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가 尹 방미 두고 꺼낸 말
이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말’ 아닌 ‘몸’으로 지키는 동맹
대만 문제, ‘강 건너 불’ 아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워싱턴=뉴시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4월 25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이날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한 이야기다.
정청래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그가 볼 때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포탄을 우회 지원하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며, “지금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 특히 중국 같은 경우는 적자 신기록 갱신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니, “한미동맹이라는 것도 결국은 국익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윤석열은 한미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한미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내 평화가 아닌 전세계로 넓히려는 미국의 뜻에 선뜻 동참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전쟁에 휩쓸려 러시아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존중하되 또 국익은 국익대로 챙겨야 된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은 현실이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 번영의 초석인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만 보고 살 수는 없다. 특히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벌이는 전쟁에 한국이 손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 유지 장치를 넘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 되는 데 반대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판매에도 반대하고, 러시아·중국과 대립각을 세우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발상을 품고 있는 이는 정청래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의 구성원이나 지지층, 더 나아가 중도층이나 보수층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지점에서 출발해 전혀 엉뚱한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원문은 고사하고, 지난해 뉴스를 보긴 했는지 의심스럽다.
바이든 방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청래는 정말 모르는 걸까. 한미동맹은 이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다. 2022년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윤석열 정부 첫 한미정상회담이 치러졌을 때부터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기조다.그 사실은 당시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5.21)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서는 것임은 성명서의 도입부에서 명시됐다.
“역내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인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경제,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인 양국의 중추적 역할을 반영하여 한반도를 훨씬 넘어 성장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떨까. 정청래와 민주당 일각의 주장과 달리 그 전쟁은 ‘국익’을 핑계로 적당히 눈 감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생존과 직결되는 도전들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대표되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증가하는 위협”으로 명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기후변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전쟁이라는 세 요소를 모두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결의를 ‘이미’ 발표했다.
그러한 인식은 공동성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단락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 한반도를 넘어서’라는 제목 하에 “양 정상은 민주주의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 촉진, 부패 척결 및 인권 증진이라는 양국 공동의 가치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한미 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성격의 한미동맹은 2023년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2022년부터 합의됐고 명문으로 선포된 바 있는 현실일 따름이다.
그러한 인식 하에서 러시아 전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공동성명의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다. “양 정상은 러시아의 추가적인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양국이 취한 각자의 조치들의 효과적 이행을 보장하고, 주권과 영토 보전의 원칙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유지할 것을 확인하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군대를 보내겠다고 확언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 역시 미국과 함께 러시아군과 총부리를 맞댈 것이라고 기재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명시하고, 그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란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가장 첨예한 이슈인 대만과 중국 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대만을 침공하거나, 대만해협을 봉쇄하거나, 현재의 국제 질서를 흐트러뜨릴 가능성에 대해 이미 지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남중국해 및 여타 바다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을 유지하고, 항행, 상공 비행의 자유와 바다의 합법적 사용을 포함한 국제법을 존중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6일 발표된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공동성명’ 역시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이라는 동일한 제호 하에 “양국은 전력 생산과 송전을 확대하고 주요 기반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것을 포함하여 필수적인 정치, 안보, 인도적, 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할 여지를 확실히 보장하면서 ‘안보’라는 어휘로 군사적 지원의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건희 여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작성한 방명록 내용.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공동 명의로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우리의 글로벌 동맹을 위하여”라고 적었다. [워싱턴=뉴시스]
애당초 한반도를 넘어서는 동맹
현재 한미동맹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되는 것은 찬성하거나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 짧게 보더라도 2022년부터 한미동맹의 성격은 그러한 방향으로 진화한 상태다. 시각을 아주 거시적으로 넓혀보자면 1953년 체결 당시부터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넘어서는 동맹이었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에 분명히 적혀 있는 사실이다. 길게 인용해 보자.“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공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이 당사국인 조약이지만 처음부터 ‘한반도’를 넘어서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맹이었다. 태평양 지역의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목표다. 한미동맹에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은 자동적으로 개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다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고 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북한이 한국에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할 경우, 특히 전방에 배치된 미 육군과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자동 참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대북 억지력을 확보했다.
요컨대 미국은 한반도의 안보를 ‘말’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그 어디에도 ‘미군은 북한으로부터 휴전선 남쪽 지역을 지켜준다’는 표현이 명시돼 있지는 않다. 한미동맹은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인 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목표로 삼는다. 말이 거창하고 구체적이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병력이 대한민국 영토 곳곳에 배치됐다. ‘말’이 아닌 ‘몸’으로 지켜주는 동맹이 된 셈이다.
시대를 앞서가다
한미동맹은 시작부터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었다. 한국이 공격당하면 미국이 함께 싸우고, 미국이 공격당하면 한국이 함께 싸움으로써 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꾀하는 동맹이었다. 다만 조약이 체결됐던 1953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국력을 지닌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반면, 대한민국은 전쟁의 포화에서 갓 벗어난 세계 최빈국이었기에 해당 조약이 ‘상호’ 방위 조약이라는 점을 아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떠오르는 중국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은 중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중산층을 키우면 중국 스스로 민주화를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따를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 대국이 됐지만 서구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미중 패권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는 더욱 도드라진다. 오늘날 우리는 약간의 미국 원조 물자로 살아갈 수 있던 최빈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여러 원자재가 필요한데 그 중 핵심은 석유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동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출발한 유조선은 말라카 해협을 지나 동중국해를 거쳐 부산항에 도착하게 된다.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는 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당장 우리의 목숨 줄이 걸린 일이다. 물론 북한으로부터 핵탄두가 실린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보다 직접적일 수는 없지만, 대만해협의 안보가 흔들리고 항해의 자유가 위협당하는 것은 그에 못지않은 심각한 대한민국의 안보 위기다. 그 어떤 나라도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되어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한다는 한미동맹의 정신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우리는 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