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당락 가르는 3요소… 구도·인물·바람
야당서 기대하는 총선 구도는 ‘정권 심판론’
‘좋아서’ ‘필요해서’가 아니라 ‘미워서’ 찍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아직은 ‘관계자’와 유권자 사이에 온도차가 상당하다. 여름이 지나고 다시 선선해지는 가을이 와야 그 온도차가 줄어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현재로선 누가 총선에서 이길지 알 수 없다. 처지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우리가 이겨야 한다”거나 “저쪽이 질 것”이라는 당위와 희망을 말할 순 있겠지만 1년 남은 총선 결과를 지금 맞히라는 것은 예측과 전망이 아닌 ‘예언’의 영역이다.
다만 앞으로 1년 후 선거 구도를 결정짓고 1년 후 총선 결과에 영향을 크게 미칠 구조적 요인은 지금부터 점검해 볼 수 있다. 흔히 선거의 3요소를 구도, 인물, 바람이라고 한다. 꼭 그런가 싶긴 하지만 선거를 이해하기에 제일 적합한 프레임인 것만은 분명하다.
선거는 ‘심판’ ‘평가’ 성격 강해
먼저 구도의 측면을 살펴보자. 모든 선거는 심판과 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나 유권자에게 ‘이번 선거에서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정책이 중요하다. 정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선거를 보고 싶다”라고 답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유권자들은 대체로 ‘미워서’ ‘좋아서’ ‘필요해서’ 후보를 선택한다. 이 가운데 맨 앞의 것이 ‘미워서’다. 특정 진영이나 그에 소속된 후보가 ‘미워서’ ‘심판하기 위해’ 상대방을 찍는 것이다. 두 번째는 포지티브한 지지 측면인 ‘좋아서’인데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나 정치 외에 다른 영역에서 실적을 쌓고 선거에 처음으로 출마한 신인이 주로 해당된다. 최근 나타난 팬덤 정치의 경우 ‘좋아서’의 본질도 실제로는 ‘미워서’인 것 같다. 세 번째 ‘필요해서’는 정책이나 공약의 강점에 좌우되는 항목이다.
이상적으로 보면 ‘좋아서’ ‘필요해서’의 경쟁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평소 이념 대결이 치열하더라도 선거가 닥치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정책 차별성도 점점 약해진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미워서’가 점점 힘이 세지는 것이다. 이 ‘미워서’가 바로 심판이고 평가다. 심판과 평가는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유권자가 ‘갑’의 위치에서 심판하고 정당과 후보가 ‘을’의 처지에서 심판받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나.
‘미워서’가 너무 강해지면 ‘좋아서’와 ‘필요해서’도 결국 ‘미워서’에 종속되고 만다. 미운 상대방을 잘 때리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선거 당락을 가르는 데 ‘구도’의 힘이 제일 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40% 정도 보낸 시점에서 실시된다. 정부와 여당의 국정 운영을 중간 평가하기에 딱 적절한 시점이다. 야당이 제일 기대하는 구도가 바로 이 지점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좋지 않다. ‘당정 일체’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실과 호흡을 잘 맞추는 새 여당 지도부가 출범하고 통상적으로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정상회담을 해도 오히려 더 낮아졌다.
‘미워서’ 선거 구도 여야 팽팽
절대평가뿐 아니라 상대평가도 좋지 않다. 한국갤럽이 4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내년 총선 구도를 묻는 질문에 “현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로 나타났고,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정부 여당이 ‘미워서’ 야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과반이다. 정부 지원론(42%)과 견제론(44%)이 팽팽했던 한 달 전과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그렇다면 다가오는 총선은 구도의 관점에서 볼 때 여당에 완전히 불리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22대 총선은 21대 국회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수당은 민주당이고 지난 1년과 앞으로 1년도 여소야대 상황이다. 민주당 의석수 절대우위를 상징하는 장면이 바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게다가 총선 때까지 현 지도부가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민주당 대표는 직전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이미 심판했는데, 민주당은 심판받지 않은 느낌을 준다. 민주당은 자기 당 출신 서울·부산 시장의 낙마로 치러진 지난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고, 2022년 3월 대선에선 석패,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참패하는 등 큰 선거에서 내리 3연패를 기록했다. 흔히 전국 단위 선거에서 한쪽이 4연승하거나 한쪽이 4연패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달아 4연패를 기록했다.
3번 정도 지면 진 쪽은 민심에 부응하기 위해 혁신하게 마련이고, 내부 기득권층이 그 흐름에 저항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이긴 쪽은 이완돼서 민심에 둔감하고 집안싸움만 치열해진다. 유권자들도 세 번 진 쪽에 대해서는 회초리를 들 만큼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분이 좀 풀리고 상대편의 잘못한 점을 살피게 된다. 현재 민주당은 고개를 숙이기보다는 여전히 힘자랑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면 국민들이 심판을 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법부, 국회는 늘 인기가 없게 마련인데 국회 전체에 대한 심판과 평가는 민주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 견제론’이 ‘정부 지원론’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난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8%는 현 지역구에서 ‘다른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지금 의원이 다시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9%에 불과했다. 의회 심판이 야당 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워낙에 압도적으로 이겨 영호남을 제외하고 보면 수도권은 야당 의원이 대다수, 충청권도 28석 중 18석, 강원과 제주에서도 11석 중 5석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 심판=민주당 심판’의 등식도 성립할 수 있다. 여당과 대통령실이 제일 기대하는 것이 이 지점이다. 이렇게 보면 구도, 즉 ‘미워서’의 힘은 현재로선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팽팽한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시점에 선거의 윤곽도 드러날 것이다.
민주당, 내부 공천 경쟁 치열
구도 다음은 인물의 측면이다. 유권자는 ‘어느 당이 새롭고, 좋은 인물 좀 안 데려오나’라는 관점에서 보지만 이 역시 복잡하다. 정당 간판으로 출마하고자 하는 예비후보 입장에서는 공천과 선거라는 두 관문을 모두 뚫어야 한다. 정당이 좋은 사람을 공천하고 경쟁자들이 이에 승복하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일단 ‘좋은 사람’의 기준이 모호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후보는 없다. 다들 개혁 공천, 민주적 공천을 한다고 하지만 민주적 공천과 개혁 공천이 같은 말이 아니다. 당원 의사대로 민주적으로 후보를 뽑으면 되지 않느냐고?
국민의힘에서 불거진 전광훈 목사 논란, 민주당의 개딸 논란이 바로 ‘당원권 강화’ 기조의 산물이다. 김영삼, 김대중 등 ‘오너십’을 가지고 있는 제왕적 총재 시절에는 오히려 당 전체 지지율이나 다음 대선을 바라보고 ‘전략적 낙하산’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점점 거세지는 강경파 당원,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현역 의원, 말 잘 듣는 사람을 더 공천하고 싶어 하는 당권파가 정립(鼎立)해 좋지 않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출마 희망자 입장에서 볼 때 선거에서 지면 헛수고지만 공천을 못 받으면 헛수고할 기회조차 없다. 일단 공천만 받으면 내 능력과 별개로 갑자기 바람이 불어 상대 진영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상대 후보의 사생활 문제나 막말 같은 자책골이 터져 승부가 갈릴 수도 있다. 세상일을 누가 알겠나. 공천 경쟁 과정에서 물의를 빚고 당 지지율을 까먹어도 손해는 당 전체가 나눠 지지만 내가 공천을 못 받아서 생기는 손해는 오롯이 자기 몫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되고 보자’는 공천 단계에 집중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수당인 민주당과 소수당인 국민의힘의 장단점이 정반대로 엇갈린다. 일단 민주당은 사람이 너무 많다. 지난 총선 때 워낙 크게 이겨 현역 의원이 너무 많다. 게다가 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에선 압승하고 2022년 지방선거에선 참패하는 바람에 준(準)의원급이라고 자부하는 전직 단체장들이 현역 국회의원보다 더 많이 전국에 깔려 있다.
정치 이력이 만만찮지만, 지난번에 아깝게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586세대와 X세대 인사들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달려들고 있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 젊은 유권자들 표심 잡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키웠던 신진들도 칼을 갈고 있다. 이렇게 내부 경쟁이 치열하니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명분으로 정치권 밖의 경쟁력 있는 인사들을 데려오는 건 언감생심이다. 제왕적 총재라고 불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공천 관리가 어려울 텐데 임기를 채우느니 마느니 하는 현 지도부엔 더 어려운 과제다.
여당은 반대다. 사람이 너무 없다. 거대 양당 입장에서 전국 지역구는 세 곳으로 구분된다. 우선 누굴 내보내도 이길 가능성이 높은 강세 지역이다. 이런 지역은 공천 잡음으로 인한 무소속 출마자가 당선되더라도 복당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바람이 불거나 후보가 좋으면 해볼 만한 지역이다. 마지막은 뭘 어찌해도 어려운 지역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바람이 불거나 후보가 좋으면 해볼 만한 지역’을 지키는 사람이 너무 빈약하다. 특히 수도권이 그렇다. 보수정당 약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서울 서부 지역을 은평 이재오, 서대문 정두언, 강서 김성태, 양천 김용태라는, 개성과 전투력을 겸비한 인사들이 든든하게 지키던 시절은 먼 옛날이다.
여당은 수도권 내보낼 인물難
수도권에서 경쟁력 있는 일부 인사들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 쪽으로 빠져버렸다. 그러다 보니 전 의원 명함도 없이 그냥 구청장도 낙선하고, 의원도 낙선하고, 낙선이 경력인 당협위원장이 수두룩하다.대통령실, 검사 OB들이 낙하산 타고 올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긴 한데, 그 사람들이 ‘해볼 만한 지역’에 뛰어들면 고맙겠지만 들리는 이야기론 서울 강남, 영남권에 몰린다고 한다.
풍요 속에서가 아니라 빈곤 속에서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질 판이다. 다만 빈자리가 워낙 많고 여당이 원래 교통정리가 용이한지라 당 전체 지지율이 높아진다면 ‘해볼 만한 자리’에 좋은 신인들을 영입하긴 쉬울 거다.
구도와 인물의 상황을 이렇게 살펴봤다. 남은 것은 바람이다. 앞의 두 가지는 따져보기라도 할 수 있지만 바람은 현재로서는 당최 알 수가 없다. 2020년 총선의 경우 그전 해 조국 법무부 장관 파동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라는 바람이 불었다. 조국발(發) 바람은 선거 구도를 정권 심판으로 규정하는가 싶었다.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울 서초동에 자체 추산 100만 명이 모였다고 하니 그에 맞서 광화문에는 자체 추산 200만 명이 모여 받아치는 형국이었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후 딴살림을 차렸던 바른미래당과 다시 합치고 김종인·김병준 등 중도적 원로들도 야당에 합류했다. 소수정당 국민의당은 여권 심판에 집중하기 위해 지역구 무공천을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바람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걸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내년 총선에 누가 이길지는 아직 ‘모른다’.
신동아 5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