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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평화프로세스, 바이든의 ‘서그’ 암초에 좌초 위기

트럼프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미국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文 평화프로세스, 바이든의 ‘서그’ 암초에 좌초 위기

  • ● 바이든 대북 인식의 창(窓)은 ‘서그(thug·조직폭력배)’
    ● 블링컨 “트럼프 거래가 김정은 도둑질 기술로 변질”
    ● 김정은·일본 인식, MD·종전선언 견해 천양지차
    ● 윤병세 “바이든, ‘美 반대편 베팅은 좋은 베팅 아냐’”
    ● 文-바이든 한반도 정책 ‘따로국밥’
    ● ‘희망적 사고’ 버리고 할 수 있는 것만 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0년 10월 22일(현지 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대선 최종 토론을 하고 있다. [AP=슈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0년 10월 22일(현지 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대선 최종 토론을 하고 있다. [AP=슈시스]

2020년 10월 22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벨몬트대에서 열린 대선 마지막 TV토론장에서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서그(thug)’라고 지칭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김 위원장을 ‘굿버디(good buddy·좋은 친구)’라고 한 데 반해 바이든 후보의 인식은 달랐다. 

세계가 지켜보는 미국 대선 토론장에서 유력 후보들이 선택한 용어에는 그들의 인식과 정치적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 우리 언론은 ‘서그’를 폭력배·악당·양아치 등으로 번역했지만, 정확하게는 인도의 조직폭력배를 뜻한다. 이들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도보 여행자들의 환심을 얻은 뒤 적당한 기회가 오면 본색을 드러냈다. 손수건이나 올가미로 목을 졸라 죽이고는 물건을 약탈한 후 시신을 매장했다. 300년 이상 무리 지어 떠돌아다닌 서그는 1833~1835년 인도 총독을 지낸 윌리엄 벤팅크 경의 주도하에 소탕됐다. 1831~1837년 최소한 3266명 이상의 서그가 체포돼 그중 412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북한 지도자를 지칭하며 서그를 소환했으니 북한 당국은 소름이 돋았을 법하다. 대영제국 대신에 미국을, 윌리엄 경 대신에 바이든 당선인을, 서그 대신에 북한 체제를 대입해 보면 김 위원장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라인도 충격을 받았을 터. 미국 대선 TV토론회장에서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을 서그로 낙인찍은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됐기 때문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이 미국으로 달려간 데는 그러한 충격이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만약 한국 정치인이나 평론가가 방송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면 ‘막말 프레임’에 걸려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2020년 11월 14일 바이든 당선인은 토니 블링컨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 알려진 대로 블링컨 내정자는 바이든 당선인이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2년부터 외교 업무를 보좌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2015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을, 2015∼2017년에는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다.


바이든의 ‘마스터키’ 토니 블링컨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컨. [AP=슈시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컨. [AP=슈시스]

블링컨 내정자는 2020년 9월 공개적으로 “김정은은 세계 최악의 폭군 중 한 명(One of the world’s worst tyrants)”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혹평하며 “트럼프의 거래 기술은 김정은에게 유리한 도둑질 기술로 변질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달래려고 한미동맹 훈련을 중단했으며 경제적 압박 페달에서 발을 뗐다고 부연했다. 바이든의 서그, 블링컨의 ‘도둑질 외교’는 서로 결합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한미동맹,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바이든과 블링컨은 같은 혈액형, 같은 DNA를 가진 것이다. 



또한 바이든 당선인은 2020년 10월 22일 TV토론에서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왜 계속 미사일방어(MD)체제를 우리 쪽으로 옮기고 한국과 군사훈련을 하느냐’고 했다. 나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한국과 미국)를 공격하지 못하게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대화 시기를 밝히지 않았지만, 2013년 12월 한국과 일본 방문을 마친 뒤 중국에서 5시간 체류하며 중국 지도자들과 만났을 때의 대화로 짐작된다. 아울러 그는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핵능력을 줄이겠다고 해야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간단하지만 TV토론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정책 로고스’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사드 배치 등 한미 미사일방어체제 강화 △북한을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으로 인식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 △비핵화 이행이 전제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북·미 정상회담 지양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부통령 재임 시절 한국 정부 초청으로 2013년 12월 5일부터 2박 3일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을 한 뒤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조망하는 로고스는 당시 대화에 가장 많이 녹아 있다.

동북아 실전외교 :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2013년 12월 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2013년 12월 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2020년 11월 23일 ‘왜 바이든은 동북아 동맹국들을 포용하나(Why Biden Will Embrace The American Alliances in Northeast Asia)’ 제하 기고문을 통해 2013년 한중일 방공식별구역을 다룬 일을 사례로 들며 “바이든 당선인이 향후 특별히 한일협력을 강조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한반도와 일본 영토가 일부 포함된 형태로 확장하려고 하자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일상적인 위협에 맞서 한미일이 공조하면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스나이더 교수의 ‘바이든 케이스 스터디’를 가장 깊이 아는 인물이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다. 그는 외교부 장관 시절 바이든 당선인을 네 차례, 토니 블링컨 내정자를 여섯 차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를 여러 차례 만나 외교 현안을 다뤘다. 윤 전 장관은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하며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2013년 바이든 부통령 한국 방문 당시 가장 기억나는 일은 뭔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확대하는 일이었다. 2013년 11월 23일 중국이 우리나라와 일본 일부 상공과 중첩되게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자 동북아 정세의 긴장이 고조됐다.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그해 12월 5일 한국, 일본,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국방부는 중국에 대한 유감 표명을 넘어 KADIZ 확대를 건의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견 수렴을 거쳐 KADIZ 확대를 결심했다. 대통령의 결단으로 조기에 정부 방침을 발표하려 했고, 일본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 변경을 검토했다. 중국은 한국의 반응에 항의하는 등 초긴장 상황이 조성됐다. 이때 바이든 부통령 측이 연락해 우리 정부 발표를 며칠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일본과 중국에 대해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도록 요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관련한 동북아 긴장을 세련되게 해결했다.” 

- 당시 박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간 대화 주제는 무엇이었나.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고 했다. 한미-한중 관계의 차별성을 ‘조크’를 빌려 말한 것이다. 한일관계 협력을 강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한미 방위비 분담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데,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한미연합 방위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은 2015년 10월에도 워싱턴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윤 장관과 스나이더 교수의 말을 종합하면, 바이든 당선인은 역대급으로 동북아를 잘 아는 대통령인 셈이다.

文-바이든의 동상이몽

바이든 당선인의 동북아와 북한, 한미 양국 현안에 대한 시각을 들여다볼수록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는 엇갈린다. 첫째, 북한 지도자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선거에서 차별화를 위한 정치공학적 용어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김 위원장을 조직폭력배(서그)로 인식하는 것은 ‘신뢰하는 동반자’로 보는 문 대통령의 인식과는 천양지차다. 

둘째, 바이든 당선인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아시아 정책의 초석으로 인식하지만, 문 대통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문제에서 보듯이 안보협력의 필요성에도 온도차가 크다. 셋째, 토니 블링컨으로 대표되는 바이든 당선인 참모들은 북한 인권과 지도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문재인 정부 안보 참모들의 인식은 바이든 참모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넷째, 미국의 MD체제, 한미연합훈련, 전작권 전환 시기, 종전선언 필요성, 북한 제재 유지 등에 대해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결국 임기를 1년 5개월 앞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평화 프로세스는 바이든 시대 도래로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더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매우 부정적이며, 북한 인권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가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바이든 시대를 뒷받침한다. 2020년 2월 펠로시 하원의장은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 등 한국 대표단에게 “김정은은 비핵화 대신 동맹국의 군사력 약화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 한국 정부 대북정책에 깊은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임기를 곧 시작할 바이든 당선인도 ‘서그’라는 대북의 창(窓), 동북아 안보 로고스를 문 대통령 임기 안에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바이든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이 ‘따로국밥’이 될 공산이 크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있다. 북한이 바이든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남·대미 정책을 대전환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가 난관에 봉착할 거라는 점도 명약관화하다. 김 위원장이 그렇게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은 만큼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에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함몰돼 냉정하게 다뤄야 할 대한민국 안보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집권 여당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제정하는 현재 ‘스탠스’로는 미국 지지를 받으며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TV토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았다”고 선전할 때 바이든 당선인은 이런 말을 던졌다. 

“유럽 다른 지역을 침공하기 전까지는 히틀러와도 (미국의) 관계는 좋았다.” 

히틀러와 친하게 지낸 유럽 국가들이 겪은 전쟁을 떠올리면 섬뜩한 말이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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