 제공할 수 없다(중복 제공 금지)’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은 한번 만든 문제와 똑같은 문제를 만들 수 없다(자기 표절 금지)’ 등의 조항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EBS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A씨에게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BS에 따르면 A씨는 이번 파문이 일기 전인 2019년 7월, EBS 수능연계 교재에 제공한 다른 문제를 또 다른 사설학원 문제집에 중복 제공한 사실이 밝혀져 집필진에서 ‘영구 퇴출’ 조치와 함께 계약 위반으로 위약금을 물은 상태였다. EBS는 이 조치를 취한 뒤 A씨의 추가 중복 제공 사실을 확인하고도 A씨의 또 다른 중복 제공 가능성에 대해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EBS 홍보실 관계자는 “A씨 개인의 윤리 문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선을 그은 뒤 “집필자의 자기 표절과 중복 제공을 점검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또 “A씨가 이미 집필진에서 영구 퇴출된 마당에 따로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조사 착수하자 EBS “추가 징계 논의 중” 말 바꿔

    교육부 태도는 달랐다. 이번 사안은 A씨가 앞서 중복 제공 문제로 처분을 받은 것과 별개 사안이므로 추가 처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이러닝과 관계자는 “현직 교사인 A씨가 EBS의 사업 신뢰도 저하를 야기했으므로 그에 합당한 처분을 받아야 한다”며 “9월 10일, A씨의 징계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에 A씨에 대한 ‘적의조치’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이 사안 처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A씨에 대한 서울시교육청 처분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교육부 차원에서 A씨를 직접 징계하는 것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A씨에 대한 EBS 추가 처분에 따라 징계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던 EBS 홍보실 관계자는 기자가 서울시교육청의 징계 검토 계획을 전하자 “내부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A씨의 또 다른 중복 제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통해 최대한 걸러낼 계획”이라며 “앞으로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과 계약 시 약정서에 자기 표절에 대한 조항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으로 참여한 적 있는 한 고교 교사는 “당초 EBS가 현직 교사 A씨의 문제 중복 제공 사실을 확인하고도 추가 중복 제공 건이 있는지 조사하지 않은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EBS 수능 연계교재 집필진의 중복 제공 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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