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달고 예쁜 화과자, 우리 마음마다 피어나길 바라 ‘봄’

김민경 ‘맛 이야기’ ㊷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01-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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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과 모양이 얄미울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화과자. [GettyImages]

    맛과 모양이 얄미울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화과자. [GettyImages]

    미국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갈까 고심 끝에 고른 것이 화과자였다. 할머니께서 미국으로 이주해 꼬박 10년을 지내셨는데, 입에 맞는 과자며 떡 파는 곳 한 군데가 없어 고생하신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달고 보드라우며 예쁜 화과자를 가져가자 할머니는 “이건 벽에 하나씩 걸어 놓고 두고두고 봐야겠다”고 좋아하셨다. 


    영화 ‘일일시호일’에 나오는 화과자 붓꽃 만주. 과자 위에 ‘기쁜 소식,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붓꽃이 그려져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일일시호일’에 나오는 화과자 붓꽃 만주. 과자 위에 ‘기쁜 소식,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붓꽃이 그려져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정통 일본식 화과자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얄미울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화과자의 푸른색은 마치 파란 하늘을 한 조각 잘라 앙금에 붙인 듯 푸르고, 분홍색은 생생한 꽃잎을 물에 녹여 만든 듯 분홍이다. 대체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진짜 자연색보다 과자 색이 더 어여쁘다. 게다가 화과자를 보고 있으면 마치 향이 나는 듯하고, 만지지 않아도 따뜻함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달콤하게 화사하게 말랑하게

    영화 ‘일일시호일’에 나오는 화과자 움틈.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일일시호일’에 나오는 화과자 움틈.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입춘 즈음에 먹는 화과자 ‘움틈’이 등장한다.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을 표현한 이 과자는 툭 터진 팥색 반죽 사이로 초록빛 앙금이 엿보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나눠 먹는 만주 위에는 ‘기쁜 소식,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붓꽃 모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기도 한다. 화과자는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보는 사람 마음을 금세 화사하게, 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과자의 가장 큰 특징은 절묘한 계절 표현이다. 봄에는 벚꽃을 표현하는 과자가 많이 만들어진다. 여름에는 맛도 모양도 시원한 다양한 젤리가 인기를 끌고, 가을에는 밤과 고구마를 사용해 단풍 모양을 내거나 그리움 같은 마음을 담아 만든 과자가 유행한다. 겨울에는 유자나 팥을 재료로 즐겨 쓰며 건강 등을 기원하는 모양을 빚곤 한다. 


    영화 ‘일일시호일’에 6월을 대표하는 화과자로 나오는 수국. 여름꽃 수국의 바글바글하고 풍성한 모양을 닮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일일시호일’에 6월을 대표하는 화과자로 나오는 수국. 여름꽃 수국의 바글바글하고 풍성한 모양을 닮았다. [영화사 진진 제공]

    재미있는 것은 화과자의 ‘화’자가 ‘꽃 화(花)’가 아니라 ‘화합’을 의미하는 ‘화(和)’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화과자 재료는 의외로 단조롭다. 물, 한천가루, 단맛을 내는 재료와 식용색소 등이다. 이 단순한 재료로 한 편의 시(詩)처럼 아름다운 과자를 빚어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일일시호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듣고, 눈이 오면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것 같은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2020년이 맞서고 이겨내는 시간이었다면, 2021년에는 무엇이든 편히 받아들여, 화과자처럼 내 안에서 피어나게 하는 해가 되면 좋겠다.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자신만의 화과자를 마음껏 빚어 보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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