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인 지음, 모로, 192쪽, 1만5000원
‘강타가 좋다’던 나는 H.O.T. 노래가 나오면 강타의 소절만 따라 불렀다. 나보다 네댓 살 많은 저자에게도 아이돌은 공기 같은 존재였단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그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루한 모범생이던 저자는 “격렬한 ‘빠순이’ 경험을 못한 게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지루하나 모범생은 아니던 나도 공감한 문장이지만, 곱씹어보면 아쉬울 이유가 있을까 싶다. X세대가 서태지를 논할 때 ‘라떼는…’이라 말할 1세대 아이돌이 있어 다행이다.
H.O.T.가 데뷔한 이듬해,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를 맞는다. 1987년이 ‘최루탄 냄새’로 가득한 한 해였다면, 그로부터 십년 뒤에는 ‘불안의 냄새’가 그득했다. 저자는 “아마도 그런 전 사회적 불안을 뇌가 젊은 10대 시절 겪었기에 IMF라는 말이 좀 더 또렷하게 남은 게 아닐까 싶다”고 하는데,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침 IMF 위기 몇 년 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20세기 끄트머리의 한국은 그랬다. 건물과 다리와 경제가 무너지자 청춘의 색채도 달라졌다. 낭만보다는 불안이, 도전보다는 안정이 시대의 문법이 됐다. 게스와 캘빈클라인을 입고 머리를 물들였던 X세대 역시 사회에 편입되는 길로 미끄러졌다.
18년차 기자가 감칠맛 나는 글 솜씨로 복원한 과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거기다 현재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학부모를 동원하는 학교를 비판했던 저자도 지금은 자식을 위해 한복을 빌려 입고 행사에 간다. 동년배의 빠른 성공에 기가 죽어 후배를 상사로 모시는 상상도 한다. 20세기 청춘은 워킹맘의 일상을 감내해야 하는 21세기 어른이 됐다.
역발상 트렌드 2023
민병운 외 지음, 부키, 352쪽, 1만8000원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자 ‘트렌드’를 다룬 수많은 책들은 집에서 모든 일상을 영위하는 ‘홈 라이프’가 메가 트렌드가 되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보다 ‘캠핑’과 ‘차박’ 등 안전한 집 밖 활동을 추구하는 ‘아웃 라이프’가 유행했다. 개인 취향을 극도로 세분한 ‘초개인화’가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소속 집단에 대한 마케팅으로 충성도를 높이는 집단적 ‘브랜드 커뮤니티’도 활성화됐다. 역발상 트렌드는 메가 트렌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수많은 트렌드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반대 방향에 어떤 비즈니스 기회가 있을지 살펴볼 수 있다.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블랙피쉬, 536쪽, 2만1000원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한 이슬람의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인슈타인에게 양자역학 연구와 관련한 영감을 준 인도의 물리학자도 있었다. 책 ‘과학의 반쪽사’는 지금까지 기존 과학 교과서가 다루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이로운 과학적 발견을 다루고 있다. 역사가 주로 승자의 기록인 것처럼 지금까지의 과학사 역시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주도한 유럽 중심으로 기술돼 왔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몰랐던 다른 반쪽의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이 어느 한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계적 교류를 통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권력 관계에 의해 매우 불평등하게 발전해왔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