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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최진석이 ‘나는 5·18을 왜곡한다’ 詩 쓴 이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철학자 최진석이 ‘나는 5·18을 왜곡한다’ 詩 쓴 이유

국회에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이 통과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조영철 기자]

국회에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이 통과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 [조영철 기자]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5·18 시(詩)’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 교수는 1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국회에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이 통과된 지 이틀 만이다. 이 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 5년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9일 본회의에서 찬성 174표, 반대 31표, 기권 20표로 가결됐다. 최 교수는 11일 발표한 시에서 이에 대해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감옥에 갇히다니’라고 개탄했다. 총 52행으로 이뤄진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5·18은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횃불”

최 교수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 대동고를 졸업했다. 올해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즈음해 진행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18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횃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 

“그 빛나는 횃불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어떤 나라를 건설하고 싶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세우려고 했던 그 나라를 세우고 있는지, 이것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혁명의 완성인 ‘지속 혁명’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본다.” 

최 교수는 과거에도 여러 기고와 인터뷰 등을 통해 5·18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왔다. 그런 그가 5·18 관련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하자는 내용의 법 제정에 왜 반대하고 나선 걸까. 심지어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는 표현을 시의 첫머리에 내세우며 말이다. 최 교수에게 이 행동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최진석 교수가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의 시를 쓴 데 대해 놀란 사람이 많다. 이 시는 어떤 의미로 발표한 것인가. 

“세상에는 당사자를 어렵고 머쓱하게 만드는 일이 몇 개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두 가지가 유머를 설명해줘야 하는 일과 시(詩)를 다시 설명하는 일이다. 이번에 발표한 시는, 사실 짧다는 의미에서만 시라고 할 수 있지만, 결코 5·18을 왜곡하는 시가 아니다. 5·18을 왜곡하는 사람이나 현상에 저항하는 시다. 5·18을 사랑하는 시다. 5·18을 훼손하지 말자는 시다. 그런데 5·18을 왜곡한다고 화를 내는 분들이 계셔서 당혹스럽다.” 

-지금 누군가 5·18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데 분노해 이 시를 썼다는 말씀인가. 

“나는 5·18을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에 가두는 일이 5·18 정신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5·18 정신을 철학적으로 승화시켜도 부족할 판에, 좁은 정치 영역으로 끌고 내려오면 안 된다. 5·18이 정치에 포획돼 철학적 높이의 의미를 훼손당하는 건 매우 큰 손해다.”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드는 건, 곧 5·18 정신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행위다? 

“역사적 사실을 정부가 ‘특별법’으로 묶어 처벌하는 예는 문명국가에서 거의 없다. 역사적 사실을 특별법으로 묶기 시작하면 ‘역사’를 가진 세계가 거의 모두 법으로 묶일 것이다. 그러면 민주와 자유는 숨이 막힌다.” 

-한 번 더 짚겠다.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가 괜찮다는 게 아니라, 그걸 특별법으로 처벌하는 게 잘못됐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내 말의 요지는 5·18을 왜곡하는 자들을 처벌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으로 처벌하는 방식을 사용하지 말자는 뜻이다. 현행법으로도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왜곡의 처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역사왜곡처벌 특별법’ 제정에는 그다지 실익이 없다.”

“장기적으로 5·18을 살리는 길”

최 교수는 ‘5·18 왜곡 시(詩)’ 발표 후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논란이 커지자 13일, 다시 SNS에 자신이 그 시를 쓴 이유에 대한 설명을 올린 일이 있다. 그 글엔 이런 대목이 있다. 

“(5·18을) 법으로 지키려 하는 것이 왜 나쁜가? 그것은 5·18이 쟁취하려고 했던 민주와 자유의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중략) 역사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심히 침해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와 자유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꼴 보기 싫어도 ‘역사의 정신’으로 힘들게 제압하면서 가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꿀 때의 주장도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좌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현재 상황을 ‘민주주의 위기’로 보는 듯했다. 그는 말했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건 지금 대한민국이 민주나 자유가 크게 후퇴하는 ‘역사 퇴행 현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통치’가 행해지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한 감수성이 약하다. 독재에 저항했지만, 자기편이 권력을 잡으면 독재여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권력을 잡으려고 독재에 투쟁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이런 역사 퇴행 분위기 속에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5·18의 순수한 정신을 지키기에 매우 위험한 환경이다. 이 위험한 환경에서 5·18을 이탈시키는 게 장기적으로 5·18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5·18을 살리고자, 지금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 제정에 반대한다? 

“그렇다. 역사교과서 제작 방식을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꿀 때의 그 정신이 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천안함 왜곡처벌 특별법’ 제정을 반대할 때의 그 정신이 왜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기본 정신이 상황에 따라 임의로 적용되지 않아야 역사가 바로 간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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