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K-EDU’ 수출로 大韓연방 닻 올리자

[김태일의 대자보]

  •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前 신전대협 의장

    입력2023-1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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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학교 소멸하는데 아직 분배 담론만…

    • 인구 재앙 해결 실마리 될 교육 수출

    • 한국어 생태계 확장 = 미래 플랫폼 선점

    [Gettyimage]

    [Gettyimage]

    몇 달 전 온라인에서 ‘금수저가 서울대 가는 방법’이라는 게시물이 화제를 모았다.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워 자녀를 서울대에 보낸 부모 사례가 담긴 칼럼을 재조명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팀’을 짜서 현지에 외국인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해외에서 초·중·고교 12년을 모두 다닌 학생의 경우, ‘재외국민전형’으로 정원 외 입학이 가능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2016년에 쓰인 해당 칼럼의 골자는 박탈감·열패감에 대한 우려였다. 돈으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면 기회의 사다리가 무너진다는 것.

    발상을 전환해 보자. 우리나라는 몇 가족이 합을 맞추면 다른 나라에 학교도 지어줄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게다가 대입 문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대학의 정원은 그대로인데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무조건적 희생을 택하기보다 스스로를 함께 돌보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 자녀의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해 본인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12년 동안 아프리카에 갈 부모는 적지 않을까. 명문대 진학이 ‘성공 보장’의 충분조건이던 시대는 진작 지났다. 젊은 세대는 “자식 농사 소용없다”며 은퇴를 앞둔 부모 세대의 고충을 마주하고 있다. 요즘은, 즉 자식을 낳아봐야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안 낳는 게 더 문제인 세상이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교육의 주된 쟁점은 ‘형평성’이라는 분배 담론에 편중돼 있다. 학생이, 학교가 없어질 텐데, ‘누가 좋은 대학에 갈 것인가’를 두고 국내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예견된 재앙 앞에서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맞는 걸까.

    사회 통합 일궈낼 ‘K-EDU’ 보급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알고 보면 이런 사례가 적잖다. 아니, 이미 한국은 잘하고 있다. 현재 한국어 수요는 2010년대에 비해 4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CNN은 국제 언어 학습 플랫폼에서 한국어가 일곱 번째로 많이 학습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외에서 한국어·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세종학당’은 2021년 기준 82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 정식 과목에 한국어를 채택했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엔 단군신화와 ‘별주부전’ 등 한국 전래 문학이 초중등 국정교과서에 3년 넘게 실리고,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요구해 수업이 개설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어 열풍 이전에 이미 태권도가 있었다. 인성 함양은 물론 보육까지 해준다는 점에 태권도 학원이 각광받고 있다. 외국의 태권도 학원도 한국 태권도 학원과 흡사하게 운영된다. 외국인들이 어려서부터 한국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국 학교’ 구실을 하고 있다. 미국의 태권도 학원은 1만5000여 개에 달하며, 태권도를 공립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한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한 국가는 전 세계 210개국이다. 유엔 회원국(193개국)보다 많고, 세계 태권도 수련생은 1억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국제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늘 같이하는 환경에서 학부 생활을 했고, 그들의 한국 적응기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한방에서 둘이 지내야 하는데, 한국어와 영어 모두 못한다”고 인사를 걸어온 기숙사 룸메이트가 기억에 남는다. 어쩌려고 한국까지 왔나 걱정했는데, 이 친구는 아직도 한국과 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친구도 많아지고 한국말이 점점 늘더니, 이제는 옛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당장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원해서 한국에 온 이들은 충분히 ‘한국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가 이들을 맞이할 준비만 한다면 ‘대한 외국인’이 될 사람이 많아진 시대다.

    교육을 수출하자. 생소한 주장일 수 있으나 많은 당면 과제와 궤가 맞춰진다. 이민 문제부터 그렇다. 개인에게 이민은 ‘올인(All-in)’이다. 가족부터 지식과 일터까지. 본국에서 다진 내 삶의 기반을 모두 걸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선망하는 나라가 있더라도 그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좋은 이민이란 진짜 한국인이 되고 싶은 이들의 정주 이민이다. 또한 정주 이민의 출발점은 주로 유학인 경우가 많다. 유학·취업·결혼으로 이어지며 낯선 곳에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것이다. ‘K-EDU’ 수출은 더 많은 이들에게, 뭘 좀 알려주자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정원 부족 해결·외자 등록금 유치 등을 위한 대학 교육계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정주 이민을 위한 초입 단계이자 사회 통합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8월 교육부는 2027년까지 한국 대학을 찾는 유학생을 30만 명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국내에 체류하는 등록 외국인은 무려 124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고충은 일자리다. 정주 요인의 근본이 불안정한 환경이다. 인재를 유치한다는 구호와는 달리 한국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음에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9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2023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에서 연세대학교 응원단을 비롯한 40여 개국 외국인 유학생 공연팀이 행진하고 있다. [뉴스1]

    9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2023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에서 연세대학교 응원단을 비롯한 40여 개국 외국인 유학생 공연팀이 행진하고 있다. [뉴스1]

    대한연방 초석 세울 기회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역차별·내국 실업난 가중 등 부작용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K-EDU’를 수출하면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겨나리라 본다. 기존 체제에선 그들이 ‘자리 못 잡아 돌아가는 사람’이 되지만, ‘K-EDU’ 수출 국면에선 가장 중요한 개척자 노릇을 해줄 것이다. 더 많은 ‘대한 외국인’이 생겨날 것이다.

    언어는 플랫폼 사업이다. 한국어 사용 인구가 증가해 국제 공용어가 된다면 이는 곧 한국이 문화·제도 패권을 확보해 내는 것이다. 저명한 논문·발표·강의가 한국어로 이뤄지고, 유튜브의 모든 콘텐츠에 한국어 자막이 달리고, 한국 크리에이터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소비된다면 어떨까. 한국어로 ‘생태계 조성’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면, 관련 산업은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학습법이 AI(인공지능) 등 에듀테크 기반으로 재구성되는 전환기라는 점에서도 지금은 절호의 기회다. ‘챗-GPT’가 한국에 우호적 대답을 한다고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AI산업이 한국과 우호적일 수 있도록 빅데이터·알고리즘을 선점해야 한다. 한국엔 수십 년째 교육사업만으로 성장해 온 대기업들이 있고,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정부와 국민이 있다. 이미 인터넷 강의가 익숙한 세대가 40대에 진입했다. AI를 통해 필요한 부분만 학습하고, 약한 부분을 집중 보완하는 학습법은 한국인에게 더는 낯설지 않다. 한류가 지향해야할 목적지는 ‘K-세계관’ 확장이다. 한류가 만들어낼 연대감은 대한 외국인과 함께 ‘대한연방’을 이룩할 토양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진 민간에서 잘해냈다. 이제 국가의 역할만 남았다.


    김태일
    ● 1993년 출생
    ● 한국외대 국제학부 졸업
    ● 신전대협(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 現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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