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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기획|달아오른 고구려 논쟁

한·중·일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민족주의

저마다 내 땅, 영토분쟁의 핵 ‘만주’

  • 글: 임상선 한국교과서연구소 소장institute@naver.com

한·중·일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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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다시 독립을 획득한 것을,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조약이라고 말한다. 1945년부터 1952년까지의 시기를 유엔의 깃발 아래 연합국에게 주권을 상실한 시기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본 역사교과서는 강화조약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지난해 검정에 통과해 올해부터 사용될 짓쿄(實敎)출판사에서 간행한 ‘고교일본사B’를 보자.

조선전쟁(6·25)이 시작된 직후 1950년 9월, 미국은 대일강화 방침을 극동위원회 구성국에게 보였다. 다음해 미영 공동초안이 발표되고, 9월에 열린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의 초청장이 55개국에 보내졌다. 그러나 중국, 한국, 북조선은 초청되지 않았다. (중략)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1951년 9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수상 등 일본 전권(全權) 대표와 48개국 대표 사이에 조인되었다. 평화조약의 내용은 (1)일본의 주권 회복 (2)조선의 독립 (3)팽호(澎湖)제도, 천도(千島)열도, 남화태(南樺太) 영토권 포기(그 귀속은 명시하지 않고) (4)북위 29도선 이남의 난세이 제도와 오카사와라 제도에 대한 미국의 계속적인 시정권(施政權) 행사 (5)외국군대 주류의 승인 (6)원칙으로서 연합국측의 배상청구권 포기 등이었다. (222~223쪽)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일본을 비롯 49개국이 참가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조인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일본의 주권 회복과 영토 규정, 그리고 종전시 일본 점령지에 대해 내린 결정이다.



그 중에는 ‘조선의 독립’도 언급되었는데 관련 조문은 “일본국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權原)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하여 일본 역사교과서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조선의 독립이 언급된 것을 이유로 ‘일본이 1952년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독립은 1945년 8월15일도,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도 아니다. 1952년까지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로서 영토

지난해 검정을 통과해 일본 고등학교에서 많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도쿄서적과 야마가와출판의 ‘신일본사B’에는 일본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 예시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소련과의 북방영토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야마가와출판 ‘신일본사B’의 일부다.

소련은 1945년의 대일참전으로 북방영토인 구나시리(國後), 에토로후(擇捉), 하보마이(齒舞) 군도, 시코탄(色丹) 등을 점령하고 있다. (375쪽)

‘평화조약 규정에 의한 일본의 영토’라는 지도엔 ‘태평양전쟁 전의 일본령’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 의한 일본의 영역’‘그 후의 일본 복귀지역’을 표시하고, 이른바 북방영토는 ‘일본국 고유영토’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편 한반도는 대만 등과 함께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령’으로 표시하고 독도는 다케시마(竹島)로 표시했다.

2002년 검정에 통과해 지난해부터 사용중인 메이세이사의 ‘신일본사’도 “현대일본의 과제와 문화의 창조”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적시했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가 타국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방영토는 러시아에 점령당한 채로 있고, 한국이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또한 중국 등이 오키나와현 센가쿠(尖閣)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70쪽)

러시아의 북방영토, 한국의 독도(일본은 다케시마라 칭함), 그리고 중국의 센가쿠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나 이들 국가들에 부당하게 영유되어 있다고 서술한 점이 눈에 띈다.

《한국 역사교과서의 북방 인식》

우리 중학교 ‘국사’는 선사시대로부터 북방지역이 한국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동시에 주요 무대라고 기술하고 있다.

만주는 한반도와 더불어 사람이 살기 시작한 수십만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무대였으며, 우리 민족은 남방계보다 북방계와 관련이 더 깊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조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건국하였다. (중략) 고조선의 성립 이후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의 여러 나라가 세워졌다. (17쪽)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에 지금의 요령지방을 중심으로 북방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잇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국가로 발전했다는 내용이다.

그후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거치면서 5세기말에는 한반도의 중부 이북과 요동을 포함한 북방지역을 차지하여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쳤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인들을 중심으로 건국했다고 하고, 당시 만주의 대부분과 연해주를 지배하였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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