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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후 6시 30분, 나의 길티 플레저

  • 이유미 작가

[에세이] 오후 6시 30분, 나의 길티 플레저

[Gettyimage]

[Gettyimage]

몇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가끔 글쓰기나 에세이 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의뢰받을 때가 있다. 1시간 정도 내가 준비해 간 내용을 이야기하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현장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데 그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글은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를 땐 어떻게 하세요?”

이 물음에 내 대답 또한 정해져 있다.

“다른 에세이(책)를 들춰보세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글감이 없다는 것인데, 쓸거리가 없다는 건 명백한 핑계다.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작가의 일상이나 주변 인물들의 관계나 생각이 빠지기 어렵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소재, 즉 글감이 없다는 건 어느 정도 납득은 되지만 그럼에도 쓰는 훈련을 하고 싶다면 다른 책을 들춰보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에세이나 ‘최애’ 작가의 책을 펼쳐서 그가 쓴 동일한 주제를 갖고 나의 경험 혹은 생각을 적는 것이다. 그러면 애써 글감을 찾을 필요가 없다. 같은 글감이라고 해도 결코 같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작가와 나는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짓기 공모전에서 주제를 주고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이 팁은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잘 쓴 에세이를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독자가 쓰고 싶게 만드는 것 또한 그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읽는 이가 글을 쓰고 싶게끔 하려면 일단 가독성이 좋고 쉽게 잘 쓴, 공감할 만한 글이란 뜻이기도 하다.

내게 그런 필자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한수희 작가다. 지금 이 글 또한 한수희 작가의 새 에세이 ‘좋아한다 말하기 부끄럽지만’을 읽다가 바로 노트북을 켜 쓰는 참이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에세이의 큰 주제는 ‘길티 플레저’에 관한 것이다. 길티 플레저란 죄책감을 느끼지만 쾌감도 느끼는 모순적 심리를 일컫는다. 대놓고 사람들한테 “나 이거 해요”라고 말은 못 하지만 몰래 즐기는 작은 일탈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다가 아주 번뜩이며 나의 길티 플레저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때마침 여덟 살 아들이 나의 길티 플레저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20분, 쪽잠의 달콤함

오후 6시 30분, 나의 길티 플레저는 스멀스멀 찾아온다. 보통 이 시간에 외부 일정이 없으면 내가 있는 곳은 내 방 침대 위다. 아이가 태권도 학원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내가 운영하는 책방으로 돌아오면 아이와 함께 퇴근한다. 집과 책방이 워낙 가까워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데, 배고파 하는 아이에게 물만두나 핫도그 같은 간식을 챙겨주고 오전에 돌려놓고 나간 세탁기를 들여다보고 주섬주섬 정리를 대충 하면 6시 반쯤이 된다. 이때 나는 휴대폰을 좀 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낮잠은 아니고 초저녁잠에 드는데 길게 자지도 않고 딱 20분 정도다. 근데 왜 이게 길티 플레저냐고? 그렇다. 나는 이 초저녁잠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 본래 낮잠이라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기도 했다. 아마도 약 18년의 직장 생활 탓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낮잠 자면 큰 죄라도 짓는 것 같았기에 점심식사 후 잠이 쏟아져도 어떻게든 참아야 된다고만 생각했다. 천하장사도 제 눈꺼풀은 못 들어 올린다고 했는데, 아무튼 휘몰아치는 잠을 어떻게든 참으려 커피를 서너 잔씩 들이켰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1시간을 자는 것도 아닌데, 딱 10분이면 아주 맑고 개운하게 다음 일을 해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낮잠 자는 게 해선 안 될 일처럼 여겨졌을까?

낮잠에는 죄책감 남아

2019년 10월을 끝으로 나는 직장을 관두고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섰다. 20대부터 막연히 소망했던 책방 주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동네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워낙 외진 지역에 책방을 차린 터라 운영 시간 대부분은 손님이 없다. 나는 책방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업(?)을 하느라 바쁘다.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의뢰받은 일도 하고 출간을 위해 글도 쓴다. 때로는 책방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도 한다. 아무튼 회사와 달리 나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혼자다.

그렇다면 나는 책방에 찾아온 나의 길티 플레저 ‘낮잠’과 사이가 좋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4시쯤 똑똑 문을 두드리는 낮잠은 너무 달콤하지만 죄책감은 여전하다. 물론 회사에서처럼 눈을 부릅뜨고 참진 않는다. 그저 잠이 오면 오는 대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잠에 든다. 그런데 깨고 나면 기분이 몹시 나쁘다. ‘와하하! 나는 자영업자라서 낮잠이 오면 내 마음대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잘 수 있어!’라고 기뻐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여 급기야 낮잠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을 다소 한심하게 여긴다. 물론 잠이 벼락처럼 쏟아질 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만은 자영업자의 권리이자 사장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책방에서 낮잠을 자지 않은 날은 대부분 집에 와서, 그러니까 6시 30분쯤 슬슬 시동을 건다. 아주 달달한 잠에 취해 말 그대로 선잠을 자는데 이때 아들의 움직임은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해 낸다. 내가 안방에서 쏟아지는 초저녁잠을 받아들일 때쯤 아들은 휴식 시간을 가지며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닌텐도 게임을 하는데 이 녀석이 꼭 내가 잠들 때쯤 안방에 들어와 “엄마 또 자?”라고 말한다. 밤이 아닐 때 자는 모습을 들키기 싫은 나는(왜?) 아들이 소파에서 일어나 발을 떼는 소리만 들어도 눈을 번쩍 뜨고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으로 말한다. ‘엄마 안 잔다!’

매일 챙겨야 하는 영양제

내가 늘 이 시간에 초저녁잠을 (정말 거의 루틴처럼) 자다 보니 아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날 깨우려든다. 그때 꼭 하는 말이 “엄마 배고파!”이다. 몸이 모래주머니 단 것처럼 무거워도 아이가 배고프다고 한 마디만 하면 벌떡 일어나지는 게 엄마인지라 그걸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배고프다고 하면 엄마는 벌떡 일어나 “뭐 줄까? 지금 저녁밥 줄까?” 하는 걸 알기에 엄마를 깨우려면 무조건 ‘밥이다!’를 깨우친 걸까?

오늘은 그런 아들이 너무 얄밉고 괘씸했다. 정말 달게 자고 있었는데 그래봤자 10분쯤 잠에 든 것 같은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더니 “엄마 배고파 밥 줘!”라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20분 전에 물만두 삶아서 우유랑 준 참이었다. 다 먹지 않은 물만두 접시가 거실 테이블에 버젓이 있는데 나를 깨울 요량으로 배고프다고 소리쳐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너 정말 왜 그래! 엄마 자는 꼴을 왜 못 봐!”

배고파서 날 깨운 것이 아닌 게 확실한 아이는 제 잘못을 알았는지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며 글을 썼던 소설가 도리스 레싱은 때때로 전화기가 울리지 않길 바라며 잠깐의 잠을 청했다고 했다. 그에게 수면은 친구이자 회복 전문가이자 즉석 해결책이었다. 나 또한 내 바이오리듬에 맞춰서 찾아오는 이 손님을 거절하고 싶지 않다. 초저녁잠 20분으로 나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를 씻겨 재운 다음 새벽 2, 3시까지 글을 쓰다가 잠들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워킹맘에게 초저녁잠이란 길티 플레저는 매일 챙겨야 하는 영양제일지도 모른다.

이유미
● 前 29㎝ 카피라이터
● ‘자기만의 책방’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카피쓰는 법’ 등 발표.



신동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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