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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지면 尹 레임덕? 당장 올해 여름이 위기” [+영상]

[Special Report | 윤석열과 ‘나’] ‘마이웨이’ 이준석 前 국민의힘 대표의 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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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4-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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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이 손 내밀어도 신용 거래는 없다

    • 책임지지 않는 ‘술 리더십’ 의미 없어

    • 尹, 본인이 영도자여서 이긴 줄 안다

    • 대구 서문시장은 ‘박근혜의 공간’

    • 김종인김무성 다 바람맞혀놓고…

    • 중선거구제에선 민주당이 다수당

    • 간첩 잡아서 누구 표 받겠단 건가

    [+영상] 윤석열과 ‘나’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⓵



    [+영상] 윤석열과 ‘나’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⓶



    4월 9일 경남 진주시의 한 전통찻집에서 만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4월 9일 경남 진주시의 한 전통찻집에서 만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4월 9일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경남 사천공항에 착륙한 시각은 오전 9시 53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는 이날 경남 진주시에서 2건의 일정을 소화할 참이었다. 오후 2시 진주시의 한 교회를 찾는데, 그전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전남 순천과 경남 진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진주시 한 전통찻집. 그는 약속 시각보다 미리 도착해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침밥으로 해장국 한 그릇을 먹고 왔다고 했다. 여의도 바깥에서 만나서인지 출장 나온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그가 정계에 데뷔한 건 2011년 12월이다. 12년 중 야당 소속일 때보다 여당 소속일 때가 길었다. 권력의 지척에 있었지만 주류(主流)에 몸을 의탁한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는 박근혜가 발탁한 비상대책위원, 박근혜 정부 때는 비박계의 일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반윤(反尹)의 구심점이 됐다. 치열한 싸움꾼이었다. 언젠가 기자와 만났을 때 “누군가 찍어 누르려 하면 두들겨 부수고 싶다”고 했다. 권력도 어찌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기질이다. 권력에 빚진 게 없으니 고개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고로 이준석 특유의 언행은 기질의 산출물이다. “바보들” “시답지 않은 소리” “이상한 짓” “그 정도 정신머리” “수준 이하” “뒤통수” “좋은 아저씨 노릇이나 하려는 것” “하수인”…. 이날 그가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들을 향해 쏟아낸 단어다. 본심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보는 사람의 자의식이 스며 있다. 자리 부탁할 처지가 아니니 거리낌이 없다. 마음에 없는 표정 따위는 짓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좌충우돌과 도발을 마다하지 않는 ‘이준석 스타일’이다.

    생래적 반골(反骨)이다. 남들이 으레 가는 길로 가본 적이 없다. 그 길을 가면 자신이 소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그가 택한 “윤석열에 대한 증오·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식의 공격”이 오판이었다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지를 얻어 튼튼한 발판을 만드는 게 우선”(경향신문, 2023년 3월 15일자)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었다는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빌려 강 교수에게 이렇게 답했다.

    “강 교수가 하는 말이 일반적 해법이다. 나는 일반적 해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해법을 만들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반적 해법을 부정했다. 호남의 ‘난닝구 정치인’들과 함께하면서 (위기를) 뚫고 나가는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대를 구축했다. 그 여파로 탄핵도 당했고 고생했지만 나는 그 길이 맞는다고 본다. 3당 합당 거부는 노무현의 객기였고 그것이 노무현에게 10년간의 고행을 안겼지만, 그 결기가 십수 년 뒤 대권에 나갈 때 올곧게 행동할 시초가 됐다. 내가 택한 방식 탓에 고행이 있더라도 나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복원할 생각이 없다. 고행의 서사를 곧이곧대로 밀고 나갈 심산이다. 그에게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손을 내밀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묻자 되돌아온 답은 이렇다.

    “미리 고민할 필요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난다 해도 안철수 의원한테 (대선후보 단일화 당시) 얘기한 것처럼 ‘종이쪼가리 뭐가 필요하겠나. 나를 믿어라’ 하면 아무도 안 믿지. 이제 신용 거래는 없다. 현찰 거래밖에 안 된다.”

    윤석열 리더십과 김무성 리더십

    애당초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과 ‘직설적이고 자유분방한 이준석’ 간에는 불화의 소지가 도사렸다. 야심가라는 공통점 말고는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검찰 조직에 드리운 질서단합상명하복 등의 단어는 이준석의 길과 아스라이 멀어 보인다.

    윤 대통령이 술을 통한 교유(交遊) 방식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정치에도 다양한 리더십 모델이 있을 수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큰형님 리더십’의 정치를 했다. 의견이 충돌했을 때 ‘이번에 한 번 내 말 믿어봐. 나중에 책임질게’라는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형님 믿고 갔는데 형님이 뒤통수치면 이 시스템은 끝난다. 술 한잔 먹고 ‘짝짝짝’ 했다면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고 잘못됐을 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게 사라진 상태에서의 ‘술 리더십’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상대 입장에서 불쾌한 기분밖에 안 남는 거지.”

    이 전 대표가 술자리를 거절해 윤 대통령이 불쾌해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준석을 나쁜 놈 만들어야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할 게 없잖나. 선거도 이겼고. 그러니까 윤 대통령이 술을 권했는데 마시지 않아서 불쾌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만든 거다. 국내 정치에서는 몰라도 외무대신 출신인 기시다 일본 총리와 술 마시고 ‘짠짠짠’? 이건 아니다. 정작 노조하고는 ‘짠짠짠’ 안 한다. 꼭 자기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한다. 만약 그것이 (본인이) 지향하는 정치 방식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왜 못 하나?”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범법자라 인식해 못 만난다 해도 다른 민주당 인사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 대표가 범법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만날 수 있는 거다. 그것이 대범한 정치다. (윤 대통령 리더십은) 김무성식 ‘큰형님 리더십’과 너무 다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젊은 사람들한테 캐리어나 굴리는 사람처럼 돼 있지만, 김 전 대표는 뒤끝은 없다. ‘이렇게 가자’ 했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믿고 갔더니만 내 뒤통수를 치네?’ 이러면 다 떨어져 나가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입당 전 윤 대통령 자택에서 두 차례 만났다고 했다. 맥주를 곁들이면서 나름 속 편한 얘기를 할 만한 분위기 아니었나.

    “저녁 먹고 만난 자리라 맥주밖에 먹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한 캔 마셨나 두 캔 마셨나….”

    무슨 얘기를 나눴나.

    “그야말로 상견례였다. 내 입장에서는 공개하면 안 되는 자리였고. 당대표가 유력 대선후보를 사전 접촉한 셈이 되니 나는 공개를 안 했다. 나중에 언론에 기사가 나니까 우리 쪽에서 공개했느냐면서 그때부터 적대시하더라. 이해가 안 간다.”

    그는 4월 4일 MBC 라디오에 나와 “정말 아쉬운 부분이 뭐냐면 윤 대통령이 속내를 말씀 안 한 것, 저한테는 단 한 번도 말을 놓은 적이 없다. 항상 ‘대표님’이라고 불렀다”면서 “장예찬 이사장(현 국민의힘 최고위원)한테는 계속 ‘예찬아’라고 말하는 게 많았다”라고 했다.

    “그 마인드가 이해 안 간다”

    인터뷰를 마친 뒤 진주 촉석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인터뷰를 마친 뒤 진주 촉석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에게 말을 높였다 해서 속내를 숨겼다고 단정할 수 있나.

    “그 뒤에 나온 체리따봉(윤 대통령이 권성동 의원과의 텔레그램 대화에서 사용한 이모티콘) 때문에 다 아는 거지. 내가 장예찬 최고위원이 조금이라도 부러워서 그런 얘기를 했겠나? 장 최고위원은 정신 못 차리고 ‘준석아 불러줄게’ 이런 얘기하던데, 그 정도 정신머리 가진 사람들이 지금 최고위에 있는 것이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편하게 대했던 건 언제였나.

    “지지율 오르니 좋아하더라.(헛웃음) 그런 기억(편하게 대한)은 별로 없다. 나는 가장 충격이,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끝나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경기지사 선거 패배를 내 탓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경기지사 공천 과정에서 당 주류가 조직적으로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했다는 얘기가 정설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었나.

    “언론에 나온 그대로다. 유 전 의원도 그걸 극복하기 위한 여러 작전을 갖고 있어야 했다고는 보지만, (윤 대통령) 본인이 김은혜 후보(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더해, 유 전 의원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결합해 그렇게 한 거잖나. 그럼 결과에 대해 본인이 책임지는 게 맞다. 다른 사람 탓하면 안 된다.”

    경기지사 선거 패배는 김은혜 후보의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이었다고 보나.

    “선거운동 첫날 김은혜 후보와 같이 부천역에서 인사를 했다. 그다음부터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내 일정을 다 캔슬(취소cancel)시켰다. 선거 내내 경기도에서 아무데도 못 가게 만들었다. 후보 쪽에서 오지 말라더라. 그래놓고 선거 5일 앞두고 질 것 같으니까 갑자기 나한테 와달라고 난리더라. 굉장히 화났지만 나가줬다. 자기네가 경기도 날려 먹은 뒤에 나한테 선거 진 걸 탓하는 그 마인드가 이해가 안 간다. 어떤 덜떨어진 윤핵관이 (윤 대통령에게) 가서 ‘이준석이 경기도 선거 안 돕는다’고 보고했다는 것 아닌가? 정신 나간 거지.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네가 이준석 없이 이겨보겠다고 했으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고. 그냥 수준 이하다.”

    여권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 중 하나는 ‘이준석의 대선 기여도’에 대한 태도다. 주류는 이준석 탓에 20대 여성이 민주당 쪽으로 이탈해 질 뻔했다고 주장한다. 비주류는 이준석이 내건 세대포위론(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인 60대 이상과 신지지층인 20·30대의 결합을 통해 여당 지지층을 포위) 전략이 효과를 냈다고 본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성과 내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이) 영원히 모르리라 생각한다. 지난 선거에서 이준석은 득표에 엄청난 마이너스였다고 대통령이 말하고 다니잖나. (내가) 내부 총질했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득표에 플러스된 사람이 누군지 찾아야 하는데, 이준석은 아니었다고 선언했으니 전광훈 목사인가? (결국) 다 마이너스인데 ‘내가 위대한 영도자여서 선거에 이겼다’는 생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선거 때 (득표에) 플러스가 됐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지난 1년 동안 해온 모든 것이 객기고 오만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 그걸 못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성과를 내기 위해 연금·교육·노동개혁 등 3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 않나.

    “노동개혁이라면서 나오는 게 ‘노조 때려잡기’ 아닌가. 교육개혁이면 인재를 어떻게 길러낼지에 대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하는데, 좀 있으면 ‘교원 노조’ 털겠다고 할 것 같다. 개혁이 ‘악인 만들어 때려잡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마약 사범을 열심히 잡겠다고 하는데, 마약 사범이 갑자기 많아진 걸까 아니면 그것을 띄운 걸까. 마약 사범은 계속 잡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신문에 등장하게 만든 힘은 권력기관에 있다.”

    잘하는 걸 하는 尹

    사정기관의 힘이 강하다는 말이 있긴 하다. ‘검사 정권’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검사는 평생 수사와 수사를 기획하는 일로 살아온 사람이다. 현시점에서 그걸 어떻게 국정과 연결하겠다는 건지가 참 모호한데, 하여튼 (윤 대통령이) 잘하는 걸 하고 있는 거다.”

    총선을 앞두고 국정 운영의 축을 수사 쪽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아무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바보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나는 이 대표가 자기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을 리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 가서 ‘공동 지갑론’이 나와야 한다. 누군가 이 대표를 위해 대신 돈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 말이다. 지금 (이 대표가) 돈 받았다고 증명을 못 해서 (검찰이) 배임으로 걸었다. 간단한 수사가 아닌데 (여기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버린 게 나는 가장 문제라고 본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범죄자 취급해 왔다. 대일 외교의 경우, 이 대표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없으리라는 자신감을 갖고 물어봤어야 했다. 이 대표가 더 나은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면 (정부 방침에) 반대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더 나은 대안을 내놨다면 그대로 가면 될 일이고. 한데 그런 수를 쓰지 않았다. 집권 뒤 ‘리스크 헤징(risk hedging)’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걱정이다.”

    윤 대통령이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기사(‘중앙일보’ 4월 3일자)가 나왔다.

    “장예찬 최고위원이 싸운다면서 안민석 민주당 의원 아들의 학폭 의혹을 제기했는데,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싸움은 이상한 도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대통령을 만났을 때 매번 ‘대전략이 무엇이냐’ 물었다. 폼나는 일정표는 나도 당장 짜줄 수 있는데, 당신이 가진 대전략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대선 기간 내내 답을 듣지 못했다. 누구 표를 받을지에 대한 대전략이 없으니 전술은 산발적이다. 간첩 잡아서 누구 표를 받겠다는 건가.”

    윤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자주 찾는다.

    “윤 대통령은 대구에 연고가 없다. 서문시장은 ‘박근혜의 공간’이지, ‘이명박의 공간’이었던 적도 없다. ‘박근혜의 공간’에서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검사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혼란스럽게 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전남 순천도 찾았다고 반론한다.

    “정치인들이 순천에 가면 보통 여순사건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한다. (윤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예전(대선후보일 때) 기차 타고 갔을 때도 안 했다. 제주에서도 한덕수 총리가 대독한 추념사를 보면 4·3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보다는 미래 일자리를 얘기했다. 상갓집에 가서 미래 일자리 얘기하는 사람이 있나? 저렇게 지지율이 다급한 상황에서 4·3에 낼 메시지가 있었다면 안 갔겠나. 거기 모인 사람만 1만 명이 넘었는데.”

    “그냥 어퍼컷 한 거잖나”

    그는 대선에서 주연급 역할을 한 정당사(史) 최초의 당대표다. 30대이자 공학도이니 법률가로 채워진 윤석열 정부에서 보완재가 될 수도 있었다. 주류 처지에서 문제는 그가 ‘얼굴마담’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각자 기대하는 역할이 달랐으니 갈등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이준석은 자신이 주춧돌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정권을 향해 대포를 쏜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는데, 재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선 때는 언론 대응을 거의 다 이준석이 해줬다. 언론 메시지의 80% 가까이가 이준석이 장악하고, (후보) 본인은 돌아다니면서 그냥 어퍼컷 한 거잖나. 80%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의 문제인데, 조수진 의원의 ‘쌀밥 먹자’ 이런 메시지가 나오니 (윤 대통령도) 황당하겠지.”

    윤 대통령에게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은 누구인가.

    “안 본 지 9개월 가까이 돼서 최신 업데이트는 안 돼 있는데, 윤핵관 문제의 본질은 윤핵관을 제어 못 하는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술자리에서 당대표한테 ‘이XX 저XX’ 하고 다니면 윤핵관 들으라는 소리 아닌가.”

    정무적으로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인물이 안 보인다.

    “대한민국 보수 원로 중 정책과 정무기획의 최고봉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고, 조직이나 형님 리더십의 최고 대가는 김무성 전 대표인데 (윤 대통령이) 두 사람 다 바람맞혔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대선 때 쫓아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민주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맡긴다고 했다가 (기용설이) 사라져 버렸고. 원로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지 않을 것이다. 원로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방송에 나와서 내각제 하자고 한다. ‘대통령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이 기분 나쁘겠지만 무슨 의미인지 들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는 김건희 여사인가.

    “김 여사가 약한 고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설마 대일 외교를 김 여사가 했을까?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어 리스크가 된다면, 이미 대선 때 반영됐다. 김 여사가 인사 추천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정 방향을 결정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오롯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과반을 얻는 데 실패하면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 중선거구제로 바꾸자고 하는데,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우리 당 국회의원들이 다 반대할 거다. 내년까지 안 간다. 올해 여름을 못 넘길 것이다. 영남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줄어든다고 중선거구제 하지 말자고 난리칠 거다.”

    괴담이라고는 하지만 ‘검사 60명 공천설’이 나온다. 검사들은 험지나 격전지보다는 서울 강남이나 TK에 갈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현역 의원들과 갈등이 불가피한데.

    “60명을 갈아치우려면 영남에서 20~30명 갈아치워야 한다. 누구 꽂았을 때 안정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지역구가 TK 25곳, 경남 10곳 정도밖에 안 된다. 과거 보수당에는 교수·관료 출신 공천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국회의원 떨어져도 연금 나온다. (권력자가) ‘공천 자르겠다’ 하면 ‘연금 받으며 살지. 대신 공기업 이사하면 편하겠네’ 식으로 내부 조정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 당 영남 의원 상당수가 시의원·도의원·구청장 출신이다. 이들은 그만두라고 하면 내일부터 방법이 없다. 지역구에 누구를 넣으면 무소속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 입장에서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놈이 떨어지는 게 다음 번에라도 도전해 볼 기회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Anything but Lee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조영철 기자]

    그는 상대의 수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어법을 구사했다. 누가 반론을 펴기라도 하면 논리적으로 야금야금 반박할 기세다. 선수와 관전자의 정체성이 한데 뒤엉킨 분석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윤 대통령 처지에서는) 수도권에 ‘가나다’ 후보를 내서 나번, 다번이라도 당선시켜 내 사람을 (국회에) 꽂기 위해 중선거구제를 해야 하는 것이다. 노원구를 예로 들면, 중선거구제에서 노원·도봉 내지 노원·중랑이 한 지역구가 될 텐데 보수가 두 명 당선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중선거구제로) 구의원 선거하면 민주당이 두 명, 우리 당이 한 명 정도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4인을 뽑는 선거구제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결과는 ‘민주당 둘, 우리 당 하나, 정의당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중선거구제에서 의석이 완전히 쪼그라들어 3당 비슷한 수준으로 갈 수 있다. 대통령이 모르면 심각한 거고, 알고 이러는 거면 진짜 자기 사람 꽂고 싶어 난리인 거다. 영남에서 4명을 뽑으면 ‘민주당 둘, 우리 당 둘’이 되겠지. 그러면 우리 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얻을까? 다 뺏긴다. 강원도와 충청도도 절반을 내줄 테고.”

    무조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00%다. 그러니까 바보들이다. 중선거구제를 진짜 하고 싶었으면 호남에도 투자해야지. 이 학생은 어떤 과목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꿈은 서울대라니까.”

    1970년대 출생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을 출마시켜 세대교체를 꾀할 수도 있지 않나.

    “세대포위론의 핵심은 6070세대와 2030세대의 연합이다. 그 방식으로 4050세대를 공략한다면 내가 인정하겠다. 가능하다면 세대포위론보다 훨씬 센 전략이지. 그러면 영구집권이지.”

    할 테면 해보라는 투다. 무엇이건 세대포위론을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보수에는 험지인 서울 노원구에서 수차례 선거를 치러 ‘산토끼’의 속성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지지자보다 비판자가 많았던 지역구이니 반대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데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여당 후보가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8.0%를 득표해 5위를 했다.

    “나는 ABL, 애니싱 벗 이준석(Anything but Lee)이라고 표현한다. 이준석이 한 일은 모두 부정해야 하니 호남에도 투자하면 안 되고 젊은 사람들한테도 투자하면 안 되고 맨날 무슨 간첩 잡겠다고 그러고 앉아 있고. 그 궤도에서 못 벗어나면 영원히 보수가 집권 못 한다. 옛날 김신조처럼 총 들고 내려온 간첩 잡는 것도 아니다. 요즘 간첩들은 G메일로 지령받고 비트코인으로 송금받는다. 간첩이 와서 요인을 암살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굉장한 안보 위기가 왔다고 국민한테 계속 경고등만 울리면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이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그는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팀의 감독 역할을 했다. 당대표에 출마한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14.98%를 얻어 3위로 낙선했다. 선전했다는 평과 이준석계의 한계라는 반론이 공존했다.

    ‘천아용인’에 이 전 대표의 그림자가 너무 크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억지 프레임이다. 지난 선거에서 지령받은 사람이 천하람일까, 김기현일까? 길거리 나가서 물어보면 (김 대표에 대해서는)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하수인 얘기가 나온다. 계파라면 하기 싫은 일도 의무로 부과하는데, 나는 천아용인에 ‘뭘 해라 말라’ 얘기하지 않는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세력화·조직화에 눈을 떴나.

    “나는 누구들이 하듯이 세력화·조직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김기현 대표에게 세력이 조금이라도 있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세력이 있나? 없다. 세력화·조직화는 ‘김무성식 큰형님 리더십’ 정도 되면 가능하다. 나는 ‘나 믿고 가자’라는 말을 잘 안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이권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재명 대표 주변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권 공동체를 할 생각도 없다.”

    “TV에 나오는 사람이잖아”

    총선 국면에서 여야 공히 마주한 변수는 분열이다. 국민의힘에 주어진 질문은 두 가지다. ①이준석에게 공천장을 줄까. ②이준석을 위시한 세력이 탈당해서 독자출마할까. 둘은 밀접히 맞물려 있다. ②가 현실화하면 민주당도 분열해 총선이 다자 구도로 치러질 공산이 커진다. 그의 행로가 휘발성이 큰 이유다.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돈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얘기한 적이 없다. 노원병에 출마해 당선되는 게 나에게 상수인데, 저쪽에서 변수를 만든다면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는 생각한다. 미리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미리 알릴 필요도 없다.”

    경남에 공천을 주지 않자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해 당선된 홍준표 대구시장이 기준이라고 한 적 있지 않나.

    “그 길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그 외에도 길은 무궁무진하다. 몇 천 가지의 수가 있는데, 미리 한쪽 방향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진주 촉석루에 올랐다. 그가 나타나자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TV에 나오는 사람이잖아. 나이 든 사람들이 괴롭히는 젊은 사람.” 민심은 대개 권력과 충돌하는 자의 편이다. 그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세상엔 그를 핍박받는 자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것이 이준석의 정치를 지탱하는 에너지일지 모른다.

    신동아 5월호 표지.

    신동아 5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내 몸을 살리는 생각 수업’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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