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희생 예상돼도 ‘Go’한 정부
햇살론 등 대책 내놨지만 재탕 평가
5년 전엔 금융위원장도 부작용 우려
‘선거용’ 결정 의혹…“금융위가 끌려가”
年24→20%…금융위 “저신용자 3만9000명 불법 사금융 이용” 예측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정 최고금리 인하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최근 수년간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주기적으로 나왔다. 취약계층이 되레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금리가 20%대로 낮아진 이후에는 부작용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부작용을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이득을 얻는 소비자가 많아진다는 판단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지속해 낮춰왔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일부’의 희생은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는 2020년 11월 16일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20%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관련 법 통과와 시행령 마련 일정 등을 고려해 2021년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금융권 연체율 상승 등의 우려로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저금리 기조가 지속하는 환경 속에서 금융사들 역시 대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판단이다.
13%의 희생 혹은 퇴출
금융위는 최고금리 인하로 총 208만 명이 매년 4830억 원의 이자를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3월 기준 연 20% 금리 초과 대출 이용자(239만 명)의 87%에 해당하는 규모다.반면 나머지 13%, 즉 31만6000명가량은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향후 3~4년에 걸쳐 민간 금융 이용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위는 이 중 3만9000명가량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들은 제도권 금융에서 ‘퇴출’되는 것과 다름없다. 최고금리를 낮추면 대부업체나 저축은행 등 금융사는 신용등급이 낮은 이용자에게 더는 대출을 해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코로나19 탓에 서민 경제가 어렵다.” “그러니 서민의 대출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 “13%의 희생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87%의 부담을 완화해주겠다.”
이런 내용의 결정이 발표되자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장 문제가 된 점은 바로 ‘13%의 희생’이다. 민간 금융 이용이 어려워지거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이다. 과연 이들의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정책을 밀어붙일 만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말대로라면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줄일 수 있는 이자 총액은 연 4830억 원가량이다. 큰 금액 같지만 개별 차주(借主)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연 24%의 금리로 500만 원을 대출받은 사례를 보자. 이 차주는 연간 120만 원, 즉 매달 10만 원의 이자를 내야 했다. 이 금리를 20%로 낮출 경우 연간 100만 원, 매달 8만 원 정도의 이자를 내야 한다. 이처럼 단순하게 계산하면 월 2만~3만 원의 부담 완화 효과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13%의 취약계층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아예 제도권 대출에서 배제될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불법사금융에 손을 내밀 경우 단순히 이자만 올라가는 게 아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온갖 위험이 도사리게 마련이다. 그나마 제도권 내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만 갚으면 되는데,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을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부끄럽다”
금융연구원 원장 출신으로 국회 ‘금융통’으로 꼽히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1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발표한 법정 최고금리 인하 방안은 왜 이리 부실한가. 경제학자 출신으로 부끄럽다”고 썼다. 그러면서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혜택을 받는 그룹도 있지만 문제는 퇴출되는 그룹”이라며 “이들은 원금을 갚아야 하다 보니 탈락에 따른 고통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금융위 역시 이런 부작용을 잘 알고 있다. 관련 대책을 덧붙여 내놓기도 했다. 햇살론 등 정책금융 상품 공급을 확대하고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조처를 지속해 추진하겠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내릴 때마다 내놓은 원론적인 내용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단 햇살론은 일정 자격을 갖춰야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정작 불법사금융에 내몰릴 이들에 대한 대책은 아니다. 불법사금융을 근절하겠다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취약계층의 돈줄을 아예 끊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금융위는 최근 수년간 지속해 법정 최고금리를 낮춰왔다. 2016년 연 34.9%에서 27.9%로 낮춘 데 이어 2018년에는 이를 24%까지 내렸다. 특히 2018년의 경우 이와 비슷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당시 최고금리 인하 이후 올해 3월까지 대출 만기된 금융 이용자 중 18.7%인 26만여 명이 대출금이 줄거나 추가 대출을 받지 못했다. 4만~5만 명가량은 불법사금융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런 부작용을 통계적으로 확인했지만, 이를 방지할 새로운 대책 없이 또 한 번 같은 정책을 추진한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앞으로 제도권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워지는 계층이 금융위가 제시한 13%, 즉 31만6000명에 국한되는 게 맞느냐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최근 최철 숙명여대 소비경제학과 교수는 ‘포용적 서민 금융을 위한 대부금융시장의 제도 개선’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내려갈 경우 약 57만 명의 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 시장에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리 인하로 대부업계 대출 중단이 속출하면 대출을 받고자 해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수요자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면서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으로 오히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컸던 만큼 최고금리 인하와 같은 직접적 시장 개입과 통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앞으로 신규 대출 심사에서 거절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단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졌으니 대부업체나 저축은행, 카드사 등 금융사들이 대출 심사를 더 깐깐하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전반적인 원금 상환율이 하락하는 만큼 금융권 대출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창현 의원은 “코로나19 국면으로 원금 훼손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면서 “원금을 못 갚을 확률과 금리는 비례할 수밖에 없으니, 금리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 저축은행과 통화한 바에 따르면 퇴출 비율을 약 35%까지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퇴출 인원이 84만여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거용’ 의혹에 풍선효과 우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대부업체 대출 승인율은 11.8%로 4년 전인 2015년(21.2%)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부업체를 찾은 10명 중 1명만 대출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만큼 불법사금융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곳곳에서 부작용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최고금리를 지속해 낮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권 안팎에서는 ‘선거용’이라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낮추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였다. 금융권은 지금 이 시점에 금리를 연 20%로 내리는 게 2021년 4월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법정 최고금리가 20%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대형 대부업체를 중심으로 점차 영업을 소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라면서 “대부업 시장이 축소되면 풍선효과로 불법사금융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금융위가 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5년 전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법정 최고금리를 기존 34.9%에서 29.9%로 낮추겠다고 발표하면서 “더 낮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더 낮추면 불법사금융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후 최고금리가 10%포인트 더 낮아졌으니 앞으로의 부작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국내 대부업 시장이 존재감을 잃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부업은 오랜 기간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고리대금업 취급을 받곤 했다. 특히 국내 대부업계는 일본계 자본이 시장을 장악한 만큼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강했다. 하지만 저신용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제도권 금융사’라는 점에서 양성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대형 대부업체는 금융 당국의 관리·감독하에 법을 지켜가며 영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실상 ‘개점휴업’에 돌입한 대형 대부업체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형 대부업체 관계자는 “국내에 일본계 대부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일본에서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로 내려간 뒤부터였다. 돈이 안 되는 일본을 피해 한국으로 왔는데, 한국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감지되자 일본계 업체들을 중심으로 영업을 정리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최고금리를 연 20%까지 낮춘 일본에서는 대부 시장이 급격히 축소됐다. 지난 10월 여신금융연구소가 발간한 ‘일본 대금업 규제 강화 이후 10년간의 시장 변화’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2010년을 전후로 대금업(대부업)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이후 10년 만에 등록 대금 업체는 73.3% 줄었고, 총 대출잔액도 10년 전 15조4000억 엔에서 12조4000억 엔으로 감소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대출 수요에 상응하는 자금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고 불법 대금업 이용도 늘어나는 부작용이 지적됐다. 일본 사례를 볼 때 중·저신용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외형적 규제보다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善意의 배신
법정 최고금리 인하 움직임은 연 20%에서 멈출 수 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이번 결정이 발표되자 여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자율을 더욱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고금리는 연 10%도 과하다는 게 이 지사의 주장이다. 그는 평소 ‘기본대출’이라는 복지제도를 주장해 왔다. 국가 보증으로 국민 누구나 1000만 원 정도를 연 1~2%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현실화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이와 같은 여권 분위기를 보면 법정 최고금리가 향후 더 낮아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한 서민금융 전문가는 “정부의 정책금융 상품 금리도 연 10%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상환 능력 등을 고려하면 무작정 금리를 낮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의로 포장한 정책이 되레 서민을 궁지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