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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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혜빈

    입력2021-01-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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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방에 나 혼자. 메밀 소바와 만두를 점심으로 먹었어요. 맛집이라고 줄을 서던데 모르겠어요. 돌아와서는 두 발을 의자에 올리고 조금 잤어요. 잠깐 사이 슬픈 꿈을 꿨는데 모르겠어요. 니체의 생애를 다룬 만화책 읽다가. 지금쯤 터널 속에 있을 당신이 생각나서요. 현관을 나서려는데 상무님이 맥주 먹고 가라고 하셔요. 촬영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했더니 「혜빈씨, 멋지다.」 하셔요. 나는 멋진가요? 가는 길에 갓 구운 마들렌과 얼그레이 머핀을 몇 개 샀어요. 모델분이 만나자마자 「어쩌죠? 저 향수 못 뿌리고 나왔어요!」 하셔요. 조금만 웃었어요. 하루 어땠어요? 오늘밤은 당신을 생각할래요. 방 안에 금세 분홍색 구름이 떴어요. 당신은 갓 데워 따끈한 우유예요. 라임색 색연필, 촉촉한 기다림, 수풀 속에 버려진 부메랑, 보풀이 일어난 스웨터…… 싱그러운 단어들의 수다예요. 당신은 지금 어떤 밤을 건너가고 있나요? 나는 푹신한 슬픔을 베고 잘래요. 감정의 바닥을 만지다 보면 금세 아침이 와요. 창문 틈으로 해가 떠오를 때, 살아 있음을 느끼며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답니다. 그래요. 마지막으로 울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콧속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 때, 마주보고 웃어볼까요. 볼 언저리에 보조개 같은 주름이 옅게 비칠 거예요. 함께 찡그린 표정을 필름 속에 담아두어도 참 좋겠지요. 오늘의 마들렌과 머핀이 죄다 상했어요. 제때 먹지 않아서요. 그래요. 난 이렇게 생겼어요. 산책은 매일 해도, 또 하고 싶은 걸요. 아직은 살고 싶은 걸요. 우리, 죽기 전에 같이 놀래요? 언젠가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당신의 뒷면에 깊이 박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바람이 세찬 어느 날 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의 얼굴이 되고 싶어요. 그래요. 이다지도 당신을 생각하는 밤인 걸요. 알지 못하는, 그러나 알 것만 같은 당신.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금세 녹아내리는, 시시한 마음을 담아 보내요. 더 늦지 않게, 나를 찾아주세요.

    강혜빈
    ● 1993년 경기 성남시 출생
    ●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 2020년 시집 ‘밤의 팔레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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