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섹터로 나뉜 ‘부족국가’, 공동체 좀먹어
집단 이기주의가 내뿜는 한국의 후진성
윤석열도 사법 무결점주의 빠진 건 아닌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재명, 독재 소지 우려
운동권, 기득권 지키려 李·尹에 공세 고삐
10월 19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왼쪽).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하나씩 일을 할 때마다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집 마당과 밭의 유실수(有實樹) 가지치기와 정리, 자른 나뭇가지를 다시 땔감으로 쓸 수 있게 자르기 등의 작업을 한다. 매일 이어지는 노동 속에서 수차례 숨이 차오른다. 몸에 땀이 번지는 것을 느낀다. 다리가 풀리기 시작할 때 오늘 일은 여기서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런 노동의 기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번잡한 일상의 흐름에 매몰된다. 나와 가족이 먹어야 할 한 끼 식량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세밑의 스산한 모습에 더해 짜증스럽기 그지없는 일들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러 해프닝이다.
‘검찰당’과 위대한 전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패거리’ ‘끼리끼리’ 문화는 원래 조직폭력배와 같은 하층 구조에 머물러 있어야 할 행태다. 집단이 가진 이익을 극대화하고, 다른 집단을 배척하며,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무시하는 집단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추 장관 역시 이와 같은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 실현에 방해가 되는 윤석열 도당(?)을 마치 살부(殺父)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라도 되는 양 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비로소 근대국가가 태동했다. 중세 봉건주의 여파로 남은 분할점거(分割占據)적 국가 형태가 비로소 하나의 헌법에 의해 단일화된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그 국가에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스며들었다. 그 이후 세계사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전개돼 거룩한 인간해방을 보편적으로 실현해간다.
우리나라는 이에 비해 150년가량 뒤인 1948년 근대국가의 문을 열었다. 150년의 치열한 민주주의 실현 과정이 생략됐으니 여러모로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근대국가 이전의 할거(割據)적 정치·사회 문화가 집단 이기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숱한 섹터로 나뉜 채 ‘부족국가’의 원시성이 공동체의 운명을 좀먹고 있는 상태인지 모른다.
집단 이기주의에 해당하는 용어가 영어에는 없는 것 같다. 기껏 ‘컬렉티비즘’(collectivism)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단어를 분석해보면, 집단 이기주의라는 말과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집단 이기주의라고 하면 공동선과 유리된 소집단 구성원들의 이익추구가 연상된다. 컬렉티비즘은 다르다. ‘개체에 집단이 우선함’ ‘집단 구성원 간 강한 응집력의 존재’ 등에 말의 의미가 그친다.
이로 보아 집단 이기주의는 우리 사회 특유의 후진성을 여실히 표현하는 단어다. 미국이나 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렇게 집단 이기주의가 강한 곳은 없다. 힘 있는 집단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그 폐해를 온몸으로 맞으며 굴종적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래도 1970년대 전반부터 민주화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서사시가 한국에 흘렀다. 그 시들의 음송 속에서 우리는 비약적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다. 민주화 과정의 중심에 양김 씨 즉 김영삼, 김대중 씨가 있었다. 그들의 고투에 의해 민주화가 앞당겨졌다. 그들이 나란히 대통령에 당선돼 국정을 지휘해나가면서 민주화는 더욱 촉진됐다. 사람들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질곡에서 해방됐다.
文은 참모형 지도자
양김 씨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다. 그들은 한국 민주화의 산 증인이자 민주화운동의 핵심 실체였다. 그들은 국정을 운영하면서도 대단한 카리스마를 배경으로 자신감을 갖고 인재를 등용했다. 상도동계(김영삼), 동교동계(김대중)로 상징되는 집단 내 가신들에 그친 게 아니었다. 양김 씨는 전국적 명망을 갖춘 유능한 인사들을 부단히 발굴해 국정을 담당토록 했다.그 후 대통령 누구도 양김 씨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지 못했다. 빈약한 정통성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니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실현에 매몰되기 쉬웠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운영의 핵심에 참여한 인사 중 국민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인사가 과연 있었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유난히 ‘친박’ ‘대깨문’으로 상징되는 팬덤 정치에 파묻힌 채 다른 쪽을 잘 돌아보지 않았다. 팬덤을 바탕으로 과거 양김 씨가 가졌던 카리스마 이상의 아우라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에 안주해도 국정 운영을 잘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 분야에 관한 한 집단 이기주의는 양김 씨 때 다소 수그러들었다가 이후 다시 맹위를 떨치게 된 셈이다.
강력하던 여권의 권력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극성스런 대깨문의 뒷받침에도 조금씩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도층이 돌아선 현상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이는 조국과 추미애 등 민주화 시대의 기득권에 함몰된 자들이다.
시대는 민주화를 넘어 공정한 세상을 목말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민주화된 세상에 만족하지 못한다. 집단 이기주의와 패거리 정치, 기득권자의 발호를 억제해 개개인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우받는 정치가 이뤄지기를 원하고 있다.
조국이나 추미애 등 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운동권 세력은 과거 민주화의 공을 내세우면서 실은 탈법과 편법, 특권에 절은 생활을 해왔다. 국민들은 아무리 검찰이 잘못하고 검찰권이 남용됐어도 윤석열 총장을 비열한 협잡질 하듯 몰아세우는 것을 보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들은 ‘검찰개혁’의 미명으로 포장된 냉혹한 권력 투쟁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하기 시작했다. 추 장관이 저지르는 일련의 행위는, ‘현재 권력’이 점점 더 자라나는 ‘미래 권력’을 짓밟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폭력적 대응에 그 본질이 있다.
문 대통령 개인은 훌륭한 소양과 인격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없다. 성격 분석에 관해 의존적 마음 중심형(참모형), 공격적 장(腸) 중심형(지도자형), 은둔적 머리 중심형의 세 가지로 대별해서 파악하는 에니어그램(enneagram)상 그는 남에게 의존적인 참모형 지도자다.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앞으로도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조국이나 추미애 같이 자신을 정신적으로 컨트롤, 지배하는 이들에게 휘둘리며 지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번씩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것처럼 그는 ‘우리 착한 이니’의 캐릭터를 살리는 정치 이벤트를 찾아 헤매며 지지율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나 중도층 이반이 이미 확실한 대세를 형성하고 있고, 문 대통령이 향후 확실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는 한 지지율 반등은 어려우리라고 본다.
‘사법 무결점주의’의 폐해
이런 상황에서 1년 남짓 남은 다음 정권 출범을 내다보며 희망을 건다. 지금 대통령 후보로 부각된 인물 중 에니어그램 상 강한 리더십의 지도자형 성격을 가진 사람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총장이라고 한다.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은 참모형 지도자로서 국정 운영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냈다. 이에 국민들이 지도자형 정치인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이것이 차기 대통령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참모형 정치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국민이 원하는 강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하는 한 진작 내가 말한 대로 점점 더 가라앉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재명, 윤석열은 공교롭게도 친문 세력이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친문 세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두 사람을 낙마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쓸 것이다. 두 사람을 부당하게 공격하고 두 사람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이를 내세우려는 시도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형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있어 이와 같은 시도가 성공하기는 어렵다.
두 사람 공히 시대정신의 구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총장은 허약하고 무책임한 리더십의 정치를 청산하고, 강하고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시대적 소명을 받아들이며 등장했다. 이재명 지사는 공정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이재명, 윤석열 두 사람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지, 그래서 새롭고 공정하며 공동체로서의 일체성이 강화된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일찍이 윤 총장이 세 가지 관념의 포로라고 설파했다. 첫 번째로 그를 ‘신화의 포로’라고 했다. 그 외에 ‘연고주의의 포로’ ‘야심의 포로’라는 상징어를 들어 그를 비판했다.
한국 법조계에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신화가 있다. 이 신화는 판사나 검사로서 출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유난히 강하게 갖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사법 절차가 지극히 공정하며, 운용의 주체들은 일반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도덕적, 지적 수준을 갖춘 초인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이는 현실과는 유리된 망상이자 특수한 이념적 가공이 들어간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들은 유난한 선민의식으로 자신들의 권한 행사 과정에 외부의 간섭을 배격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틈만 있으면 ‘재판의 독립’을 주장하고, 윤석열 총장은 걸핏하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말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사법의 영역에서 독립과 책임의 양대 지주를 설치해 공정한 수사 및 재판을 보장하려는 세계적 대세를 무시한다. 심하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의 편협함에 불과하다.
현실은 공허한 주장과 다르다. 법원과 검찰에도 부패가 있었다. 권력의 남용도 잦았다. ‘사법 무결점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신화의 그늘에서 얼마나 많은 오판, 의도된 부정이 독버섯처럼 일어났나.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피해자들이 피를 뿜는 원성을 토하고 있다.
이재명, 윤석열의 집단 이기주의
윤석열 총장이 가졌다고 평가받는 ‘검찰 지상주의’도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검찰 공화국’ ‘검찰당’과 같은 표현도 이 범주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윤 총장이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연고주의’와 함께 집단 이기주의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윤 총장의 지지율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의 반사이익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치에 참여한 후 짧은 시간 안에 검찰의 강한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한 행보를 보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그는 지금 한 인간으로서는 차마 감내하기 힘든 혹독한 시련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가 이 강을 무사히 건널 때 그의 내면은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자신이 갖는 협소한 한계를 벗어나 ‘큰 사람’으로 우뚝 서서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재명 지사는 유난스레 공정 가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일찌감치 민주화 이후의 세상을 내다본 셈이다. 그리고 지방자치 단계에서 공정의 기치를 내걸며 많은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도 그가 가진, ‘죽음보다도 더했던 가난’을 겪으면서도 소중히 품어왔던 사회 변혁의 소망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가 최근에 보인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들은 그의 앞길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 도정에 잘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기 남양주시장에게 집요하게 들이민 거친 감사(監査), 지역화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고 해 조세재정연구원의 한 연구원에게 가한 과도한 비난 등이 그에게 비수로 돌아올 수 있다.
논리적, 이성적 반박이 아니라 힘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이재명 지사 역시 집단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참했던 과거를 두고 ‘우리 사회를 밝힐 횃불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집권 후 독재적 국정 운영의 소지가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 지사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두 사람이 갖는 집단 이기주의 탈피의 한계를 말했으나, 그들이 갖는 한계는 여권의 운동권 세력에 비해서는 그래도 훨씬 양호하다. 두 사람이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상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은 분명히 반(反)집단 이기주의, 반(反) 기득권주의 쪽을 향하리라고 낙관한다.
권력은 아편보다 훨씬 더 큰 중독성 지녀
대선후보가 결정되기까지 국민들 지지를 받는 두 사람과 두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존 정치세력과의 쟁투가 점점 더 심해질 전망이다. 현 정부에서 유약한 ‘주군’을 받드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거리낄 것 없이 권세를 누려온 운동권 세력 인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공정의 시대’로 가는 흐름을 거부할 것이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그러므로 설사 추미애가 법무장관에서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제2, 제3의 추미애는 등장할 것이다. 그들은 권력에 취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두 사람을 꺾기 위한 망발과 방자한 행동을 아무 거리낌없이 마구 쏟아놓을지 모른다.
권력은 아편보다 훨씬 더 큰 중독성을 가졌다. 지금 영화를 누리는 운동권 세력은 너무 깊이 권력에 중독됐다. 그들이 이재명, 윤석열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중독의 착시현상’ 탓이다.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의사가 가장 존중돼야 할 민주공화국이 아닌가.
■ 늙음
어느 외진 언덕배기 나무 한 그루
찡그린 얼굴로 겨울 찬 바람 맞으니
나뭇잎 하나, 둘 떨어질 때
기억도 하나, 둘 소멸한다
자꾸만 없어져 애가 타고
다 없어지면 무엇으로 남을까
드디어 완전히 벗어버린 나무
하늘과 땅에 외로이 떤다
저항은 차라리 사치스럽고
숙명으로 다가서는 순명
무릎을 고요히 꿇고
지나간 날의 소리를 듣는다
근 한 달간에 걸쳐 마당의 나무들과 밭 유실수들의 가지치기를 했다. 가지치기 한 가지들을 다시 잘게 썰었다. 땔감으로 사용한다. 솥과 솥걸이도 샀다. 온 밭에 땔감이 쌓였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