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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서울에서 협소주택 짓기

폭풍전야는 고요했지만…

5화_세입자 이사 & 한옥 철거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자문·이재혁 | yjh44x@naver.com

폭풍전야는 고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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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말로 갈수록 은행 사정에 따라 대출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연말이었지만, 우리는 다행히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필요한 만큼만 대출받고 공사 시작과 함께 추가로 대출을 받기로 했다.

이사 전날 집 근처 커피숍에서 세입자를 만났다. 전세 구하기 힘든 시절, 좋은 집을 구했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부동산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전세 계약서를 돌려받고, 이사 당일 오전까지 전기·수도·가스 요금을 정산하면 말해둔 이사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사 풍경은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었지만 세입자 자매 옆에 연예인 버금가는 수려한 외모의 장정이 버티고 있어 안쓰러움을 덜었다. 전기·수도·가스 요금 정산 내용을 확인받고 이사비를 넉넉히 건네주고 열쇠를 받았다.

우리는 몇 달 동안 궁금해서 근처만 뱅뱅 돌던 한옥집을 비로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래 기역(ㄱ)자 형태의 한옥을 개축해 디귿(ㄷ)자 형태로 바꾸면서 대문 앞 진입로에 보일러실 겸 창고가 생겼고, 창고 계단 옆으로 큼직한 실내 목욕탕이 있는 집이다. 목욕탕 위엔 아담한 장독대가 있어 그 나름대로 운치 있었는데 거기 올라가면 옆집 한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람에 어지간해선 올라가지 않은 것 같았다.

차 한두 대 주차할 정도 넓이의 길쭉한 마당에 해가 들어 낮 12시 이후부터 오후 4시쯤까지 한옥 부엌 쪽을 따뜻하게 비췄다. 이사 청소를 하듯 방을 닦고 목욕탕 때를 닦아내고 마당을 쓸었다. 해가 비치는 널따란 부엌창과 창틀도 꼼꼼히 닦았다. 어차피 한 달 뒤면 사라질 집이지만 겨울엔 공사를 할 수 없으니 1월 중순 집을 멸실하고 바로 문화재 조사를 하고 3월에 공사를 시작하면 되는 느슨한 일정이라 그때까지 이곳에 캠핑용품을 갖다 놓고 별장처럼 오가며 즐길 생각이었다.

실제로 12월 내내 남편은 ‘단독주택 있수다’(건축가와 시공자가 함께하는 건축주 대상 건축 세미나), ‘집톡’(젊은 건축가들의 공부 모임) 등 한옥에서 소규모 모임을 열었고, 가족끼리 특별한 일정 없는 주말마다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피자며 치킨을 시켜 먹고 놀았다. 늘 맛있는 음식점을 찾던 크리스마스도 올해만큼은 우리 집에서 조촐하지만 편안한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그렇게 우리의 12월은 꿈결처럼 흘러갔다.




시공,누구와 함께?

폭풍전야는 고요했지만…
폭풍전야는 고요했지만…

지붕을 털어내니 서까래가 드러났다. 벌레 슬고 둥근 나무는 원래 한옥의 것, 가늘고 깨끗한 나무는 최근에 개축하며 덧댄 것이다. 

즐거운 12월이 가고 본격적인 공사의 시절이 왔다. 원래 우리는 목구조로 짓고 싶었지만, 우리나라는 건축법상 목구조로 4층 건물을 짓기엔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고 했다. 요즘은 컨테이너로도 집을 짓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 집은 작은 땅, 꺾인 곳이 많은 비정형의 형태로 설계돼 선택의 여지없이 콘크리트 구조물이 될 운명이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설계를 누구에게 맡길지, 시공을 누구와 함께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겠지만, 그런 면에선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워낙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시공사며 자재업체며 두루두루 관계가 좋다. 원래 시공사는 뉴마이하우스, 인사이트 두 군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두 곳 다 마감을 깔끔하게 잘하는 곳이라서 어디와 해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그동안 ‘단독주택 있수다’를 함께 하던 뉴마이하우스 시공사, 삼익산업의 자재를 다수 사용해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꿈에 부풀었다.  

드디어 철거하는 날. 두껍게 벽돌 옷을 입고 있던 한옥의 기와가 내려지고 앙상한 지붕 서까래가 드러났다. 비록 벌레 슬고 앙상한 나무이지만 오랜 세월 견뎌온 무게감이 느껴져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지붕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린 시절 지붕 위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던 쥐 소리가 생각났다. 그 시절엔 무섭던 그 소리가 고향의 향수처럼 떠오르는 건 왜일까.

철거는 사흘에 걸쳐 계속됐다. 철거 중 나온 대들보 상태가 좋다고 남편은 신이 났다. 남겨뒀다가 나중에 상징적 의미로 사용해볼까 이리저리 재 봤다. 그러나 문제는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 ‘한옥을 철거하는데 나무를 가져가겠느냐’고 한옥자재 은행에 문의했다. 당시 철거하는 곳이 많아서 일손이 달리고 보존 상태가 좋은 한옥 나무만 가져간다고 했다. 쳇, 대들보는 괜찮은데…. 결국 우리 집은 보기에 좋지 않았는지 나무를 가지러 오지 않았다. 나무들이 어떻게라도 재활용되면 좋았을 텐데. 집을 헐고 짓는 과정은 엄청난 소비의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철거 후 민낯을 드러낸 우리 땅은 생각보다 넓었다. 아니 넓어 보였다. 철거 후 문화재 조사를 기다리는 사이 별일도 없는데 날마다 들르게 된다.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딱 그때만 같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2016년이 이렇게 혹독할 줄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땅을 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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