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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투아네트’ 정책에 애덤 스미스가 고함

[노정태의 뷰파인더⑫] ‘경제학의 아버지’가 본 文 부동산정책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빵투아네트’ 정책에 애덤 스미스가 고함

  •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 만들겠다”
    ●前정부 탓이니 임대주택 주겠다고?
    ●‘국부론’에 등장하는 푸줏간과 빵집 주인
    ●생산·소유·교환·거래는 인간 본성 발현
    ●타인의 경제적 필요와 욕구 판단 금물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1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11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월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해 내놓은 발언이다. 스스로는 기발한 비유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국민 대다수는 황당하다고 느끼고 있다. 12월 1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로 만든 집 삽화를 게시하며 “김현미 장관님이 마련해주신 집이야”라고 썼다. 시민들도 ‘현미 빵투아네트’ ‘현미가 쌀이라면 당장 바꿀 것’ 같은 패러디로 화답하는 모습이다. 

12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으로 김 장관은 곧 자리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의 말이라고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다. 김 장관이 이 말을 꺼낸 맥락 때문이다. 그는 “2021년과 2022년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5년 전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대폭 줄었고 공공택지도 상당히 많이 취소됐기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하다 문제의 ‘빵 발언’을 내놨다. 주택 가격 상승, 전·월세난 등 지금의 난리통이 박근혜 정부 탓이라는 소리다.

김 장관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공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이제 와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고 은근슬쩍 인정하면서 화살을 전 정권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대책으로 “(아파트 대신) 다세대나 빌라 등을 질 좋은 품질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김 장관 발언 이튿날인 12월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개한 ‘관광호텔 리모델링 임대주택’(‘안암생활’)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지향점이 어디인지 잘 보여주는 듯하다 

왜 아파트를 빵에 비유했는지 그의 속내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본인도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김 장관의 발언은 자본주의, 더 나아가 인간 사회의 본질에 대해 성찰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공교롭게도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통찰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7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청와대 영빈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7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청와대 영빈관으로 입장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적 온정이 아닌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을 찬양했으며, 그것이 시장 경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타심보다 이기심이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 ‘이타심을 찬양하는 공산주의보다 이기심을 긍정하는 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다.’ ‘국부론’은 이런 내용을 담은 자본주의 체제의 홍보물로 간주되곤 한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 애덤 스미스가 19세기의 공산주의에 동조했을 리는 없다. 그러니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해석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옳다고 말하는 것도 다소 부적절하다. 이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던 애덤 스미스의 사상 체계를 협소하게 해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위에 인용된 문장이 나온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국부론’은 총 다섯 권으로 이뤄진 대작이다. 위에 인용된 문장은 그 중 제1권에 나온다. 제1권은 분업을 주제로 삼는다. 내용은 이렇다. ‘군집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복잡한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분업을 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게 됐다. 분업의 양태가 정교해지면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게 됐다.’ 애덤 스미스는 분업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을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연상시키는 필치로 설명한다. 

“너무도 많은 우위를 제공해주는 노동의 분화는 앞날을 예측하며 전반적인 풍요의 증진을 꾀하고자 하는 인류의 지혜 중 무언가의 영향 하에 나온 산물이 아니다. 분업은 얼핏 보기엔 그리 광범위한 효용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 본성이 지닌 특정한 속성이,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발현되어 나온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무언가를 쌓아두고, 맞바꾸고, 거래하고자 하는 경향이 낳은 결과가 분업인 것이다.” 

분업은 인간 본성의 결과물이다. 어떤 현자가 떠올리고 퍼뜨린 발명품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건을 쌓아두고, 남는 것을 남과 맞바꾸고, 시장을 열어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사회라는 것을 구성했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촘촘한 분업이 이루어진다. 이내 우리가 익히 아는 국가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인류학과 역사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적 통찰이다.

시장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모여 살고, 각자의 재능과 취향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일을 한다. 시장에서의 활동을 위해 화폐를 비롯해 다양한 제도와 기구 등이 탄생한다. 즉 시장은 단지 돈벌이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국부론’ 1권 2장을 ‘자유 경쟁에 대한 예찬’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 대목에서 애덤 스미스는 김씨네 푸줏간과 박씨네 푸줏간의 경쟁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다른 이는 도축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술을 담그고 그 옆에서는 하루 종일 반죽을 치대며 화덕에 빵을 굽는 공동체 생활을 논하고 있다. 대체 사회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사람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갖고 협력하며 살아가는가? 이 모든 것이 인간 본성의 산물이자 지금 우리가 아는 시장경제의 바탕을 이룬다는 게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다. 

애덤 스미스가 전제하고 있는 인간관은 무엇일까. 그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철학 사조의 일원이었다.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합병했다. 스코틀랜드 지식인과 중산층은 이전과 달리 중앙 정치로의 진입이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에딘버러(스코틀랜드)가 중심지였지만 하루아침에 낯선 런던(잉글랜드)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정계에서 소외된 그들은 프랑스 혁명을 동경하며 클럽에 모여 토론을 이어갔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 같은 사상가뿐 아니라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 소설가 월터 스콧 등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일원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초기 자본주의의 활기를 온 몸으로 구현했다. 인간은 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게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암묵적 전제였다. 그런 정신은 ‘국부론’의 바탕에도 도저하게 깔려 있다.


걸인도 시장의 구성원이다

푸줏간 및 양조장과 빵집 주인,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시민들의 분업에 대해 이야기한 직후, 애덤 스미스가 다루는 네 번째 직업이 있다. 직업이라는 말이 다소 부적절할 수 있지만, 정답은 ‘걸인’(beggar)이다. 타인의 호의에 전적으로 기대 생계를 유지하는 걸인에 대한 논의가 푸줏간, 양조장, 빵집 주인의 뒤를 이어 곧바로 등장한다. 내용은 이렇다. 

“걸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 누구도 동료 시민의 관대함에 자신의 삶을 주로 의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걸인마저도 그의 삶 전체를 동료 시민에게 기대고 있지는 않다. 여유로운 사람들은 걸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줄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걸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원할 때 줄 수도 있고 못 줄 수도 있다. 따라서 걸인은 그의 필요를 다른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충족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좀 어렵다. 무슨 뜻일까? 남에게 적선을 받아 생활하는 걸인이라고 해도, 분업을 통해 이루어진 촘촘한 사회적 경제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령 어떤 걸인이 어제는 추워서 모포를 필요로 했지만 오늘은 추위가 가셔서 모포를 원치 않는다고 해보자. 관대한 자선단체는 어제와 오늘 모두 걸인들에게 모포를 나눠줬다. 이 경우 걸인은 두 장의 모포를 손에 넣는다. 둘 다 쓸 수도 있겠으나, 한 장은 자신이 쓰고 다른 하나는 보관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이와 맞교환하거나 시장에 팔아 그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구입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 원리는 두 가지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그 사람의 경제적 필요와 욕구를 판단할 수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자선가라 해도 걸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직접적인 형태로 곧장 제공할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라 해도 사회적 존재로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바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은 계약, 물물교환, 거래로 나뉜다. 걸인들 역시 남과 약속을 하고 원하거나 원치 않는 물건을 서로 바꾼다. 구걸을 통해 얻은 돈으로 이것저것 구입하기도 한다. 그 어떤 인간이 모든 판단과 행동을 타인 혹은 국가 등에 의존해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고로 애덤 스미스의 ‘빵집 주인’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경쟁하자’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의 뜻을 외려 편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걸인의 경제생활에 대한 대목과 함께 음미할 때 애덤 스미스의 ‘빵집 주인’은 비로소 온전한 맥락을 갖춘다. 스스로 돈을 벌지 않고 타인의 적선에 의존해 사는 사람도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자 시장 경제의 구성원이다. 인간 존재의 바탕으로서 사회가 존재한다. 그 사회는 곧 어떤 형태의 시장이다. 매우 근원적 차원의 논의라고 읽어내야 마땅하다.


식당과 메뉴를 스스로 고를 권리

 12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뉴스1]

12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아파트 단지. [뉴스1]

2020년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보자. 김현미 장관은 아파트는 빵이 아니고, 밤을 새서라도 더 만들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며, 따라서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기적의 논리’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묻지마 지지자’가 아닌 대부분의 시민들은 본능적인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일까? 왜 저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기분이 나빠지는 걸까? 

자신들이 벌였던 온갖 무책임한 정책에 대해 사과는 고사하고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지난 정권을 욕하는 뻔뻔한 모습에 화가 날 수도 있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비유를 들이대는 화법에 어딘가 우롱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터다. 베이킹파우더를 쓰지 않고 이스트를 이용해 발효시키는 빵을 만들 경우,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연 발효종을 만들어서 빵을 굽는 경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지도 모른다.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정부 관계자가 저런 말을 했다면, 민주당은 ‘전국제빵사협회’ ‘빵 만드는 엄마들’ 같은 정체불명의 단체를 앞세워 들고 일어났을 거다. 제1야당의 역량 부족을 실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경제적인, 혹은 ‘인문학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 ‘국부론’의 한 대목을 꼼꼼히 읽었으니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잘 간파했다시피 모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동시에 경제적 동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유하고 교환하고 거래하는 그 모든 행위는 인간적 본성의 발현이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과 거래 등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제한될 수 있지만, 그런 제약은 최소화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에게는 경제적 활동의 자유가 곧 인권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주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 사회에는 주택을 매매의 대상이 아닌 거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게 옳다고 보는 이들이 적잖다. 불행하게도 현 정권의 의사결정권자들 사이에 그런 이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듯하다. 집은 ‘사는 것’(매매 대상)이 아니라 ‘사는 곳’(주거 장소)이라는 그럴듯한 캐치 프레이즈가 그들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장장 3년 5개월 간 국토부 장관을 지낸 김현미, 그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같은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볼 때 이런 사고방식은 비인간적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능, 시장을 형성하고 거래를 하며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고픈 본능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시혜적인 손길로 ‘지어준’ 집에 세 들어 사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쁘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집을 구입하고 가격의 등락에 따라 매매도 하는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이는 마치 나누어주는 식단 외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걸인이나 수용자보다는, 식당과 메뉴를 스스로 고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훨씬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빵과 인간적 삶의 부정

김현미 장관은 아파트를 나라에서 다 만들어주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제때 원하는 만큼 공급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 정부 탓이라고 화살을 돌리며, 대신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의 발언은 여러 모로 문제적이다. 김현미와 그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인간적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부정하고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시장에서 거래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다. 소유와 매매가 가능한 아파트 대신 임대주택을 주겠다던 김 장관은 혹여 우리를 사람 이하의 존재로 바라봤던 건 아닌가.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1년 1월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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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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