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86그룹 모여 “우리 모두 대선 경선에 나가자”
서울시장? 대선으로 가는 발판 삼을 생각 없어
정세균 총리가 직접 ‘종로’ 출마 권유한 사연
노무현은 야당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완성하는 담대한 꿈
영원히 ‘노무현의 사람’으로 불리는 것 영광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호영 기자]
창립총회에 이어 열린 제1차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나선 이광재 의원은 “마오쩌둥은 사람을 모으려면 깃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도 없이 집권하는 것” “민주당이 시스템으로 집권하는 길을 꾸려야 나라가 안정된다” “민주주의4.0이 설계도를 만들고 집권하는 꿈” 등의 발언으로 ‘시스템’과 ‘집권’에 방점을 찍었다.
더욱이 연구원의 향후 사업계획에는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의제 발굴 △한국판 뉴딜 등에 정책 자원 제공 △사회 변화 과정의 갈등 예방 등이 담겨 있다. 이광재 의원이 설계도를 그린 ‘한국판 뉴딜’을 포함해 대부분이 그의 전문 분야인 점도 눈에 띈다. 연구원 측은 “어젠다 발굴 및 정책 개발을 위한 연구모임”이라고 설명했으나 당내 친문계 ‘부엉이모임’의 확장판인 자리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종합하면 친문 진영이 제3의 대선 후보를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했다.
친문계 제3 대선 후보 찾기 시동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4.0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연구원을 두고 ‘제3 후보’ 추대를 위한 모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공동취재단]
동시에 이 의원이 12월 2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과 생각을 토대로 국가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담은 책 ‘노무현이 옳았다-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전화로 이 의원의 사무실인 국회의원회관 643호 업무가 일시 마비됐다. 이 의원은 “4월 총선 이전부터 준비한 책”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사람들은 “친노 적자 이광재가 대선 등판을 예고했다”며 ‘노무현이 옳았다’ 출간은 그 신호탄이라고 했다.
지난 석 달 사이 이광재 의원을 세 번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은 비공개 모임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안, 한국형 뉴딜’에 대해 이 의원이 강연하는 자리였다. 원고 없이 진행된 강연과 예정하지 않은 질의응답에도 막힘이 없었다. “스스로 연설문을 쓰지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이광재 등판론과 노무현 향수
두 번째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지역균형 뉴딜’을 주제로 17개 시·도지사가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 앞에서 사례 발표를 한 다음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10월 13일)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잠룡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섰고, 이 의원은 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잠룡들이 문 대통령 앞에서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세 번째는 댓글 조작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김경수 지사가 11월 6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직후였다. 친문 적자이자 유력 대선후보인 김 지사의 낙마 가능성이 커지자 선수 교체를 염두에 둔 잠룡들이 자천 타천으로 대선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대권 도전에 대한 질문을 받자 “대한민국 비전과 정책 분야에서 기여하겠다”고 에둘렀지만 마음속은 복잡한 듯했다. 다시 인터뷰를 청했다. 세 번째는 이 의원이 원주 지역구 행사에 참석 중이어서 전화로 진행됐다. 다음은 세 차례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최근 당 안팎에서 ‘이광재 등판론’이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나는 진짜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속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기자들의 질문 빈도가 잦아지니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왜 나일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굉장히 분열돼 있지 않나. 이 분열을 극복하는 데 좋게 말해 중도적이고 나쁘게 말해 회색분자인 내가 통합에 나서달라는 얘기 아닐까. 다른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다.”
-2010년 쓴 ‘이광재 이력서-30대는 정도전처럼, 40대는 이성계처럼’이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마흔다섯 살, 최연소 도지사로 당선됐다.
“민선 5기 강원지사 선거를 앞두고 쓴 책인데 그때는 호기도 있었다. 도지사에 당선되자마자 내가 안희정 충남지사 공관에 다 모이자고 했다. 김부겸 의원, 김두관 경남지사가 합류했다(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송영길 의원도 포함시켰다). 우리가 전국적으로 각 자치단체장이 됐는데 이때 성과를 내서 나중에 전부 대선 경선에 나가자, 누가 되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리 중에 대통령이 나와야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내 전공은 국가 비전 설계”
-10년 전부터 대선을 준비했다는 말인가.“2004년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17대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나는 몇몇 사람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될 생각을 하고 정치를 하시라. 그래야 공부하고 자기 관리를 한다. 내가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보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2010년 안희정 지사 공관에 모이자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정치 공백이 길었다. 9년 만에 정계에 복귀했는데 아직도 그 목표는 유효한가.
“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다. 지금은 시대의 짐이 너무 무겁다. 새로운 기술혁명이 주역인 시대이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다. 미·중 간 갈등의 파고를 넘어 더욱 강인한 나라가 돼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고,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4가지 과제가 너무 무겁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 이력이 남다르지 않나. 일찍 청와대에 있었고(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국회의원을 했고(17·18대), 10년간 중국·러시아·일본을 다니며 낭인 생활을 했고, 싱크탱크(여시재)에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까 내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시대정신에 맞는 국가 비전을 설계하고, 어느 한쪽 편에 속하기보다 분열된 것을 합치는 쪽에서 일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이광재 하면 ‘리더’보다 ‘참모’ 이미지가 강하다.
“참모로 시작해(1988년 23세의 이광재는 국회의원 노무현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30대에 국회의원이 됐으니 일찍 독립한 편이다. 권력이라는 게 겪어보니 양파 까기 비슷하다. 미국 정치인이 한 말인데 까면 뭐가 있을까 해서 계속 까봤자 결국 양파라는 거다. 나는 양파를 까는(권력 추구)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기여하고 싶다. 비유하자면 양파로 요리(국정 운영)를 하는 것이다.”
종로 출마가 무산된 이유
-2010년 강원지사에 당선됐지만 7개월 만에 지사직을 상실했다. 다시 나선다면 대선이 아니라 서울시장부터 도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예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경험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정 경험을 갖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1993년 노무현 민주당 최고위원이 설립한 연구소로 이 의원이 기획실장을 맡았다)를 할 때부터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이 정책 운영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서울시장직을 대선으로 가는 발판으로만 생각하기에 서울시가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광화문광장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가. 서울은 뉴욕, 도쿄, 상하이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데 아직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서울시장을 대선의 발판으로 삼을 생각이 없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친문계가 서울 종로에 이광재를 전략공천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승리하면 단숨에 ‘차기’ 후보로 부각될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서울 종로에서 25년을 살았다. 다시 정치를 하게 되면 종로에서 출마할 생각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고, 이곳에 오래 살았고, 정세균 총리가 당선될 때(19·20대) 함께했기 때문에 정 총리도 내게 종로 출마를 권유했다. 다만 이렇게 갑자기 사면이 될 줄 몰랐다(2011년 1월 27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도지사직을 상실한 그는 10년간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을 제한받았으나 2019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정치에 복귀했다). 정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상황이었고, 이낙연 대표가 이미 종로 출마를 결심했기 때문에 내가 나갈 자리는 아니었다.”
“야당은 적이 아니지 않은가” 노무현 정신
이광재 의원은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축으로 삶의 질 1등 국가가 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그럴 리가, 과대평가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슬기로운 의정생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질문할 때 대부분의 의원이 국민이 청중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성공한 정치인이 되려면 장관 뒷줄에 앉아 있는 국장과 과장이 청중이라고 생각하라. 의원이 하는 말이 합리적이고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며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공감하면 국장들, 과장들이 움직인다. 그들을 설득해 움직일 수 있으면 나라가 바뀐다. 물론 그 뒤에 국민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곧장 국민을 대상으로 하면 결국 인기 발언이나 튀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해당 상임위원에게 내 생각을 자료와 함께 보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총재 시절 의원들을 한 명씩 불러서 연설은 이렇게 하고, 쟁점은 이것이라며 하나씩 가르쳐주셨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굳이 내가 두각을 나타낼 필요가 없지 않나. 초선들이 더 조명받고 자기 몫을 해나가면 좋은 것 아닌가.”
-지금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간 분이고 사상가적 측면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어차피 100%의 권력은 있을 수 없으니 국가와 국민이라는 대의를 위해 여당의 권력을 야당에 일정 부분 내주고 전진을 꾀하자’며 대연정(大聯政)을 주장하자 참모들이 모두 반대했다. 야당이 선뜻 받아들이지도 않을뿐더러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한다고 욕만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울리히 벡의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라는 책을 나눠주며 ‘야당은 적이 아니지 않나. 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다. 야당이 도와주지 않으면 법안이 한 개도 통과되지 않으니 차라리 제1당에 총리 자리를 내주고 나는 60점짜리 대통령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연정을 해야겠다’고 했다. 이것이 노무현 정신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는 이 거대한 분열을, 21대 국회에서도 이 분열을 끝내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새로운 기술혁명의 주역이 되려면 전통산업과 새로운 기술이 타협을 이뤄야 한다. 대타협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노 대통령은 멋진 남자였다. 노 대통령이 그토록 절규했던 ‘연정’이라는 용광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논란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문제에 말을 아끼는 이유가 있나.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 내가 ‘너무 노동자 편에만 서서 얘기하면 지지자를 잃는다’고 하니까 노 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다 대기업, 재벌 편이다. 그러니 나라도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 중도층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 나라도 도와주어야 그나마 국회라는 데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나’라고 말씀한 것이 기억난다. 어차피 그 전선에는 나 말고도 싸울 전사가 많으니 나까지 거들 필요 있나. 공수처 문제를 빨리 매듭짓고 적폐청산도 올해로 끝내고 정말 (정치가) 새로 출발하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가가 되고 싶다”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그동안 무엇을 했나.“10년 세월을 지내면서 처음에는 자꾸 타인을 바라봤다. 남을 원망하게 되는 거지. 그러다 역사를 만났다. 진짜 더 힘들 때는 신을 만나게 되고, 더 시간이 지나니까 나를 만나게 되더라.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시대의 짐이 너무나 무겁다는 것. 정치를 할까 말까 망설인 이유 중 하나가 과연 나는 시대정신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 중엔 정치꾼, 정치인, 정치가가 있다. 정치꾼에겐 당선이 가장 큰 목표다. 정치인은 꿈과 현실적 성공, 이 두 가지를 모두 생각한다. 정치가는 현실보다 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정치가가 되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축으로 삶의 질 1등 국가가 되는 꿈을 꾼다.”
-민주당 K-뉴딜 위원회 총괄본부장이다.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 설계 한국형 뉴딜 정책’은 사실상 이광재 머리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K-뉴딜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이디어다. 4·15총선 직후 정세균 총리 모임에 참석해 코로나 이후 미래사회에 대해 발표했다. 첫째 디지털 세상이 온다, 둘째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그린으로 가야 한다, 셋째 생명과학의 시대가 온다, 넷째 새로운 도시에서 살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뉴딜’을 말씀하시니까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장착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한국형 뉴딜이 코로나19 사태로 급조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더욱이 대통령 임기 말에 이처럼 대규모 사업을 펼칠 동력이 있나.
“코로나는 전 세계가 동일한 시험문제를 받은 것이다. 인류 역사상 없던 일이다. 앞으로 누가 디지털과 그린을 양대 축으로 하는 신문명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여시재에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제다. 앞서 말한 4대 주제에 스마트 도시, 동북아 협력, 미래산업이라는 3대 과제가 여시재의 기본 프레임이었다. 이것이 K-뉴딜의 근간이 됐다. 2025년까지 기초를 닦고 차기 정권에서도 뉴딜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단 관련 법안 100여 개를 통과시킬 것이다. 여야 의원 누구와 이야기해도 디지털 전쟁에서 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린뉴딜 반대하는 사람 없다. 방향은 정해졌다. 온도 차만 있을 뿐이다.”
-‘뉴딜’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때도 꺼내 든 카드 아니었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있나. 김대중 대통령이 전자정부를 구축하며 IT의 새로운 역사를 썼지만 앞서 전두환 대통령 때 통신망을 깔았고, 김영삼 대통령 때 정보통신부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다. 뉴딜은 대규모 양적 투입을 통해 질적 전환을 도모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예를 들어 5G망을 구축하는 데 2년간 27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한다. 전 세계에서 5G망을 전국에 깔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주인인 진짜 민주주의
-초선 의원으로부터 ‘늙은 산업화 세대와 낡은 민주화 세대의 동맹’이라는 말을 듣고 밤새 고민했다고 했다.“나는 시대정신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새로운 메시지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더라.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 김대중 대통령은 ‘제2건국’,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행복’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메시지가 모호했다. 문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착안한 것은 물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는 철학적 흐름이 반영돼 있다. 산업화, 민주화 다음엔 무엇일까.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국가에서 착안해 문명창조국가라고 생각한다.”
인쇄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간 ‘노무현이 옳았다’를 펼쳤다. 19쪽에 이렇게 씌여 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진짜’ 민주주의다. 그가 권위주의를 청산한 것도, 수평적 사고를 펼쳐 보인 것도, 중도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연정을 주장한 것도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가장 나은 미래를 그려보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민주주의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주세요.” 1988년 4월, 마흔두 살 노무현이 스물세 살 이광재에게 한 이 말을 32년 동안 품고 살아온 그가 이제 노무현이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를 완성하는 담대한 꿈을 꾼다. ‘노무현이 옳았다’가 이광재의 대선 출사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중도층에서 거부감이 없다는 게 이광재의 장점으로 꼽히나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1%대의 미미한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은 높은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