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도 정통했던 ‘모략’ 이해해야 중국 보인다
모략은 중국서 지략·전략적 사고로 해석
‘얼굴은 두껍게 속마음은 시꺼멓게’
야욕 드러낸 시진핑의 중국몽, 모략 사상 어긋나
北·中 ‘불편한 동거’… 血盟은 포장일 뿐
美·中 세력 전이 가능성 미미, 대만 침공도 힘들어
임방순 박사는 군(軍) 출신 중국 전문가다. 육군사관학교 중국어과 37기 졸업·임관 후 대만 국방대학 육군지휘참모학원을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야전군 지휘관을 거쳐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주중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등으로 현장에서 중국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육군 대령으로 예편 후 인천대 교수로 활동했다.
임방순 박사는 “중국은 시진핑 3기 체제를 맞이해 점점 폐쇄적 사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초조해진 중국이 전쟁을 일으켜 세력 전이를 꾀할 수 있으나 대만 무력 통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지호영 기자]
웃으면서 칼을 숨기는 중국
손꼽히는 중국통으로 “중국 전략전술의 뿌리인 모략(謀略)을 이해해야 오늘날 중국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임방순 박사를 만났다.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모략’을 제시했습니다. 모략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깁니다.
“한국인은 ‘모략’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중상모략’ ‘권모술수’ 등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모략(謀略)=지략(智略)’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두드러진 해석 차이입니다.”
임방순 박사는 그 원인을 역사적·사상적 배경 차이에서 찾았다.
“한국은 명분론에 기반해 옳고 그름 혹은 선악을 따지는 성리학(性理學)적 관념이 주류 사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중국은 오랜 전란 속에서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사상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제1장 시계편(始計篇)에도 ‘전쟁은 속임수(兵者詭道也)’라고 정의했죠. 이를 군사용어로 바꾼 것이 ‘기만(欺瞞)’입니다.”
주중한국대사관 육군무관 등으로 일하며 현장에서 중국을 경험하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중국관(中國觀)’을 평가하자면.
“가장 큰 문제는 ‘한국과 중국은 비슷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입니다. 유교·불교 문화권에 속하고 ‘한자(漢字)’로 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서 한국인은 중국에 친밀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중국인의 ‘속내’입니다. ‘중국인은 화날수록 웃는다’라고 하잖아요.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표리부동(表裏不同)’도 한국인은 모욕이라 느끼지만 중국인은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병법 36계에서는 ‘소리장도(笑裏藏刀)’ 즉, 웃으면서 칼을 숨기라고 말합니다. 표리부동 역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중국이나 중국인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정면승부 거는 서구, 中 ‘후방 기습’ 이해 못해
임방순 박사는 중국과 중국인을 읽는 또 다른 키워드로 ‘후흑학(厚黑學)’을 제시했다. ‘얼굴은 두껍게 속마음은 시꺼멓게’라는 뜻으로 청(淸)말 중화민국(中華民國) 초기에 활동한 학자 리쭝우(李宗吾)가 주창했다. 리쭝우는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고대 손자병법부터 현대 마오쩌둥 전략전술론 ‘초한전’에 이르기까지 중국식 전략전술을 관통하는 사상이나 철학 혹은 이론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모략이라 판단합니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이 탄생한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는 500여 년 동안 전란이 지속됐습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대였습니다. ‘누가 더 정의로운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생존을 위하여 상대를 속이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전략적 사고나 처세술이라 하여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삼국지연의’의 조조(曹操)에게 이어지고 명(明) 말기에는 모략 사상이 집대성돼 ‘36계(三十六計)’가 탄생합니다. ‘36계’ 첫 구절은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라(瞞天過海)’입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중국 본토를 장악한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도 모략 사상에 정통했습니다. 병력·장비 면에서 우위였던 국민혁명군을 피해 다니며 유격전을 전개했습니다. 동시에 국민당 수뇌부에 간첩을 심어 고급 정보를 탈취했습니다.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타자수 선안나(沈安娜), 심복 후쭝난(胡宗南) 장군의 정보참모 슝샹후이(熊向暉) 등이 공산당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훗날 알려졌죠. 1999년 인민해방군 고급장교 차오량(喬良)·왕샹수이(王湘穗)가 공저한 ‘초한전(超限戰)’은 모략 사상을 세계화 시대와 IT혁명이라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적용한 중국특색의 전략전술론입니다.”
2월 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머틀비치에서 해군 대원들이 사흘 전 격추한 중국의 고고도 정찰용 풍선 잔해 수거를 위해 선박에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앞서 미군은 미국 영공을 날던 중국 정찰 풍선을 공군 전투기로 격추했다. [AP/뉴시스]
“공자학원(孔子學院), 정찰 풍선, 해외 비밀경찰서 등은 각기 다른 형태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모략’에서 출발한 것은 같습니다. 국익 극대화라는 목적도 동일하고요. 중국의 행태에는 일관된 특징이 존재합니다.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추진하거나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목표와 실제 내용이 상반되는 것입니다. 정면승부 혹은 정면대결에 익숙한 서구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이기도 합니다.”
임방순 박사는 서구와 중국의 전통 전략전술 차이점을 돌이켜 보면 이해가 쉽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구 전략전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면대결입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이 방진(方陣)이라는 밀집대형을 이뤄 전진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들이 검을 뽑아 정면 승부를 벌였죠. 근대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는 카우보이들의 결투가 있었습니다. 현대 들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연합국과 추축국은 전차전을 벌였습니다. 이런 전통에 비춰 볼 때 후방을 파고들어 옆구리를 기습하는 중국식 전략전술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겠습니다.”
너무 일찍 야욕 드러낸 시진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14기 1차 회의 제3차 전체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주석으로 선출된 후 선서하고 있다. 시 주석은 현재의 중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3연임’ 국가주석이 됐다. [AP/뉴시스]
“강군몽(強軍夢)은 중국몽(中國夢) 구현을 위한 핵심 전략입니다. 강한 군대가 있어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인민해방군을 미군과 대등한 수준의 일류군대로 육성하겠다는 강군몽에 대해 임방순 박사는 다음 의견을 제시했다.
“인민해방군 전력 증대의 ‘가시적 영역’과 ‘비(非)가시적 영역’을 구분해서 고찰해야 합니다. 항공모함 건조, 전략·전술 핵무기 제조, 무인기 개발 등 하드파워 영역은 파악이 용이합니다. 반면 전자전, 사이버전, 우주전, 심리전, 여론전, 첩보전 등은 외부세계에 노출돼 있지 않기에 파악이 쉽지 않죠. 인민해방군은 이들 기능을 수행하는 부대에 ‘전략지원부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올해 3월 취임한 리상푸(李尚福) 신임 국방부장이 전략지원부대, 미사일부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임방순 박사는 “시진핑의 중국몽은 전통 모략 사상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공과를 먼저 설명했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건 유혈진압 등 과오도 있지만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개혁개방 정책 등으로 구현하여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참화(慘禍) 속에서 중국을 구원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면 시진핑의 중국몽은 덩샤오핑의 모략 사상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것인가요.
“‘선부(先富)론’ ‘흑묘백묘(黑貓白貓)론’ 등으로 대표되는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덩샤오핑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현대 중국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덩샤오핑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도광양회(韜光養晦)’입니다. ‘향후 100년 정도는 미국에 대항하지 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굴욕을 감내하고서라도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에 버금갈 때 까지는 다투지 말고 몸을 낮추라는 지침이었습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에서 기원한 것이죠.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는 덩샤오핑의 지침이 지켜졌습니다. 후진타오 통치 시기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를 달성하며 이른바 G2로 올라섰지만,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다’라며 몸을 낮췄습니다. 시진핑은 달랐죠. 중국몽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는데 시기가 빨랐다고 봅니다. 모략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강태공(姜太公)이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개창할 때처럼 시기가 성숙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오늘날처럼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의 견제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시진핑은 모략적이지 못 했습니다. 덩샤오핑은 혜안(慧眼)이 있었던 것이고요.”
한미동맹 울타리 부러워하는 북한
임방순 박사의 주 연구 분야는 북·중관계이다. 2014년 ‘중국의 대북한 원조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출간한 ‘어느 육군 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에도 현장에서 경험하고 분석한 북·중관계 현실에 대해서 기술하기도 했다.주중한국대사관 근무 시 만난 한 북한 무관이 ‘한국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책에 썼습니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베이징(北京)에 근무할 때 주중 무관단 모임 등을 통해 자연 북한 무관과 친분이 생겼습니다. 2년여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가벼운 농담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가 됐습니다. 제가 이임할 무렵 북한 무관이 이랬습니다. ‘임 무관! 너는 좋겠다. 미국이 너희 친구잖아. 우리 친구 소련은 망했어. 중국도 그리 친한 친구가 아니야’ 당시만 해도 북한은 미제(美帝·미국 제국주의)는 철천지 원수이며,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고 선전선동을 하고 있었기에 북한 무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오랜 해외 근무를 하며 경험하고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깨달은 것이죠. 한국은 한미동맹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보를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발전도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점을 북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혈맹(血盟)’이라고 하는 북한-중국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합니다.
“북·중 관계를 정의한 여러 표현 중 가장 적합한 표현은 ‘불편한 동거’라고 봅니다. 서로가 필요(이해)에 따라 함께 하지만 마음도 안 맞고 성격도 달라 불편하다는 의미죠.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이른바 ‘자동개입조약’으로 알려진 ‘중조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條約)’입니다. 조약에서 중국은 북한에 중요한 안보상 문제는 자신들과 사전 협의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유사시 중국의 개입을 요구했습니다. 서로의 요구를 반영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중국은 북한이 자신을 곤란하게 할 문제를 일으키는지 여부에만 관심 있고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서로가 필요한 것도 현실이죠.”
北, 美와 국교 정상화 원해… 中 쇠퇴하는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일본은 100년의 적, 중국은 1000년의 적’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북한은 중국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신감 노출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죠. 불신의 뿌리는 깊습니다. 기원은 1932~1936년 발생한 민생단(民生團)사건입니다. 중국공산당은 다수 조선인을 밀정으로 의심해 탄압하고 처형했습니다. 당시 김일성도 고초를 겪었죠. 이후 6·25전쟁 전후 처리, 1960년대 중·소 갈등 속에서 북·중 갈등이 지속됐습니다. 결정적으로 1992년 한·중수교,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 등이 북한이 중국을 불신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중국이 자신들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서 ‘1000년 숙적’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을 달래기 위해 이른바 기조(忌朝)정책이라고 ‘조선을 기피하지만 불편하게는 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대북한 정책 핵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미국과 관계 정상화 혹은 상호 대표부 설치 정도의 실질 관계 발전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북한은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원하고 있고 중간 단계로 상주대표부(常駐代表部) 설치 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더하여 궁극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입니다. 북·미 관계에 진전이 있으려면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북한 핵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북한은 서구 자본주의 사조 유입에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세력 전이 이론’ 관점에서 미·중 전략 경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미국과 중국 간 세력 전이(power transition)가 발생할 것인가 문제입니다. 도전국 중국이 패권국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다음은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할 것인가 입니다. 오늘날 서구의 판단으로는 세력 전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중국 내부 문제를 듭니다. 시진핑 3기 체제를 맞이해 중국은 점점 폐쇄적인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습니다. 저출산 노령화로 인하여 생산인구 급감이 현실화하고 중국 잠재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부상(浮上)이 아니라 쇠퇴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죠. 이를 초조하게 여긴 중국이 전쟁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제 관점에서 세력 전이가 일어나는 시점은 중국이 대만을 통일할 때입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어떠하다 보나요.
“현시점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합니다. 내년 1월 총통·입법원 선거에서 친중국 정권 탄생을 위해 힘을 쏟겠죠.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수도 있지만 감내해야 하는 손실도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만해협 사태에 미국, 일본이 개입한다면 침공 성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개전 6일 만에 대만을 점령한다’는 식의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제시되기도 합니다만 현실성은 떨어진다고 봅니다. 해협을 건너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비(非)전쟁 수단을 사용하는 ‘초한전’이 있습니다. 무력 시위를 하면서 여론전·정치전을 전개하리라 전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