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호

‘더 구할 수 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의 무게

[황승경의 Into The Arte] 약점 많은 인간의 결단이 만든 선행, 영화 ‘쉰들러 리스트’

  •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입력2026-01-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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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도박 등 흔들리며 살아온 결함 많던 쉰들러

    • 뇌물 쏟아붓고, 모욕 감수하며 유대인 구해

    • 끝없이 흔들렸던 선택이 간신히 이은 생명

    • 완벽하지 않아 온전히 믿었던 한 인간의 용기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리엄 니슨)’가 어린 소녀의 시신을 목격하고 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의 유대인을 구하려고 결심하는 장면. IMDB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리엄 니슨)’가 어린 소녀의 시신을 목격하고 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의 유대인을 구하려고 결심하는 장면. IMDB

    새해 첫날의 빈 다이어리는 아직 쓰이지 않은 시간과 가능성을 품은 여백처럼 우리의 마음과 닮아 있다. 새해 계획을 세우려는 결심에 다이어리를 열면 자연스레, 지난 한 해 동안 함께했던 이름들이 떠오른다. 합격자 명단이나 채용 발표처럼, 이름이 적힌 한 장의 종이가 누군가의 삶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던 순간도 있다.

    그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전쟁이 사람을 지우던 순간에도 누군가 끝까지 그 이름을 적고 지켜낸 이야기다. 영화 속 폴란드 크라쿠프의 거리를 떠올리면, 새해의 빈 페이지와 흑백의 거리가 어느 순간 포개진다. 그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지키는 일이 곧 한 세계를 지키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 나치는 폴란드를 기습 침공했다. 이른바 ‘번개전’ 전략에 폴란드는 한 달 만에 점령당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은 박해 대상이 됐다. 폴란드는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고, 크라쿠프는 나치 총독부의 중심지가 됐다. 영화는 폴란드 붕괴의 서사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폴란드 전역의 몰락을 식탁 위 촛불이 꺼지는 순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촛불이 사라지자마자 화면은 흑백으로 바뀌며 색을 잃은 시대가 열렸음을 명확하게 알린다.

    위태로운 피난처 된 쉰들러의 공장

    폴란드는 오랜 세월 유럽 최대의 유대인 공동체가 자리한 땅이었다. 종교적 관용과 자치가 보장되던 이곳에는 박해를 피해 온 이들이 모여 사회를 이뤘다. 전쟁 전 크라쿠프에는 도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6만5000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나치 침공 이후 유대인들은 하루아침에 재산과 직업을 빼앗기고 게토로 몰려들었다. 공동체 전체가 체계적 착취의 표적이 됐다. 독일군에 편승한 외부 세력도 게토에 뒤섞여 들어오며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잿빛 도시의 중심에 ‘오스카 쉰들러(리엄 니슨)’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장교들을 접대하며 인맥을 넓히고, 에나멜 공장을 인수해 군수 계약을 따내며 사업의 외연을 넓힌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유대인 회계사 ‘이차크 스턴(벤 킹슬리)’을 찾아가 협력을 제안한다. 스턴은 몰수된 유대인 기업의 지분과 인력 상황을 분석해 동족을 공장 노동자로 배치할 방법을 찾는다. 그때부터 쉰들러의 시선은 서서히 숫자에서 얼굴로, 계산에서 삶의 실체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플라슈프 수용소를 지휘하던 ‘아몬 괴트(랄프 파인즈)’가 소총으로 유대인을 쏘는 장면. IMDB

    플라슈프 수용소를 지휘하던 ‘아몬 괴트(랄프 파인즈)’가 소총으로 유대인을 쏘는 장면. IMDB

    1941년, 크라쿠프 외곽 포드구제가르에는 유대인 게토가 설치됐다. 원래 몇 천 명만 살던 좁은 지역에 독일군은 1만5000명이 넘는 사람을 강제로 집어넣었다. 철문과 감시초소로 둘러싸인 게토는 거대한 감옥이 됐다. 여러 가족이 한방에 몸을 뉘이고, 아이들은 복도와 계단 틈에 기대 잠을 청했다. 게토는 단순한 빈곤의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사람을 서서히 소멸시키는 구조였다. 쉰들러의 공장은 게토로 이어지는 작은 통로였으나, 그것 역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피난처에 불과했다.

    1943년 봄, 독일군은 크라쿠프 게토의 완전 청산을 명령한다. 학살과 공포가 뒤섞인 그 참혹한 날, 쉰들러는 언덕 위에서 도시가 무너지는 장면을 내려다본다. 뒤엉키는 인파, 총성, 비명, 소란 속에서 단 하나의 색이 조용히 떠오른다.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 소녀. 아이는 공포가 뒤덮인 흑백의 거리 한복판을 천진한 걸음으로 통과한다. 언덕 위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쉰들러는 한동안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독일군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틈을 타 아이가 어느 집 문틈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쉰들러는 멈춰 있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인다.

    게토 청산 후 대부분의 유대인은 플라슈프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이곳은 폭력과 학살이 일상인 공간이었다. 영화는 플라슈프 수용소를 지휘하던 아몬 괴트(랄프 파인즈)의 존재를 통해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뒤틀어놓는지 보여준다. 그는 언덕 위 자신의 저택 발코니에서 담배를 문 채 사람들을 조준해 쏜다. 아침 기상처럼 자연스러운 일과로 살인을 반복한다. 유대인 여성들을 집무실로 불러 학대하고, 노동자들의 생사는 그의 기분 하나로 좌우된다. 괴트의 폭력은 개인적 잔혹성의 산물이 아니다. 전쟁이 허용한 권력의 일상이다. 잔혹한 현실 속 쉰들러의 공장은 작은 피난처로 남았다. 그는 군수물자 생산을 명분 삼아 술과 선물, 인맥과 설득을 총동원해 더 많은 유대인을 공장으로 데려오려 했다.

    ‘빨간 코트’ 소녀 시신 발견하고 내린 결단 

    1944년 4월, 독일은 플라슈프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용자들을 절멸수용소로 이송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곳으로 유대인들을 보내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독일군은 크라쿠프 게토 청산 당시 학살된 1만여 명의 시신을 땅에서 다시 파내 화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신이 산처럼 쌓였고 그 참혹한 현장 한복판에서 쉰들러는 다시 빨간 코트의 소녀와 마주한다. 흙과 재로 범벅이 된 채 수레에 실려 있는 그 작은 몸을 바라보는 순간 전쟁을 통해 모은 재산을 들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려던 그의 계획은 산산이 부서진다. 

    이제 그 소녀는 더는 화면 속 하나의 색채나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지켜야 할 생명의 무게이자 그동안 외면해 온 시대의 죄악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날 이후 쉰들러는 전쟁의 주변에서 계산하듯 바라보던 사람이 아니라, 전쟁의 심장부에서 생명을 붙들기 위해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돼간다.

    쉰들러는 마침내 생애 최대의 결단을 내린다. 그는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죽음의 열차에서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체코 브르넨츠에 새로운 군수공장을 세우고, 그곳에 데려갈 유대인 노동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몬 괴트와 나치 당국자들에게 막대한 뇌물과 선물을 쏟아붓고, 설득과 교섭, 때로는 모욕적 타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또한 다른 독일 사업가들에게도 함께 사람들을 구출하자고 호소했지만, 누구도 자신의 재산과 안전을 걸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모든 위험과 비용은 온전히 쉰들러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쉰들러 리스트’다. 

    실제로는 스턴과 공장 관리자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이 명단에는 약 1200명의 이름이 적혔다. 서류상으로는 단순한 재배치 명단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비밀스러운 문이었다. 브르넨츠의 새 공장에서 쉰들러는 일부러 불량 탄약을 만들어 독일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의 공장은 더는 이윤을 위한 전쟁 산업이 아니라, 생명을 숨겨둘 은신처였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구원 서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거래와 실수, 설득과 우연이 뒤엉킨 현실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생명이 이어지는 과정이 장엄한 승리가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는 선택이 간신히 이어 붙인 연약한 빛임을 조용히 말한다.

    쉰들러 리스트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과 그의 후손은 오스카 쉰들러의 묘지를 찾아 돌과 꽃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참배한다. IMDB

    쉰들러 리스트로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과 그의 후손은 오스카 쉰들러의 묘지를 찾아 돌과 꽃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참배한다. IMDB

    ‘불완전한 인간’ 쉰들러가 살린 사람들

    전쟁이 끝난 뒤, 쉰들러가 구한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새로운 삶을 이어갔다. 그들은 본인과 자손들에게 ‘쉰들러 유대인(Schindlerjude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면 쉰들러 자신은 전후 여러 사업에서 실패하며 불운한 노년을 보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결코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생활비를 모아 보내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비용까지 마련했다. 쉰들러의 삶은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영웅담이 아니다. 그의 아내 에밀리에는 남편의 외도와 무책임, 사치와 방황을 숨기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고, 전후 여러 증언과 연구 역시 그가 술과 도박 등의 문제로 흔들리며 살아온 결함 많은 인간이었음을 말해 준다. 화려한 언변과 제스처 뒤에는 성공과 실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한 남자의 불안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통해 목숨을 건진 이들은 그가 약점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죽음의 어둠이 가장 짙게 드리운 순간마다 자신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렸고, 그 선택들이 수백 개의 삶을 오늘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온전히 믿을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용기, 흔들리면서도 끝내 손을 내밀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쉰들러의 복합성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 이는 주연 배우 리엄 니슨이다. 니슨은 쉰들러의 허영과 계산적 태도와 함께 깨달음과 죄책감을 한 인물 안에 자연스럽게 포갠다. 특히 마지막 오열 장면에서 그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와 절제된 떨림만으로 ‘더 구할 수 있었다’는 늦은 깨달음의 무게를 관객 앞에 깊이 드러낸다. 그 덕분에 쉰들러는 전형적 영웅이 아니라 결함과 변화가 공존하는 입체적 인간으로 남는다.

    이에 대응하는 인물 괴트는 랄프 파인즈의 연기로 완성된다. 파인즈는 괴트를 단순한 악마가 아니라, 권력에 취해 인간적 감각을 상실한 인물로 묘사한다. 침대 난간에서 무심히 총을 들고 생사를 가르는 그 차가운 일상성은 괴트의 잔혹성을 돋보이게 만들며, 동시에 쉰들러의 선택이 지닌 윤리적 의미를 강하게 대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가 구한 이들과 그 후손들이 그의 묘 앞에 작은 돌을 올릴 때, 흑백의 화면은 마침내 색을 회복한다. 이는 유대인의 장례 전통에서 ‘기억이 지속됨’을 뜻하는 의식으로, 그 돌멩이 하나하나에 남겨진 기억의 증표는 과거의 비극을 지나 오늘의 삶까지 이어지는 은은한 빛이 된다.

    2026년 새해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그 돌멩이와 그 이름들을 떠올리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작은 선택조차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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