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尹 절친’ 원장인 보험개발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중계기관으로 급결정

[금융 인사이드] 의료계 “복수 기관” 반발에도…

  •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입력2024-02-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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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부터 중계기관 거쳐 보험금 간편 청구 가능

    • 중계기관 선정 놓고 의료계-보험업계 대립했지만…

    • 일부 병원 사용 핀테크 청구 방식도 인정 ‘절충안’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실손보험업법 관련한 의·약 4단체의 기자회견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과 관련해 논란이 된 금융위원회 홍보문구가 화면에 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실손보험업법 관련한 의·약 4단체의 기자회견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과 관련해 논란이 된 금융위원회 홍보문구가 화면에 떠 있다. [뉴스1]

    올해 10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난항이 예상됐던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보험개발원을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으로 선정하며 속도가 붙었다.

    이 서비스는 중계기관 선정에 난항을 겪으며 진통이 계속돼왔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보험금 청구정보 중계기관으로 유관기관인 보험개발원을, 의료계는 민간 핀테크 업체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5일 극적으로 중계기관이 선정되며 급물살을 탄 모습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업계의 숙원이나 다름없다. 개정안의 골자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과정 간소화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요청할 시 병·의원이나 약국이 실손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전자서류 형태로 전송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가입자가 의료비 증빙서류를 의료기관에서 종이로 발급받아 보험사에 우편, 팩스, 이메일 등으로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절차가 복잡해 가입자가 청구를 포기한 실손보험료가 연간 3000억 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 통계를 활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청구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2021년 2559억 원, 2022년 2512억 원, 지난해 3211억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소액일 경우 청구를 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 증빙서류를 일일이 떼는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각 보험사가 자사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이용해서 보험 가입자가 간편하게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노년층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은 이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4년 만에 간소화 시행…‘우여곡절’ 끝 중계기관 선정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실손보험은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보험이다. 그럼에도 가입자의 편의가 떨어지고 청구를 위해선 보험사를 찾아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됐다.

    이로 인해 2006년부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사별로 제각각이던 보험금 청구 양식을 통일하고 방법을 간소화할 것을 권고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정과제로 제시됐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번번이 무산됐다. 2012년 금융위원회는 실손보험금 지급심사강화를 골자로 하는 ‘실손보험 종합개선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개별 보험사가 비급여 의료비를 확인하는 데 확인에 한계가 있다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실손보험 심사 업무를 위탁해 비급여 의료의 청구 내용 확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보험개발원을 실손보험 심사위탁 대행기관인 보험정보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심평원과 보험개발원이 공사보험의 진료 정보 및 심사 정보를 공유하게끔 하자는 계획도 내놨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의 계획대로 실손보험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할 경우 심사가 강화돼 관련 진료가 위축될 우려가 크며, 보험정보원을 설립해 공사보험 간 정보 공유가 정례화된다면 공·사보험의 진료 정보가 민간으로 유출돼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

    2014년 12월 금융위원회는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안정화 방안 추진’을 내놓고 “비급여 의료비 청구 내용 확인을 위해 전문심사기관(심평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해관계인 이견으로 지연됐다”며 “자동차보험 진료내역 심사체계를 참조해 보험회사가 비급여 의료비 적정성 확인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보험 진료 내역 심사체계는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진료 내역 심사청구 → 심평원이 심사 후 의료기관·보험회사에 심사 결과 통보 →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에 보험금 지급 순이다. 이를 참조해 의료비 적정성 확인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가입자의 정보 보호를 위한 보완 방안 등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보험업법 개정안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이후 14년 만인 지난해 6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본회의까지 통과해 시행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공포 1년 이후부터 시행된다. 30병상 미만 의원급 의료기관, 약국 등에 대해서는 2년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이에 병원급 의료기관은 올해부터, 의원급 의료기관과 약국 등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행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 조직을 구체화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과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 회의를 열고 3개의 기능별 워킹그룹 구성을 의결했다. TF는 △규정 개정 △전산시스템 △요양기관 배포 3가지 부문으로 나눠 가동하기로 했다. 각 부문은 주요 논의·결정 사항을 TF에 보고하고 전체회의는 매월 1회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TF를 꾸리면서 금융위원회는 “보험회사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공공성·보안성·전문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전송대행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보험업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보험금 청구 절차, 청구 양식 표준화, 정보 송수신 인증·보안 방안 등 전산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이해관계자 등과 협의해 확정하고 구체적인 전산시스템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TF가 가동되면서 중계기관 선정 또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런데 업권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탓에 ‘제자리걸음’만 반복됐다.

    당국·업계 “보험개발원 적합”

    허창언 보험개발원 원장. [보험개발원]

    허창언 보험개발원 원장. [보험개발원]

    당국과 보험업계는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이 적합하다고 봤다. 공공성·보안성·전문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곳이라는 게 이유다. 보험개발원도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보험개발원 부원장을 장(長)으로 한 TF를 가동하는 등 시스템 구축에 대비했다.

    이미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중계기관 선정을 염두에 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허 원장은 지난해 3월 취임 10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이 가장 적합한 기관임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중계기관과 관련한 질문에 “개발원은 보험료율을 산출하는 기관으로서 다량의 보험 정보와 이에 대한 데이터를 전산으로 보관하고 있다”며 “그간 단 1건의 오남용 유출 사고도 없었다. 개발원이 정보 보안과 관련된 기술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국민에게 유익한 제도이기 때문에 관련 업무를 맡겨준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나는 금융보안원장 출신이다. 정보 보안 내용들을 다뤄봤기 때문에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2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허 원장은 “실손보험 간소화 중계기관으로 선정된다면 우리의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실손보험 간소화 중계기관 선정과 관련) 기회가 주어질 찰나에 있는 것 같다”며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될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개발원 부원장을 TF장으로 한 TF를 가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허 원장이 중계기관 역할에 자신감을 드러낸 이유는 또 있었다. 허 원장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데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대 법과대학 79학번 동기로서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과거 사법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후 한때 법조계 진출을 포기하고 허 원장을 따라 한국은행에 입사하려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해, 허 원장과 윤 대통령의 친분이 두터운 점이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될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의료계 반발에도 결국…

    의료계는 의료법상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보관하거나 비밀누설을 하지 못한다는 조항을 들어 중계기관을 보험업권이 아닌 곳에 설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민간 핀테크 기업을 복수 중계기관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복수 시스템을 마련하고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환자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한곳에 쏠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2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 2차 회의에서 보험업계는 무난히 중계기관 선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당국과 의료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 시행이 9개월도 채 남지 않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계는 복수 중계기관 선정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15일 금융당국과 보건복지부, 의약단체, 생·손보협회 등이 참여한 TF 회의에서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로써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최대 쟁점이었던 문제가 해결됐다. TF는 중계기관을 단독으로 지정하되 현재 일부 병원에서 시행 중인 핀테크 업체를 통한 실손보험 청구 방식도 인정하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전산시스템 구축·운영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 사항도 합의했다. 위원회는 20인 이내 위원으로 하고 의약계와 보험업계가 추천하는 위원은 같은 수로 균형있게 구성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앞으로 실손보험 전산 청구 과정에서의 관계기관 간 협의·조정, 전산 청구 개선방안 연구, 전송대행기관 업무 수행에 관한 권고·평가 등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또 실손보험 전산 청구가 가능 서류는 현재 요양기관에서 보험계약자 등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는 서류(계산서·영수증·세부산정내역서·처방전)로 한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달 중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앞으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를 통해 그동안 제기된 사항에 대해 이해관계자 간 긴밀한 소통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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