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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지경까지…” K방역 한계 부딪힌 3가지 이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어쩌다 이 지경까지…” K방역 한계 부딪힌 3가지 이유

  • ●과학 정보, 경시했다
    ●무증상 감염자 조기 발견, 소홀했다
    ●일상 공간 방역 중요성, 간과했다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에 이동형 음압 병실이 설치돼 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환자 치료 공간이 부족해지자 방역당국은 이동형 병상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스1]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에 이동형 음압 병실이 설치돼 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환자 치료 공간이 부족해지자 방역당국은 이동형 병상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스1]

“한 번 더 가게 문 닫으라고 하면 그때는 정말 곡소리 날 거예요. 이 얘기, 기사에 꼭 좀 써주세요.” 

10월 13일 서울지하철 사당역 근처 한 노래방에서 만난 업주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8월 19일 방역당국이 노래방 등 12개 ‘고위험시설’ 영업중단을 명령하고부터 50여 일 간 뾰족한 수입 없이 지냈다고 했다. 영업규제가 언제 풀릴지 몰라 다른 소득활동을 시작하기 어려웠다. 10월 12일 ‘마침내’ 1단계 하향이 발표되면서 그는 오랜만에 가게에 나온 참이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가슴이 두근거려 어젯밤 잠을 설쳤다”며 “제발 다시는 가게 문 닫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세계가 칭찬하던 ‘K방역’, 어쩌다 이 지경까지…

12월 8일, 그에게 한 번 더 가게 문을 닫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선포된 결과다. 이 업주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손님을 받지 못한 날은 100일이 넘는다. 5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도 방역당국 명령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여름에 한 번, 가을에 또 한 번 희망에 들떠 열었던 가게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일이 반복되자, 업주는 이제 정말 지친 듯했다. 기자 전화를 받고 오랜 침묵 끝에 간신히 입을 열어 내놓은 첫 말은 “누구를 탓하겠나”였다. “어차피 손님 발길 끊어진 지 꽤 됐다. 이제 정말 다른 살길을 찾아봐야 겠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감염병이 보고된 뒤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코로나19에 혹독하게 시달렸던 미국‧유럽 등에서는 요즘 백신 접종과 더불어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희망이 피어나는 분위기다. 반면 ‘K방역’ 성공으로 찬사를 받았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연일 신규환자가 1000명 안팎씩 발생하며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우려까지 나온다. 

12월 15일 서울 동대문구 거주 60대 확진자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자택에서 나흘째 대기하다 숨졌다. 19일 밤에도 확진 후 집에서 병상이 나기를 기다리던 구로구 거주 60대 남성이 목숨을 잃었다. 두 환자 모두 병세가 악화해 관할 보건소에 연락했지만 끝내 병원에 가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천은미 이화여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많은 전문가가 오래 전부터 ‘겨울이 되면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할 수 있다.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에 이르는 걸 막지 못했다”며 “가슴이 아프고, 많이 슬프다”고 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K방역’ 성과를 과신하며 사전 대비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과학 정보, 경시했다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경기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 21일 현재 이 병원에서만 병상을 기다리던 코로나19 환자 13명이 숨졌다. [뉴스1]

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경기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 21일 현재 이 병원에서만 병상을 기다리던 코로나19 환자 13명이 숨졌다. [뉴스1]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섭씨 5도 이하, 습도 30% 이하인 ‘저온건조’ 환경에서 오래 산다. 춥고 건조한 겨울은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좋은 때다.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5월 및 8월과는 여건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겨울철 대유행’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얘기다.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방역당국은 8월 30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선포했다. 이후 유행세가 꺾였다. 이번에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당시 경험을 말하더라. ‘그때 2.5단계로 막았으니 이번에도 된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늦여름 초가을과 한겨울 환경이 같나. ‘그때 맞았으니 지금도 맞을 것’이라는 건 과학을 아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천은미 교수는 ‘코로나19 병원체 변이’도 최근 급속한 환자 수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연구팀 등이 11월 12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출현한 원래 바이러스가 아니다. 변이를 통해 전염력을 10배 이상 키운 ‘변종’이다. 천 교수는 “올 여름부터 코로나19 변이에 대한 논문이 다수 발표됐다”고 밝혔다. 

“우리 방역당국도 8월 수도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변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퍼졌다고 발표했다. 적이 한층 강력해진 걸 알았다는 얘기다. 겨울이라는 바이러스에 유리한 환경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뭘 했나. 지금 바이러스에 맞서는 우리 무기는 봄‧여름과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의료진은 지치고, 국민의 위기의식도 전과 같지 않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무증상 감염자 조기 발견, 소홀했다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 앞에 진단검사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뉴스1]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 앞에 진단검사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코로나19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조금씩 진행된 올 여름부터 겨울 사이에 방역당국은 뭘 해야 했을까.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간단한 적’이 아님을 인식하고, 장기적 관점의 방역 대책을 수립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9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가 적어도 2~3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준용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역시 9월 “코로나19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무렵 상당수 전문가가 같은 예측을 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철저히 대비할 것’을 강조했다. 

방역당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1~2주 단위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거나 내리면서 임기응변식 대응을 반복했다. Δ8월30일(2.5단계) Δ9월14일(2단계) Δ10월12일(1단계) Δ11월19일(1.5단계) Δ11월24일(2단계) Δ12월1일(2단계+α) Δ12월8일(2.5단계) 등이다. 코로나19 환자 감소세가 나타날 때마다 국무총리가 본부장으로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방역 단계를 낮추며 ‘경제 살리기’ 시동을 걸었다. 숙박·공연·외식 등 소비 쿠폰 지급을 모색했다. 그 ‘선택’이 지금의 대규모 환자 발생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소비쿠폰 발행으로 집합과 이동을 조장한 것은 무지와 만용”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12월 1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바이러스는 자연재해, 방역실패는 人災(인재), 중대본은 실패 자인하고 책임져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탁 순천향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그 여파가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 등 감염병 취약계층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김탁 교수 얘기다.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자가 많다. 코로나19에 걸린지 모르는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면 감염 취약시설에서부터 집단 피해가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의료체계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일상생활 공간에서의 철저한 방역이 필요하다고 일찍부터 강조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상황이 오고 말았다.” 

방역당국 발표에 따르면 경기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12월 20일 하루에만 코로나19 환자 3명이 숨을 거뒀다. 코로나19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일반 병원 병상을 기다렸지만, 자리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김탁 교수는 “코로나19 의료 현장에서 이미 의사들은 ‘누구에게 먼저 병상을 배정할 것인가’를 놓고 윤리적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방역당국은 지역사회 무증상 감염자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12월 14일, 비로소 무증상자까지 무료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해주는 임시선별검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20일까지 이 시스템을 통해 ‘발견’된 코로나19 환자가 서울에서만 281명이다. 검사건수 대비 양성률은 0.29%에 달한다. 서울 시민을 1000만 명으로 보면 약 3만 명이 무증상 코로나19 환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천은미 교수는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진단검사를 받는 사람은 한겨울 추위 속에 한참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이나 노인은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아갈 엄두를 못 낸다. 그런 분들까지 포함하면 무증상 감염 규모는 훨씬 클 수 있다.”

일상 공간 방역 중요성, 간과했다

9일 인천 동구 인천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병상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9일 인천 동구 인천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의료진이 병상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이 최근 방역당국에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천은미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사회 곳곳에 있는 무증상 감염자를 다 찾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들의 바이러스 전파력이 떨어질 때까지 사람 간 접촉을 강력히 통제하는 게 코로나19 확산세를 꺾을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천 교수 얘기다. 

“최근 발표된 논문을 보면 코로나19의 부부 간 전파율은 일반인의 7배에 이른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라도 외부 활동을 하면 나머지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학생 등교 막고, 마트 운영시간 줄인다고 코로나19가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느 한곳이라도 풀어놓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바이러스가 확산한다. 이미 많은 국민이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생명을 잃고 있다. 왜 3단계를 망설이는가. 더 늦기 전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경제도 살릴 수 있다.” 

김탁 교수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요즘 방역당국 태도를 보면 ‘3단계’를 막는 것 자체가 정책적 목표가 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방역당국은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전문가들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실에 ‘기계적’ 대응조차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탁 교수 얘기다. 

“방역당국이 최근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올리지 않아도 3단계처럼 생활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럴 거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왜 만들었나’라고 묻고 싶다. 자발적 협조로 ‘사회적 거리두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행정적으로 강제하려고 이 제도를 만든 것 아닌가.” 

김탁 교수는 현재 우리 국민들이 ‘자발적’ 차원에서 최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가 언급한 건 최근 발표된 이동량 통계다. 중대본이 휴대전화 위치 서비스를 기반으로 집계한 12월 12~13일 전국 이동량은 전주 주말(5~6일)에 비해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1.5단계 시행일인 11월 19일 이전 주말(11월 14~15일)과 비교하면 31.8%가 줄었다. 김탁 교수는 “정부가 강제적으로 통행을 제한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이동량을 3분의 1이나 줄였다. 그런데도 신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지 않나”라며 “이때 방역당국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방역당국이 움직이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김우주 교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아직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만 뉴질랜드 등을 보라. 코로나19 유행을 잘 통제하고 있지 않나.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방역에 협조적이다. 방역당국의 의사 결정이 너무 늦지 않으면, 분명 반전의 기회가 있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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