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호

“이 XX” 폭언으로 물러났다 슬그머니 복귀한 대웅제약 윤재승

[거버넌스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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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10-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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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4개월 만에 ‘CVO’로 복귀

    • 단순 자문만 한다지만… “글쎄”

    • 지분 多=지배구조 ‘이상 無’

    • 대웅제약 “많이 반성·변화하고 있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웅제약 본사. [뉴스1]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웅제약 본사. [뉴스1]

    2018년 YTN이 공개한 녹취록엔 윤재승 전 회장의 폭언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YTN 유튜브 캡처]

    2018년 YTN이 공개한 녹취록엔 윤재승 전 회장의 폭언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YTN 유튜브 캡처]

    “정신병자 X의 XX. 난 네가 그러는 거 보면 미친X이랑 일하는 거 같아. 아, 이 XX. 미친X이야. 가끔 보면 미친X 같아…(중략). 너 이 XX, 변명만 하려고 해. 너 XX처럼 아무나 뽑아서 그래. 병X XX.”

    2018년 8월 27일 YTN은 윤재승(60) 당시 대웅제약 회장이 직원들에게 한 폭언을 담은 녹취록을 공개했다. 해당 보도에서 대웅제약 전·현직 직원들은 “이와 같은 폭언은 일상이었다”며 “말끝마다 이 XX, 쓰레기 XX, 미친 X, 여기서 뛰어내려라 등…”이라고 털어놨다.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2~3년간 100여 명이 퇴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튿날 윤재승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히며 회장직을 비롯한 모든 등기임원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로부터 3년 4개월이 흐른 올해 1월 윤 전 회장은 ‘CVO(Chief Vison Officer·최고비전 책임자)’라는 ‘생소한’ 직함으로 조용히 복귀했다. 대웅제약 측은 “윤 전 회장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단순 자문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명하지만 일각에선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윤 전 회장이 ‘오너’로서 최대 지분을 보유한 이상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회사 사정상 ‘사법 리스크’ 해결을 염두에 두고 검사 출신인 윤 전 회장이 복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너 책임 회피 수단되기도”

    대웅제약은 1945년 경남위생시험소에서 일하던 약사 지달삼이 1942년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가와이제약소’를 인수해 설립한 ‘조선간유제약공업사’를 모태로 한다. 조선간유제약공업사는 이후 1947년 ‘대한비타민화학공업사’, 1961년엔 ‘대한비타민산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같은 해 대표 상품인 간장약 ‘우루사’를 출시했다. 1966년 당시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고(故)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이 회사를 인수해 1978년 현 사명인 대웅제약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에 이르렀다.

    윤재승 전 회장은 작고한 윤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서울대 법과대학 재학 중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사법연수원 16기) 후 1989년부터 6년간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 서울지검 검사 등을 거쳤다. 김현웅 전 법무부 장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다. 1995년 대웅제약에 합류해 승진을 거듭한 끝에 2014년 9월 회장에 올랐다가 2018년 8월 폭언으로 물의를 빚고 사임했다.



    윤 전 회장의 복귀가 알려진 계기는 5월 16일 공개된 대웅제약 분기보고서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윤 전 회장은 올해 1월부터 대웅그룹 지주회사 ㈜대웅, 대웅제약, 계열사 한올바이오파마에서 미등기, 비상근 임원인 CVO로 근무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대웅제약 측은 “계열사들의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관여하기보다는 그룹 전반에 걸친 신성장 동력 발굴과 R&D 투자, 글로벌 사업 현안에 대해 대표이사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자문 역할에 집중한다”며 “대웅제약은 전문경영진 중심의 독립 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지적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CVO는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생소한’ 직함이다. 윤 전 회장의 복귀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꼬집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 문화상 오너가 전문경영인 선임을 비롯해 경영 전반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순 자문 역할에 그치기란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주근 대표는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오너인데, 전문경영인이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이유만으로 오너가 회사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전문경영인을 방패로 세워 경영 책임을 회피하려는 오너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검사 출신 오너’가 주는 메리트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웅그룹의 사법 리스크도 윤 회장의 복귀 배경으로 꼽힌다. 검사로 일한 적이 있는 윤 전 회장의 이력을 통해 법적 문제 해결에 용이함을 꾀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공정위는 대웅제약의 위장약 ‘알비스D’ 특허 출원 과정에서 데이터 조작 등을 확인하고 과징금 22억8700만 원 부과와 함께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올해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대웅제약 전·현직 임직원 4명을 불구속기소하고 대웅제약과 ㈜대웅을 공정거래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대웅제약 측이 2015년 1월 조작한 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특허 심사관을 속여 알비스D 특허를 출원하고 소송 등을 활용해 경쟁사를 견제한 것으로 봤다. 박경서 교수는 “윤 전 회장의 복귀는 대웅제약의 법적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이 판사·검사 출신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밝혔다.

    윤 전 회장의 복귀 비결은 ‘지분율’이다. 박주근 대표는 “한국 기업 지배구조상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갑’이다.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해도 지분만 많이 가지고 있으면 복귀를 막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영 복귀 계획 전혀 없어”

    대웅그룹은 3개의 상장사(㈜대웅, 대웅제약, 한올바이오파마)와 대웅바이오, 대웅생명과학 등 33개의 비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는 지주사 ㈜대웅이 47.71% 지분율로 대웅제약을, 대웅제약이 30.85% 지분율로 한올바이오파마를 지배한다. 지배구조의 꼭대기엔 윤재승 전 회장을 비롯해 고 윤영환 명예회장의 장남 윤재용 전 대웅제약 부사장, 장녀 윤영 전 대웅생명과학대표 등 오너 일가 및 특수관계인이 38.06% 지분을 통해 ㈜대웅을 틀어쥐고 있다. 윤 전 회장은 ㈜대웅 지분 11.61%를 보유하고 있다. ㈜대웅과 대웅제약 지분을 각각 9.98%, 8.62% 갖고 있는 대웅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다.<표1 참고>

    8월 20일 윤영환 명예회장의 별세도 윤 전 회장의 복귀설에 불을 지피고 있다. 최대주주인 윤 전 회장이 이를 명분 삼아 회장직과 경영권을 되찾지 않겠냐는 것. 대웅제약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전문경영인 2인(전승호·이창재 대표이사)이 문제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윤 전 회장이 경영인으로서, 회장으로서 복귀할 일은 없다. 지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윤 전 회장 스스로도 복귀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일축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윤 전 회장은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자문 역할만 하고 있다. 과거 논란으로 물러난 적이 있지만 오랜 자숙 기간을 거치며 많이 반성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이 달라졌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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