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16강 신데렐라’ 호주 축구의 힘, 히딩크와 현대자동차

공격축구와 ‘현대 A리그’, 사커를 풋볼로 바꿔놓다!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06-08-08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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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지치지 않는 공격축구로 호주 팬 사로잡아
    • 정부, 16강 진출 직후 카 퍼레이드 결정
    • 현대차 주도한 호주 최초 프로축구리그, 시작부터 대성황
    • 저돌적 축구 마케팅으로 ‘싸구려 수입차’ 이미지 탈피
    • 녹화중계하려던 한국-스위스전 생중계 편성
    ‘16강 신데렐라’ 호주 축구의 힘, 히딩크와 현대자동차

    개막전에 8만명의 관중이 몰려드는 등 성공적으로 시작된 ‘현대 A리그’.

    2006년 독일월드컵이 시작된 후 ‘캥거루 아저씨들’과 ‘코알라 아줌마들’은 축구 얘기만 나오면 입이 함박만해졌다. ‘사커루(Socceroo)’가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가 16강 진출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사커루’는 ‘축구(Soccer)’와 ‘캥거루(Kangaroo)’의 합성어로 호주 축구국가대표팀의 애칭이다.

    사커루는 F조 조별 예선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경기종료 6분 전까지 0대 1로 지고 있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터진 팀 케이힐의 동점골은 호주가 월드컵 본선에서 얻은 첫 번째 골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후 추가시간 2분을 포함한 8분 동안 2골을 더 넣어 3-1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 또한 호주가 월드컵 본선에서 기록한 첫 승이었다. 한껏 기가 오른 사커루는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축구 불모지 호주에 축구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열풍의 중심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한국 기업이 있어 재(在)호주 한인교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이 한국 기업은 지난해 호주축구협회와 호주 최초의 프로리그인 ‘현대 A리그(Hyundai Australian Football League)’를 창설한 현대자동차 호주현지법인(HMCA)이다.

    호주에서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키는 건 한국에서 프로럭비 리그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다. 더욱이 동부 팀과 서부 팀이 원정경기를 하려면 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할 정도로 땅이 넓은 나라에서 전국 단위의 프로리그를 만든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호주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추진력으로 호주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를 탄생시켰다. 현대 A리그는 첫해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이어지는 독일월드컵 특수(特需)까지 겹쳐 다른 기업들의 큰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겨울 밤의 꿈’



    TV를 켜면 십중팔구 럭비 경기 중계방송이 나오고 ‘럭비와 맥주가 없으면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나라 호주. 하지만 독일월드컵 기간에는 럭비가 아닌 축구 열기로 호주의 겨울이 깜짝 놀라서 달아날 지경이었다. 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시드니의 6월과 7월은 겨울이다. 아열대성의 기후여서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지만 밤엔 두툼한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한국에서처럼 호주에서도 심야시간이나 새벽에 월드컵 TV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거실 소파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기 일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호주에도 한국식 단체응원이 심심찮게 벌어져 길거리로 나가면 한겨울 밤의 추위를 축구열기로 떨쳐버릴 수 있게 됐다. 단체응원은 주로 대형 클럽에서 펼쳐졌는데,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나 공원에 모여 응원을 했다. 필자는 그들과 어울리려 호주팀 경기가 있는 날엔 시드니 서북부에 있는 ‘더 란츠 클럽’으로 갔다. 그곳은 한국의 ‘붉은악마’ 격인 호주 응원클럽 ‘그린 앤드 골드 군대(Green and Gold Army)’의 시드니 북부지역 본부다.

    조별 예선 1차전인 일본과의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클럽을 꽉 메운 사람들이 “구스! 구스!”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의 이름인 ‘거스’의 호주식 발음이다. 응원단장 마크 워렌에게 “왜 골을 넣은 케이힐이나 알로이지가 아닌 구스를 연호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 “오늘 경기는 구스가 만든 한 편의 드라마다. 우린 그의 마법에 걸려 울고 웃는다”며 함께 응원하던 연인에게 연신 입맞춤을 했다.

    ‘16강 신데렐라’ 호주 축구의 힘, 히딩크와 현대자동차
    그가 말한 ‘히딩크 매직’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케이힐이 동점골을 터뜨린 직후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 투입된 존 알로이지는 벤치로 달려가 히딩크에게 “이제 우리 중에 한 명은 미드필드로 빠질까요?” 하고 물었다. 일단 숨을 돌렸으니 안전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전술 변화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히딩크는 단호하게 “노”라고 했다. 그리고 “1대 1 무승부로 가는 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이겨야 한다. 자, 승리를 향해 다시 몰아쳐라”고 독려했다.

    두 번째 경기인 브라질전은 결과는 비록 0대 2 패배였지만 호주는 브라질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명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조별 예선 마지막 상대 크로아티아와 맞붙었다. 그런데 운명의 일전을 벌여야 할 두 나라 간에 얽히고설킨 문제가 있었다. 호주팀에 크로아티아계 선수가 7명, 크로아티아팀에 호주 태생 선수가 3명이나 있었던 것. 심지어 호주팀 주장 마크 비두카와 골문 앞에서 맞설 호주 출생의 크로아티아 골키퍼 조 디둘리카는 호주스포츠학교(AIS) 동기생이다. 두 사람은 비두카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옆집에 살 정도로 절친한 친구 사이다. 그러나 비두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 나라 국가가 울리는 동안, 우리는 미묘한 감정에 젖어들겠지. 그러나 내일 하루만 우정을 접어두자. 나는 슛을 쏘고 너는 막는 거야. 그게 우리의 임무이고 축구선수다운 삶이다. 그 다음에 호주 국가와 크로아티아 국가를 함께 부르자.”

    호주가 이민자의 나라이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인데, 호주팀은 무려 8개국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다민족 팀이다. 아예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선수도 있고 이민 2세도 있다. 호주팀의 이런 사정을 정확하게 꿰뚫은 히딩크는 자신의 경력을 예로 들면서 프로정신을 강조했다.

    “1998년 나는 네덜란드 감독이었고, 2002년에는 한국, 2006년엔 호주 감독이다. 지금 소속된 팀이 내 팀이고 오직 승리를 위해 뛰는 일밖에 없다.”

    2006년 6월23일, 호주의 새벽은 ‘사커루의 날’로 눈부시게 밝아왔다. FIFA 랭킹 44위의 축구 후진국 호주가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마침내 ‘히딩크 매직’이 호주의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쓴 것이다. 16강 진출을 위한 승점 1점을 확보하기 위해서 총력전을 펼친 호주와 크로아티아는 3명의 퇴장선수(호주 1명, 크로아티아 2명)가 나오는 격렬한 공방 끝에 2대 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로써 호주는 1승1무1패, 승점 4를 기록하며 F조 2위로 16강 고지를 밟았다.

    6월23일, ‘사커루의 날’

    호주는 크로아티아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지만 히딩크 특유의 화끈한 공격축구를 펼쳐 축구가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라는 것을 호주인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날 이후 호주인들은 축구사랑에 더욱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히딩크의 작전은 오직 공격뿐이었다. 마치 뒤로 걷는 것이 불가능한 호주의 상징동물 캥거루와 이뮤처럼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세계 최강 브라질과 맞붙었을 때도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히딩크가 호주에 처음 와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주말에 TV를 켜면 온통 럭비중계방송뿐이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사커는 싱거워서 보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던 것.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호주의 축구발전을 위해 ‘축구가 럭비만큼 박진감 넘치는 경기’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히딩크가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이는 선수들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사커루의 훈련을 체력 다지기로 시작했다. 선수들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체력훈련을 시켰고, 따라오지 못하는 선수는 과감하게 내쳤다. 그 결과 F조 조별 리그에서 만난 일본, 브라질,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특히 게임 종료 직전 8분 동안 3골을 내준 일본팀은 호주선수들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앞에 자멸하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Never say die’였다.

    ‘16강 신데렐라’ 호주 축구의 힘, 히딩크와 현대자동차

    럭비의 나라 호주에 축구 열풍이 불었다. 캥거루 복장을 한 채 호주팀을 응원하는 호주인(위)과 밤새워 응원한 일본전에서 승리하자 기뻐하는 호주 축구 팬들.

    그런데 숨 막히는 ‘축구 드라마’가 끝난 뒤 히딩크가 인터뷰에서 즐겨 하는 말 두 가지가 있다. “우리 선수들은 사자의 심장(Lion’s Heart)을 가졌다”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히딩크 축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호주가 대망의 16강 진출을 확정한 바로 그날, 한국은 스위스에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팀을 ‘히딩크 친정팀’으로 여기고 응원하던 호주인들도 크게 아쉬워했다. 더욱이 호주가 16강전에서 맞붙을 상대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이 16강전에서 물리친 이탈리아여서 관심이 더 컸다.

    6월26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히딩크 코드’라는 제목으로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국에서 거둔 업적을 상세하게 보도하며 히딩크 코드의 진원지가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월드컵 기간에 호주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월드컵 역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이뤄낸 4강 신화였다. 특히 이탈리아전을 앞두고는 2002년 월드컵 한국-이탈리아전에서 골든 골을 기록한 안정환의 이름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한국-스위스전 TV해설을 맡은 레일 라식 전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은 “처음부터 안정환을 투입하지 않은 것은 큰 실책이다. 그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4년 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골든 골을 넣은 선수라는 것이 국제축구계에 잘 알려졌고, 그것만으로도 수비수가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코멘트했다.

    월드컵 방송사인 호주 공영 SBS-TV는 당초 6월24일 새벽에 열린 G조 예선 마지막 경기 중 프랑스-토고전을 생중계하고 한국-스위스전은 오전 7시부터 녹화중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드니총영사관(총영사·김창수), 시드니한인회(회장·백낙윤), 재호주대한체육회(회장·강대원) 등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이례적으로 방송편성을 바꿔 한국-스위스전을 생중계했다. 주양중 SBS 한국어 프로그램 책임PD는 “6월21일 오전까지만 해도 임원진은 방송일정 변경은 ‘절대불가’라는 방침이었지만 한인 사회의 단체응원에서 나타난 월드컵 열기와 성원, 그리고 G조 예선의 중요도 등을 고려해 전에 없던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와 겨루는 16강전에서 사커루는 ‘통한의 8초’에 울었다. 90분 내내 막강한 전력의 이탈리아를 쉴 새 없이 몰아세우면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 8초를 남기고 페널티킥을 허용한 것. 그것도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탈리아 공격수 그로소의 ‘할리우드 액션’에 스페인 출신 주심이 속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호주 수비수 루카스 닐은 그로소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체접촉은 거의 없었다. 결국 토티의 깔끔한 페널티킥이 호주의 골네트를 흔들었고, 경기는 곧장 종료됐다.

    히딩크에 국민훈장 수여

    히딩크는 경기종료 후 몹시 허탈한 모습이었지만, 울먹이며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선수들을 일으켜 세우며 위로했다.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는 꽃을 두고 산화(散花)라고 한다. 최선을 다하고 패배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장엄한 산화’라는 말은 바로 그런 경우에 꼭 맞는 말이다.

    호주 당국은 선수들이 귀국하면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에서 카 퍼레이드를 펼치기로 했다. 이는 이탈리아전 이전에 결정됐다. 16강 진출 성공으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히딩크에게는 국민훈장(Order of Australia)과 명예 호주국민 증서를 수여할 예정이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6월26일 인도네시아 방문길에 오르면서 “국민훈장은 주로 국경일인 ‘호주의 날(Australian Day)’에 수여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사정을 감안해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히딩크는 “16강 진출은 카 퍼레이드까지 펼칠 만한 일이 아니다. 또한 나는 러시아에서 새 임무를 시작하기 전 며칠 동안의 휴가밖에 없다”면서 사양했다. 호주의 16강 진출이 당초 그가 목적한 도착점이 아니었다는 속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탈리아전이 끝난 27일 새벽 ‘그린 앤드 골드 군대’ 응원단장 마크 워렌은 90분 내내 흔들어대던 국기에 얼굴을 묻고 오랫동안 흐느꼈다. 악마의 주술에 걸린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축구팬들은 클럽에 임시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수백개의 테이블 위에는 축구팬들이 마신 술잔들만 유령의 잔재처럼 남아 있었다. 맥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클럽을 나서니 그제서야 남반부의 한겨울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2006년 호주의 겨울은 독일월드컵의 열기로 따뜻했다. 2주 동안 ‘잠 못 드는 시드니의 밤’을 환하게 수놓았던 ‘한겨울 밤의 꿈’은 먼 별빛만큼이나 영롱했고, 호주 축구의 장래 또한 남십자성만큼이나 밝게 빛나고 있다.

    태극전사 vs 사커루

    독일월드컵 막이 오른 이래 호주에서 히딩크만큼 떠받들어진 사람은 없다. 축구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언론이 그를 칭송하기에 바쁘다. 일각에서 “한 경기당 2억4000만원을 받는다니(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이 받았다), 보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존 하워드 총리가 “히딩크는 그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히딩크가 독일로 떠나기 전에 축구팬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축구팬들이 “호주팀의 목표가 16강 진출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히딩크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조금 더(more)”라고 답했다. 축구팬들이 “8강이나 4강이냐?” 하고 묻자 그는 또 한 번 “조금만 더(a little bit more)”라고 대답했다. 급기야 “우승이냐?”라는 물음이 나왔고, 히딩크는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기왕이면 우승까지 가자”고 되받았다.

    그의 이런 발언을 풍자해서 한 언론은 “만일 호주가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4강이나 결승에 진출했다면 히딩크는 돈에 깔려 죽었을 것”이라고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히딩크는 지난해 9월 호주 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250만호주달러 외에 16강에 진출할 경우 85만호주달러를 인센티브로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9개월 동안 무려 26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아무튼 히딩크는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이미 떠났다. 문제는 히딩크가 매섭게 조련해놓은 사커루다. 당장 올해 말에 열리는 아시안컵에서부터 한국은 호주와 맞닥뜨려야 한다. 한국과 호주는 1970년대부터 용호상박의 맞수였다.

    1973년 11월13일, 그날의 경기도 독일(당시 서독)에서 열릴 1974년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한 사투였다. 아시아·오세아니아 혼성지역에 주어진 1장의 티켓을 놓고 한국과 호주는 홍콩에서 맞붙었다. 시드니와 서울에서 벌어진 두 차례 경기에서 한국과 호주는 0-0,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결국 홍콩에서 호주가 1-0으로 이겨 본선에 올랐다. 4년 전인 1969년 서울에서 벌어진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혼성지역 예선에서도 호주는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호주는 2002년 한일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에 밀리는 등 1974년 월드컵 이후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패배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올해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 옮긴 호주는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월드컵 본선 티켓을 다투게 된다.

    ‘미운 정’으로 시작된 한국과 호주의 축구 인연은 히딩크가 호주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한동안 ‘고운 정’으로 바뀌었지만, 히딩크가 떠난 뒤의 호주팀은 더 이상 ‘남의 동네’ 팀으로 봐줄 수가 없다.

    ‘현대 A리그’가 도약의 발판

    호주 대도시의 길거리에 나가 보면 200여 국가 출신의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의 자동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있어 마치 자동차 만국박람회장 같다.

    이 대열에 한국산 자동차가 뛰어든 것은 1980년대 말이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포니’였다. 현대차는 1990년대 중반 들어서 획기적인 기념비 하나를 세운다. 값싸고 성능 좋은 일본산 자동차가 넘쳐나던 호주에서 1996년 수입자동차 판매부문 1위를 기록한 것. 그 무렵 현대차 ‘엑셀’은 호주의 대표적 자동차보험회사인 NRMA에 의해 ‘올해의 자동차’(소형차 부문)로 선정됐다.

    ‘16강 신데렐라’ 호주 축구의 힘, 히딩크와 현대자동차

    경기 종료 직전 8분여 동안 3골을 몰아넣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호주대표팀.

    그런데 1996년 이후 현대차는 정체를 거듭했다. 그 원인을 현대차 수입상과 판매상의 미진한 판촉활동으로 분석한 현대차 본사는 2003년 10월 현대차 호주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본사가 직접 나서서 직판체제를 구축한 것.

    현대차는 이를 계기로 적극적인 광고 및 판촉활동에 나선다. 단순한 제품 광고에 머물지 않고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한 스포츠 광고 마케팅에도 정성을 쏟았다. 이는 판매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싸구려 차’를 파는 회사라는 옛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양동작전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겪은 것은 현대자동차뿐이 아니었다.

    현대차가 스포츠 광고 마케팅에 눈을 돌린 이유는 호주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처럼 스포츠를 즐긴다는 사실에 있다. 2000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럽컵 축구대회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스포츠 광고 마케팅 경험을 쌓은 김태영씨가 호주법인 마케팅 대표로 부임했다. 김 대표는 사전 시장조사를 통해 호주 축구의 발전과 현대차 스포츠 마케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접근했다. 스포츠를 유난스레 좋아하는 호주인들에게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기만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 2003년 당시 호주는 축구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킨다는 발상은 좀 엉뚱하지 않았는가.

    “나는 거꾸로 그 대목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축구는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스포츠라서 다양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호주에선 오랫동안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자가 많은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크로아티아 출신들이 자기들만의 팀을 만들어 마치 국가 대항전 같은 형태로 국내 리그를 벌이고 있으니 호주의 주류인 영국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유럽의 각종 프로축구 리그에 우수한 선수를 183명이나 진출시킨 나라에서 축구가 그토록 홀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축구를 즐길 만한 동기부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현대 A리그’는 바로 그 동기를 부여해준 것이다.”

    ▶ 호주가 본격적으로 축구 선진화 작업에 돌입한 게 2004∼2005년인데, 그 무렵 어떤 일들이 있었나.

    “현대차 호주법인이 축구 프로모션을 본격적으로 펼칠 즈음, 존 오닐 호주축구협회(FFA) CEO와 프랑크 로위 회장이 부임해 호주 축구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우선 호주축구협회의 명칭을 ASA(Australia Soccer Association)에서 FFA(Football Federation Australia)로 변경했다. 축구가 ‘사커’에서 ‘풋볼’로 바뀐 것이다.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축구가 국기(國技)로 대접받는 나라에선 축구를 풋볼이라고 한다. 그러나 호주처럼 축구가 비인기 종목인 나라에선 대부분 사커라 부른다. 소문난 럭비광들인 호주 사람들은 당연히 럭비를 풋볼이라고 부른다. 호주가 월드컵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얻자 몇몇 축구계 인사가 “지금부터라도 축구를 풋볼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반응은 아직 냉담한 실정이다.

    그래도 2005년 8월7일 ‘현대 A리그’가 개막되면서 호주 축구의 위상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 호주 7개 팀과 뉴질랜드 1개 팀 등 8개 팀으로 출범한 ‘현대 A리그’는 개막전부터 이변을 일으켰다. 개막전 관중을 당초 1만5000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8만명이 운집했다. 개막전 이후에도 관중동원은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출범 첫해에 평균 관중수가 2만명을 육박한다는 것은 출범한 지 오래된 한국 K리그의 평균 관중수가 7000명을 밑도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척 놀라운 결과다.

    또한 현대차 호주법인은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사커루를 위해서 호주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사커루 성공기원 팬 사인회’를 열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대형 축구 볼에 사인을 하는 행사였는데 가는 곳마다 대성황을 이뤘다. 아울러 5인조 축구경기를 개최해서 우승한 멜버른팀이 독일에서 경기를 벌이고 있다.”

    ▶ 축구 광고 마케팅 전략이 결국은 자동차 판매로 이어져야 할 텐데.

    “‘현대 A리그’를 통해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성과를 얻고 있다. 구체적인 판매 전략으로 호주 전역의 145개 딜러를 해당지역의 축구클럽과 연계하는 프로그램(Grassroots Program)을 추진하고 있다. 월드컵 공동후원사인 나이키, 맥도날드, 코카콜라, 콴타스 항공 등과 공동으로 연계 마케팅을 구축하는 일도 매우 희망적이다.

    현대차 호주법인이 마케팅 전략으로 축구를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호주 축구의 장래가 아주 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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