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천마도에 그려진 동물, 말 아닌 기린?

[명작의 비밀]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3-05-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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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일한 신라시대 회화 유물 천마도

    • 발굴 당시 금관보다 더 큰 관심 받아

    • 1992년 천마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 제기

    • 천마-기린 논란, 발굴 50주년까지 관심 집중

    1973년 8월 경북 경주 155호분(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천마도. [문화재청]

    1973년 8월 경북 경주 155호분(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천마도. [문화재청]

    고분의 도시 경주. 그곳 대릉원(大陵苑) 입구에는 천마(天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천마총 출토 ‘장니(障泥) 천마도’에 등장하는 말의 모습이다. 경주의 신라 고분에선 화려한 유물이 무수히 나왔는데, 그중엔 금관과 같은 황금유물도 허다하다. 천마의 조형물이 어떻게 대릉원 입구를 장식한 것일까. 천마는 신라에서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위상을 지녔던 것일까. 그리고 천마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천마총 발굴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경주관광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1971년 11월 정부는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곤 경주에서 가장 거대한 98호 고분(현재의 황남대총)을 발굴하고 그 내부를 복원해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이 같은 대형 고분을 발굴한 경험이 없어 정부와 문화재계, 학계 모두 조심스러웠다.

    1971년 7월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발굴한 경험이 있지만 무령왕릉 발굴은 졸속으로 진행됐다. 고분 발굴의 노하우를 제대로 축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백제 무령왕릉의 구조(전축분·塼築墳)는 신라 대형 고분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과 전혀 다르다. 무령왕릉 발굴 경험만으로 경주의 98호분을 발굴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무겁다. [이광표 교수]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무겁다. [이광표 교수]

    결국 그 대안으로 98호분 발굴에 앞서 바로 옆의 규모가 작은 155호분을 발굴하기로 했다. 155호분 발굴은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155호분 발굴은 1973년 4월 시작되어 12월까지 이어졌다. 예행 연습장에서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이곳에선 발굴 8개월 동안 놀라운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금관(국보), 금제 관모(국보), 금제 허리띠(국보), 장니 천마도(국보) 등 1만 1500여 점. 이 가운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유물만 11점에 달한다.

    금관보다 천마도

    당시 발굴이 진행되는 동안 일간지들은 앞 다퉈 기사를 내보냈다. 상찬(賞讚)의 언어를 동원해 고분 자체뿐만 아니라 출토 유물의 역사적 의미와 미술사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그 어떤 유물보다 천마도에 관한 기사가 가장 두드러졌다는 사실. 이 천마도는 1973년 8월 출토됐다.



    1973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천마도 발굴 소식이 적혀 있다. [동아DB]

    1973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천마도 발굴 소식이 적혀 있다. [동아DB]

    신문들은 연일 천마도에 흥분했다. 당시 기사의 제목을 살펴보자. ‘최고(最古) 채색화 발굴-회화사의 최고 극치’ ‘신라 최대(最大)의 찬란한 천마도/자작나무 배가리개에 5색으로/구름 뚫는 백마의 기상’ ‘금관보다 귀중’ ‘고구려 벽화에 못지않은 유일무비(唯一無比)의 역사적 민족 유산’ ‘발굴단도 넋 잃은 천고(千古)의 신비 천마도-문화·미술사 바꿀 획기적 자료’ ‘수피(樹皮)채색화 2점 발견-경주 155호 고분서 주(朱)·흑(黑)·녹(綠)·백색(白色)의 천마도/(백색)白色 위에 연꽃무늬 생동하는 사실적 표현’ 등등. 천마도의 대형 컬러 사진을 담은 전면 화보도 등장했다.

    신비롭게 비상하는 신라의 천마

    여기서 ‘금관보다 귀중’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아니, 금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라 최고의 문화재인데, 금관보다 귀중하다니. 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건 천마도의 희소성 때문이었다. 천마도는 신라의 유일한 회화 작품이다. 그 때까지 신라의 솔거 이야기가 전해오긴 했지만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의 그림은 전혀 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천마도라는 신라 그림이 최초로 발굴된 것이다. 금관이 따라올 수 없는 희소성이었다. 금관은 이미 1921년 금관총, 1924년 금령총, 1926년 서봉총에서 출토된 바 있어 사람들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그러나 천마도는 금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무언가 새롭고 영험한 분위기였다.

    천마총 발굴팀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장니)를 현장에서 수습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마총 발굴팀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장니)를 현장에서 수습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장니 천마도는 천마를 그린 장니(障泥·말다래)를 말한다. 여기서 장니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안장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장비를 일컫는다. 장니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백화수피·白樺樹皮)을 여러 겹으로 겹친 뒤 14줄의 사선으로 누벼서 만들었다. 여기엔 백마가 비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백마 주변으로는 돌아가면서 넝쿨무늬(唐草文·당초문)가 그려져 있다. 말의 입에선 서기(瑞氣)가 뿜어 나오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꼬리털이 날린다. 가로 75㎝, 세로 53㎝에 두께는 약 6㎜.

    1973년 발굴 당시 장니 천마도는 3쌍(6개)이 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온전한 상태였던 하나가 국보로 지정된 것이다. 나머지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그 형태나 재질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국보를 포함해 모든 천마도는 보존 문제로 인해 실물이 거의 공개되지 못했다. 국보 천마도의 경우도 주로 사진으로만 공개되어 왔고 그로 인해 대중에겐 더더욱 희소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하늘을 나는 말, 천마라는 명칭은 천마도의 신비감을 더욱 키워주었다.

    천마도는 출토 이후, 천마(백마)의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전제 위에서 천마도에 대한 논의와 연구도 진행되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와 연계해 신성한 말, 천상세계로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말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대체로 “천마도에 나오는 말은 백마다. 백마가 입에서 서기를 뿜어내며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백마는 하늘을 날아 승천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천마였다”로 요약된다. 신라의 전통사상 체계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신라의 말 모양 토기나 기마인물형 토기와 마찬가지로 무덤의 주인공을 위한 공희적(供犧的·의례상의 희생양 역할)인 부장품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1992년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천마도에 등장하는 동물이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견해였다(이재중, ‘중국과 한국 고대분묘 미술품에 나타나는 有翼獸’). 아니,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라니. 여기서 기린은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 아니라 동양에서 전해오는 상상의 동물을 말한다.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

    천마도 속의 동물이 기린이라는 주장의 핵심 근거는 말의 머리 부분에 뿔 모양의 돌기가 튀어 나와 있다는 것이다. 말에는 뿔이 없고 기린은 하나의 뿔이 있는 일각수(一角獸)다. 기린은 용, 봉황, 거북과 함께 4령(四靈)으로 불리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몸은 큰 사슴 모양이며 황색을 띠고 있고 꼬리는 소와 같다. 머리는 이리의 모습이고 발은 말과 같다. 이렇게 기린은 사슴, 소, 말, 이리 등 여러 동물의 결합체로 여겨졌다. 등의 털은 오채(五彩)를 띠고 배의 털은 황색을 띠고 날개가 있어 능히 날 수 있으며, 또한 맑은 기를 토해낸다. 뿔은 하나가 있다. 수컷을 기(麒)라고 부르고, 암컷을 린(麟)으로 부른다.

    여기서 기린설의 근거를 좀 더 살펴보자. 첫째, 천마의 이마에 튀어나온 한 개의 뿔. 뿔이 하나 있는 동물은 기린 외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입에서 내뿜는 신기(神氣). 기린의 속성 중 하나가 맑은 기운을 내뿜는 것이며, 그림 속 말의 입에서 나오는 기운이 바로 이 신기라고 보았다. 셋째, 그림 속 동물 몸체에 그려진 반점. 기린의 기원이 사슴에서 출발했고 중국 남북조 시대가 되면 기린 그림에 반점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넷째, 장니 천마도가 한 쌍으로 부장됐다는 점. 봉황을 ‘봉’과 ‘황’으로 나누어 한 쌍으로 그리듯 기린도 ‘기’와 ‘린’ 한 쌍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장니가 한 쌍이라는 점도 기린일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다섯째, 신라에 기린 신앙이 있었다는 점 등이다.

    천마도 적외선 사진에 주목하는 이유

    1992년 기린설의 등장은 세상을 적잖이 놀라게 했다. 상상조차 못했던 주장이어서다. 문화재 및 미술사 분야에서는 이 견해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동조도 있었고 반론도 있었다. 그럼에도 기린설을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참신하고 일리가 있지만 주관적 견해라는 반론도 있었다. 천마도 실물을 적외선 촬영하는 등 그 형태를 좀 더 정확히 판단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2000년대 들어 천마도는 기린과 서수(瑞獸·상서로운 동물)가 결합한 모습이라는 새로운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천마도의 천마는 신기를 내뿜고 뿔이 있는 기린과 비슷한, 선비족(鮮卑族)의 신수(神獸)의 도상이 혼합되었다는 견해였다.

    학계 논란은 민간에도 퍼졌다. 천마도 실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천마의 이마에 정말로 돌기가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기린설이 제기되고 5년 뒤인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은 장니 천마도를 적외선 촬영해 정수리 부분에 불룩한 것이 솟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은 또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것을 100%로 뿔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뿔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뿔이 아니라 불꽃(일종의 신기)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2009년 9월 28일 최광식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여민해락’ 특별전 언론공개 행사에서 ‘천마도 적외선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DB]

    2009년 9월 28일 최광식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여민해락’ 특별전 언론공개 행사에서 ‘천마도 적외선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아DB]

    이후 천마도 전시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천마도와 적외선 촬영 사진을 함께 전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9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천마도의 원본과 적외선 촬영 사진을 함께 전시했다. 2014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천마총 특별전에서 천마도 원본과 적외선 촬영 사진을 모두 공개했다. 이와 함께 당시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또 다른 천마도 두 점도 공개했다. 과학적 보존 처리와 복원 과정을 거쳐 공개된 두 점은 자작나무로 만든 것과 대나무로 만든 것이다. 정수리의 돌출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해서다. 천마도의 적외선 사진이 공개될 때마다 정수리의 돌출 부분은 또다시 화제와 논란이 됐다. 말인가, 기린인가. 기린설 등장 이후 매번 흥미로운 이슈가 되었지만, 말에서 기린으로 뒤집히지는 않았다.

    천마도와 신라인의 말 신앙

    말 같기도 하고 기린 같기도 한 천마도 속의 동물. 그럼, 그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장니 천마도는 왕릉급 고분에서 나온 유물이다. 5~6세기 신라인들의 장례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종교적 신앙에 대한 검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당시 신라인들이 천마와 기린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였는지의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린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선 신라에서의 기린 신앙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라에서의 기린 신앙은 여러모로 근거가 취약하다.

    신라에서는 오히려 말에 관한 신앙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말은 고대 사회에서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고분에서 각종 말 관련 유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승천하는 영혼의 조력자를 상징한다. 신라인들의 말 신앙을 보여주는 기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박혁거세 신화다.

    삼국유사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육부의 조상들이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임금과 나라를 세울 의논을 하고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땅에 비치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남천에서 목욕을 시켰더니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하여 혁거세왕이라고 불렀다.” 박혁거세 신화에 등장하는 백마는 신적인 존재다. 신라의 백마 관념은 김유신 관련 일화에도 담겨 있다.

    말 신앙은 장례 의식으로 이어졌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5~6세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말 관련 유물들이다. 기마인물형 토기와 말 모양 토기, 말이 새겨진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신라에는 말 신앙이 보편적이었다.

    천마도 속의 동물은 말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기린의 특징을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머리의 돌출 부분이 뿔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단정 짓기 어려운데다 그것이 뿔이라고 해도 기린 신앙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결국, 머리의 돌출 부분만 보고 기린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왕릉급 고분에서 나온 천마도는 말 그림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발굴 50주년, 천마도와 천마총의 매력

    천마도 속 동물을 기린으로 보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기린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천마-기린 논란 덕분에 천마도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커졌다. 장니 천마도가 공개될 때마다 천마-기린 논란은 재연될 수 있다. 논란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천마-기린 논란은 천마총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정이 됐다. 천마도의 실체가 말인지 기린인지의 차원을 넘어 고분 문화에 나타난 신라인들의 신앙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유일한 신라의 그림, 신라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천마의 상징성, 천마인가 기린인가의 논란. 천마도는 늘 영험한 분위기이며 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천마총은 실물의 내부를 전시관 형식으로 공개하는 유일한 신라 고분이다. 이렇게 천마도와 천마총은 화제적이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올해는 천마총을 발굴한 지 50년 되는 해. 그래서 경주 곳곳에서 기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5~7월 천마도를 전시한다고 한다. 전시가 열리면 사람들은 천마의 정수리 돌출 부위에 주목할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때맞춰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금관과 천마도, 무엇이 더 매력적이고 신비로운가?” 우문일지 모른다. ‘모나리자’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운데 어느 여인이 더 아름다운지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자꾸만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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