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심장수술 외국서 받는 날 ‘곧’ 온다…병원 절반 흉부 전공의 0명

흉부외과 레지던트 0명 병원 48.9%, 1명 병원 12.2% 〈흉부외과 학회 조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10-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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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과 없이 중단된 의료 ‘개혁’, 잠재된 흉부외과 인력부족 뇌관

    • 흉부외과 의사 94% “만성 피로… 환자 안전 걱정된다”

    • 내년부터 한 해 배출 흉부외과 전문의 수 20명 남짓 또는 그 이하

    • 병원은 전공의 없어 아우성, 전문의는 일할 곳 없어 눈물

    • 서울 주요 병원은 수술 포화, 지방은 수술 절벽

    • 젊은 의사 오려 하지 않는 흉부외과 “이래서는 미래 없다”

    심장과 폐, 혈관치료 등을 담당하는 흉부외과는 의대생 사이에서 기피 전공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머잖아 심장수술을 받으러 해외에 나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GettyImage]

    심장과 폐, 혈관치료 등을 담당하는 흉부외과는 의대생 사이에서 기피 전공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머잖아 심장수술을 받으러 해외에 나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GettyImage]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능후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에게 의대생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국시) 포기로 인해 예상되는 신규 의사 감소 문제 대책에 대해 물었다. 

    현재 전국 의과대는 의학전문대학원을 합쳐 40개, 정원은 3058명이다. 매년 3000명 넘는 의사가 새로 배출되고, 그 가운데 약 2000명이 인턴 수련을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내년 상황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올해 의사 국시 응시율이 14%에 그친 탓이다.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신규 의사 수가 예년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게 된다. 인턴 수 또한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신 의원은 “이 경우 중증 응급환자가 많은 흉부외과 같은 과는 전공의를 모집하기 더 어려워진다”며 “이로 인한 공백에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라고 물었다. 박 장관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인턴이 하는 역할 일부를 레지던트 등이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질의응답 장면을 봤다는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장관 답변을 듣는 순간 ‘복지부가 현장 상황을 이렇게 모르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전국적으로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는 대학병원이 부지기수다. 그 빈자리를 인턴이 메우고 있는데, 어디서 레지던트를 구해 와 인턴 일을 대신 시키라는 것이냐”는 게 이 교수 지적이다.

    레지던트 없는데 인턴까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이하 학회)가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에 소속된 흉부외과 전문의 3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하는 병원에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다”고 답한 비율이 48.9%에 달했다. 전공의가 1명이라는 응답도 12.2%였다. 우리나라 흉부외과 레지던트 수련기간은 4년이다. 병원에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다는 건 최근 4년간 지원자가 전무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 업무를 도맡게 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평일 기준 주당 60시간 넘게 일한다. 주말에도 하루 이상 출근하며, 한 달에 6번 넘게 야간 당직근무를 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에 가서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고 기다리는 이른바 ‘온콜(병원 외 대기 근무)’ 일수가 월평균 10.8일이다. 



    이렇다 보니 조사 참여자 상당수가 탈진을 의미하는 ‘번아웃’ 증상을 호소했다.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 소속 흉부외과 전문의 절반 이상(51.7%)은 자신이 현재 번아웃 상태라고 답했고, 의사가 탈진해 환자 안전에 위해를 끼칠까 걱정된다고 한 비율은 93.9%에 달했다. 응답자의 48.6%는 극심한 피로 등으로 인해 환자에게 실제로 위해를 끼치거나 위해를 줄 뻔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흉부외과 전문의 탈진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흉부외과 진료가 고도의 전문성과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하는 관용구가 ‘심장이 멈췄다’ 또는 ‘숨이 멎었다’이다. 심장과 폐 활동이 생명 유지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걸 보여준다. 흉부외과는 바로 이들 장기의 수술적 치료를 담당하는 과다. 공식 명칭 흉부심장혈관외과에서 알 수 있듯 심혈관을 비롯한 각종 혈관 질환도 치료한다. TV 화면에 피 묻은 수술복을 입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의사가 나온다면 십중팔구 흉부외과 전문의일 개연성이 크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의사가 존경하는 의사’ ‘의사의 왕’ 등 흉부외과 의사를 칭송하는 표현은 차고 넘친다.

    “흉부외과 의사가 있었다면…”

    그런 흉부외과 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가 2016년 펴낸 에세이집 ‘만약은 없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흉부 외상환자가 있었다. 경운기에 깔린 50대였는데 다발성 갈비뼈 골절 및 혈흉이었다. 흉관을 넣고 출혈이 지속되면 수술방에서 개흉술로 출혈을 잡아줘야 환자가 사는데, 흉관을 넣자마자 출혈이 심해 급한 수술이 필요했다. 머뭇거리는 흉부외과 인턴 전화기를 빼앗아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흉부외과 교수님에게 전화했다. 수 리터의 피가 쏟아졌고, 그만큼을 수혈했으나 죽음이 임박했다. 교수님이 도착해 이미 의식 잃은 환자를 데리고 수술방에 올라갔으나 흉강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환자는 죽었다.” 

    이 에세이의 첫 문장은 “우리 병원에는 10년 전부터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다”이다. 남씨는 이 글에서 흉부외과 레지던트 부재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몇몇 죽음 사례를 소개한 뒤 “응급실에서부터 흉부외과 의사가 붙어 최선의 처치를 시간을 다퉈 했으면 (그 환자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즉시 붙어 연락을 하고 수술방에 들어가는 등 프로세스를 진행했으면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서울 한 2차병원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가 적고 응급실 당직을 설 레지던트조차 없는 병원에서는 의사자격증을 딴 지 몇 달 안 되는 인턴이 흉부외과 당직을 맡기도 한다”며 “이 경우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상태를 정확히 판단해 ‘온콜’ 의료진과 소통하지 못해 아까운 생명을 잃는 일도 발생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20년 9월 기준 전국 흉부외과 레지던트 수는 1년차 30명, 2년차 26명, 3년차 23명, 4년차 21명이 전부다. 이들 모두가 순탄하게 과정을 마친다 해도 연간 배출될 신규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명 남짓이다. 

    물론 이보다 적을 가능성도 크다. 흉부외과 전공의 상당수가 수련 도중 이탈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신현영 의원실에 제출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2020년 7월 사이 흉부외과 전공의 사직률은 4.1%다. 핵의학과(6.1%)에 이어 전체 진료과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같은 기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61.3%로, 핵의학과(26.5%), 병리과(40.2%), 방사선종양학과(45.1%)에 이어 네 번째로 낮았다. 즉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전국 병원에서 뽑고자 하는 인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수련 도중 전문의 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제주대 의대 흉부외과 이석재 교수는 “미국에서 흉부외과가 의대생 선호 전공 ‘톱5’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제주대학교병원에도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가 0명이다. 한 명 있던 레지던트가 재작년 전문의를 취득한 뒤 지금까지 추가 수련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연봉 1억 원 준다 해도 안 오는 전공의들

    9월 18일 충북대병원 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필수의료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충북대병원 전공의협의회 제공]

    9월 18일 충북대병원 전공의협의회 관계자가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필수의료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충북대병원 전공의협의회 제공]

    흉부외과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연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로 일하다 2002년 퇴직하고 개원한 김해균 ‘김앤정연세흉부외과’ 원장은 “내가 교수직을 그만두던 무렵부터 ‘흉부외과 위기’에 대한 얘기가 조금씩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를 10명 뽑으려 하는데 9명 정도밖에 안 오는 수준의 미달 사태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처음엔 그 정도였다. 그러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해 2006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48.1%를 기록하며 50% 아래까지 떨어졌다. 2009년에는 26%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에서 전공의가 몰려드는 이른바 ‘빅5’ 병원조차 흉부외과·전공의 정원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기 진료과 전공의 지원율이 150%를 상회하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2009년 7월, 정부는 흉부외과 인력 부족 문제 해결 방안으로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흉부외과가 시행하는 201개 의료행위 수가를 100% 가산해 주는 방식을 마련했다. 인력난에 시달리던 상당수 병원은 곧장 이 돈을 레지던트 급여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고려대의료원은 2010년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원자 모집 공고를 내며 “연봉 1억 원 지급”을 약속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도 흉부외과 레지던트에게 8000만 원대 연봉을 주기로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18년 공개한 전공의 평균 연봉이 약 4035만 원인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해 고려대의료원 흉부외과 지원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전국 수련기관의 흉부외과 지원율도 47.4%로 50%를 채 넘기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이 4명 모집에 4명, 서울아산병원도 5명 모집에 5명 지원자를 받으며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올해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62.5%로 다소 상승한 상태다. 단, 감안할 것이 있다. 그사이 모집 정원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전공의 미달 사태가 반복되자 보건 당국이 매년 조금씩 정원을 줄인 영향이다. 지원율은 모집 정원 대비 지원자 수로 계산한다. 분모가 작아지면 지원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전국 의료기관이 신청한 흉부외과 전공의 수는 76명이었다. 2020년에는 48명 규모로 축소됐다. 2020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수 30명을 2010년 당시의 모집 정원에 대입해 계산하면 결과 값이 채 40%가 안 된다. 보건 당국이 흉부외과 인력 부족 문제를 풀고자 10년간 막대한 비용을 투여했음에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수는 오히려 줄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8년 신상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흉부외과에 수가가산금으로 지급한 돈은 총 1850억4100만 원이다. 한 해 평균 616억 원에 달한다. 흉부외과 전공의를 둔 의료기관 상당수는 이 금액 일부를 흉부외과 전공의에게 지급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공의 95.9%가 수가가산금에서 유래한 인건비 보조금을 받았다. 그럼에도 흉부외과 전공의 미달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강정한 혜민병원 흉부외과 진료부장은 “흉부외과를 졸업한 뒤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는 부족한데 전문의는 갈 데 없다?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전공을 살려 일할 곳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국 몇몇 대형병원에서 뽑는 교수 인원은 한정돼 있다. 중소규모 병원은 소송 위험이 크고 의료수가도 낮은 흉부외과 설치를 꺼린다. 4년간 전공의 생활을 한 끝에 전문의 자격을 받아도 활용할 길이 없는 게 뻔히 보인다면 누가 그 길에 들어서겠나.” 

    강 부장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흉부외과 수술에는 고난도 의료 기술을 갖춘 전문의뿐 아니라 첨단 장비와 다수의 지원 인력 등이 필요하다. 수술실에 흉부외과 의사 여러 명과 마취과 전문의, 전문 간호사, 심폐장비기사 등까지 수십 명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수술을 하려면 해당 병원에 자체 혈액원과 중환자실 등의 시설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 기존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를 채용하지 않을 경우, 전공을 살려 일하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연세대 의대 교수 시절 국내 최초로 양쪽 폐이식 수술에 성공하는 등 ‘명의’로 유명했던 김해균 원장도 개원 후에는 관련 수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김 원장은 혈관 관련 질환인 하지정맥류 치료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그가 운영하는 병원 공식 블로그에는 “가슴에 발생한 통증 등을 진료하기 위해서는 엑스레이 기계, 폐기능 검사기, 심장초음파 등의 진단 장비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그런 장비가 없어 가슴에 통증이 있는 환자분을 진료하기 어렵습니다. 갑작스러운 흉통(가슴을 쥐어짜는 듯한)과 함께 호흡곤란, 어지러움증이 동반된다면 큰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등록돼 있다. 김 원장 정도의 연구 능력과 수술 경험을 가진 의사도 관련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는 홀로 개업해 전문적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게 흉부외과의 특징이다. 

    강 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 월급을 조금 올려주는 정도로는 흉부외과 인력난을 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흉부외과 전문의도 “현재 대형병원들은 전공의를 수술 보조 인력, 중환자 관리 인력 등으로 활용할 생각만 한다. 4년의 노력 끝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의사를 정식으로 채용해 흉부외과 규모를 키울 생각은 안 한다. 병원에 큰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전공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 흉부외과 등 기피과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의사 단체 등의 저항에 부딪혔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도 공식 성명을 통해 “의대 졸업생 1000명당 흉부외과 지원자가 5~10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의대생 400명을 증원한다 해도 흉부외과 인원 증가분은 연간 2명 미만이 된다”며 “의대 정원 증가의 낙수효과를 통해 흉부외과 지원자를 늘리자는 주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단된 의료 ‘개혁’, 여전히 남은 뇌관

    그렇다면 정부가 예산을 들여 전국 곳곳에 흉부외과 전문 공공병원을 건립하고 전문의를 채용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전문가들은 이 해법에 대해서도 고개를 젓는다. 

    이석재 교수 사례는 흉부외과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충북대병원, 을지병원 등에서 심장수술 전문 의사로 지내다 2009년 제주대학교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주도에 심장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는 후배 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당시 제주도민이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마음 놓고 심장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11년이 흐른 지금, 이 교수가 맞닥뜨린 현실은 당초 예상과 크게 다르다. 제주도에 가기 전 연간 300건 이상 큰 수술을 집도한 그지만 제주도에서는 제대로 된 심장 수술을 1년에 채 10건도 하지 못한다. 환자들이 심장에 이상을 느끼면 앞다퉈 ‘서울 큰 병원’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그는 “흉부외과는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특히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을 전국 곳곳에 지어도 의미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 수 부족은 병원의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올해 흉부외과 수술의 필수 장비인 체온조절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한동안 수술 칼을 잡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규모 있는 병원은 보통 이런 상황에 대비해 백업 장비를 마련해 둔다. 수술 도중 장비가 고장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여기는 예산이 넉넉지 않다 보니 그런 건 기대하기 힘들다. 고장 난 장비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을 정도”라며 “그사이 응급수술 상황이 생겨 다른 병원 장비를 빌려다 사용했다. 이외에도 10년 넘게 쓴 수술 장비 가운데 ‘아슬아슬하다’ 싶은 것이 있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이니 서울 가는 환자들한테 뭐라 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수술 건수가 적은 병원은 투자가 줄고, 그러면 환자들은 또 서울 큰 병원을 선택하고, 그 영향으로 지역병원 의료 질이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셈이다. 

    1989년 복지부로부터 우리나라 최초 심장병 특수진료기관으로 지정받은 세종병원 박진식 이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흉부외과 의사를 무턱대고 늘린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이 소개한 해외 논문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 병원이 첨단 시설을 갖추고 최고의 의료 기술을 구현하려면, 심장 수술을 적어도 연간 200건은 해야 한다. 권역별로 이런 의료기관을 만들고, 지역민이 해당 병원을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흉부외과 인력난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게 박 이사장 제안이다. 

    김해균 원장은 “흉부외과는 의사의 숙련도가 수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누가 수술하느냐에 따라 환자 생사가 갈릴 수 있다. 이 분야 인력을 키우기는커녕, 흉부외과 전문의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떠돌게 해 결과적으로 신규 인력 충원까지 안 되는 상황을 초래한 건 큰 문제”라며 “이러다간 머잖아 해외에 나가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 올 거다. 더 늦기 전에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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