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진실과 반대로 움직이는 의식적 거짓말
‘내 편이 많다’는 자기애적 성향에서 나온 거짓말
‘들통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만든 거짓말
얻는 이익이 더 클 경우 하는 전술·선동적 거짓말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의 무의식적 사고에는 자신의 안위와 정파의 이익, 세력 확대를 위한 심리적 동기가 가득 차 있다. [Gettyimage]
이쯤 되면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거짓말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도 인정하지 않고, ‘뭐가 잘못이냐’는 표정으로 한 톨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뻔뻔한 변명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유형을 읽을 수 있다.
거짓말을 밝히려는 사람은 내게 ‘도전’
첫째, 무의식에서 하는 거짓말이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매우 자연스럽다. 사실 이러한 거짓말은 일반 사람들도 간혹 한다. 다만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예컨대 여성을 존중하고 실제로 남녀 평등주의자로 자부심을 갖는 남성 간부가 집에서는 살림을 아내의 몫으로 여기는 경우다. 그는 어쩌다가 분리수거에 나서거나 집안 청소를 한 걸 두고 자신이 평등주의자라고 인식한다.문득 벌어지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정반대의 생각이 드러난다. 젊은 남성이라면 이 정도 집안일을 한 것을 가지고 자신이 남녀 평등주의자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그간 살아온 삶의 방식, 경험, 그리고 가치관에 비춰 볼 때 자신은 ‘파격적 변화’를 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에는 엄연히 남녀 차별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지만, 그는 의식적으로 남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무의식 차원에서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정치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정말로 국민의 행복과 나라 발전을 위한 정치인이라면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의 무의식적 사고에는 국민과 나라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정파의 이익, 세력 확대를 위한 심리적 동기가 가득 차 있다.
무의식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으로 가득 차 있는 정치인은 의식의 세계에선 매우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의식적으로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거짓말 기술은 점차 능숙해진다.
둘째, 나의 거짓말을 믿을 거라는 바람이 강한 유형이다.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다. 내가 거짓말을 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지지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말을 믿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중에 거짓말임이 밝혀진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상상을 한다. 놀랍게도 나의 상상은 일부 현실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 나의 거짓말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받아주고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나는 큰 손해가 없다. 과거에 몇 번 거짓말을 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생겼다면, 나의 거짓말 역시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인은 ‘자기애적 성향(Narcissistic trait)’이 강하다. 나의 추종자들은 내가 하는 거짓말을 믿어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거짓말을 밝히려는 사람은 감히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고귀함에 손상을 주려는 음해 세력이므로 절대로 굴복해서는 안 된다.
설사 나의 거짓말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은 나의 명성과 앞날에 타격을 주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많기에 지지자들과 연대 세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막아야 한다. ‘자기애적 손상(Narcissistic injury)’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더 큰 투쟁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이 중요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고, 그간 형성돼 온 성격이기도 하다.
셋째, 나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매우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결론을 내린 후 필요한 거짓말을 한다. 관련된 사람들의 입단속은 필수다. 물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힘 있는 정치인이 종종 하는 방식의 거짓말이다.
“너만 알고 있어.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돼”라는 말은 친밀감으로 포장한, 그러면서도 상당히 위협적인 말이다.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한다는 묘한 달콤함과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마음에 매우 강력하게 작동한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대개 자신의 불이익이 걱정돼 실제로 발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잘못된 권력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거짓말 폭로하면 ‘역습’하는 정치인들
정치인의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Gettyimage]
결국 정치인의 거짓말은 일부분이 거짓임이 밝혀지면서 흐지부지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정치인의 거짓말 여부에 관심조차 없어진다. 이렇게 정치인의 ‘권력형 거짓말’은 정치적 생명을 이어간다.
넷째, 정치인은 거짓말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거침없이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거짓말이 더 큰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지는 하나의 ‘전술’이라고 생각한다. 선동의 목적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많은 정치인은 이러한 선동적 발언에 상당한 소질을 지닌다. 정치인으로서 경력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소질은 한층 계발된다. 자신의 거짓말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반대 진영과 다투면서 더욱 결속하며, 나의 정치 위상도 올라간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치란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거짓말이 필요해’라며 합리화한다. ‘히틀러나 괴벨스의 거짓말을 조금 배워서 써먹을 뿐 그들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가장 무서운 경우가 바로 이때다. 정치인의 거짓말에 순진하게 속든지 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든지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그 피해는 진실이 밝혀지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례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