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명백한 오답
언제는 ‘한반도 운전자’라더니…
文이 내건 탈원전의 후폭풍
‘전략적 사고’도 못하는 한국 보수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4월 2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인 역사학자 전우용이 4월 29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여기서 그가 비판하고 있는 바는 분명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의 비난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상 핵공유’라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니와 미국 측에 의해서도 부정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4월 27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특파원단 브리핑에서 워싱턴 선언을 두고 사실상 핵공유라 말하는 것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사실상 핵공유로 보지는 않는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워싱턴 선언의 내용은 미국이 갖고 있는 핵무기의 통제권을 한국에 나눠준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의 핵무기는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결정 권한 안에 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고 앞으로도 바뀔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이 보도된 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국내 여론은 비판으로 기울었다. 미국이 반도체와 전기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한국에 불리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윤석열은 심지어 북핵과 안보 문제에서마저도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지능 낮고 염치도 없는”
필자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등을 소재로 한 음모론, 특히 유대인이 로비력으로 미국 정치를 주무른다는 식의 이야기를 그리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히 배후의 흑막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고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이스라엘의 핵개발에 대해 가장 심층적으로 다룬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대인 음모론’을 배제하고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 기자가 2011년 2월 ‘월간조선’에 기고한 “북의 핵미사일 실전 배치엔 이스라엘 식으로 대응해야”라는 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막강한 자본력을 동원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심지어 핵무기 개발에 투입된 자본조차 이스라엘의 국가 예산이 아니었다. 미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유대인 자본가들이 말하자면 비자금 혹은 쌈짓돈을 모아 핵무기를 개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제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핵개발이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 이스라엘처럼 행동할 수 없다. 이스라엘처럼 행동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이스라엘뿐이며 필자는 그것이 과히 모범적인 경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현실에 맞춰 답답해도 섬세하고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한다. 자체 핵무장만을 목소리 높여 외친다고 해서 안보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는 건 일종의 ‘이스라엘 판타지’에 불과하다.
정작 이스라엘은 그러한 초강경 안보 정책으로 인해 잊을 만하면 인접 국가 내지는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과 미사일을 주고받는 전투를 벌인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안보의 방향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는 수도 서울을 휴전선에서 지근거리에 두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명백한 오답이 무엇인지 밝힘으로써 정답이 될 것들의 실마리를 이야기해 볼 수는 있다. 명백한 오답은 당연히 북핵이 이렇게 커지도록 방치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쥐고 있다.
첫째, 민주당은 북한이 핵무기를 오랫동안 키워올 수 있도록 20년 넘게 시간을 벌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 한 민주당 쪽에서 나오는 그 어떤 국방, 안보, 심지어 외교 정책까지도 신뢰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의 안보 정책이 국제 정치적으로 어떠한 맥락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질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했던 전우용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한국이 미국과 ‘출퇴근 방향이 같다’ ‘카풀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윤석열을 비판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전우용이나 다른 민주당 쪽 스피커들이 여태까지 이야기해 왔던 것과는 퍽 다른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반도 운전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자주파들이 그런 입장이었다. 미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윤석열이 정상회담을 한 후에 미국이 ‘한국은 핵무기를 만들어라’라고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출퇴근 방향이 같고 카풀을 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처럼 이야기하는가. 본인들이 동의하지도 않는데 동의하는 척하면서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해 이야기를 끌어다 붙이는 것이야말로 “지능이 낮고 염치도 없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2017년 7월 31일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탈원전 정책 당정협의’가 열렸다. [동아DB]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핵무기 개발을 얻지 못할 거였으면 원자력 잠수함이라도 얻어왔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이는 원자력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다. 왜냐하면 원자력 잠수함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고농축의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잠수함의 공간이 제한돼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핵무기의 핵탄두와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쉽게 설명하면 핵무기는 고농축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순식간에 터뜨리는 것이다. 원자력 잠수함이나 원자력 항공모함의 연료가 되는 핵연료는 그렇게 고농축돼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잘 통제해서 에너지를 서서히 뽑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핵탄두와 핵연료는 거의 같다. 미국이 우리에게 원자력 잠수함의 개발을 허용한다는 말은 핵탄두의 개발을 허용한다는 말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다르지도 않은 말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 있다. 미국이 만약 우리에게 원자력 잠수함 개발을 허용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우리는 그 핵탄두가 될 플루토늄을 어디서 얻어야 하는가.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형태 중 경수로가 아닌 중수로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는 월성 1~4호기의 중수로가 있었다. 이중 월성 1호기는 5000억 원 이상의 거액을 들여 설비를 개선했고, 향후 최소 10년 최대 20년 이상 계속 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으며 매우 성급했고 심지어 민주적 절차마저 다 무시해버린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고, 결국 월성 1호기는 2018년 폐쇄됐다.
우리가 월성 1호기를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 필자가 아는 기술적인 지식 범위 내에서 확언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한 번 꺼뜨렸고 폐쇄 절차에 들어간 원자로를 되살리는 일이 무슨 꺼진 보일러에 불을 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월성 1호기 폐쇄에 동의했거나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탈원전 정책에 친환경 태양광 등의 이름으로 찬성했던 사람들, 탈원전이 뭔지는 몰라도 아무튼 민주당의 정책이니 옳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무기도 원자력 잠수함도 얻지 못했다는 식으로 비판, 비난, 비아냥거린다. 정말이지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원자력 역량을 깎아 먹는 정책을 손뼉치고 좋아했으면서 대체 왜 이제 와서 대한민국이 원자력 강국이 돼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느냔 말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평화와 번영의 원동력
이 오답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어보자. 일단 우리는 미국 중심의 국제 체제와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둔 안보 시스템을 소중히 여기며 더 잘 키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원자력 역량을 해치지 않고 더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이다.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안에서 러시아제와 맞붙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게다가 엄밀히 따졌을 때 핵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원자력 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기술이다. 핵폭탄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만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생산하는 에너지는 평화와 번영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그걸 할 수 있는 나라다. 더 잘 할 수 있고 더 잘 하는 상태에 도달해야 마땅한 나라다. 일단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 기술에 있어 다른 나라들이 쫓아올 수 없는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그 경우 핵폭탄을 갖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물론 그 또한 중요하겠지만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향방과 미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차원이 다른 원자력 발전 기술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안보적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우리에게 경제적 이득까지 가져다주는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탈원전을 찬성했던 자들, 우리 편이 하는 일이니까 무조건 좋은 일인 것처럼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자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 앞에 말 얹을 자격이 없다. 핵무기를 얻지 못했네, ‘사실상 핵 공유’는 핵 공유도 아니네, 같은 비아냥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보수진영 역시 1990년대 말부터 퍼져 지금은 일종의 숙원 사업처럼 된 ‘자체 핵무장의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하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설령 자체 핵개발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어떤 장기적 플랜 하에 조용히 이뤄져야 할 일이다. 취임 후 만 1년이 안 된 대통령의 국빈 자격 미국 방문과 정상회담을 두고 품평하며 할 소리는 아니다. 그 정도 ‘전략적 사고’도 못하면서 어떻게 미국 몰래 핵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