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지난 총선보다 국민의힘 선전, 민주당 고전할 듯

[윤태곤의 총선 읽기]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4-02-17 09:00:0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총선은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

    • 이기면 좋은 공천, 지면 나쁜 공천

    • 국민의힘 공천 환경 4년 전보다 좋아

    • 민주당은 덜어내는 게 문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 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 5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영상] 엄경영 vs 유승찬



    정당끼리, 후보끼리 한 표라도 더 얻어서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선거는 총칼 없이 싸우는 전쟁이다. 대통령선거의 경우 각 당이 한 사람의 후보를 내세우고 온 힘을 다해 싸우니 단순하지만 300석의 의원 자리를 놓고(지역구 253곳, 비례대표 47곳) 전국에서 벌어지는 총선은 복잡다단하다.

    2주 남짓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 각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다시 보면 단순하다. 최선을 다해 싸운 이후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이에 비해 전투 준비, 공천은 훨씬 더 복잡하다. 2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각 당의 공천 작업이 진행될 때 온갖 잡음과 반발, 이합집산이 빚어질 것이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같은 제왕적 총재들은 물론이고 전두환·노태우 같이 정치 경험이 없었던 군인 출신 보스들도 실력 있는 사람들을 깔끔하게 뽑아 선거에 내보냈는데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 권위적 리더가 후보들을 골라 내놓던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못한 측면이 있다.

    권력도 책임도 제왕적 1인자의 몫

    제왕적 1인자들은 언변이 뛰어나서 공중전을 맡길 사람, 조직력이 뛰어난 사람, 정책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 대중적 이미지가 좋아서 간판 역할을 할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치자금을 댈 재력가들까지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배치했다. 측근들도 안방 지역구나 비례 후보로 나서서 전체 선거판을 운영할 사람, 당직자로 의원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 국회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할 사람으로 나눠서 배치했다. 이런 모든 작업은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러다 어느 날 신문에 깔끔한 표로 정리된 전국 공천 명단이 발표됐다. 당원들이 참여하는 경선, 외부 기관에 맡기는 여론조사 따위는 신문 국제면에 나오는 외국 이야기였다. 권력도 책임도 오직 한 사람의 것이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그런 시절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지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로 따져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약한 리더다. 김대중, 김영삼까지 갈 것도 없이 이회창,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이 지녔던 유무형의 장악력이나 지지자들의 충성도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여야 양당에서 벌어진 사당화 논란, 이로 인한 이탈과 3지대의 부상은 그 약함의 증거다.

    현대 한국 정치에서 공천의 보편적 프로세스는 잘 짜여 있다. 독립적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공천 신청을 받는다. 한 지역 내의 여러 신청자 중에서 종합적 경쟁력이 도드라지는 사람이 있으면 단수 추천 지역으로 결정한다. 경합할 만한 복수의 후보들이 있는 곳은 당원과 유권자들이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 지역이 된다. 나머지가 우선 추천 혹은 전략공천 지역이다. 신청자 중에 적합한 인물이 없거나, 특별히 힘을 쏟아야 할 전략 지역이거나, 전체 선거판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영입한 사람이 있거나, 험지에 발탁 인사를 하는 경우다.

    대체로 험지나 경합 지역은 단수, 우선 추천의 형태로 공천자가 빨리 가려지고 텃밭의 경우 마지막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전자는 공식 후보라는 감투를 하루라도 빨리 씌워서 상대방과 경쟁에 전념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공천 탈락자의 반발과 무소속 출마 같은 이탈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의 경우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관위는 2월 13일에 오세훈(서울 광진구을), 허용범(서울 동대문갑), 나경원(서울 동작을), 신상진(경기성남 중원) 등 네 사람을 1차 단수 추천 후보로 발표했다. 그리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임박한 3월 26일에야 경선 지역인 부산 금정에서 백종헌, 경북 경주에서 김석기 후보의 공천을 마지막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첫 번째 공천을 받은 네 사람은 전원 낙선했고, 엎치락뒤치락 끝에 막차를 탄 두 사람은 모두 당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전자가 잘못된 공천이고 후자가 나쁜 공천이라고 말할 순 없다.

    좋은 공천이 무엇이냐에 대해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은 물론이고 국가에 헌신할 국회의원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국민 앞에 내세워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그게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긴 어렵다. 결과론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이기면 좋은 공천이고 지면 나쁜 공천이다. 당선자들의 의정 활동이 공천 과정에서 담보되지도 않는다. 늘 그렇긴 하지만 21대 국회의 경우 구성원의 면면이 최악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의석의 다수를 점하는 민주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원혜영 전 의원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아직까지도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역대 여러 정당의 공천관리위원장 중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정치판에 픽업된 지적인 인물, 14대부터 18대 국회까지 내리 5선을 기록한 다선, 10년 여당 생활과 10년 야당 생활, 계파색이 엷고 합리적이라는 평판, 보수정당이 큰 위기에 처했던 17대 총선의 선대본부장과 국회의장의 이력을 지닌 김형오만 한 적임자를 찾긴 힘들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4년 전을 돌아보면 민주당은 임기 말까지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한 문재인 대통령, 당 터줏대감으로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발휘한 이해찬 대표,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해 평판 좋았던 중진 원혜영 공관위원장의 삼각 편대를 갖추고 공천에 임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황교안 대표, 18대 총선을 끝으로 정치판을 떠났던 전직 국회의장 김형오 공관위원장, 공천 완료 시점에 합류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삼각 편대로 맞섰다. 게다가 미래통합당의 경우 총선 직전에야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이 통합해 출범한 정당으로 당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지지율, 구심력, 실무 능력 등 세 가지 요인에서 양당의 격차가 큰 수준에서 공천이 진행됐고 미래통합당의 경우 막바지엔 최고위원회에서 공천 재의결, 추천 무효가 속출했다. 민주당에서도 통상 수준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관위나 당 지도부, 나아가 청와대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탈락자들은 없었다. 공천이 끝난 시점, 아니 공천이 시작되기 이전의 시점에 21대 총선의 승부는 이미 갈렸던 셈이다.

    국민의힘 강점은 ‘여당’이라는 환경

    두고 봐야 아는 것이지만 22대 총선 공천 환경을 살펴보면 국민의힘은 4년 전보다는 낫고 민주당은 그때만 못하다. 국민의힘의 경우 야당에서 여당으로 환경이 바뀐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대통령 지지율 상승이 지지부진하고 총선 때까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대통령 임기 중반 여당의 구심력은 기본적으로 상당할 수밖에 없다. 야당에 비해 여당은 인력풀을 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 공천 탈락자 혹은 험지 출마자들의 공간이 내각, 지자체, 공공기관, 정부 유관 단체까지 확장된다.

    여당의 실무적 뒷받침 역시 4년 전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으로 활동했고 이번에도 공관위에 몸을 담고 있는 유일준 변호사는 “공천 관련 자료, 당 실무자들의 일처리 속도는 물론이고 회의 공간이나 심지어 다과 수준까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이 조차 4년 전보다 나쁘다고 말하긴 어렵다.

    게다가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한 위원장이 노련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언행이 안정적이고 깔끔한 데다 정치 신인답지 않게 대중 앞에서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 및 일부 인사 탈당 시점과 한동훈 체제 출범 시점이 겹치면서 탈당 후폭풍이 최소화됐다. 유승민 전 의원조차 당 잔류를 선언했다. 두고 봐야 아는 일이지만 중량감 있는 공천 탈락자 중 개혁신당에 합류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나 전임자 김기현 전 대표에 비해 한 위원장이 중도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확장력도 강하다. 파국 일보 직전까지 갔던 대통령과의 갈등이 수습된 이후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인식 차는 여전한 것 같지만 총선의 이니셔티브는 용산에서 국민의힘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국민의힘 지지층 내 지지율은 과거 박근혜 비대위원장 수준으로 높고, 예비 후보들의 현수막과 프로필 사진에는 대통령 얼굴보다 한 위원장 얼굴이 더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전략 부분에서 전선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 확실히 눈에 띈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연말까지만 해도 여권에선 ‘서울 강남과 영남권을 제외하면 비벼볼 만한 선거구가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강남과 영남의 현역의원들은 대통령실의 눈치만 살폈고, 이른바 ‘용핵관’이라 불리는 인사들은 양지를 물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제일 먼저 한강 하구의 최험지 인천 계양을에 출사표를 던지고 역시 한강변인 마포을에 김경율 비대위원(이후 불출마 선언), 한강 가운데인 영등포을에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 좀 더 동쪽 한강인 중·성동을엔 윤희숙 전 의원이 나서면서 이른바 한강벨트가 형성됐다.

    영남이나 서울 강남이 아니라 한강에 그어진 전선의 효과는 다층적이다. 일단 메시지와 전략이 중도화된다. 전선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가 주로 나오게 되고, 중원을 상대방에게 내주게 마련이다. 가운데서 치열하게 싸우면 후방의 강성 지지층도 전방을 주시하고 응원하면서 중도화 전략을 용인하게 마련이다. 또한 한강 전선이 주목받자 공천의 숨통도 틔는 모양새다. 눈치를 보다 강남을에 출사표를 던진 이원모 전 비서관과 박진 전 장관은 물러섰고, 영남권에서도 중진급 현역의원들, 용산 출신 원외 인사들의 연쇄적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사람이 너무 많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5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을 방문해 상인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5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을 방문해 상인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반대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약점이다. 인력풀을 운용할 수 있는 운동장은 좁아졌는데 밀도는 높아졌다. 쉽게 말해 사람이 너무 많다. 지난 총선 때 워낙 크게 이겨 현역의원이 많다. 게다가 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에선 압승하고 2022년 지방선거에선 참패하는 바람에 준(準)의원급이라고 자부하는 전직 단체장이 수두룩하다.

    정치 이력이 만만찮지만, 지난번에 아깝게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586세대와 X세대 인사들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달려들고 있다. 이렇게 내부 경쟁이 치열하니 ‘새로운 피를 수혈한다’는 명분으로 정치권 밖의 경쟁력 있는 인사들을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치열한 친명 대 친문 갈등은 이 구조의 현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당화(私黨化) 논란이 뜨거울 정도로 이재명 대표의 위상이 독보적이지만 4년 전에 비하면 당의 구심력이 약해진 데다 임종석, 노영민 등 지명도가 높은 친문 인사들을 향한 압박이 너무 거칠다. 민주당의 공천 갈등 강도가 국민의힘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반대로 전선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리고 있다. 이낙연, 조응천, 이원욱, 김종민 등 반명 내지 비명계 인사들이 빠져나간 이후 통합력을 키우는 쪽이 아니라 친문계에 대한 공세를 오히려 높이고 있다. 연동형비례제 유지를 선택한 이후엔 기본소득당·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등 군소 정당이 연합한 새진보연합, 녹색정의당, 진보당, 조국·송영길 신당 등 민주당 왼쪽 세력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스스로 가운데를 비우고 왼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시점에서 승패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민주당의 경우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과 자매 정당(열린민주당)과 합해서 얻은 당시 의석 183석에는 못 미칠 것이고, 국민의힘은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합친 당시 의석 103석은 상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것이 이 같은 양당의 공천 상황 때문이다.

    위에서 짚어본 양당의 강점과 약점이 엇갈리는 지점도 분명하다. 현재 국민의힘 공천 신청 현황을 보면 수도권은 얼기설기한 수준이다. 그래도 국회의원감이라고 할 만한 인지도나 경력을 갖춘 인물 자체가 없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서울도 그렇지만 경기도로 가면 참혹한 수준이다. 영남권 공천 희망자를 재배치하기도 늦은 시점이다. 반면 민주당은 청와대 비서관, 기초단체장, 전·현직 의원 등 그럴듯한 경력을 갖춘 인사들이 웬만한 지역마다 2, 3배수로 꽉꽉 차 있다. 결국 22대 총선 양당 공천의 과제는 정반대다. 국민의힘은 채우는 게 문제고 민주당은 덜어내는 게 문제다.



    2024 총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