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명사 에세이

“무릎아, 고맙다!”

  • 신헌철 | 한국펜싱협회장

    입력2016-09-20 15:54:3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  “할 수 있다!” 드라마

    한국 펜싱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6개의 메달(금2, 은1, 동3)을 얻어내자 유럽 중심의 세계 펜싱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국은 뒤이은 세계선수권, 월드컵, 그랑프리 대회를 통해 세계 정상급임을 거듭 증명했다.

    그럼에도 리우 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대통령이 태릉선수촌을 격려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체육회는 “펜싱 부문에서는 금메달 1개가 목표”라고 밝혔다. 밖에선 올림픽 금메달 몇 개쯤은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리우 올림픽 펜싱 경기가 시작되고 사흘 동안 열린 경기에서 런던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모두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4강전 및 결승전을 참관할 수 있는 입장권은 고스란히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차량으로 2시간 거리의 호텔 방으로 돌아와 다음 날 오전 경기를 기다리는 심정은 가히 형벌에 가까웠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다가오듯, 나흘째인 8월 9일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박상영 선수가 16강의 고비를 넘어섰다. 8강전에서도 쉽게 이기더니 드디어 오후에 열리는 4강전에 진출하게 됐다. 응원단이 처음으로 오후 경기에서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목청껏 응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준결승전에서 박상영 선수는 벤자민 스테판(스위스) 선수를 15대 9로 누르고 마침내 결승에 올랐다.

    스물한 살 대학생 박상영에겐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었다. 그에 비해 결승에서 만난 42세 백전노장 게자 임레(헝가리)는 올림픽 메달을 2번(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동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이나 목에 건 선수로 잠시 은퇴했다가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한다. 우려대로 결승전 1라운드에서 6대 8, 2라운드에서 9대 13으로 새내기 박상영은 노련한 임레에게 끌려다녔다.



    마지막 1분의 휴식시간에 관중은 임레의 승리를 당연시했을 터이고, 임레는 20년의 국가대표 생활을 올림픽 금메달로 마감하는 명예로운 은퇴를 상상했거나, 은퇴를 번복하고 출전한 일이 얼마나 잘한 결정이었는지를 되뇌었을지 모른다.

    벼랑 끝에 몰린 박상영에겐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필요한 연속 6포인트의 무게감보다 잃지 말아야 할 2포인트의 중압감이 더 컸을 것이다. 그로서는 눈을 감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는 ‘마법의 주문’을 독백처럼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3라운드 초반, 두 선수가 주고받은 포인트로 9대 14가 되면서 박상영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섰다. 임레의 방심을 틈타 박상영이 번개 같은 연속 득점으로 13대 14까지 밀고 올라왔을 때도 관중은 그 흔한 동시 득점이 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레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 종료 1분 41초를 남기고 극적인 14대 14의 동점 스코어가 전광판에 뜨자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흥분과 환호 속에 기적 같은 대역전승의 순간을 지켜보는 증인이 됐다. 수천 명의 관중이 기립한 가운데 제일 높이 올라간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소리 높여 부르는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 2  올림픽 연속 메달

    “할 수 있다!” 드라마의 흥분을 밤새 가라앉히지 못한 채 펜싱 경기 5일차 남자 사브르 개인전 응원을 나서며 다시금 메달 획득을 염원했다. 여자 에페엔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자 사브르엔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섰기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결국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남자 사브르의 김정환은 국가대표 11년차의 맏형으로서 마지막이 될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을 것이다. 세계 랭킹 2위인 데다 지난 5월 모스크바 그랑프리 우승자기에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기대하게 했다.

    펜싱협회장으로서 나의 승리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어제 금메달 현장에 입고 간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맹목적 확신으로 이어졌다. 날카로운 눈매로 상대의 검을 노려보다 순식간의 공격이나 전광석화 같은 반격으로 득점하는 김정환은 ‘Eagle Eye(독수리 눈)’로 불리는 선수가 아닌가.

    그러나 김정환도 16강전에서 산드로 바자즈(조지아) 선수를 상대하며 1라운드를 8대 6으로 앞선 뒤 14대 11까지 몰고 가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편파적인 판정과 관중의 야유 속에 14대 14 상황에 이르렀다. 마지막 일격을 끝낸 김정환은 투구를 벗고 승리의 포효를 했으나 심판은 또다시 모니터 판독으로 끌고 갔다. 심판의 최종 선언을 듣기 전까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김정환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고 8강에 진출했다.

    김정환의 4강 진출로 응원단은 이틀 연속으로 오후 경기장에 갈 수 있었다. 4강전에서 아론 칠라지(헝가리)와 대전할 때는 어제의 감격이 다시 찾아오는 환상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1라운드 초반에 0대 5로 끌려가는 무거운 짐이 결국 12대 15의 패배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어진 동메달 전에서 김정환은 구본길 선수를 이긴 이란 선수와 겨루게 됐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분투한 끝에 15대 8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비록 금메달은 못 땄지만 어제 옷을 바꿔 입지 않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꽁꽁 막혀 있던 한국 선수단의 금맥이 펜싱에서 터지기 시작했다’며 자화자찬도 했다.



    # 3  드라마에 숨은 이야기

    펜싱 선수들은 각종 국내외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올림픽대표 선발전 등을 통해 종목당 8명이 선발돼 태릉선수촌으로 들어온 뒤 훈련을 거쳐 최종적으로 4명이 올림픽 참가 선수로 확정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리우 올림픽에 참가한 펜싱 선수는 총 17명이다). 따라서 매 순간 엄격한 판정과 공정성이 요구된다.

    박상영 선수는 청소년 때부터 일찍이 국가대표로 발탁됐으나 지난해 3월 왼쪽 무릎의 십자인대 수술로 재활에 몰두해야 했고 세계 랭킹이 21위라 올림픽 출전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많은 펜싱인이 박 선수에게 올림픽 출전 기회를 주자고 요청해왔고 협회는 수차례 공식 논의를 거쳐 연초에 2차에 걸친 특별평가전을 열었다. 박 선수는 그 절차를 거친 끝에 올림픽 대표로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기존에 선발된 선수가 자신이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현실을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펜싱인들이 하나같이 믿고 따르지 않았더라면 “할 수 있다!” 드라마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박 선수가 한 말은 한국 펜싱의 미래를 낙관하게 하는 유쾌한 유머였다.

    “가장 고마운 건, 내 무릎이다. 정말 중요할 때 잘 버텨줬다!”

    신 헌 철


    ● 1945년 부산 출생
    ●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연세대 석사(경영학)
    ● SK텔링크 대표이사, (주)SK 대표이사,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
    ● 現 한국펜싱협회장, 부산대구 행복한학교재단 이사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에세이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