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이어 JB… 행동주의로 증권시장 돌풍
이사회 견제 키워드, 주주제안 사외이사
“경영 잘 한다고 주가 오르는 것 아냐”
국민수준 올라 행동주의 펀드 ‘먹튀’로 안 봐
지배구조 개선+상속세·배당소득세율 인하=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지배구조’ 한 마디로 답 가능”
한국 기업 문화에서는 오너가 지분율을 무기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게 상례다. 주주 제안을 한다 해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벽’에 가깝다. 2021년부터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은 ‘행동주의’로 벽을 허물며 증권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시작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였다. 그해 9월 얼라인은 SM 지분 0.92%를 확보한 후 SM의 매출 6%를 가져가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 계약 문제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결국 SM과 라이크기획 간 계약을 종결시키고 이 전 총괄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다음 타깃은 금융지주. 올해 1월 2일 국내 7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를 상대로 주주 제안에 나섰다. 자본배치 정책 및 중기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했다. 금융지주사들은 화답했다. 2월 2일 BNK금융지주가, 8일엔 신한금융지주, 9일엔 하나금융지주·DGB금융 등이 전년보다 더 나은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제시했다. 얼라인이 다시금 벽을 허문 셈이다.
얼라인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이창환(37) 대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골드만삭스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거쳐 2021년 9월 얼라인파트너스를 창업했다. 4월 3일 서울 여의도 얼라인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행동주의 펀드가 캠페인을 펼쳐 성공을 거둔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간의 성과에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배구조’를 꼽았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며 “주주 평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상속세·배당소득세율을 낮춰 대주주에게 주가 부양 동기를 줘야 한다”며 제도적 개선이 병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4월 3일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행동주의 펀드라고 해서 무작정 싸우려고 드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JB, 경영 능력과 주가는 별개
SM 다음으로 금융지주사들에 주주제안을 했다. 왜 금융지주사였나.“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기업 가운데 가망 없는 회사가 있다. 대주주가 60~70%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은 건드려도 소용이 없다. 상속세·배당소득세 때문에 대주주가 주가를 올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지주사는 지분이 분산돼 있어 이런 문제가 덜하다. 또 경영진이 대개 금융 분야에 전문성 있고 주주 친화적 경향이 있다. 적절한 계기만 제공되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융지주사는 CEO의 ‘셀프 연임’이나 ‘거수기’ 사외이사 등 지배구조가 문제로 거론되지 않나.
“그나마 다른 기업들보단 낫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인 건 맞다. 주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렇다. 감시받지 않으면 당연히 경영진으로서는 말 잘 듣고 반대 안할 사람을 이사회에 들인다. 사외이사의 원래 목적인 견제가 잘 되지 않게 된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오너가 경영하는 기업은 ‘오너 프렌들리’, 전문경영인이 있는 기업은 ‘전문경영인 프렌들리’ 사외이사가 생긴다. 얼라인이 JB금융지주에 주주제안 사외이사 임명을 요구한 이유다. 꼭 필요하다. 그마저 없으면 이사회는 견제 기능이 마비되고 균형을 잃는다.”
2월 얼라인은 JB금융지주에 주주제안을 했다. 배당성향 상향을 통해 1주당 900원을 배당할 것과 김기석 전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서울지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관철시키진 못했다. 3월 30일 전북 전주시 JB금융지주 본점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얼라인의 요구는 부결됐다. 배당금은 1주당 715원으로 정해졌고 김기석 전 지점장도 사외이사로 임명되지 못했다. 이날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은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말에 “얼라인을 비롯한 주주들은 글로벌 금융기관 수준 주가로 주식을 사서 주주가 된 게 아니다. 현재의 낮은 주가로 주식을 사서 주주가 됐다”며 “그랜저를 사고 나서 왜 내 차가 페라리나 BMW 같지 않으냐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JB금융지주는 얼라인의 요청을 거부했다. 타 금융지주와는 다소 다른 양상인데.
“JB금융지주 경영진이 실적을 잘 내고 있다. 능력 있는 경영진 맞다.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우리 잘 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경영 능력과 주가는 다른 문제다. 경영을 잘한다고 해서 주식시장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주가 저평가 문제는 자본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잘 안다. 얼라인과 같은, 외부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김기홍 회장의 ‘그랜저’ 발언을 듣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부적절하다. 국내 은행주는 다 싼데, 왜 미국이나 싱가포르의 그것과 비교하느냐는 건데…. 동의할 수 없다. 주가가 높아질 방법은 분명히 있다. 김 회장에게도 ‘적극적으로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결국 받아들여줄 것이라 믿고 있다. 만약 듣지 않는다면 끝까지 간다. 내년 주총 또 가는 거다.”
주식회사 주인은 주주
얼라인 외에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 펀드는 증권시장의 화두였다. FCP, 안다자산운용 역시 KT&G에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사외이사 임명 등 주주제안을 했다. 3월 28일 주주총회에서 사실상 완패하긴 했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주목조차 받지 못하거나 ‘기업 사냥꾼’ 정도로 여겨졌던 과거에 비하면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행동주의 펀드의 명분에 공감하는 소액주주가 많음을 방증한다.외환위기 때 외국계 펀드가 한국 기업을 헐값에 산 바 있어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근래엔 퍽 달라진 듯하다.
“사회가 많이 바뀐 것 같다. 2019년 말 기준 국내 주식투자자가 약 600만 명이었다. 2021년 말 기준 1400만 명으로 늘었다. 역사상 제일 빠른 속도다. 한국 주식뿐 아니라 미국 주식도 산다. 그러면서 글로벌 스탠더드 등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유튜브가 발달해 전문 지식도 쉽게 접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예전처럼, 더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아니다. 국민 수준이 높아지니 여론도 바뀌었다. ‘먹튀’니 ‘기업 사냥꾼’이니 하는 프레임에도 호응하지 않는다. 행동주의는 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목적은 주가 저평가 해소다. 한국 시장 자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태로 평가받는다. 원인이 뭘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기업 지배구조. 기업의 자원 배분, 경영 전략을 일컫는다. 예컨대 주식회사는 주식 보유 비율대로 이익과 손해가 ‘n분의 1’이 돼야 한다. 주주 평등 원칙이다.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개 회사의 주인은 ‘오너’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SM도 이수만 전 총괄이 주인이라고 인식되지 않았나. 실제론 모든 주주가 주인이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현행법상 주가 저평가에 대해선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할 수 없다.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다음으론 세금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60%다. 너무 높다. 주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어느 오너가 주가를 올리려 들까. 배당소득세율도 50%에 달한다. 배당하면 배당금 절반을 세금으로 반납한다. 배당 성향을 높일 이유가 없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들고 있다. 제도를 바꾸는 건 쉽지 않지만 지금도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도 그 일환이다. 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되겠지만 결국 기업에도 더 좋다.”
행동주의 펀드, 싸움꾼 아냐
2월 1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몽 경제인 만찬에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프로듀서가 기조연설을 마친 후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주주제안을 통해 이 전 총괄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 SM엔터테인먼트 계약을 파기하고 이 전 총괄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뉴스1]
“전혀 그렇지 않다. 상식적으로, 누구라도 대주주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나조차도 대주주라면 지금과 같은 세율 하에선 주가를 올리지 않을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스웨덴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이렇게 돼야 한다’, ‘당장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아니지만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대표적 오해인데, 행동주의라고 해서 무작정 싸우려고 드는 게 아니다. 원만한 합의를 통한 개선을 더 선호한다. 금융지주사만 해도 JB금융지주를 제외한 6곳과는 분쟁이 없었다. 외부에 안 알려지는 게 많고, 이것이 더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십중팔구가 비공개 대화선에서 끝난다. 우리도 싸우면 피곤하고 힘들다(웃음). 일부러 싸우려 드는 사람 아무도 없다. 긍정적인 부분은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한 사례가 많이 생겼다는 점이다. 기업들도 싸움이 힘듦을 느꼈을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대화를 더 많이 시도할 테고, 합리적으로 조율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
금융지주사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기업이 있나.
“그때 가서 주가 상황을 봐야 하지 않을까. 통상적 경우를 말하자면 얼라인은 우량한, 큰 기업 가운데 주가가 저평가 상태이면서 사업이 안정적인 곳을 지켜본다. 사실 행동주의 자체가 목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행동주의는 수단일 뿐이다. 좋은 회사이면서, 개선 가능한 이유로 저평가돼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자들에게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안겨주는 게 궁극적 목표다. 향후엔 우호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 물론 잘 안 되면 다시 주주제안을 하겠지만 비중은 점점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라인만의 투자 원칙이 있다면.
“워런 버핏은 ‘기업을 소유한 것처럼 투자하라’고 말한다. 주식 투자에선 매매를 통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투자자가 있고, 기업을 소유해 파트너로서 기업 가치를 함께 높여가겠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있다. 후자의 마인드를 ‘동업자 정신’이라고 하는데, 얼라인은 이에 더 가깝다. 장기 투자를 한다. 샀다가 몇 달 만에 팔지 않는다. 몇 년 들고 갈 생각으로 보유해 회전율이 낮다. 투자의 분산 정도도 낮은 수준이다. 몇 개 종목에 집중 투자한다. 아마 일반적 펀드 투자와는 달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자본주의 생태계를 위해선 얼라인과 같은 펀드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린 전략상 이럴 수밖에 없다. 주식을 샀다가 금방 팔아버리면 어떤 경영진이 우리 요구를 귀담아듣겠나.”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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