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사태부터 북한 공무원 피살 사건까지 성난 민심

• 인터넷 짤·밈과 결합… 드립·디테일 돋보일수록 인기

• 비호하는 척 비꼬기, 창의적 표현으로 촌철살인 날리기

•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 유행어 낳아

• “차별받지 않는 사회 기대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아”

• ‘국민의짐’ 구실 못하는 야당도 조롱거리로 전락

• “자기 이해관계, 취향, 이슈 따라 반응 제각각”

“운동권 부모 뒀다고 자녀가 유학 못 가면 그게 차별. 독일·프랑스 저렴이 국가 말고 미국·영국·스위스 찐부자 나라 보내기.” 

파란색 바탕에 지구본 모양이 그려진 책 표지 문구가 흥미롭다. 책 제목은 ‘없는 살림에 자녀 유학 보내는 비법’. 공동 저자는 ‘륜미향·리인영·림종석·킴두관’, 출판사 이름은 ‘도서출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7월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이 패러디물에는 깨알 풍자가 가득하다. 대상은 ‘자녀 유학’ 구설에 오른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김두관·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종석 대통령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다. 평생 정치 혹은 시민운동을 해온 이들은 자녀를 스위스·영국·미국 등 물가와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의 학교로 유학 보냈다. 누리꾼은 이들을 “저렴하게 해외 유학 보내기 특강 강사로 초청해야 한다”고 조롱했다.

정치 패러디물 봇물, 단골 소재는 文정부 인사들

8월 초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부동산 1타강사들 수업 클라스’ 게시물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패러디란 이런 것”이라는 평을 듣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기(失期)를 사설학원 강사 홍보물에 빗대 비판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더불어부동산’이 주최하는 ‘(부동산) 정책’ 1타강사로 등장한다.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짤막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정책을 23번…, 아니 4번 냈던가요. 집값이 더 이상 안 오를 때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대책을 내놓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강사 소개란에는 ‘떡상(과도한 상승) 김현미 선생님’ ‘서울 집값 52%(혹은 14%) 상승의 주인공’ ‘접경지 전문 투자자(연천)’ 문구가 적혀 있다. 

불평등·불공정·불의에 항의하고 정치권을 조롱하며 꼬집는 패러디물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다. 현 정부와 여권의 위선과 민낯을 풍자하는 게시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목할 것은 이런 정치 패러디물이 적지 않은 이의 호응과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패러디물마다 “이게 나라냐”라며 비아냥대는 댓글이 올라온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강조한 현 정부와 여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표출되는 모습이다. 



국내에 패러디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이 대중화한 2000년대 이후부터다. 1998년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가 등장하고, 1999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사진 합성 패러디가 확산하면서 유행이 시작됐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 명대사인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이게 최순입니까? 확siri(시리·애플사의 음성인식서비스) 해요?”로 바꾼 패러디물이 그런 경우다. 시간이 흐르면서 패러디는 드라마·영화 포스터 합성이나 말장난 수준을 넘어 짤(인터넷에 나도는 각종 자투리 이미지 파일)과 동영상 등 콘텐츠 제작 쪽으로 진화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인기 정치 패러디물에 대해 “팩트 중심 서술, 기발한 발상, 재치 만점 문구가 조화를 이룬다”고 평가한다. 과거처럼 자극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보다 슬쩍 꼬아서 조롱하는 ‘돌려 깎기’ 기법으로 가벼운 웃음을 유발한다. ‘톡톡 튀는 드립’도 최근 정치 패러디물의 특징이다. 드립이란 상황과 맞지 않은 이미지나 엉뚱한 발언을 총칭하는 신조어다. 


‘요즘 유행하는 카카오 호출놀이’라는 제목의 카카오톡 화면 캡처 사진에도 조롱 섞인 유머 코드가 담겨 있다. 등장인물 ‘나’와 ‘국민1·2’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셍.”(나) “어디로 들어가야 해요? 나리들 단톡방?”(국민1) “카카오 장난이 심하군요. 빨리 들어오라 하셍.”(나) “근데 왜 들어가요?”(국민2) “다들 화가 많이 났어요. 빨리 들어오라 하셍.”(나) 9월 8일 포털사이트 다음 메인 화면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연설 기사가 올라오자 윤영찬 민주당 의원이 보좌진에게 보낸 “카카오 너무하는군요. 들어오라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차용한 말이다. 이 패러디물에는 “갑질하라거나 희대의 유행어 만들라고 국회의원 뽑아준 게 아니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응용 버전’도 만들어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설정하고 ‘○○○ 들어오라 하셍’이라고 쓴다. 예를 들어 정부와 여당이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통신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올려놓은 뒤 “SKT·KT·LGU+ 들어오라 하셍”이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1년여 동안 인터넷에 등장한 정치 패러디물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정치·사회·경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패러디물 여러 개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 이 가운데 대중의 호응을 얻은 일부 패러디물이 인터넷에 계속 돌아다니면서 또 다른 버전을 만들어낸다”고 분석했다.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 인터넷 짤·밈과 결합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인기 짤과 결합한 패러디물도 쉽게 볼 수 있다.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서울 강남 지역에 보유한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다른 매물보다 4억 원가량 비싼 가격에 내놓고, 사표가 수리도 되기 전에 청와대 고위직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나간 일로 ‘집 내놓기 쇼’ 의혹에 휩싸였다. 인터넷에 이를 풍자한 짤이 등장했다. 일본 만화 ‘이누야사’ 캐릭터 히구라시 카고메의 사진과 대사를 패러디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청와대의 모든 규제와 위선을 벗어던지고 제 투기를 위해 떠납니다. 여러분도 성투(성공적인 투자)하세요.” 누리꾼들은 “청와대 참모가 강남 집값 오른다고 인증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비꼬았다. 


인터넷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문화와 만나 탄생한 패러디물도 인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제목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졌다. 임기 초반에는 박근혜 정부와 다른 행보를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문 정부를 비판하는 말로 쓰인다. 예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할 당시 문 대통령이 영화 ‘기생충’의 감독 및 배우와 ‘짜파구리’를 먹고 있는 사진이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인 송철호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뉴스를 올려놓고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네”라고 한다. ‘기출 변형’ 버전도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게임’ ‘한 번도 경험 못해 봤을 안전가족’ 등처럼 어떤 상황이든 적용이 가능하다. 일종의 드립이지만 누리꾼들은 이런 글을 퍼 나르며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방을 비호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비꼬는 반어법 패러디물도 반응이 뜨겁다. 유튜브에 올라온 ‘조국 후보자 딸 사태’라는 제목 영상은 한영외국어고를 졸업한 딸을 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외고 폐지’ 주장에 대해 “정말 공명정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한다. 다음 장면에서 ‘공명정대의 표본!’이란 자막과 함께 포청천(송나라 시대 판관)의 얼굴이 등장하고, 화면 위로는 “hoxy… 포청천? 누구의 손인지 증명할 수 있느냐?’ ‘진정한 법무부 장관감일세’ ‘공정한 박수소리 ASMR: 짝짝짝짝’이라는 자막이 덧씌워진다. 반어적 표현으로 조 전 장관을 조롱한 것이다. 이 영상은 10월 중순 현재까지 167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패러디물을 이전보다 더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한다. 패러디물을 만드는 과정이 쉽고 간단할수록 표현법은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유쾌함을 추구한다. 풍자할 때도 자극적인 문구보다는 원작에 대한 비틀기나 비꼬기를 선호한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짤이나 밈 문화와 결합해 만든 패러디물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호하는 척 비꼬기, 촌철살인 날리기

기발한 스토리텔링으로 소설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풍자한 패러디물도 누리꾼의 이목을 끈다. ‘윗집 아저씨가 우리집 개를 때려죽였어요’라는 제목의 패러디물은 윗집 아저씨가 아랫집 개를 6시간 동안 끌고 다니다가 발로 차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내용이다. 콘텐츠에는 ‘밧줄’ ‘편지’ ‘계몽군주’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엄마 아빠가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윗집 아저씨가 써준 편지에 감동하자 사람들에게 외친다. “우리집 사람들이 이상한 거 같은데 다들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내가 이상한 거냐?” ‘연평도 공무원 피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다. 댓글창에는 “정부는 뭐 했냐” “국민보다 북한이 먼저냐” “이게 나라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창의적 표현으로 촌철살인을 날리는 댓글형 패러디는 많은 이의 공감을 얻는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 직고용 관련 기사에서는 “이것이 K직고용”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부정의”라는 댓글이 누리꾼의 큰 호응을 얻었다. ‘K직고용’은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자랑하며 쓴 ‘K방역’에, ‘기회는 불평등’은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에 각각 비유한 말이다. 


‘드립력’이 돋보이는 절묘한 말장난 같은 고전 패러디물도 인기다. 7월 2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이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중 휴가 미복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돌연 “소설 쓰시네”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소설가협회는 항의 성명을 내고 추 장관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누리꾼들은 이에 착안해 ‘~하면 ~에서 항의하는 건가’라는 패러디물을 만들어냈다. ‘‘놀고 있네’라고 하면, 놀이문화협회에서 항의하는 건가?’ ‘‘웃기고 있네’라고 하면, 코미디협회에서 항의하는 건가?’ 라며 대꾸하는 식이다. 내용은 다분히 해학적이지만 근저에는 추 장관이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데 대한 분노와 조롱이 깔려 있다. 

추 장관 관련 말장난 패러디물의 압권은 한 누리꾼이 ‘추미애 지키기’에 앞장선 김종민 민주당 의원의 발언, “보좌관이 아들 서모 씨 부대에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압은 아니다”를 패러디해 지은 ‘유체이탈 화법 모음’이다. ‘언쟁은 했지만 싸우지는 않았다’ ‘식사는 했지만 밥은 안 먹었다’ 식의 단순 조롱을 넘어 ‘공짜 현금을 퍼주지만 세금 낭비는 아니다’ ‘울산선거에 개입은 했지만 법은 지켰다’ 등 현 정부의 이중성을 저격한다. 이 패러디물은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논란의 축약판이다.

드립력, 디테일 돋보일수록 반응 뜨거워

합성 포스터는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일수록 반응이 뜨겁다. 2018년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역대 최강 빌런(악당)으로 나온 ‘타노스’ 포스터에 문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이 한 예다. ‘제3회 문재인 퇴진 촛불문화제’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에는 문 대통령의 말투를 연상시키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 함께 갈 준비 되셨습니꽈?’라는 멘트가 적혀 있다. 이외에도 ‘민주NO총·희망공작소·정의구현사죄단·사람死는세상’ 등의 문구가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이 밖에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공공의대 학생 선발 관련 팩트체크’를 패러디한 ‘공공의대 학생 선발 관련 특권체크’ 포스터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소녀상 옆에 앉고, ‘황금알을 낳는 소녀상’ ‘위안부는 나의 현금인출기’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도 이목을 끈다. 

자영업자 정재용(30) 씨는 “현 정부 출범 때는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치권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보면서 위로와 만족을 얻는다. 인터넷상에서는 언어나 행동이 더욱 자유롭기 때문에 비틀기나 비꼬기를 강조한 패러디물이 큰 인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자기 이해관계, 취향, 이슈 따라 반응 제각각

야권도 조롱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한다. 8월 31일 미래통합당이 새로운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한다고 밝히자 이를 풍자한 ‘국민의짐’ ‘국민힘들당’ ‘국민의심’ 등 패러디 당명 모음이 인기를 끌었다. 제 구실을 못하는 야당을 향한 일침이다. 한 누리꾼이 만든 ‘국민의짐’ 버전 기업 이미지(CI)도 화제를 모았다. 이름대로 사람이 등에 짐을 지고 가는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전신(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로고를 한데 모아 만든 ‘힘×당’ 로고마저 등장했다. 이 로고는 사람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무소속 박덕흠 의원은 요즘 패러디계 떠오르는 샛별이다. 가족기업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 원대 특혜 수주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인터넷에서는 박 의원 얼굴을 올려놓고 “국민은 복덕흠, 세상은 ‘리틀 MB’”라 부른다. 건설왕’이라고 적은 포스터나 ‘공사 수주 의혹’ 핵심 내용과 함께 “이 맛에 국회의원 하지”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누리꾼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기 정치 패러디물에 반응하는 대중은 어떤 성향을 보일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대는 개인화 시대다. 전 세대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는 콘텐츠가 등장하기 어렵다. 대중은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일관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이해관계, 취향, 이슈 내용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 사안도 어제는 반응했다가 오늘은 반응하지 않는 식이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