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양육비 지급 명령 판결문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어요”

[인터뷰]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 &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1-01-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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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아빠·엄마’에게 양육비 내놓으라는 삶

    • 月 30만 원 안 주려고 폭력배 고용한 한국인 아빠

    • 판결문 기초로 신상 공개, 디지털교도소와 달라

    • 무책임한 아빠만 신상 공개? 엄마도 공개한다

    • 양육비는 아동의 권리이자 생존권 문제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2019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한부모 가정은 153만 가구, 사별(死別) 가정을 제외한 한부모 가정의 80%, 미혼부·모 가정의 92%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부모 가정 아동 수는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2019년까지 법원에서 양육비 이행 의무가 확정된 1만6073건 중 실제 양육비를 받은 사례는 5715건(35.6%)에 그쳤다. 나머지 64.4%는 받지 못했다. 

    이처럼 자녀 양육비 지급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국내 여성 단체에 몸담았던 활동가들이 2018년 7월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인 ‘배드파더스(Bad Fathers)’를 만들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양육비해결총연합회’도 구성됐다. 

    구본창(58) 배드파더스 대표 활동가와 이영(52)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를 만나 한국의 ‘나쁜 아빠·엄마들’의 실태와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활동가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구본창 활동가는 성공한 학원 강사 출신이다. 영어 강사로 명성을 얻었고, 서울 강서구 화곡대성학원 원장으로 일할 때는 수강생 수가 10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48세에 조기 은퇴를 결정한 그는 필리핀에서 ‘코피노’(Kopino·한국인과 필리핀인 혼혈)들의 힘든 생활을 보고는 필리핀 여성과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코피노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었나요. 

    “은퇴하고 두 딸이 유학하던 필리핀에 갔어요. 필리핀에서 살면서 코피노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죠. (한국인) 아빠들은 대부분 필리핀인 동거녀가 임신했거나, 출산 후 아이가 어릴 때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사연을 가진 한 필리핀 여성을 알게 됐는데, 그녀는 필리핀 명문대 재학 중 유학을 온 한국인 남자를 만났죠. 두 사람은 여성의 부모 집에서 2년간 동거했고, 남자는 월 200만 원에 이르던 숙식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도 태어났죠. 어느 날 남자가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했고, 여자는 혹시 모르니 ‘한국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남자로부터 연락이 끊겼죠. 홀로 아이를 기르던 필리핀 여성이 어느 날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아픈데 아빠를 찾을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아이 아빠가 남긴 쪽지를 건넸는데, 영어로 ‘guegyol minni 18 Korea(그걸 믿니 18 한국)’라고 적혀 있더군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모욕감이 치밀었습니다. 얼마 후 당시 두 살이던 아이는 죽었고, 저는 ‘WLK(We Love Kopino)’라는 단체를 만들어 ‘코피노 맘’을 돕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구 활동가는 코피노 맘을 위해 ‘현장 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인 아빠가 월 30만 원가량 되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려고 폭력배를 고용해 필리핀 엄마를 협박하거나 폭행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폭력배에 맞서 싸운 횟수도 200회가 넘는다는 설명이다. 

    -필리핀에 있는 코피노의 수는 대략 얼마쯤 되나요. 

    “4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필리핀은 인구통계 자체가 정확하지 않아요. 신생아 출생신고를 할 때 정부에 수수료를 내야 해서 빈민층에서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빈민층을 위한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굳이 신고를 안 하는 거죠. 사실, 빈민가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해도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필리핀에는 ‘에어리언(Alien)’이라고 불리는 ‘무호적자’가 많죠. 그러니 코피노 파악도 쉽지 않죠. 무호적자의 상당수는 청부살인업자가 되기도 합니다.”

    학원강사가 M-16 소총을 든 이유

    -현지 활동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나요. 

    “필리핀에서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섬에는 이슬람 반군이 많아요. 필리핀 부유층이나 외국인을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는 이른바 ‘납치 비즈니스’를 합니다. 저는 거꾸로 납치된 사람들을 구조하는 걸 돕거나 협상을 성공시켜 사례금을 받는 거죠. 보통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을 통해서 협상하는데, 석방 금액을 터무니없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죠. 1인당 100억 원씩 달라는 경우도 있었어요. 협상이 안 되면 군대 시절 손에 익은 M-16 소총을 들고 직접 인질 구출 작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네이비실(Navy SEALs·미국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나 무술 고단자로 구성된 팀을 꾸려 반군에 맞서면서 협상을 유도하죠. 예전 이슬람 반군들은 ‘시골 깡패’ 수준이었는데, 근래에 IS(Islam State·이슬람국가)와 연대해 조직화되고 악랄해졌죠.” 

    구 활동가는 163㎝의 단신이다. 학원강사로 일하던 그가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말에 기자는 짐짓 놀랐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처음 필리핀에서 한국인 친구의 광산에서 일했습니다. 일종의 보디가드였죠. 광산주들은 필리핀인 경비원을 채용하는데, 경비원들은 이슬람 반군들이 공격하면 도망가 버리곤 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별도로 채용한 거죠. 특수부대 출신이나 유도 고단자를 채용하는데,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유도를 해서(공인 7단) 그곳에서 일하게 됐죠. 지하자원이 발견되면 광산주들끼리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려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해요.”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면서까지 코피노를 도와주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나요? 

    “특별한 사명감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견디기 힘든 고통 중 하나가 배고픔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사흘을 굶은 적이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배고픔이라는 고통을 겪는 건 잔인한 일이죠. 필리핀에서는 월 양육비 30만 원이면 아이가 굶지 않는데, 그것조차 보내주지 않으니 코피노들은 배고픔의 고통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양육비는 아이 생존권과 직결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싶어 일을 계속하고 있죠.” 

    그는 일은 힘들지만 장성한 두 딸의 지지와 성원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두 딸은 어릴 때부터 아빠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다만 아내는 ‘나이 들어 위험천만한 일만 하고 다닌다’며 극렬 반대하죠(웃음). 며칠 전 아내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요. ‘다른 사람들은 나이 들면 철이 드는데,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더군요. 그래도 가족 셋 중 둘이 지지하니 할 만하죠(웃음).”


    자원봉사자가 기소된 첫 재판

    코피노 맘들을 위해 일하던 구 활동가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18년 7월 개설된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 대표 봉사자가 된 것. 그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도 코피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 때문이다. 2017년 필리핀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은 한국인 아빠들의 신상 공개 사이트(코피노파더)를 만들어 운영한 것도 한 원인이 됐다. 

    배드파더스 활동 때문에 송사(訟事)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9년 5월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미지급자 5명(남성 3명, 여성 2명)이 구 활동가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국민참여 재판으로 진행된 공판 결과, 2020년 1월 14일 배심원과 재판부 만장일치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구본창)은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공개)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 피고인 활동은 양육비를 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운영자가 아니라 자원봉사자가 기소됐네요. 

    “맞아요. 배드파더스 운영진이 공개되지 않았으니 검찰은 자원봉사자 중 유일하게 신상이 공개된 저를 기소한 거죠. 운영자가 아닌 자원봉사자가 기소돼 정식 재판을 받은 첫 사례입니다. 조사에서 검찰은 ‘운영자가 누군지 밝히라. 밝히지 않으면 기소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끝까지 운영자를 밝히지 않으니 저를 기소해 법정에 서게 됐죠.” 

    배드파더스 활동은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결성과 연합회 이영 대표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다니다 2018년 양육비 문제 해결에 전업으로 뛰어들었다. 연합회 역시 배드파더스와 함께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는 등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이들을 돕는다. 이 대표는 구본창 대표활동가를 ‘우리 대장님’이라고 부른다. 양육비 지급 대상자가 대부분 여성인 만큼 전 남편으로부터 협박을 받는 등 위험한 상황이 많은데, 이때 구 활동가가 든든한 ‘보디가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 대표와의 인터뷰. 

    -사이트명이 ‘배드파더스’여서 나쁜 아빠만 부각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면 양육모(母)가 80%, 양육부(父)가 20% 정도 됩니다. 양육비 지급자가 아빠인 경우가 많아 사이트명을 그렇게 지었죠. 다만 사이트에는 무책임한 엄마·아빠 모두 공개돼 있습니다.” 

    -배드파더스가 신상 정보를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와 다른 점은 뭔가요. 

    “가장 큰 차이는 디지털교도소가 운영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신상을 공개하는 데 반해 배드파더스는 법원의 양육비 지급 판결문을 기초로 공개합니다. 목적도 다르죠. 디지털교도소가 ‘징벌’이 목적이라면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촉구’입니다. 양육비 지급이 확인되면 명단에서 바로 삭제합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8년 7월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구 활동가의 활약상이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졌어요.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 앓던 사람들이 배드파더스나 구 활동가의 블로그를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모이게 된 거죠. 그러다 그해 9월 양육비해결총연합을 결성했어요. 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취지였죠.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위한 단체로는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단체입니다. 2018년 12월 10일, 여성가족부 비영리단체로 승인받았고요.”

    양육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이유

    9월 17일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의 명예훼손 항소심이 열린 수원고등법원 앞에서 무죄 촉구 1인 시위를 하는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장.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9월 17일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의 명예훼손 항소심이 열린 수원고등법원 앞에서 무죄 촉구 1인 시위를 하는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장.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제공]

    이 대표가 양육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은 같은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이혼 과정에서 자녀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간 전 배우자는 “잠깐 아이를 봐달라”며 맡긴 후 연락을 끊었다. 전 배우자에게서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대표는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당시 심정을 담담하게 토로했다. 

    -양육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뭔가요.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다 보니 관련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민법·가사소송법은 양육비를 보장하고 있고, 법원에서 지급명령 판결을 내릴 경우 부양자는 양육비 채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문제는 판결문이 휴지조각이라는 거죠.” 

    -판결문이요? 

    “양육비 지급 불이행 시 강제할 법 규정이 없습니다. 채권 추심 단계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주소를 옮기거나 재산 명의를 바꾸는 등 편법을 사용해 빠져나가죠. 아주 드물게 판사가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감치’(監置·유치장이나 교도소에 가둠) 판결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 당사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감치 집행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관련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는 걸로 아는데요. 

    “법 개정을 위해 노력했는데 성과도 있었어요. 2020년 5월 20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가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긴급 지원한 경우 양육비 채무자 동의 없이도 신용 및 보험 정보를 관계기관에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은 뭔가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아동의 복리가 위태로운 경우, 정부가 먼저 아동 1인당 월 20만 원씩 최장 12개월간 양육비 채권자에게 지급하고, 사후에 양육비 채무자에게 징수하는 제도죠. 양육비 채무자가 긴급지원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국세 체납 처분으로 징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채무자에 대해 해당 지방경찰청장에게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양육비를 이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아동의 권리이자 생존권으로 보는 사회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해요.”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일찍이 양육비를 사회문제로 다뤄온 미국은 2500달러(약 300만 원) 이상 양육비를 체납하면 여권 발급을 중지하거나 고액 세금체납자처럼 출입국을 제한하죠. 프랑스는 법원 판결 후 2개월 이상 양육비를 체납하면 2년의 징역이나 1만5000유로(약 2050만 원)의 벌금을 물리기도 해요.”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라는 공통 주제로 같은 길을 걷게 된 구 활동가와 이 대표는 “각종 음해와 소송에 시달리면서도 속앓이하며 사이트를 지키고 있는 배드파더스 운영자와 현장에서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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