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호

97세대에게 Z세대를 알려드림

다양·공정·진정 Z세대 “X세대, 이념 대립 말고 우리와 공감하라”

  • 고승연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저자

    seankostyle@gmail.com

    입력2021-01-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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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대선, Z세대 절반이 유권자

    • 흑인 대통령·여성 총리·동성애자CEO… Z세대가 산 세상

    • 대기업 불매운동하면 진보? 이분법 재단 의미 없어

    • 한국 최초 ‘힙스터’는 X세대(97세대)

    • 사회 진출한 MZ 보며 개인주의 정체성 되살려

    • 새로운 가치 부상이냐 퇴행적 포퓰리즘이냐

    2019년 9월 27일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정부의 즉각적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 시위가 진행됐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2019년 9월 27일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정부의 즉각적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 시위가 진행됐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 결석시위 

    2019년 9월 27일 청소년 500여 명이 광화문 인근에 모였다. 이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한국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었다. 학교를 조퇴하거나 결석해야 하는 평일인데도 많은 인원이 거리를 메웠다. 오프라인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해시태그를 달며 응원을 보냈다. ‘기후행동’이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의 시위는 세계 2400여 개 도시에서 매월 벌어진다.

    BTS는 지난 6월 ‘Black Lives Matter(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를 지지하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BTS는 지난 6월 ‘Black Lives Matter(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를 지지하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 BLM 

    2020년 5월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사망했다. ‘Black Lives Matter(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일어났다. 6월 BTS는 해당 시위 주도 단체에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기부했다. 주로 10~20대인 BTS 팬클럽 ‘아미(ARMY)’는 순식간에 100만 달러를 모아 같은 단체에 기부했다. 

    기후행동부터 BLM 시위 지원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한목소리로 함께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연결된 세상에서 태어나 자란 모바일 네이티브(native·토박이), Z세대(1996~2010년생)다.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누가 대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한국에서는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라는 결론이다.



    ‘취존’은 기본, 진정성 없는 위선에 저항

    Z세대에게 ‘해외 토픽’이라는 개념은 없다. 항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유튜브로 연결된 세상에서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본다. 취향과 관심에 따라 느슨하게 연결된 이들은 최초의 ‘지구인 정체성’을 가진 세대다. 

    Z세대는 다양한 국적이나 인종, 성(性)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살아온 세계를 돌아보면 Z세대의 다양성 존중 성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성장기에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버락 오바마)이었다. 독일 총리는 여성(앙겔라 메르켈)이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의 수장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팀 쿡)다. Z세대에게 다양성은 당연한 가치다. Z세대는 바다거북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를 제거하는 장면을 함께 유튜브로 봤다. SNS에 태평양 쓰레기섬 영상을 공유하며 환경오염과 관련해 ‘피해의식’과 ‘연대의식’을 키웠다. 

    Z세대에게는 ‘공정성’과 ‘진정성’이 중요하다. 인종·성별·성정체성으로 차별받는 것, 어른들이 망쳐놓은 환경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차별·기후 문제를 진정성 있게 바라보지 않는 기성세대의 위선을 금세 파악하고 저항한다. Z세대는 투표권을 가지기 시작했다. 더는 ‘아이들’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다. 한국의 경우 2022년 봄 대선 때 Z세대 절반은 유권자가 된다.


    젊은 몸에 깃든 오래된 영혼

    젊을 때 진보 성향이 강하지만 나이가 들면 안정 희구 성향에 따라 보수화된다는 게 정치학계 정설이다. Z세대는 전통적 진보·보수 이분법과 대결 양상에 큰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진보 진영을 이끌고 산업화 세대가 보수 진영을 장악하고 있지만, Z세대에게 두 세대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고 위계를 강조하는 ‘꼰대’일 뿐이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 의회에서 밀레니얼 세대(1980~1995년생) 정치인들이 경륜이 쌓인 정치인의 구닥다리 화법에 몸서리치며 “오케이, 부머(OK, Boomer·꼰대질 그만하시죠)!”라고 외치는 장면이 화제가 된다. 부머는 베이비붐 세대(1950~1965년 출생자)를 의미하며 한국의 경우 산업화·86세대에 해당한다. MZ세대는 그 장면을 SNS에 공유하며 열광한다. 

    기존 관행을 깨는 혁신이 Z세대 특징이지만 보수성도 지니고 있다. 세대 전문가 제프 프롬(Jeff Fromm)은 이를 “젊은 몸에 오래된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네이티브로서 글로벌한 소통을 즐기지만 이른바 ‘이유 없는 반항’과 같은 일탈 행위는 과거 세대에 비해 줄었다. 이전 세대가 10대이던 시절과 비교해 경제관념도 철저하다. 완전히 다른 방식의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가진 젊은이에게 “너는 진보다 혹은 보수다”라고 규정하는 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Z세대의 태도를 보면 기존 진보·보수 이분법에서 벗어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진보는 재벌·대기업에 반감을 갖고 보수는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Z세대에게 대기업은 한국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일본 기업마저 제친 대단한 존재다. 동시에 재벌 총수가 벌이는 ‘상식에 어긋난 행동’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거침없이 불매운동을 벌인다. 이를 낡은 시각에 따라 젊은이들이라 역시 진보적이고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Z세대는 공정성을 해치는 행동과 진정성 없는 사과에 분개하는 것이지, 대기업이나 재벌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꼰대’ 아래 뭉치는 X세대와 MZ세대

    1990년대 이후 출생자가 거대 양당 중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여야 정쟁에도 무관심한 편이다. 기성 정당의 86세대나 산업화 세대는 절대 Z세대를 대변할 수 없다. 이해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무슨 말을 해도 ‘꼰대질’이라 여기니 화가 날 만도 하다. 답답하고 소통이 어렵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이 새로운 유권자를 이해하고 대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는 최초의 ‘신인류’로 불리던 세대가 먼저 존재했다. 바로 X세대, 정치인으로 치면 97세대다. 사실 X세대에게 처음으로 ‘X’라는 알파벳이 붙는 바람에(규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 X라 불렸다) 그다음이 Y세대(밀레니얼)가 됐고 Z세대로 이어졌다. 과거 문화 시차로 인해 미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 출생자부터 X세대라고 불리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1970년대생을 의미한다(당연히 글로벌 정체성이 강한 Z세대는 미국·유럽과 세대 시차가 없다). 

    X세대는 ‘낀낀세대’로 불린다. 고령화·정년연장으로 산업화 세대와 86세대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정·재계에서 기를 펴지 못했고, 언제나 ‘차세대’라는 이름만 달고 있다가 ‘권한도 없는 기성세대’가 돼버렸다. 심지어 사회 전반에 MZ세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별로 양보할 게 없는데 뒤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미국 X세대는 승진도 늦고 권한을 별로 가져보지도 못한 채 디지털에 능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밀려나고 있다니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X세대를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로 평가했다. 변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20대 중·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생존을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X세대를 ‘좌절한 개인주의 세대’라고도 부른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바로 그 개인주의 성향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조직에서 집단주의와 위계서열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며 X세대가 자신의 ‘개인주의 정체성’과 ‘개성 추구’(X세대는 ‘취향’보다 ‘개성’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녔다) 성향을 다시 깨달아 ‘pre-밀레니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X세대는 몸은 86세대와 함께하고 있지만 마음은 밀레니얼과 닮아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불황에 공감하는 첫 세대

    정치권 97세대인 박주민(47·1973년생)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윤희숙(50·1970년생) 국민의힘 의원. [뉴스1]

    정치권 97세대인 박주민(47·1973년생)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윤희숙(50·1970년생) 국민의힘 의원. [뉴스1]

    두 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X세대부터 Z세대를 관통하는 성향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다. 책 ‘표심의 역습’에 제시된 통계를 보면 X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강한 개인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산업화·민주화 세대가 집단주의 성향으로 묶이는 것과 비교된다. 한국에서 개인주의라는 단어는 이기주의와 혼동돼 사용되지만 본래 뜻은 개인의 취향·권리를 상호 존중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MZ세대가 “집단에 충성을 강요하는 ‘꼰대질’을 거부하고 나의 취향과 삶을 존중해 달라”고 외치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서태지를 문화 대통령으로 만들며 자유와 개성을 부르짖던 X세대는 20대에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사회생활이 한창이던 30대에는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다. ‘고성장’ ‘호황’과 같은 단어를 역사책에서만 본 Z세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문화 영역에서는 X세대가 MZ세대를 이끌고 있다. 강원 양양을 서핑의 명소로 바꾼 선구자는 X세대다. 제주도와 강릉을 ‘힙(hip)’한 곳으로 만들고 일찌감치 자유를 찾기 위해 조직을 떠나 한국 최초의 ‘힙스터(hipster)’가 된 것도 X세대다. 문화적 감수성 측면에서 밀레니얼은 물론 Z세대와도 연결 고리가 보이는 세대는 X세대밖에 없다. 산업화 세대뿐 아니라 민주화 세대도 “이해를 못 하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MZ세대에게 다가서면서 동시에 윗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있는 세대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도 97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당내 소장파로 불리는 박용진(1971년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권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박주민(1973년생) 민주당 의원, 윤희숙(1970년생) 국민의힘 의원도 97세대다. 정의당 시즌2를 이끄는 김종철 정의당 대표도 1970년생이다. 

    이제 중요한 질문에 답을 해보자. 97세대 정치인이 Z세대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을까. 지금의 거대 양당 구조, 진보·보수의 낡은 이념 대립이 반복된다면 불가능하다. 97세대 정치인은 문화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Z세대와 소통하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Z세대가 말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다양성·공정을 두고 토론해야 한다. Z세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달라질 일자리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97세대 정치인이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면 열렬한 지지를 받을지 모른다.


    새 시대의 부상이냐, 포퓰리즘으로의 추락이냐

    연결된 세상에서 태어나 항상 누군가와 소통하며 사는 Z세대는 역설적으로 매우 외로운 세대다. 연결되지 못하면 불안함을 느끼고, 느슨한 취향 중심으로 진행되는 모임은 공허함을 남긴다. 단절감과 외로움이 극단화할 경우 분노조절장애나 공황장애를 유발하고 타 집단에 대한 폭력 성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내집단과 외집단을 나누는 ‘원초적 구별짓기’가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유튜브나 SNS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인해 극단적 생각을 가진 Z세대가 포착된다. 

    Z세대와 함께 기후변화를 저지하고 좀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 이들을 자극해 퇴행적 포퓰리즘 시대를 열 것인가. 그 기로에 막중한 책임을 진 X세대, 97세대 정치인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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